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렬 양정씨 지려(節烈 兩丁氏 之閭)
종 목 : 지방문화재자료 제 171호(전북)
명 칭 : 절렬양정씨지려
지정일 : 2000. 11 .17 지정
소재지 : 전북 장수군 산서면 하월리 429(계월로 319-23)
절렬 양정씨 지려(節烈兩丁氏之閭) 정려각
오늘은 산서면 하월리 신등마을에 있는 절개를 지킨 丁氏의 열녀 두 분을 기리기 위해 모셔놓은
정려각을 찿아 뵙기로 한다 산서면사무소 출발점을 잡아 남원. 보절 방향으로 약 4㎞ 지점에
계월삼거리가 나온다 도로가 우측에 절렬양정씨지려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이 곳에서 우측 방향으로 1.5㎞ 가면 신등마을이 나온다 신등마을 입구에는 월곡정(月谷亭)이란
정자가 있으며 정자 뒤편으로 정려각이 있다.
절렬 양정씨 지려(節烈 兩丁氏 之閭)란 말그대로 두명의 정씨여인이 죽음을 무릅쓰고 정절을
지켜서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 마을 어귀에 세운 비각 이라는 뜻이다
산서면 하월리는 창촌, 신등 두 마을을 합쳐서 하월리(下月里)라 한다 이 곳의 신등마을은
신등, 등동으로 나뉘어 부르기도 하는데 두 이름을 합하여 신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려각의 이모저모
정황의 후손들이었던 이 분들의 행적은 정려각 안에 걸린 현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한분은 유인 창원정씨이며 이는 정황의 현손인 석후(錫後)의 딸로 풍천인(豊川人)생원
노세기(盧世琦)에게 출가하여 시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가족에게 온후하여 세상에 칭송을
많이 받았다 인조 16년(1638년) 봄에 도둑이 들어 남편인 노세기를 끌어내어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이때에 부인은 도둑들에게 재물은 마음대로 가져가되 사람만 죽이지 말라고 간청
했으나 도둑들은 더욱 흉기를 휘둘러 남편을 다치게 하려 하자 부인이 남편의 몸을 가리어
무사히 화를 면하게 되었다 그 후유증으로 8년후 인조 24년(1646년)에 남편이 죽자 장사를
치른 후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의 뒤를 따라 죽었다.
훗날 나라에서 열려의 명정을 내려 열행(烈行)을 치하하고 정문(旌門)을 건립 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정려(旌閭)가 훼손되자 두 정려를 하나로 하고 편액을 한군데 걸어 현재는
하나로 유지 보존되고 있다 정려각안 왼쪽의 편액을 보면 명정(銘旌) 열녀성균생원풍천노세기처
유인창원정씨지려(烈女成均生員豊川盧世琦妻孺人昌原丁氏之閭)이라 걸려있다.
명정(銘旌)-장례식에 쓰이는 붉은 천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관직이나 성명 따위를 적은 조기(弔旗)
명정 열녀성균생원풍천노세기처유인창원정씨지려
또 한분은 영인(令人)정씨이며 유헌정황의 현손인 지(至)의 딸이며 현감 권백시(權伯時)에게
출가 하였다 정유재란(1597년)때 왜적들에게 봉변을 피하고자 숲으로 피했으나 왜적들의
집요한 추적으로 봉변을 당하게 되자 남편에게 아들을 데리고 피할것을 권하고 자신은 스스로
물 속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훗날 나라에서 열녀의 뜻을 받들어 이 곳에 정려각을 세웠다
그때가 선조37년(1604년)이다 정려각 오른쪽 편액을 보면 선조(宣朝) (갑진년1604)명정(銘旌)
(節婦朝散大夫司甕院僉正權伯時妻令人昌原丁氏之閭)
(절부조산대부사옹원첨정권백시처영인창원정씨지려)쓰여있다 이후 조선 경종3년(1723년)에
두 분을 한군데 편액하여 모시게 된 것이다.
