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부터 나는 오대산 인근에 위치한 삼봉휴양림에서 매월 이틀간씩
휴양림을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숲 해설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2일은 장기간의 티베트 여행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휴양림으로 숲 해설을 가게
되었다.
새벽 6시. 서울 도심을 빠져나와 미사리에서 홍천으로 가는 6번 도로에 올라서니 시계(視界)가 한층 밝아진다. 팔당호를
끼고 양쪽에 병풍처럼 펼쳐지는 푸른 숲은 글자그대로 한 폭의 산수화다. 더욱이 척박한 티베트고원지대에서 돌아 온지 불과 이틀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꼭 어느 동화 속의 나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푸르고 푸른 숲, 맑은 물, 습도를 적당히 유지하고 있는 신선한 공기… 손발이
쩍쩍 갈라질 정도로 건조한 날씨에다 한걸음을 내 딛기에도 숨이 가쁜 티베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금수강산은 과연 축복받은 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때마침 팔당호수에서 양평까지 이어지는 한강에는 물안개가 뭉개 뭉개 피어오르고 있다. 오, 이는 오직 자연만이
그릴 수 있는 오묘한 한 폭의 수채화다!
양양까지 이어지는 44번 국도를 달리다가 신내에서 우회전을 하면
56번 국도와 만난다. 좁은 2차선 국도는 꼬불꼬불하여 자동차의 속력은 저절로 느려지고 울창한 나무들이 코끝에 닿을 듯 다가온다.
도로변에 서 있는 옥수수나무들이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까지 감지될 장도로 조용한
길. 더욱이 이곳은 사람들에게 별반 알려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오지여서인지 오가는 차량들도 뜸하다.
솔치재를 넘어서면
더욱 울창해지는 수목들이 숲의 바다를 이루고, 자동차의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진다. 창촌을 지나자 ‘내린천 발원지 6KM'라는
간판이 눈에 띤다. 내린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다. 10시에 시작되는 숲 해설 시간까지는 아직 1시간 반의 여유가
있다. 나는 무엇에 끌린 듯 차를 내린천 발원지로 자동차의 방향을 돌린다.
길 초입에서부터 곧 비포장 자갈길이 시작된다. 길이
어찌나 험하던지 바퀴가 큰 지프차도가 마치 중중 해수에 걸린 것처럼 헐떡거린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인데다 길 양옆에 무성하게
자란 수풀 때문에 자동차의 속도는 거의 사람이 걸어가는 수준이다.
그러나 길 가에는 갖가지 여름 꽃이 만개하여 마치 천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착각이 든다. 개망초, 개쉬땅나무, 좀깨잎나무, 노루오줌, 개다래, 달맞이꽃… 그야말로 꽃들의 천국이다. 세상에 이런 곳도 다 있다니…
수풀과의 사이가 워낙 가까워 차창사이로 고개를 비집고 들어오는 꽃들에 취해가다가 나는 어느 한 지점에서 자동차를 멈추고 만다.
함박 같은 미소를 머금은 탐스러운 흰 꽃송이들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귀한 함박꽃나무다! 차에서 내린 나는
넋을 잃고 함박눈처럼 희고 고운 꽃송이를 바라본다.
내린천 깊은 산골자기, 무성한 숲 속, 휘휘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사이에서
주먹만한 하얀 꽃송이가 수줍은 산골처녀처럼 부끄러운 듯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바람 때문에 타원형 잎에 가렸다가 보였다가
하는 순백의 여섯 장 꽃잎 안에 있는 자줏빛 수술은 마치 립스틱을 바른 여인의 입술처럼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그 가운데 돌출한 연한 황색 암술은
최종 마침표가 되어 함박꽃나무의 매력을 더욱 넘치게 한다.
과연 북한의 김일성이가 나라꽃을 진달래에서 함박꽃나무로 바꿀 만도 하다.
