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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학교 졸업 학사모 사진(왼쪽)과 윤동주 ‘서시’ 일부(오른쪽 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왼쪽부터 초판본, 중보판, 문고판(오른쪽 아래). ⓒ천지일보(뉴스천지) |
중학교 시절 사진, 국내 최초 공개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일제강점기 저항 시인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와 유고, 유품이 국내에 최초로 공개됐다.
지난달 27일 연세대 윤동주기념사업회 주최로 ‘윤동주 시인 유고ㆍ유품 기증식 및 특별전 개막식’이 진행됐다. 지난해 8월 13일 윤 시인의 큰 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교수(건축학과)는 연세대를 찾아 육필 원고 및 유품 영구기증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에 제94주년 3.1절을 이틀 앞두고 기증식 및 특별전이 열렸다.
이번에 공개된 육필 원고 등은 힘들고 어려웠던 일제강점기에 시를 통해 조국과 자유를 지킨 윤동주 시인의 체취가 서린 유품들이다.
특히 이날 윤 시인이 소장하고 있던 도서(용정에서 여동생 윤혜원 여사가 어렵게 찾아 가지고 온 것), 중국 용정 광명중 5학년 재학 시절에 찍은 사진 등이 처음으로 일반 시민에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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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처음 국내에 공개되는 사진이다. 왼쪽이 윤동주이며, 오른쪽이 송몽규다. 교복을 보아 중학교 시절(1937년경)로 추정된다. (사진제공: 연세대) |
기증된 유품은 윤 시인이 육필로 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비롯한 129편의 시들과 윤 시인의 손때가 묻은 각종 유고와 유품이다. 1940~1950년대 처음 한국어로 발행된 윤동주 시집, 영어ㆍ불어ㆍ일어ㆍ중국어ㆍ체코어로 번역된 윤동주 번역시집을 비롯해 소장 도서, 졸업앨범, 영상물, 논문 등도 함께 윤 시인의 모교인 연세대에 전달됐다.
윤동주 시인의 장조카인 윤인석 교수는 “67년간 머물렀던 유족 품을 떠나 비로소 모교에 안착하게 됐다”며 “큰아버지(윤동주 시인)가 남긴 유고와 유품이 이 자리로 오기까지 많은 사람의 인고의 세월이 흘렀다”고 유족을 대표해 인사를 대신 전했다.
또 윤 교수는 “사진판 자필 시고전집을 발간할 때 어머니가 꽤 오랫동안 반대를 했다. 원수의 나라 감옥에서 생체실험대상으로 치욕을 당하다 돌아가신 분의 육필 원고를 낱낱이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한다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는 이유에서였다”고 말했다.
윤 교수의 어머니는 윤동주 시인의 원고를 일본 경찰에 들키지 않도록 마루 밑에 숨겨가며 친구의 유품을 지켜낸 정병욱 선생의 여동생이다.
특히 이날 유품 특별전 개막식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사진은 윤동주가 중학교 교복을 입고 시인의 고종사촌인 독립운동가 송몽규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다. 중국 용정에서 살았던 시절로 보인다.
당시 윤동주는 광명중 5년에 재학 중이었으며, 독립운동가 송몽규는 대성중 4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이날 유족 인사를 전한 윤 교수는 “유족의 마음으로 이번에 기증한 유고와 유품이 시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만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연세대 정갑영 총장은 “윤동주 시인은 본디 우리말과 우리 것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시인의 육필 원고에는 시어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고민하던 시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며 “이번 기증을 계기로 시인의 손때가 묻은 책과 유품을 통해 많은 국민이 인간 윤동주의 모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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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별 헤는 밤’으로, 수정한 부분이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윤동주는 1944년 4월 치안유지법 제5조를 위반(독립운동)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을 언도 받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일제는 1945년에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 오라’는 전보 한 통을 시인의 가족 앞으로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기증식과 함께 윤동주기념관 현판식 및 윤동주 시인 기념코너 제막식도 진행됐다.
첫댓글 일제의 만행이 엿보여 가슴이 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