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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소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고대사료에 증거 한 주장이 아니고, “현행 한국의 국사에 준거”하여“ 중국과 일본의 국사교과서가 편찬 ”돼 있기 때문에 침략자의 손으로 만든 망국적 치욕의 현행 국사를 개편하지 않고는 한,중,일 3군 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없으며,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결코 무력화 시킬 수 없습니다. 특히 일본왕의 충견이었던 이병도는 본래 중국 대륙에서 건국되었던 신라, 백제, 가야의 3국을 한반도 속으로 축소한 반민족적 범행으로 말미암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삼국사기의 올바른 이해
김부식은 사대주의자가 아닙니다.
현행 국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권을 근간으로 “현행 국사교과서”가 편찬된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은 신라, 백제, 가야국의 3국이 본래 중국대륙에서 건국된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병도는 마치 삼국사기의 지명이 원래 한반도 속의 지명인 것처럼 얽어 맞추고, 김부식 보다도 이병도 자신이 임의대로 지정한 지명에 대한 역주(譯註)가 더 정확한 것 같이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혹평 매도, 비방하며, 이병도 자신이 한반도 속으로 축소한 음모를 오히려 김부식에게 덮어씌웠던 것입니다.
이병도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2권을 증서로 삼아 "고구려, 백제, 신라 "의 3국 시대부터 우리나라의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왜곡, 변조, 조작하고 중국대륙에서 건국된 세계적 대국의 고조선 삼한과 아세아적 대국의 삼국 영토를 한반도 속으로 쪼그라들게 축소, 조작하여 [조선사:현행 국사]를 편찬하여 반민족적 범행을 자행했던 것입니다.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중국 지명을 이병도가 한반도 속으로 얽어 맞춘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 재야사학자들도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혹평 매도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한국의 고대사는 비록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두 권 밖에 없으나 이 두 권을 올바로 이해하고, 삼국사기의 地理志(지리지)에 기록된 지명을 사실 그대로 탐색한다면 신라. 고구려, 백제, 가락국의 4국은 결코 한반도 속에서 개국한 나라가 아니라 중국 대륙에서 개국한 사실을 명확히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어느 한 지명만 검증된다면 일제의 만행과 이병도의 범행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수로왕은 김유신의 12대조이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삼국사기 권 제 41(열전 제1 김유신 상]에서 가락국(가야)의 수로왕은 김유신의 12대조이고 9세손 구해(仇亥)왕은 김유신의 증조가 된다. 신라의 國子博士(국자박사) 薛因宣(설인선)이 지은 김유신의 碑銘(비명)과 朴居勿(박거물)이 짓고 姚克一(요극일)의 글로된 三郞寺(삼랑사) 碑文(비문)에도 신라 사람들은 小昊金天氏(소호금천씨)의 후손이고 황제 軒轅(헌원)의 후예이다. 고구려 또한 高辛氏(고신씨)의 후손이다. 라고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우리민족의 기원 역사가 분명히 밝혀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병도는 譯註(역주)에서 이르기를 이는 마치 김유신전 및 백제기말 史論(사론)에 신라인이 자칭 소호금천씨의 후예라 하였다. 고로 성을 金氏(김씨)라 하였다. 함과 사기 흉노전에서 흉노의 그 선조는 夏后氏(하후씨)의 후예라 함과 같은 따위의 유례로 고구려인이 어떠한 정책상으로 그런 표방을 하였는지도 모를 것이다. 라고 김부식을 매도하고 빈정거리는 기사로 되어있습니다.
삼국사기에서 황제헌원이 우리나라 조상이란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 했을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의 4국은 중국 대륙에서 건국한 사실을 분명히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사편수회의 핵심위원이었던 이병도는 삼국사기의 지명을 한반도 속으로 얽어 맞춰 대국을 소국으로 축소하고, 우리민족은 세계에서 문명이 제일 뒤떨어진 미개한 민족으로 비하하고,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동명성제), 가야국의 김수로왕 등 일체지혜에 형통한 성인(聖人:천자)을 부족장으로 취급하여 대한민족의 자긍심을 철저히 말살 했습니다.
[고등 국사 51쪽] 가락국(금관가야)은 3세기경 경남 김해의 금관가야가 중심이 되어 연맹왕국으로 발전하였다. 이를 전기 가야 연맹이라고 부른다. 연맹의 맹주인 금관가야는 김수로에 의하여 건국되었다(42). 그 세력 범위는 낙동강 유역일대에 걸쳐 있었다. (중략) 현행 국사에서 경남 김해는 가야국의 도읍지로 명기돼 있고, 중, 고, 대학의 국사에서 가르치고 있으므로 오늘날 모든 한국인의 일반적 국사 상식입니다.
