코로나로 그나마 형제자매들끼리 생일도 축하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오직 카톡으로 생일 축하한다는 꽃바구니와 메시지를 보내고 받는 것으로 만족했다. 함께 한 끼 밥을 먹는 일이 이렇게 어렵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땅을 실컷 밟고 실컷 걸어보고 싶다고 말한 친구도 생각난다. 코로나에 감염이 되어 2주간 격리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처럼 말했을 것이다. 그것뿐이랴. 코로나로 친구와 멀어진 것은 물론 내 행동반경이 위례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내버스를 타로 지하철을 타고 외출한 게 언제였더라.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하고 먼 산은 연둣빛으로 하루하루 봄빛을 뽐내 싱숭생숭해지는 중에 셋째 언니네 둘째 며느리가 서울로 이사 왔다고 시이모와 시삼촌을 초대했다. 시어머니의 시 자가 들어가는 시금치도 싫어한다는 요즘 며느리 답지 않은 조카며느리다.
조카네가 익산에 살던 5년 전. 형제들끼리 남도로 여행을 떠났던 그때도 우리를 초대한 적이 있다. 어린 새댁이 한 상 떡하니 차려놓아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시이모나 시삼촌을 제 이모와 삼촌 대하듯 다정하게 대하는 그녀의 눈매는, 종자골에 놀러오던 이웃집 개, 뚱순이의 순하고 사랑이 그렁그렁 고여있는 눈매를 닮았다. 무엇이든 다 줄 것 같은 너그럽고 따스하고 인정 넘치는 눈매 말이다. 이번이라고 다르랴. 한 상 푸짐하게 차려놓았다. 누가 해 주는 밥이 최고지 최고야. 내가 제일 큰소리로 외쳤다.
셋째언니는 꽃다발과 케잌을 들고 왔다. 그동안 서로 생일 축하를 못했으니 모인 김에 꽃다발을 돌아가면서 들고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지혜롭고 따스한 마음이다. 큰언니부터 꽃다발을 가슴에 안겨드렸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여든셋 큰언니 복사꽃처럼 활짝 피어난 여고생 되네
턱 들어 올리고 입 크게 벌려 세상 밝힐만한 밝기로 노래 부르시네
떡보 일흔 넷 작은 오빠는 꽃다발 두 손으로 받쳐들고
엄마가 쪄놓은 시루떡에 뽀얀 웃음 짓던 개구쟁이 그 시절 얼굴이네
일흔 하나 셋째 언니는 옆모습이 찍혔지만
며느리와 나와 눈 맞추어 신나게 손뼉 치시네
예순 다섯 살 나는 어리광쟁이 막내가 되어보려고
벌떡 일어서서 손뼉을 치면서 몸을 흔들고
여든 살 익산 둘째 언니
개나리꽃 면류관 머리에 올린 봄처녀 사진으로 등장하시네
예순 여덟 넷째언니
지구 건너편 아르헨티나에서
날리는 봄꽃잎처럼 그리움과 외로움 싣고 카톡으로 사뿐 당도하네
셋째언니네 서른 일곱살 둘째며느리
17층 아래쪽 별처럼 수를 놓은 벚꽃보다 다정하고 어여쁜 봄꽃이네
행복은 봄날의 부드러운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라고 했다. 멈춰서서 눈을 감으면 살갗에 감기는 바람의 감촉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듯이 행복도 스스로 느끼고 가슴에 안을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겠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나, 요즈음은 그 지나가는 행복을 ‘찰칵’ 아무 때나 사진으로 남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찰칵! 이라고 다 행복의 순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는 웃고 누구는 무표정하고, 누구는 옆을 보고 누구는 아래를 보고, 등등. 일치되지 않은 사진이 많은 것은 사실.이번에는 여러 장 중 딱 한 장 여럿이 하나처럼 행복으로 활짝 피어난 순간이 포착되었다. 찰칵! 행복!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