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와 원근(遠近) 도의 인식(認識) |
도와 가까워지는 곳 |
도와 멀어지는 곳 |
도를 인식하는 방향 |
자신 안 |
자신 밖 |
도를 인식하는 도구와 방법 |
깊은 통찰과 무위의 행위 |
감각기관과 인위의 행위 |
도를 인식한 결과 |
조용함 |
분주함 |
2) 인위(人爲)를 하지 않고 도에 도달할 수 있는 이유(존재론)
대상 |
도에 도달할 수 있는 이치 | ||
무엇을 아는가? (대상, 곳, 것) |
불출호지천하(不出戶知天下) |
인간세상의 이치(사회)를 앎 | |
불규유견천도(不闚牖見天道) |
자연환경의 이치(우주)를 앎 | ||
대상을 어떻게 인위(人爲)하지 않고 이루는가? (알고 구분하는가?) |
불행이지 (不行而知) |
불위이성 (不爲而成) |
자신의 내면을 보면 외면(사회와 우주)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내면과 외면은 하나로 통하기 때문이다. |
불견이명 (不見而名) |
47장은 죽간본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도덕경의 존재론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1장, 42장과 마찬가지로 후대에 형이상학자가 다듬어진 이론을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다듬어진 이론이란 인연생기론(因緣生起論)의 불교이론과 음양학설을 포함하는 주역이론 등을 수용한 존재론이 바탕에 놓여 있다.
이번 장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유념해야 할 곳 중 하나는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이 적어진다.”(其出彌遠 其知彌少)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지금의 쉬운 언어로 말했을 때, ‘공부하면 할수록 진리에서 멀어진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진다는 말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금의 시대에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자신이 전공한 분야의 이치에 밝고, 그 밝은 눈으로 세상에 힘을 얻어 경쟁에서 승리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세상의 이치에 밝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전공공부를 통해서 우주의 이치에 밝고, 그것을 생활에 응용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이치에도 밝다. 물론 이들의 공부가 우주와 세상의 부분에 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이치에 밝은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자는 공부를 많이 하여 지혜로워지면 도(道)와 멀어진다고 하였다. 자신이 아는 것은 부분에 불과한데도 전체를 아는 것으로 착각해서 그릇된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속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어설픈 지식이 오히려 일을 그릇되게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물에는 강(綱)과 망(網)이 있다. 강은 그물을 폈다 오므렸다는 하는 굵은 줄이다. 그래서 사물의 근본이라고도 한다. 망은 촘촘히 엮어져 있는 줄이다. 고기를 잡을 때 망을 당겨서는 안 되고 강을 당겨야 한다. 도를 닦은 사람은 강을 당기는데 비해 공부를 많이 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망을 당긴다고 볼 수 있다.
그물을 다룰 때 망을 당기는 사람이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많은 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잘났다고 여기면 더욱 안타깝다. 많이 알고 있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머리가 나쁘다고 업신여김 당한 경험이 있거나 자신의 못남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이다.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지에 대해 절감하게 되며 겸허하게 망이 아니라 강을 잡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움직이지) 않고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첫째는 인간의 내면을 제대로 볼 수 있으면 인간을 둘러싼 사회환경(天下 : 인간세상)이나 자연환경(天道 : 우주운행)을 볼 수 있는데,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존재론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몸에 있는 수많은 세포들이 인간의 몸 전체의 정보를 모두 공유하고 있어서 임의의 한 세포 안에 있는 정보를 알면 몸 전체의 정보를 아는 것과 같다. 어차피 우리의 과학기술 능력으로는 인간외면 모두를 알 수도 없다. 인간외면 모두를 알 수 없고 부분밖에 모른다면 강(綱)을 모르고 부분적인 망(網)만 알게 된다.
인간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바깥을 향해 움직일 필요가 없다. 인간내면의 근원을 보기 위해서는 깊은 명상이 필요한데, 인간외면을 향한 지식과 그것의 축적 방식은 깊은 명상을 방해한다. 그래서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이 줄어든다.(其出彌遠 其知彌少)고 한다. 물론 이때 외면을 향한 지식과 추적방식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방해를 피할 수 있다. 여기서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이때 형성된 지식이 부분적이며 외면적 지식이라고 알며, 추적 방식도 외면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한정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다. 도가사상에서는 인간내면을 보기 위해 명상하는 것을 ‘도를 닦는다’고 하며, 인간내면 전체를 볼 수 있을 때 ‘도통했다’고 한다.
(4) 문제 제기
1. 도가에서는 인간내면만 향하고 외면은 무시하는가?
2. 도가에서 도통하면 어떤 유용성이 있는가?
< 다음 주 강의 예고 >
통청아카데미 通 靑 Academy |
248회 |
주제: |
도덕경 읽기 (29강) (노자 도덕경 48장) |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 / 철학박사) | |||||
일시: |
2014. 12. 3. (수) pm 7:00 ~ 9:00 |
장소: 대구시립수성도서관 제1 강좌실 |
문의 |
010-3928-2866 | |||||
h.p. |
cafe.daum.net/tongchungdg |
248회, 2014.12.3,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노자 도덕경 48장 249회, 2014.12.10,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노자 도덕경 49장 250회, 2014.12.17, 이태호(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노자 도덕경 50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