신라의 3주와 엉터리 김해소경의 현재지명
국명 |
구분 |
舊州名(구주명) |
9주(州) |
5小京(소경) |
군수 |
현수 |
현 지명 |
비 고 |
신 라 |
1 |
沙伐州(사벌주) |
尙州(상주) |
⇒ |
10 |
30 |
尙州(상주) |
경북 |
2 |
歃良州(삽량주:양산) |
良州(양주) |
金海(김해) |
12 |
34 |
金海(김해) |
경남 | |
3 |
菁州(청주) |
康州(강주) |
⇒ |
11 |
27 |
晉州(진주) |
경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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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가야국 良州(양주)의 군현(郡縣) | ||
군(郡) |
현(縣) 참조:( )는 현재지명 | |
1 |
義安郡(의안군)함안군 |
1.칠제현(함안군) 2.합포현(마산시) 3. 웅신현(창원군 웅천면) |
2 |
密城郡(밀성군) |
1.상약현(창령군영산면)2.밀진현(?) 3.오구산현(청도군) 4.소산현(청도) |
3 |
火王郡(화왕군)창령군 |
1.현효현(경북 달성군 현풍현) [양주에 경북 달성군이 있다] |
4 |
壽昌郡(수창군:大邱) |
1.대구현(대구시).2.팔거현(칠곡군) 3.하빈현(하빈면) 4.화원현(화원) |
5 |
獐山郡(장산군:경북경산) |
1.해안현(해안현) 2.여랑현(경산군 자인) 3.자인현(경산 자인면) |
6 |
臨皐郡(임고군):영천시 |
1.장진현(달성군 해안면) 2.임천현(경북 영천) 3.도동현(영천) 4.신령현(영천군 신령면) 5.민백현(영천군 신령면) |
7 |
東萊郡(동래군): 부산 |
1.동평현(동래읍 남쪽) 2.기장현(동래군 기장면) |
8 |
東安郡(동안군): 경주 |
1.우풍현(虞風縣(蔚州:울산시) |
9 |
臨關郡(임관군): 경주 |
1.동진현(울주:울산) 2. 하곡현(河谷縣:울주:울산시) [산서성] |
10 |
義昌郡(의창군) |
1.안강현(월성군 안강리) 2. 기립현(영일군 장기면) 3.신광현(영일군 신광) 4.임정현(영일현) 5.기계현(영일군 기계면) |
11 |
大城郡(대성군):청도군 |
1.약장현(경주) 2. 동기정(월성군 경주) |
12 |
商城郡(상성군): 경주 |
1.남기정(경주) 2. 중기정(경주) 3.서기정(경주) 4.북기정(경주) 5.막야정(경주시) |
일본의 임나가야(任那加耶,경남 김해) 본부설
왜는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간 일본이 경남 김해에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고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로 경영했다는 학설을 지금 일본 국사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3세기 중엽에 이미 왜인은 변진구야국(弁辰狗邪國), 곧 임나가야(任那加耶)지역을 점유하고 삼한지역을 통제했다.
또한 일본(왜)은 370년경 임나가야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백제와 신라에 편입되지 않은 대부분의 삼한 소국을 정복하여 직접 지배했으며, 임나의 지배체제를 이때에 성립시켰다. 왜는 임나의 지배범위를 계속 확대하여 북서쪽 금강 유역, 북동쪽은 낙동강 상류유역까지 이르렀다. 임나는 400년 무렵에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파견한 군사 5만 명의 침입을 받은 이래 쇠퇴를 거듭하다가 562년 신라의 대가야 정벌 때에 임나관가(任那官家)가 토멸됨으로써 결국 멸망했다. 그 뒤 왜는 임나 고지(故地)에 대한 연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646년까지 임나에게 공납을 요구했다고 한다.는 주장입니다.
한,중,일 정부당국자의 답변서를 요구 한다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도 김해경(金海京)은 자연 경관이 빼어나게 수려하고 기이하여 16나한(羅漢)들이 유람했던 천하 절경의 황산(黃山:안휘성)이 있었다. 중국 남부 안휘성(安徽省)의 동쪽, 양자강 이남에 위치한 황산은 수로왕이 말한 것과 같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72개의 기이한 군봉들은 신선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황산은 중국 10대 명승지중의 하나이며 1990년 UN에 세계 자연과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가야국(가락국=임나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처음 즉위한 임인(42년)부터 제 10대 구형왕 말년 임자(532년) 까지 가야의 역년은 무려 490년이다. 가락국이 멸망한 이후 신라 제 31대 신문왕이 즉위한 신사(681년)에 金官京(금관경)이라 이름하고 태수를 두었다. 그리고 259년 후에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통합한 이후는 臨海縣(임해현:절강성)이라 하고 排岸使(배안사)를 두고 48년 간 그대로 이름하였다, 다음에 臨海郡(임해군) 혹은 金海府(김해부)라 하고 都護府(도호부)를 두고 27년 동안 그대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