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깃들지 않은 산천이 없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 강산이 아닌가 합니다. 아주 오래전 모 방송국에서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프로가 방영될 만큼 우리나라 강산 곳곳에 전설이 가득합니다. 이젠 본격적으로 여름향기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7월을 목전에 둔 29일 걸음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행선과 목적지를 정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조건을 갖고 퍼줄을 맞혀 나가듯 목적지와 함께 일정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아무래도 물을 곁에 두고 걷는 일은 여름의 정취에 심신을 잠시 맡기는 일입니다. 계곡 탐방과 산허리를 돌아 나가 원점 회귀하는 곳을 목적지로 정하고 모임 장소 만들어 서로 소통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일 양양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설악 ic로 진출한 후 국도를 이용하여 魚飛 溪谷으로 접근하였습니다.
양평과 가평이 경계를 이루는 곳 따라 산맥을 이루며 제각각 나름의 정상을 지니고 있는 산들이 있습니다. 용문산을 비롯하여 어비산, 유명산, 중미산 청계산, 운길산, 예봉산, 검단산, 용마산,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입니다. 옛적에 양평은 양근이라 하였습니다. 남한강이 휘돌아 나가면서 강둑을 무너트려 늘 침수의 피해를 본 덕분에 양근보다는 옥천에 모든 행정, 교육시설을 두어 양근보다는 옥천이 도시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추후 양근은 지평과 같은 군으로 묶으면서 각각 고을의 이름 한 자씩을 따서 양평이란 이름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양평은 번듯한 군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고 옥천은 상대적으로 퇴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양평이나 옥천 마을에서 가평 관할인 설악을 가려면은 중미산과 유명산 사이 오솔길을 걸어 오르면서 두 개의 재를 넘어가야 비로소 가일리란 마을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더 곧장 내려가며 설악이란 고을로 갈 수 있었습니다. 양평에 살던 가세가 튼튼하면서도 양반의 신분을 갖춘 집안에 아름다운 규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를 이어서 이 집안에 머슴 살이 행랑아범이 있었고 그에게는 총각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주인아씨를 짝 사랑하는 총각이었습니다. 설악의 양반집 가문과 혼사가 맺어진 양평 아씨 댁에선 혼례 전 농을 보내기 위하여 머슴 부자에게 농짐을 지고 설악에 다녀오라는 대감의 엄명이 있었습니다. 날을 잡아 양평을 떠난 머슴 부자는 아버지가 앞서서 고갯길을 오르고 아들은 뒤를 따르며 심통과 눈물 겹친 모습으로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잘 걷다가도 실망한 마음에 중심을 잃고 비척거리다 농을 이 나무 저 나무 기둥에 부딪치면 올랐습니다. 농 부딪치는 소리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면서 아들의 심정을 알기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앞서 갔습니다. 그러다 재를 첫 번째 재를 넘으려다 농 부딪치는 소리가 갈수록 커지자 이러다간 신랑 집에 농이 도착하기 전에 사단이 생길 것 같아 벼락 소리를 지릅니다. 인석아! 농다치겠다! 농 다친다!! 이래서 그날 이후부터 그 재의 이름이 농다치 재가 됩니다.
농다치 고개에서 한 참을 오르며 가장 높은 재가 나옵니다. 설악골에 효성이 깊은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어머님에게 드릴 잉어를 남한강에서 잡아 소쿠리에 담아 산을 넘다 힘이 들어 잠시 쉬어가려고 앉는 순간 서너치 되는 잉어가 날아가 유명산 옆에 붙어 있는 산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날아간 재의 이름은 서너치(선어치) 고개가 잉어가 날아 가 앉은자리는 바로 어비산(魚飛山)이 되었다 합니다. 옛적에는 작은 분지를 이룬 마을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화전민 촌락으로 몇 가구 없었던 목가적이면서도 아름답던 촌락이었습니다. 그러던 곳이 유명산과 계곡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한 때 무주구천동과 더불어 각광을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유명산은 지금 휴양림으로 바뀌어 옛 모습을 자취를 감추었고 어비산도 펜션과 함께 갬프장이 들어와 옛 모습을 잃어지만... 이곳을 가평군이 주민들과 함께 새롭게 계곡 휴양 및 근린시설 등으로 변모시켰다는 군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변모된 모습을 체크하기 위하여 오늘 나선 것입니다.
어비계곡을 중심으로 가일 2리 마을회관에서 가일 1리로 나가는 방향까지 데크목을 사용하여 올레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길이는 짧지만 어비계곡 공원까지 이어서 완성된다면은 풍광이 좋은 곳을 걸을 수 있는 호사를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기존 마을 건물에서 점유하고 사용하던 계곡이 잘 정비되어 테크를 만들어 걷기 좋은 길을 만들어 놓고 중간중간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을 설치하여 계곡 접근성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린시설들을 리모델링 또는 신축하여 영업을 재개하려고준비 중이라 완성되면 계곡 풍광 속에서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로 바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세련미가 농축된 장소로 만들려면 전문가들의 조언이 필요한 곳이 눈에 띄는 곳이 아직은 많은 편이지만... 시작점에 마련된 주차장과 마을회관 바로 옆 공지에 마련된 주차장을 이용하기에 편리합니다 만 안내판이나 이정표 등은 눈에 잘 띄지 않아 불편한 편 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린 마을회관 작은 터에 주차를 시킨 후 걸어서 시작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원점 회귀한 후 그곳에서 준비해 온 김밥으로 점심을 나눔 한 후 유명산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휴무일이라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서울로 나와 팔당 부근에 있는 여름 야생화가 늘 반겨주는 계곡으로 이동하여 걸음 여행을 즐기기로 하고 도착하였습니다. 봄에는 노루귀가 지천에 깔리고 여름에는 산수국과 까치수염이 많이 피는 골짜기 입니다. 골짜기 초입에는 정약종과 그의 아들 정하상의 묘가 천진암 성지로 이전되기 전 있던 곳입니다. 직선으로 정약용의 생가인 마재가 바로 보이는 곳입니다.
토질이 산성에서 알카리성으로 바뀜에 따라 산수국의 꽃 색도 변합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암반에 앉아 행동식을 나눔 하며 짙어가는 여름 향기에 심신을 맡기며 소일하기도 하고...
서로 손가락을 자랑하는 듯 하신데 가락지는 안보이고 한 입 먹은 쑥떡만 보이는군요. ㅎㅎㅎ.
걸음 여행을 즐기며 오르다. 가을에 단풍이 근사하게 드는 단풍나무 아래에 희망과 평화의 작은 탑 하나 세워 놓고~~~
작은 소망을 소환하여 이룰 수 있는 마음을 기도에 담아 보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리 작아도 공을 드리지 않으며 바벨탑처럼 허물어지기를 반복하여 고심하며 다시 쌓아 완성한 돌 탑이랍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시각적 느낌은 여러 갈래였습니다.
어두움이 빠르게 내리는 이유는 바로 이 계곡의 방향이 동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산빛이 오래도록 남아 있는 곳은 바로 서쪽이기에 빛의 꼬리가 길어 서녘은 하루의 빛의 길이가 동녘보다는 늘어지지요. 가랑비도 내리기 시작하여 서둘러 하산 길을 잡아 나갔습니다.
다섯 개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하산은 완성되는 계곡입니다.
하산하여...
그렇게 하산을 한 후~~~^&^
오랜만에 福家내 보리밥 정식 식당으로 가 나눔 후 모든 일정을 끝냈습니다.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7월에 다시 만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