1980년대 초반 김일성이는 이 함박꽃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해 북한의 국화를 진달래에서 함박꽃나무로 바꾸었다고 한다.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수로 높이가 그 10미터를 채 넘지 않는다. 잔 가지가 우산살처럼 아래로 늘어지는 유연성은 난초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함박꽃나무를 목란이라고 부른다. 나무에 피는 난초라는 뜻이다.
함박꽃나무는 산에 피는 목련이라 하여 산목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한자로는 천녀화(天女花)라고 하여 천상의 여인에 비유하고 있다. 백옥처럼 흰 꽃송이가 함박 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 순결한
모습은 천녀화로 불릴 만도 하다. 세계 목련학회에서도 서양의 목련들을 제치고 우리나라 함박꽃나무가 가장 많은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1992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공원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뽑혀나갔던 나무이기도 하다.
어?
이러다가 숲 해설 시간에 늦겠는데. 함박꽃나무에 정신을 한참 빼앗기다가 차를 돌려 나오는데 개망초 사이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달맞이꽃이 너무도
아름답다. 아무리 늦더라도 저 모습을 카메라를 담지 않을 수 없지. 그런데 저런, 카메라가 없다. 함박꽃나무를 분명히 찍었는데…
다시 함박꽃나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보니 풀 섶에 카메라가 떨어져 있다.
아이구, 이거 천녀화에 홀려 숲 해설 시간에 지각하고, 카메라도 잊을 뻔 했네. 그러나 설혹 카메라를 잃어버렸다고 해도 미련이 없었을 게다.
함박꽃나무와의 아름다운 나만의 밀애가 이미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었으므로.
그 후 7월 15일, 나는 다시 내린천을 찾아갔다.
함박꽃나무와 밀애를 다시 한번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천녀화는 이미 천상으로 올라가 버렸는지 꽃이 피었던 자리엔 고추만한 열매만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다.
함박꽃나무 열매는 우리나라 붉은 고추와 서양의 빨간 피망 중간 정도
크기의 주머니가 달린다. 가을에 붉은색으로 익는 열매는 하얀 실을 뚫고 주홍색의 씨가 두 개씩 마치 석류 알처럼 벌어지면서 고개를 내민다.
이 씨앗은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로 열매가 벌어질 즈음에는 산새들의 즐거운 식사장소가 되지만, 정작 이 씨를 심어 발아시키기 것은
무척 까다롭다. 묘목 또한 옮겨 심는 것을 싫어하여 꽃을 보기까지 키우려면 여간 정성을 들여야만 한다. 공해를 무척 싫어하는 함박꽃나무는 키우기
까다롭고 아름다움만큼이나 절개도 매우 굳은 나무다.
그런데 내린천 아래 녘에는 벌써부터 개발붐을 타고 펜션이 들어서고 닭도리탕
같은 간판을 내건 음식점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제발 이 길만큼은 자연 그대로 보존하고 개발도 금지시켰으면 좋겠다. 그래야
천녀처럼 절개가 굳고 고결한 아름다운 간직한 함박꽃나무와 두고두고 밀애를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어느 아득한 눈나라 북녘에서
왔을까 백두대간 지리산 능선에는 하 눈부셔서 눈감아야 오롯하게 보이는 꽃 있어 함박꽃, 산목련이라고도 부르는 그
꽃 지그시 눈감고 들여다보면 불타는 꽃 심장 속 한 번도 내어준 적 없는 마음의 빛깔이랑 그 꽃 가슴 둘러싼 시원(始原)의
하늘빛도 비쳐와
여염집 키 큰 목련만 보아도 가슴 뛰는데 가시덩굴 바위틈 함박꽃, 그 꽃덩이 보면 나는 그만
숫총각이 되고 만다네
열아홉 숫총각이 되어 봉화산 영취산 속리산 태백산 금강산 넘어 넘어서 가면 이제껏 지도책에도 나와
있지 않은 어느 눈부신 나라 이 세상 맨 처음의 처녀 같은 함박꽃 그 꽃그늘 아래 한 천 년쯤 쉬어가고 싶네”
금년부터 나는 오대산 인근에 위치한 삼봉휴양림에서 매월 이틀간씩
휴양림을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숲 해설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2일은 장기간의 티베트 여행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휴양림으로 숲 해설을 가게
되었다.
