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우리들

[이영주]

우연히 본 재밌는 공익광고 한 장면 .

회사에선 싹싹한 사원이지만 집에선, “ 아유 몰라몰라 엄만 몰라도 돼!”
엄마의 질문을 무시해버리는 딸,
회사에선 자상한 김부장이지만 집에선, 잔뜩 뭔가 들고 힘겹게 뒤따라 오는 아내에게 “어 빨리 안오고 뭐해” 타박하는 남편,
학교에선 명랑한 좋은 친구지만 집에선 이어폰을 낀 채 가족을 상대 안하는 10대 아들,
장사할 땐 상냥하고 친절한 꽃집아줌마지만 집에선 퉁명스러운 엄마.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이 공익광고가 인상적으로 남아있는건
정말 우리네 가족의 서로서로에게 하는 냥이 제법 정확하게 포착되어 있어서였다.
이건 '두얼굴의 가족'이란 영화를 찍어도 될 법한 상황이다. 뜨끔 찔리는 사람들이 나만은 아닐 것 같다.

사회적 체면을 차리느라, 혹은 경제적 이익에 직접 관련된 일인지라 집 밖에선 늘 상냥하고 친절한 착한 양의 얼굴로 일관하지만 집에 들어서면 만사 귀찮아하고 서로에게 퉁명스럽고 무관심하고 불만투성이인 남편, 아내, 아들,딸로 탈바꿈을 한다.두터운 색조화장을 지우듯 집에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막하고 사는 우리네 가족들의 초상.
아이고 저러지 말아야겠구나 가족한테 더 잘 하는 내가 되야겠구나 생각하고 접자니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우린 정말 왜 그런걸까....?

1년 반 미국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한 한국 엄마의 편지.

"........한국은 여러 편리한 점이 있어요. 아시다시피 먹을거리 구하기 싶고 대중교통 잘되있고 말 잘 통하고 등등 그렇지만 교육을 포함한 전반적인 문화는 차이가 느껴져요. 아마 가서 살아본 적 없다면 몰랐겠지요. 부딪히면 답답한 느낌이 드는게 사실이예요. 한마디로 '나이스'하지가 않아요......

서비스 업종의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고요. TV를 배달하면서 버려지는 포장재료를 청소해서 다 가져가더니, happy call 이라고 기사님이 전화하고, 또 회사에서 전화하고, 정수기 설치하고나니, 상담원이라고 방문하고 하기 전에 전화하고 메세지 보내고, 돌아가고 바로 고객만족도 조사라고 회사에서 전화오고, 이마트에 인터넷 전화하면 물이고 쌀이고 두 시간 안에 배달이 됩니다....
......이런거 저런거 다 해보니까, 사실 서로 엄청 피곤한 일이예요. 자기 것은 자기가 들여다 놓을 일이지, 사람을 짐꾼처럼 부릴일이 아니잖아요. 소비자를 위한답시고 그러는지 몰라도 일하는 분들에겐 너무 힘든, 때론 굴욕적이지 않을까요.
다 나라가 좁아서 경쟁이 심하니 발빠르게 움직일 수 밖에없서서인가봐요........"

많이 공감하면서 그 공익광고가 다시 떠올랐었다. 우리 가족들이 그렇게 피곤하게 살고 있는 이유가 혹시 입장 바꿔 우리가 소비자로서는 지나치게 대접 받으며(?) 살고 있는 것과 뭔가 관련이 있진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한국은 정말 소비자 입장에서 편한 나라다. 미국을 겪어보고 나니 확실히 알겠다. 전화 한 통이면 먹을 거고 입을 거고 가구든 컴퓨터든 무슨 서비스든 바로 안방으로 배달된다. 미국도 인터넷 쇼핑이 일반화되어 있긴 하지만 사람이 직접 달려와주는 그런 문화는 아닌 것이, 인건비가 아주 비싸기 때문이다. 사람 손이 직접 필요한 그런 일은 한국의 평균 다섯배를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왠만한 일은 자기 손으로 처리하는 DIY(Do It Yourself)가 우리보다는 훨씬 일반화 되어 있다. 한국은 여러모로  사람에게서 받는 써비스가 저렴하고 편리하고, 신속성에 있어선 아마 세계적으로도 수위를 다투지 싶다. 그러니  우리 한국 소비자는 아주 운이 좋은 셈이고, 우리 산업의 서비스 경쟁력은 최고인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장 한 번 바꿔보면, 그들은 퀵 서비스 맨이고 A/S기사이고 웅진 레이디이고 마트아줌마 보험아줌마인 동시에 집에 돌아가면 바로 아버지고 어머니고 딸이고 아들이다. 한마디로 우리들 자신이고, 남의 집 귀한 자식, 귀한 부모들인 것이다.  그런 이들이 회사에서는 조직의 쓴 맛이 무서워서, 손님 앞에서는 고객이 왕이므로,  간이고 쓸개고 다빼준 채,  무슨 부당한 일을 당해도 고분고분한 직장인으로 일관하다, 그런 하루 끝에 당연 몸과 마음이 다 물먹은 솜처럼 되어 정작 가족에겐 좋은 얼굴, 부드러운 말 한번 하기도 어려워져버린 것은 혹시 아닐까?

