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조선시대 ‘성곽의 꽃’수원성. 끝없이 힘차게 이어지는 정교한 성벽을 보고 있노라면, 정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지극했던 효성과 그의 왕권이 얼마나 강성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지난 16일, 올해 10월 세계 효문화 축제가 개최되는 경기도 수원을 찾았다. 의왕에서 수원으로 들어서는 지지대 고개 입구에 효행의 도시라는 표식이 관광객을 맞는다. 조선시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시 용주사 옆의 융건릉으로 옮기면서 경기권 제 1의 도시로 성장한 수원은 효행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곳곳에 효의 정신이 묻어 있었다.
서울로 향하는 1번국도변, 수원이 시작되는 입구는 지지대 고개다. ‘지지(遲遲)’란 한문으로 느리다는 뜻인데, 정조의 효심을 담아내는 명칭이다. 안양으로 들어서는 입구인 이곳은 언덕을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보이던 사도세자의 능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정조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해 모두가 걸음을 늦춘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지지대비에 올라 멀리 쳐다봤지만, 멀리서도 융건릉은 보이지 않는다. 지역이 틀려지면서 거리가 멀어짐을 느끼는 마음에서 행렬을 늦춘 것이 아닐까. 잠시 지지대 쉼터에 차를 세우고 정조의 효심을 느껴본다.
지극한 효성이 낳은 세계문화유산
정조의 유적을 정리한 효행기념관을 들러 수원성으로 향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성곽이다. 수원성의 정식 명칭은 화성이다. 총 5,743m의 길이에 5m의 높이로 쌓은 성인데 거대한 돌을 잘라 만든 이 성의 축조기간은 불과 33개월에 불과하단다. 일반적으로 10년의 시간동안 쌓던 성을 어떻게 단축시켰을까. 바로 정양용의 거중기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이전에 사람들의 인력에 의존하던 대형공사를 거중기, 유형거, 수레 등의 과학물을 만들어 도입하면서 2년도 안된 시간에 세계 문화유산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장점은 수원성을 순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의 원형이 보존돼 있어 이어진 성곽을 따라 돌면서 수원의 전체를 바라보는 느낌이 색다르다. 북문에서 계단을 올라 성에 오르자 탁트인 시야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곳곳에 꽂힌 깃발이 저절로 과거로 들어간 느낌을 주는데, 평탄한 성을 따라 동문으로 가는 길이 아름답다.
수원성을 따라 걷는데, 또 다른 과학을 발견한다. 성위로 기어오르는 적을 막기위해 화성이나 돌 등을 던질 수 있는 구멍을 파놓았는데, 하나는 직선이고 하나는 아래를 향해 급경사를 이룬 구멍이 교대로 만들어 있다. 멀리 있는 적과 가까운 적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란다.
사진설명: 조선왕조 마지막 원찰 용주사. 창건당시 가람의 규모는 140여칸에 이르렀으며, 사찰 건축으로서의 보편성과 아울러 궁궐건축의 특수성도 함께 지니고 있다.
부모은중경 새긴 경전탑
수원성을 돌아 과천-봉담간 외곽도로를 타고 다시 찾아간 곳은 사도세자와 세자비 혜경궁 홍씨가 잠들어 있는 화성시 융건릉(현릉원). 조선 후기 당파싸움에 희생돼 젊은 나이에 되주 속에서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던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기고 어머니 세자비의 묘를 함께 모셨다. 잘 꾸며진 릉에서 정조의 효심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찾은 곳은 바로 인근에 위치한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 정조가 사도세자를 이곳으로 모시고 옛 갈양사 터에 창건한 왕실 사찰이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단아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데,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했을 정조의 효심이 새삼 느껴진다. 대웅전에는 또 우리나라 미술사의 걸작품인 탱화가 있었다. 김홍도가 우리나라 최초로 명암법을 이용해 사람의 윤곽을 처리했다는 바로 그 탱화다.
용주사 한편에 한글로〈부모은중경〉을 풀어놓은 경전탑이 서 있다. 그리고 용주사 법당에 벽화가 부모님의 은혜를 가르켜준다. 백골에 절을 하는 부처님이 설하신다. “나를 잉태하고, 쓴 것은 뱉고 단 것은 먹여 주시며, 나를 키워주고, 먼길 떠나는 자식을 걱정하신 부모님의 은혜는 부모님을 양어깨에 모시고 수미산을 수억만년 돌아다녀도 결코 다하지 못한다”고.
영동고속도로 북수원 나들목을 통해 장안문(북문)에서 방화수류정, 창룡문(동문)으로 답사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또는 수원 팔달산에서 장안공원을 걸쳐 화홍문(서문), 연무대로 답사하는 코스가 있다. 수원시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5시까지 화성관광열차를 운행, 노인과 아이들이 편리하게 화성을 관람할 수 있다.
주변의 불교유적
미륵당 북수원 효행기념관 인근에 위치한 미륵당은 화강암으로 조성한 미륵부처님으로 이 지역 주민들의 오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륵동인 이 지역이름도 미륵부처님에서 따온 것. 미륵불이 모셔진 법화당은 조선 중기의 건축물이다.
봉녕사 화성 창녕문(동문)과 영동고속도로 동수원 나들목 중간에 위치한 봉녕사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천년고찰이다. 봉녕사 뒤편 언덕에서 출토된 석조삼존불과 도유형문화재 제152호 봉녕사 불화는 조선 후기 문화유적의 전형을 보여준다.
창성사 진각국사비 고려시대 대표적인 고승인 진각국사(1307-1382)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수원 광교산 창성사 내에 건립한 비로 화엄종사의 면모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 창성사가 폐사되자 화성내 방화수류정 인근으로 옮겨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