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이 연(緣)에 대해서 말하겠다. 무엇이 연인가? 이전에도 나는 이 문제를 설명한 적이 있다. 수련계에서는 재삼 이 연분, 연분을 강조하는데, 이 연은 어떻게 구성된 것인가?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리 수련계에서 말하는 연, 그것은 짧은 역사 시기에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람의 일생을 초월하여 몇 생, 심지어 더욱 긴 시간을 초월한다.
이 연분, 그것은 끊어지지 않는다. 왜 끊어지지 않는가? 방금 내가 업을 갚는 문제를 말했는데,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말했다. 한 생명을 볼 때 그 생명의 전체를 보아야 하며, 그의 일생만을 볼 수 없다. 마치 당신이 잠을 자는 것처럼 오늘과 어제가 있는데, 당신이 어제는 당신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 그러므로 그의 연은 아주 긴 시간에 관련된다.
좋은 것이 계승될 수 있듯이 나쁜 것 역시 계승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관계 이것 역시 끊어지지 않는다. 일반 사람이 말하는 연은 대다수가 이 친인의 연(親緣)을 말하는데, 다시 말해서 곧 부부의 연(緣)을 말한다. 이것을 비교적 많이 말한다. 사실 이 부부의 연도 나는 이전에 말한 적이 있다. 이 속인 중의 일을, 나는 연을 이야기하게 되어 그것을 말했다.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흔히 대다수는 모두 이러하다. 즉, 이 사람이 전 한 세에 그 사람에게서 은덕을 입었는데, 보답할 바가 없었다. 전 한 세에 벼슬이 너무 작거나 몹시 가난할 수도 있다. 그는 그의 은혜를 아주 크게 입어 마음속으로 보답하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부부의 연이 맺어질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전 한 세(世)에 그를 애모(愛慕)하였으며, 두 사람이 서로 애모하였으나 그런 연이 없어 한집안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면 곧 다음 한 세에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소망은 아주 소중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뭘 가지려고 생각하고 당신이 뭘 하려고 생각하며, 당신이 나는 부처수련을 하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면, 그럼 부처는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이 일념(一念)이 너무나도 진귀한데, 이처럼 고생스러운 환경에서도 당신이 부처수련을 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사람이 마(魔)가 되려고 생각해도 역시 막지 못하는 것으로 그가 줄곧 나쁜 짓을 하는데, 당신이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당신이 말해도 그것은 역시 듣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 소망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 밖에 또 무슨 친우라든가, 문하생이라든가,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은혜와 원한(恩怨)으로 맺어진 이 연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모두 당신과 한 가정 혹은 한 군체(群體)를 이루게 할 수 있으며, 사회에서 사회적인 연계를 이루어 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은혜와 원한을 되돌아 갚도록 한다. 이것이 모두 연이며 모두 이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일세에서 온 것이 아니며 몇 세 혹은 전 한 세(世)의 것으로 이것은 이런 상황을 가리킨다. 이런 하나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 사람이 이 일생 중에서 그의 은혜와 원한이 있고, 그의 친우가 있고, 그의 아내, 자식이 있는 등등 등등이다. 그럼 아마 이 한 군체는 곧 은혜와 원한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에게 좋게 대하거나, 좋지 않게 대하거나 하여, 그는 그에게 되돌아 갚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은 곧 다음 일세(一世)의 군체적인 전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함께 오는 것이 아니며 여럿이 함께 전생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올 때 빠르고 늦음이 같지 않으며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고 나이가 어린 사람도 있는데, 어쨌든 이 사람들 속에서 그는 일부 연계를 이루어 앞뒤로 전생해 오는 것이다. 한 군체가 아니거나 혹은 연이 없는 사람이거나 당신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면, 거리를 가도 마치 딴 세상 사람과 같으며 마치 그와 어떠한 관계도 없는 것을 당신은 발견할 것이다.