새벽 6시. 서울 도심을 빠져나와 미사리에서 홍천으로 가는 6번 도로에 올라서니 시계(視界)가 한층 밝아진다. 팔당호를
끼고 양쪽에 병풍처럼 펼쳐지는 푸른 숲은 글자그대로 한 폭의 산수화다. 더욱이 척박한 티베트고원지대에서 돌아 온지 불과 이틀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꼭 어느 동화 속의 나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푸르고 푸른 숲, 맑은 물, 습도를 적당히 유지하고 있는 신선한 공기… 손발이
쩍쩍 갈라질 정도로 건조한 날씨에다 한걸음을 내 딛기에도 숨이 가쁜 티베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금수강산은 과연 축복받은 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때마침 팔당호수에서 양평까지 이어지는 한강에는 물안개가 뭉개 뭉개 피어오르고 있다. 오, 이는 오직 자연만이
그릴 수 있는 오묘한 한 폭의 수채화다!
양양까지 이어지는 44번 국도를 달리다가 신내에서 우회전을 하면
56번 국도와 만난다. 좁은 2차선 국도는 꼬불꼬불하여 자동차의 속력은 저절로 느려지고 울창한 나무들이 코끝에 닿을 듯 다가온다.
도로변에 서 있는 옥수수나무들이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까지 감지될 장도로 조용한
길. 더욱이 이곳은 사람들에게 별반 알려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오지여서인지 오가는 차량들도 뜸하다.
솔치재를 넘어서면
더욱 울창해지는 수목들이 숲의 바다를 이루고, 자동차의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진다. 창촌을 지나자 ‘내린천 발원지 6KM'라는
간판이 눈에 띤다. 내린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곳이다. 10시에 시작되는 숲 해설 시간까지는 아직 1시간 반의 여유가
있다. 나는 무엇에 끌린 듯 차를 내린천 발원지로 자동차의 방향을 돌린다.
길 초입에서부터 곧 비포장 자갈길이 시작된다. 길이
어찌나 험하던지 바퀴가 큰 지프차도가 마치 중중 해수에 걸린 것처럼 헐떡거린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인데다 길 양옆에 무성하게
자란 수풀 때문에 자동차의 속도는 거의 사람이 걸어가는 수준이다.
그러나 길 가에는 갖가지 여름 꽃이 만개하여 마치 천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착각이 든다. 개망초, 개쉬땅나무, 좀깨잎나무, 노루오줌, 개다래, 달맞이꽃… 그야말로 꽃들의 천국이다. 세상에 이런 곳도 다 있다니…
수풀과의 사이가 워낙 가까워 차창사이로 고개를 비집고 들어오는 꽃들에 취해가다가 나는 어느 한 지점에서 자동차를 멈추고 만다.
함박 같은 미소를 머금은 탐스러운 흰 꽃송이들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귀한 함박꽃나무다! 차에서 내린 나는
넋을 잃고 함박눈처럼 희고 고운 꽃송이를 바라본다.
내린천 깊은 산골자기, 무성한 숲 속, 휘휘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사이에서
주먹만한 하얀 꽃송이가 수줍은 산골처녀처럼 부끄러운 듯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바람 때문에 타원형 잎에 가렸다가 보였다가
하는 순백의 여섯 장 꽃잎 안에 있는 자줏빛 수술은 마치 립스틱을 바른 여인의 입술처럼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그 가운데 돌출한 연한 황색 암술은
최종 마침표가 되어 함박꽃나무의 매력을 더욱 넘치게 한다.
과연 북한의 김일성이가 나라꽃을 진달래에서 함박꽃나무로 바꿀 만도 하다.
