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존재 이유는 마시는 이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다. 내게 맞고 내가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 곧 지상 최고의 와인이다.” 깊어가는 가을, 내게 맞는 지상 최고의 와인을 찾아 와인 향기에 취하고 싶다. 하지만 웬걸, 대체 어떤 와인을 고르지?
와인은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이나 많고, 와인의 종류는 지구상에 있는 와인 병의 수와 같다. 생산 국가와 지방, 토양, 포도품종, 포도수확 연도(빈티지), 수확 시기, 제조사, 양조방법, 품질등급 등에 따라 와인의 맛과 향이 다르고 유통과정, 보관기간, 보관상태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와인 애호가들은 어떤 와인을 즐겨 마실까. 와인 초보들을 위해 동아쇼핑점(와인나라)과 이마트 만촌점의 베스트셀러 와인을 조사했다. 많이 팔린다고 좋은 와인은 아니지만 초보들을 위한 어느 정도의 구매 가이드는 될 수 있다.
◆가격별=대구서는 1~2만원대 가장 많이 팔려
와인 구매를 결정하는 첫번째 요소는 가격이다. 와인을 진짜 모르는 왕초보들은 가격대만 미리 정해 매장에서 추천 받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대구에서는 보통 3만원을 기준으로 판매량에 급격한 차이가 발생한다. 3만원 이하의 와인은 가격이 싸 부담없이 매일 마실 수 있다는 의미에서 ‘데일리 와인’이라 불리는데, 대구에서 팔리는 와인 10병 중 7,8병은 데일리 와인으로 보면 된다. 행여 싸구려라고 무시하면 곤란하다. 내가 즐거운 와인이 지상 최고의 와인이라 하지 않았던가. 초보자들은 비싼 와인보다 저렴한 데일리 와인을 자주 마셔보면서 내게 맞는 와인을 고르는 게 오히려 낫다.
대구에서 많이 팔리는 데일리 와인은 1~2만원대, 1만원 미만, 2~3만원 순이며 발효가 끝난 와인에 당분과 효모를 별도로 첨가, 기포가 용해되도록 만든 스파클링 제품과 20,30대 젊은 여성들이 마시기 좋은 스위티한 종류가 많다.
하지만 와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맛에 대한 욕심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마트 만촌점 김명희 와인매니저는 “와인을 자주 구매하는 손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터넷이나 잡지에서 직접 찾은 비싼 와인을 찾기 시작한다”며 “좋아하는 와인의 세일 땐 ‘꼭’ 연락해달라는 분이 여럿이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 대한 거부감은 아직 여전한 편. 10만원을 넘어서면 찾는 손님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10만원 이하 가운데 3만원대 베스트셀러 와인으로는 2006년 한 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렸던 ‘에스쿠도 로흐’가 유명하고, 4만원대에선 ‘18홀을 65타에 치는 그날까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1865’가 베스트셀러로 꼽힌다. 또 국내에 와인붐을 몰고 온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 13권에 등장하는 ‘그라벨로(6만원대)’는 불고기, 김치 같은 한식과 궁합이 잘 맞는 와인으로 소개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포도품종별=세계4대 품종만 알아도 쉬워
“꺄베르네 쇼비뇽 품종에 드라이하면서 풀바디 느낌이 나는 와인을 추천해 주세요.” 와인 매장과 와인 레스토랑에 가면 자주 듣는 말이지만 와인 초보들에겐 스트레스다. 대체 뭔 소린지….
하지만 포도품종만 제대로 알면 별 게 아니다. 와인의 맛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포도품종으로, 품종별 고유 특성과 타닌, 산, 당분 함유량에 따라 와인의 맛이나 품질이 가장 크게 달라진다. 꺄베르네 쇼비뇽은 레드와인의 대표 품종. 일반적으로 레드 품종은 알코올로 완전 발효돼 단맛이 거의 남지 않고(이때 드라이하다는 표현을 쓴다), 풀바디(입안에서 느껴지는 농도나 질감이 묵직하다는 의미) 느낌이 강하다. 반면 화이트품종은 당분을 완전히 발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단맛이 남아 있는 스위트한 느낌이 강하고 무게감(라이트 바디)도 가볍다.
동아쇼핑 와인나라 윤영민 점장은 “와인 초보들은 달콤하고 가벼운 화이트와인으로 시작해 진하고 떫은 레드와인으로 옮겨간다”며 “중저가 와인일수록 화이트 품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포도품종을 구분할 땐 세계4대 품종과 기타 품종으로 기억하면 좋다. 4대 레드와인 품종은 꺄베르네 쏘비뇽`메를로`피노누아`쉬라즈가, 4대 화이트 품종은 샤르도네`리슬링`쏘비뇽블랑`쎄미용이 꼽히는데, 진펀델`꺄르메네르 등 기타 레드 품종과 모스카토 등 기타 화이트 품종도 잘 알려져 있다.
품종별 특징을 일일이 알아가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와인 이름이나 레이블(label)에 품종이 표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품종만 제대로 알아도 와인 고르기가 한결 쉬워진다. 예를 들어 ‘카스델로 델 포지오 모스카토 다스티’는 1만원대 베스트셀러 와인으로, 긴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 십상이지만 사실 모스카토 하나만 알면 된다. 모스카토는 이탈리아가 고향으로 꿀향, 아카시아향이 나는 화이트 포도품종. 살짝 달고 순하며 향이 강해 전세계적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나라별=신대륙 품종 초보자에 안성맞춤
와인업계에서는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독일 등 유럽 지역을 구대륙, 미국`캐나다`칠레`호주`뉴질랜드`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유럽 이외 지역을 신대륙으로 구분한다. 신대륙 와인들은 대부분의 레이블에 포도품종이 표기돼 알아보기 쉽고 값싼 제품들이 많아 와인 초보자들이 즐겨 마시기에 안성맞춤. 대구의 베스트셀러 데일리 와인에도 칠레, 미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은 신대륙산이 압도적이다.
◆산지별=프랑스는 보르도`미국은 캘리포니아
같은 나라라도 와인으로 유명한 산지가 따로 있다. 와인 산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프랑스 보르도지방. 보르도는 레드 품종이 80% 이상을 차지하며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고, 꺄베르네 쇼비뇽 품종을 위주로 3~5가지 품종들을 블렌딩하는 게 특징. 보르도가 구대륙 와인산지를 대표한다면 미국 캘리포니아는 신대륙 와인산지의 대명사. 국내에서 인기 있는 우드브리지 로제(1만원대), 켄달 잭슨 빈트너스 러저브 샤도네이, 로버트 몬다비 프라이빗 셀렉션(이상 3만원대) 모두가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와이너리별=8천여개가 ‘샤또’이름으로
와인의 맛과 품질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와이너리(와인메이커)다. 와이너리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뭐니뭐니해도 ‘샤또’.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8천여개 와이너리가 샤또라는 이름을 쓰는데, 100만원대 최고급 와인인 샤또 무똥 로칠드는 그랑 퀴리 1등급 ‘보르도 5대 와인’의 하나로 대접받는 명품이다. 한편 3만원대 베스트셀러 와인인 에스쿠도 로흐는 샤또 무똥 로칠드를 생산하는 프랑스 와인 명가 ‘바롱 필립 드 로칠드사’가 가문의 이름이자 상징인 로칠드(빨간 방패)를 스페인어로 번역해 칠레에서 만든 것. 같은 가격대의 펜폴즈 BIN2는 와인저장고 번호를 와인 이름으로 쓰는 것으로 유명한 호주 와인 명가 ‘펜폴즈사’에서 생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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