당신도 이러한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며 마치 당신들은 두 갈래 길을 걷는 사람과도 같다. 이는 곧 당신, 이 군체에서 온 것이 아니며 그와는 어떠한 인연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흔히 전생하여 올 때에는 모두 한 군체이며 앞뒤로 부동한 시간에 오는 것이다. 부모가 되는 것도 있고 아들딸이 되는 것도 있으며 친구가 되는 것도 있고 원수가 되는 것도 있으며 은인이 되는 것도 있다. 내가 방금 말한 연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물론 수련하는 사람도 이런 연을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한 사람이 수련하면, 과거에 말하기를 한 사람이 수련하면 조상도 모두 덕을 쌓고 모두 이득을 얻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여기에서 수련하고 당신이 부처로 수련 성취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죄업(罪業)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며, 모두 부처가 된다고 말하는 이것은 안 된다.
요컨대 당신이 수련할 때에, 당신이 이 일세에 법을 얻음을 알고, 당신의 친인이 당신 주위의 사람으로 전생한 것일 수 있으며, 은혜와 원한이 있는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당신이 그들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할 수 있는, 이런 관계를 이룰 수 있다. 물론 수련은 육친의 정을 말하지 않는다. 육친의 정을 말하지 않기에 그는 곧 이 국한(侷限)을 타파하고 단독수련 혹은 단독으로 전하는데, 그는 자신이 사람을 뽑고 사람을 선정한다.
과거에는 역대로 모두 이렇게 수련하였다. 널리 제도함이란 바로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이 연이다. 내가 말한 이 연은 우리 이 좌석에 앉은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 당신은 연이 있어 법을 얻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연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이 속의 많은 사람이 법을 얻으러 왔고, 목적을 가지고 왔다. 친우나 각 대(各代) 제자로서 또는 다른 연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련은 속인의 정을 말하지 않으며 이런 것이 없다.
나는 늘 말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법을 얻으러 왔다면 이전에 모두 이러한 소원을 품었을 것인즉, 자신이 와서 이 고생을 겪으며 이 법을 얻고자 하였다. 이러한 요소가 그 속에 있다. 그러므로 나는 늘 말한다. 일시적인 이 일세의 그릇된 관념으로 이번에 법을 얻음에 영향 주지 말아야 한다고. 그럼 당신은 후회해도 영원히 보완할 수 없다. 사실 내가 보건대 이 연분이란 기본적으로 이 갈래의 선이 아주 단단하게 매여 있다. 모두 떨어지지 않았고 모두 법을 얻었다. 다만 정진(精進)하는 정도가 같지 않을 뿐이다.
다음으로 나는 또 한 가지 문제를 말하려는데, 바로 이 수련형식이다. 어제도 내가 간단하게 이 한 점을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 어떤 수련생은 결혼하고 결혼하지 않는 문제를 말한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려 하지 않고 산에 들어가 수련하려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부동한 견해가 있다. 우리 대법 수련 중에서 많고도 많은 제자가 이 생각을 품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알다시피 내가 전한 이 법은 주로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는 것이며 사람 자신의 主意識, 主元神을 제고함을 수련의 목적으로 삼는다.
왜냐하면, 당신이 명명백백하게 고통을 겪고 있으며, 당신이 당신의 이익이 침해받는 것을 분명하게 보면서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인데, 당신이 당신 자신을 수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법을 당신이 얻지 않고 누가 얻겠는가? 만약 정말로 산으로 들어가서 수련하여 이 모순을 비켜간다면, 수련이 느려지고, 오랜 세월 속에서 그런 마음이 서서히 닳아 없어질 것인바, 그러면 이 법을 만날 수 없으므로 수련하는 것은 바로 副元神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심산 속에서의 수련에는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데, 가부좌ㆍ입정(入定)을 해야 하고 장기간 입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당신 자신이 수련했는지, 수련하지 못했는지 당신 자신은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이 진정하게 이런 복잡한 환경 중에서 제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하다. 출가한 사람도 主元神을 수련할 수 있지만, 속인사회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연마(魔煉)할 수 있는 최상의 장소이다. (출처 : 97년 뉴욕법회 설법 李洪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