1980년대 초반 김일성이는 이 함박꽃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해 북한의 국화를 진달래에서 함박꽃나무로 바꾸었다고 한다.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수로 높이가 그 10미터를 채 넘지 않는다. 잔 가지가 우산살처럼 아래로 늘어지는 유연성은 난초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함박꽃나무를 목란이라고 부른다. 나무에 피는 난초라는 뜻이다.
함박꽃나무는 산에 피는 목련이라 하여 산목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한자로는 천녀화(天女花)라고 하여 천상의 여인에 비유하고 있다. 백옥처럼 흰 꽃송이가 함박 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 순결한
모습은 천녀화로 불릴 만도 하다. 세계 목련학회에서도 서양의 목련들을 제치고 우리나라 함박꽃나무가 가장 많은 극찬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1992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공원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뽑혀나갔던 나무이기도 하다.
어?
이러다가 숲 해설 시간에 늦겠는데. 함박꽃나무에 정신을 한참 빼앗기다가 차를 돌려 나오는데 개망초 사이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달맞이꽃이 너무도
아름답다. 아무리 늦더라도 저 모습을 카메라를 담지 않을 수 없지. 그런데 저런, 카메라가 없다. 함박꽃나무를 분명히 찍었는데…
다시 함박꽃나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가보니 풀 섶에 카메라가 떨어져 있다.
아이구, 이거 천녀화에 홀려 숲 해설 시간에 지각하고, 카메라도 잊을 뻔 했네. 그러나 설혹 카메라를 잃어버렸다고 해도 미련이 없었을 게다.
함박꽃나무와의 아름다운 나만의 밀애가 이미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있었으므로.
그 후 7월 15일, 나는 다시 내린천을 찾아갔다.
함박꽃나무와 밀애를 다시 한번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천녀화는 이미 천상으로 올라가 버렸는지 꽃이 피었던 자리엔 고추만한 열매만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다.
함박꽃나무 열매는 우리나라 붉은 고추와 서양의 빨간 피망 중간 정도
크기의 주머니가 달린다. 가을에 붉은색으로 익는 열매는 하얀 실을 뚫고 주홍색의 씨가 두 개씩 마치 석류 알처럼 벌어지면서 고개를 내민다.
이 씨앗은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로 열매가 벌어질 즈음에는 산새들의 즐거운 식사장소가 되지만, 정작 이 씨를 심어 발아시키기 것은
무척 까다롭다. 묘목 또한 옮겨 심는 것을 싫어하여 꽃을 보기까지 키우려면 여간 정성을 들여야만 한다. 공해를 무척 싫어하는 함박꽃나무는 키우기
까다롭고 아름다움만큼이나 절개도 매우 굳은 나무다.
그런데 내린천 아래 녘에는 벌써부터 개발붐을 타고 펜션이 들어서고 닭도리탕
같은 간판을 내건 음식점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제발 이 길만큼은 자연 그대로 보존하고 개발도 금지시켰으면 좋겠다. 그래야
천녀처럼 절개가 굳고 고결한 아름다운 간직한 함박꽃나무와 두고두고 밀애를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어느 아득한 눈나라 북녘에서
왔을까 백두대간 지리산 능선에는 하 눈부셔서 눈감아야 오롯하게 보이는 꽃 있어 함박꽃, 산목련이라고도 부르는 그
꽃 지그시 눈감고 들여다보면 불타는 꽃 심장 속 한 번도 내어준 적 없는 마음의 빛깔이랑 그 꽃 가슴 둘러싼 시원(始原)의
하늘빛도 비쳐와
여염집 키 큰 목련만 보아도 가슴 뛰는데 가시덩굴 바위틈 함박꽃, 그 꽃덩이 보면 나는 그만
숫총각이 되고 만다네
열아홉 숫총각이 되어 봉화산 영취산 속리산 태백산 금강산 넘어 넘어서 가면 이제껏 지도책에도 나와
있지 않은 어느 눈부신 나라 이 세상 맨 처음의 처녀 같은 함박꽃 그 꽃그늘 아래 한 천 년쯤 쉬어가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