이것이 우리의 가장이요 기둥인 아빠들, 내조와 살림만으론 더이상 존중 받지 못하고  혹은 절실한 생활의 필요로 직업 전선으로 내몰린 엄마들, 청년 백수하다 어렵사리 취직된 직장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하는 20대 딸, 선생님보다 부모보다 친구가 더 무서워져버린 우리네 아들내미들의 슬픈 초상인 건 아닐까.

일전에 정혜신씨의 심리 카페에서 읽은 얘기가 생각났다. 일껏 배달시킨 짜장면이 면발이 불어서 왔다고 분통을 떠뜨릴 찰라에 잠시 진정하고, 그 자장면을 고객의 입맛에 맞게끔 제 때에 배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오토바이로 곡예운전을 했을 짜장면집 종업원의  입장을 한 번 헤아려 보라던 이야기.  

내 아이가 혹은 내 남편이 내 아버지가 그 비슷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짠할까. 귀한 내 돈을 지불했으니, 소비자가 왕이요 고객이 오케이 할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껏 위세를 부려도 된다고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닐 거 같다.   해피콜, 고객만족 다 좋다. 그러나 고객인 나에게 시종처럼 고개 숙이는 저 아저씨의 모습이 내 아버지가 남편이, 혹은 아들이 세상에 나가서 고객에게 받는 대접이라면.....?
지금 내가 퇴근하고 돌아와 가족에겐 대꾸도 하기 힘들만큼 지쳐있는 그 이유가 혹시 바로 나를 그렇게 대접한, 인간 *** 로가 아니고, 고객으로서 혹은 상사로서 내 위에 군림하려고만 했던 어떤 이들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입장을 돌이켜, 내가 고객이 되었을 때, 을이 아닌 갑이 되었을 때의 태도도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역지사지... 참 좋은 말이다. 한 번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복잡했던 것이 단순해지고, 분개했던 일이 이해가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만 한다면 우린 훨씬 덜 피곤하게 덜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 수 있을텐데. . 직업인으로서의 프로페셔널리즘은  그대로 유지한 채로도 말이다.  

회사에서 싹싹하기 그지없는 신입사원 김양은 집에 와서도 싹싹한 딸로 엄마와 도란도란 애길 나누고, 회사에서 자상한 김부장은 집에와서도 아내의 짐을 당연히 들어주며 서비스정신을 발휘하고, 상냥한 꽃집 아줌마는 집에서도 향기롭고, 명랑하게 친구들과 놀던 아들은 집에서도 부모님의 귀염둥이 막내로 재롱을 피우는 그런 행복한 가족의 모습....... 그런 우리들이기를, 그럴 수 있는 사회의 일원이기를, 잠시 꿈 꿔 보았다. 순진하게. 소박하게.

[진위향]

공감합니다. 상대를 바라볼 때 '나라면..' 하고 되비춰보는 맘가짐!

[이은하]

ㅎㅎ 공감요

[조은진]

공감 200% 입니다...저 자신도 반성..

[연지연]

저도 공감! ^^

[이은미]

참 글 잘쓰시네!! ,, 우리나라의 경제세태를 인간적인 측면으로 날카롭게 들이대셨네,,, ㅋㅋ
완전 이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