선조 갑진 명정 절부조산대부사옹원첨정권백시처영인창원정씨지려
이 정려각에는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 솜씨가 담겨 있는데 정면과 측면이 각 한 칸씩이고
정면이 더 넓은 편으로 시원한 느낌이 든다 내부는 2칸으로 나누어 두 정려의 정려판을 편액하여
걸어놓은 상태이다 이 곳의 정려각은 2000년 11월 17일 절개와 지조를 지킨 두 분 열녀의
의행을 기린 문화재로 보호가치가 높아서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경종3년(1723)에 세우고 순조 19년(1819)에 고친 것이다 오래 되어서 보기에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때 그 시절의 절개를 지킨 열녀의 의행은 오늘날까지 후손들에게 자랑으로
전해지고 있어 가슴이 뿌듯하다.
* 찿아오는 길
역사적인 용어설명 ;
정려((旌閭) : 예전에, 충신(忠臣), 효자(孝子), 열녀(烈女) 등을 기리기 위해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는 일을 이르던 말.
정려각(旌閭閣) : 충신(忠臣)ㆍ효자(孝子)ㆍ열녀(烈女) 등(等)을 그 동네에 정문 (旌門)을 세워
표창(表彰)하는 것으로 비각을 세운 것.
지려(之閭) : 정려각(旌閭閣)이라고 한다
열녀(烈女) : 위난을 당하여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한 부녀자로 일반적으로 열녀와 열부(烈婦)를 통칭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충·효·열 관념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 형태로 정치적· 사회적 규범으로 체계화
되면서 열녀는 사회적으로 더욱 중요성을 강화해 갔다.
내 고장 장수에는 알려진 곳 또는 생소한 곳 수 많은 정려(旌閭)가 있다 우리에게 잊혀져간
정려((旌閭), 열녀(烈女), 지려(之閭)등 무관심으로 폐허가 되어가는 조상들의 소중한 문화유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간략히 서술 하고자한다.
1. 조성순 처(曺聖淳 妻) 열녀, 김해김씨(金海金氏) 정려 - 장수읍 노곡리
2. 효자(孝子) 모순(牟恂) 정려 - 산서면 건지리 진전
3. 효자(孝子) 임옥산(林玉山) 정려 - 산서면 오산리 하오
4. 절렬 양정씨 지려(節烈 兩丁氏 之閭) - 산서면 하월리 신등
5. 권희언 처(權希彦 妻) 열녀 남평문씨(南平文氏) 정려 - 산서면 오산리
6. 박이항 처(朴以恒 妻) 열부(烈婦) 원주원씨(原州元氏) 정려-산서 백운리
7. 김익 처(金釴 妻) 열녀 전주이씨(全主李氏) 정려 - 산서면 이룡리
8. 증 통훈대부(贈 通訓大夫) 사복사정(司僕寺正) 김연장 처(金鍊章 妻) 열녀
숙인(淑人) 진주소씨(晋州蘇氏) 정려 - 산서면 하월리
9. 효자(孝子) 육호진(陸好鎭) 정려 - 산서면 마하리 원흥
10. 효자(孝子) 윤행혁(尹行爀) 정려 - 산서면 신덕리
11. 효자(孝子) 양재철(梁在澈) 정려 - 산서면 백운리
12. 효자(孝子) 윤필은(尹弼殷) 정려 - 산서면 신덕리
13. 효자(孝子) 장기하(張基河) 정려 - 산서면 오성리
14. 효자(孝子) 장사명(張士明) 정려 - 번암면 동화리
15. 효자(孝子) 정종목(鄭鍾穆) 정려 - 번암면 국포리
16. 효자(孝子) 육봉천(陸奉天) 정려 - 장계면 무농리
17. 효자(孝子) 육재중(陸在中) 정려 - 장계면 무농리
18. 효자(孝子) 박귀천(朴貴千) 정려 - 천천면 월곡리 박곡
19. 효자(孝子) 김 흘(金 肐) 정려 - 천천면 삼고리
20. 효자(孝子) 장영손(張永孫) 정려 - 천천면 월곡리
21. 서문배 처(西門培 妻) 열부(烈婦) 서산정씨(瑞山鄭氏) 정려 - 계남면 침곡리 사곡
22. 효자(孝子) 이동화(李同華) 정려 - 계남면 가곡리
23. 효자(孝子) 양 근(梁 根) 정려 - 계남면 화음리 수열평
24. 효자(孝子) 이정근(李正根) 정려 - 계남면 가곡리
25. 효자(孝子) 김선후(金善厚) 정려 - 계북면 어전리
님들을 향한 이 내몸 일편단심 변하지 않으리라 !
~ 장수에서 호롱불 최 용 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