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의 동족 대통령이 부르는 페로디의 노래(1)
나르시스의 노래
- 샅바도르 달리의 그림에
김춘수
(출처: 네이버 이미지/ 달리 <나르시의 변신,1936> )
흐르는 물가 한 송이 水仙되어 나는 섰노라.
구름이 가면 구름을 따르고,
나비가 날면 나비와 팔랑이며,
봄 가고 여름 가는 온가지 나의 양자를 물 위에 띄우며 섰으량이면,
뉘가 나를 울리기만 하여라.
내가 뉘를 울리기만 하여라.
(아름다웠노라
아름다웠노라)고,
바람 자고 바람이 다시 일기까지,
해 지고 별빛 다시 널리기까지,
한 오래기 감드는 어둠 속으로 아아라히 흐르는 흘러가는 물소리.....
(아름다웠노라
아름다웠노라)고,
하늘과 구름이 흘러가거늘,
나비와 새들이 흘러거거늘,
한 송이 水仙이라 섰으량이면,
한 오래기 감드는 어둠 속으로,
아아라히 흐르는 흘러가는 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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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인들은 시를 쓰기 위해서 자연으로 가능한 걸어 나갈수록 좋다. 어쩌면 주술적 呪術的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왼 종일 자연에 머물러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미술관으로 달려가 보면 어떨까? 그림과 시는 어쩌면 이미지의 구성되고 표현되는 同族의 예술이므로. 다만 전자는 대상화 되지 않는 허구인 반면, 후자는 대상화되는 실재적 장르라는 것만 다르지만. 한가지 더.그림이 시공간의 제한으로 제재(題材) 선택의 한계가 있는 반면, 시는 제재(題材) 선택에서는 자유롭지만 언어의 재현적 한계가 있다는 점. 어쨌든 이러한 두 가지만 빼면 둘은 가장 닮고 싶은 서로의 너와 나라는 사실일터.
2.
이런 맥락에서 김춘수 시인의 명편 페로디(perody)인 「나르시스의 노래 – 샅바도르 달리의 그림에」은 ‘시가 어떻게 그림을 페로디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단비 같은 해답을 제시 해 준다. 다시 말하면 페로디 대상이 되는 그림을 ‘의식적으로 전경화’시킴으로써 원작 그림과 페로디 시와의 ‘상호 대화성’을 낚아채어 이를 절묘하게 문학적으로 승화, 한편의 창작시로 탄생시키고 있다는 애기다.
3.
덧붙이자면 김춘수는 ‘그림과 시가 어우러져 사는 동족의 나라’ 시인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시문학사를 더둠어 보면 그는 시 창작에 있어서 시와 동족인 비장르문학( 미술, 음악등)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즉 시학적 감상을 통해) 성공적으로 형상화시킨 대표적인 시인임에는 틀림없다. 말하자면 일상적 의미와 시 문법을 벗어나기 위해 회화작품을 차용하여 그것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현 해 냈다는 점이다. 즉, 회화 작품의 언어적 재구현은 시의 창작성을 헤칠 수 있는 리스크가 매우 클 것이므로 김춘수는 ‘주관에 의한 선택적 변형’이라는 천부적 재능과 시작 기술의 묘수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이번 화화 페로디 시 읽기의 차원에서 반드시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4.
회화를 페로디한 시이므로 먼저 회화를 시학적 측면에서의 감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림에서 보듯 달리의 <나르시스의 변신,1936>도 ‘나르시스의 신화’를 페로디하고 있다. 인용시의 부제 역시 < 살보도르 달리의 그림에 >라고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결국 김춘수의 이 작품은 문학(나르시스 신화)→회화(달리 그림)→문학(인용시)으로의 이중적 페로디 과정을 거치고 있다.
5.
달리의 그림을 보자. 화면이 ‘시간의 터널’을 관통하는 두 개의 의식세계로 대비적으로 균등 분할( 즉 모티브가 2개로 구성)되어 있다. 즉, 달리는 나르시스의 의식을 구상화 하면서 하나의 모티브( 수선화 생애의 내면세계)가 다른 모티브( 수선화 사후의 내면세계)로 변신하는 환상을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림을 더 시인의 눈으로 자세히 들여다 보자. 그림의 오른쪽 부분은 나르시스가 죽어 변했다는 수선화가 엄지, 검지 ,중지에 의해 세워진 알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다. 시인이라면 적어도 저 세 손가락과 알과 수선화의 이미지를 놓치면 안될 터. 달리의 <나르시스 변신>에 대한 심오한 시철학적 의도요 주제가 숨겨져 있으므로.(사실 달리도 시인이었다)
6.
우선 그림 오른쪽 모티브(수선화 생애의 내면세계)를 탐사 해보자. 이러한 탐사는 보다 전문적인 가이드가 필요하므로 정끝 별 평론가의 견해(페로디 시학, 문학세계사, 1997)를 인용하기로 한다, 그녀에 의하면 <알>은 나르시스의 완전하지 않지만 폐쇄된 에고(自我, ego)의 내면의식 세계요, 3대 구상화 대상으로서의 <손>은 나르시의 자의식이며 <수선화>는 나르시의의 아름다움의 메타포로 해석하면서 달리는 회화의 주제인 나르시의 변신의 내면의식 세계를 에고(ego), 미의식, 자의식의 상징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논문에 적고 있다. 공감한다.
7.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시간의 터널을 지나 왼쪽세계(수선화 사후의 내면세계)로 눈을 돌려보자. 아! 3대 구상화 대상물(손가락, 알, 수선화)이 황폐하게 말라 비틀어져 있다. 에고와 미의식과 자의식 상실의 시대를 투영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한 이미지는 그림 속 세상을 면밀하게 시적 감각을 가지고 관찰해야만 <나르시스> 변신의 실체를 발견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가? 수면(거율)위로 투영되어 버린 나르시스 죽음의 자화상 ! 그것은 고독한 번뇌하는 성인남자가 왼쪽 무릎을 세우고 왼팔을 늘어트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저 암울한 나르시스의 변신이 아니던가! 그 내면의 모습은 자아의 상실이요 에고의 황폐화이며 아름다움이 추함으로 전도되어버린 시대적 슬픔에 대한 고뇌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고뇌하고 절망하는 인간의 실존적 이미지가 소름 돋도록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8. 이러한 초현실주의의 거장화가인 달리의 <나르시스 변신>은 결국 꿈과 현실, 무의식과 자의식, 환상과 실재라는 상반된 세계의 변증법적 통합을 일구어 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과 시가 어우러져 사는 동족의 나라’ 시인 대통령인 김춘수는 이러한 <나르시스 변신>을 어떻게 시의 언어로 페로디 해 내고 있었을까? 그 열쇠를 푸는 '물(=거울)'의 시학적 의미가 궁금하지 않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을 통해 구체적으로 음미 해 보기로 한다.
To be continued....... <悳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