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에 유배된 폐군과 왕족- 안평대군, 능창대군, 영창대군
로히이모 2022. 12. 10. 06:42
안평대군
수양대군은 손수 안평대군에게 편지를 보내어 '네 죄가커서 참으로 주살을 용서할 수 없으나 다만 세종,문종께서 너를 사랑하시던 마음으로 너를 용서하고 더 이상 다스리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정인지 등이 안평대군을 사사해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마침내 안평대군은 그해 유배 중에 교동에서 사약을 받았다.
안평대군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나 삼절이라 불렸으며 당시 문화계의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1447년(세종 29) 도원을 꿈꾸고 그 내용을 안견에게 설명하여 그리게 한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손수 그림의 제목과 시와 글을 썼다.
몽유도원도에 찬문을 남긴 인물은 신숙주, 정인지, 박연, 김종서, 최항, 서거정, 성삼문 등으로 모두 안평대군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다.
몽유도원도의 그림과 곁들여진 시와 글씨는 조선 초기 문화예술의 성과가 집대성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능창대군
능창군은 원종의 셋째아들로 출중한 재기가 있었다. 1615년(광해군7) 양시우, 김정익 등이 반역을 모의하고 능창군을 추대하려 한다는 상소가 들어오자 능창군을 교동에 위리안치 시켰다.
위리안치소를 지키는 수장이 능창군을 찬돌방에 자게하고 흙이 섞인 밥을 주는 등 핍박하자 결국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 해 11월 스스로 목을 메어 죽었다는 설이 있으나 독살에 의하여 전신에 독이 퍼저서 생기는 검푸른 점이 확인 죔으로서,
본가에 대대로 구전 되어온 사인은 독살로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