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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 묘(충북 기념물 33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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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37차 능원묘 답사시 충주 권역을 답사하는 중에 충주에서 참석하신 이상기선생님께서 충주와 괴산 경계에 정인지선생 묘가 있다고 안내를 해 주셔서 뜻하지 않게 다녀 온 곳입니다. 묘역이 가히 왕릉급 수준이란 생각이 듭니다. 다만, 사당 대신에 왕릉처럼 정자각을 지어 놓은 것이 좋아 보이지 만은 않네요... 선조에 대한 후손들의 효심은 이해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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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지선생 묘역 입구 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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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대학자이며 정치가였던 학역재(學易齋) 정인지(1396∼1478)의 묘소이다. 태종 14년(1414)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고려사』, 『용비어천가』, 『태조실록』등 각종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세종 때에는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공을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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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아래 세워진 전각은 왕릉의 정자각과 똑 같은 형태로 지어 놓았습니다. 묘역은 계단을 오르면 보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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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을 오르면 앞에는 정인지선생 묘, 뒤에는 부인 묘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위 우측 사진은 묘역에서 내려다 본 모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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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1년(1453) 계유정란 때 세조를 도와 공을 세워 정난 1등공신으로 하동부원군이 되고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단종∼성종 연간에는 학덕을 갖춘 정치가로서 민심을 진정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저서로는 『학역재집』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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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지선생 묘(앞)와 정경부인 경주이씨 묘(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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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앞에는 묘비 1기가 서 있는데 대리석으로 만든 갓이 없는 높이 250cm 폭 90cm의 크기이다. 비문은 강희맹이 지었다고 전한다. 묘비 앞으로는 상석과 장명등이 서있고 좌우로 문관석과 망주석이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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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지선생 묘역 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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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편에서 바라 본 정인지선생 묘역 전경. 봉분 뒷부분이 다른 봉분이 있는 것차럼 볼록 튀어 나왔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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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아래에 서거정이 지은 신도비가 있었는데 유실되어 1958년 서거정이 지은 비문을 윤보선이 쓰고 성락서가 제전(題篆)을 써서 다시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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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부인 경주이씨 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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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부인 경주이씨 묘역 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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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부인 경주이씨 묘역 뒷편에서 내려다 본 모습(근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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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부인 경주이씨 묘역 뒷편에서 내려다 본 모습(원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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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선생 묘역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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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선생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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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 위치 부근에 정인지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소재지 : 충북 괴산군 불정면 외령리 산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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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벌써 지난 봄이었군요.
2년전 길을 잘못들어 우연히 답사한곳 새롭습니다.
저희 할아버님(저는 18대손입니다) 산소에 다녀오셨군요. 어릴적에 인근에 살았고 선산이 외령이라 자주 왕래하고 있답니다^^ 정비전에는 계단이 없어서 어릴때 올라다니며 고생했던 기억도 있고, 눈이 많이와서 소나무가 쓰러졌던 기억도있고, 도굴꾼들한테 피해를 당한 기억도 있고.....추억이 많이 서린 곳이라 광나루님 글 보니 너무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