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예배를 인도할 것인가?
사람들이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예배를 인도하지 못하는 것인가? 당신이 인도하는 예배도 한 번 왔던 사람들이 계속 와서 예배를 드리고 싶을 정도로 유익하고 합당하며 기쁨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장에서 예배의 순서에 관한 것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제안하려고 하는 것들 중에 어떤 것은 케케묵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목사들의 사역의 중심에 서서 교회의 사역을 이끈다. 따라서 전체를 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즉 숲 한 가운데 있기에 나무 때문에 숲을 못 보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지극히 상식적인 제안을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제안들이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수많은 교회를 방문해 보았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뿐 아니라 교회에 다니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교회를 떠난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눠 보았다. 그러므로 내가 제안하는 것들이 상식적인 것이라는 이유로 인해 무시하지 말기 바란다. 이러한 제안들이 당신의 교회를 크게 바꿔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1. 교회의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당신의 교회의 물품들은 그리 비싸지 않고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목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당신의 교회는 어두운 지하층에 있으면서 값싼 비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재정이 넉넉하지 못해서 좋은 시설을 갖추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재정이 넉넉하지 못하다고 해서 교회를 지저분하게 방치해 두면 안 된다. 교회가 비록 재정이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청결하고 깨끗한 상태는 유지해야 한다. 사람들이 예배드리러 올 때 비록 작고 허름한 교회일지라도 청결하고 깨끗한 것을 보면 좋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것을 통해서 당신의 교회가 항상 사람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많은 목사들이 교회의 영적인 문제들로 인해서 바쁘게 일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이 교회에 오자마자 즉각 받게 되는 인상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교회는 청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어쩌면 당신은 이러한 문제가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비본질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기본적이면서 실제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만약 교회를 관리하는 직원이 있다면 이러한 일들은 한결 수월할 것이다. 교회를 관리하는 사람은 완벽주의자일수록 좋을 것이다. 보통의 경우에 교회를 관리하는 사람은 교회의 비회원 중에서 뽑는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뽑든지 간에 자신의 집도 깨끗이 관리하는 사람을 교회를 관리하는 직원으로 뽑아야 할 것이다. 방문자들이 당신의 교회가 깨끗한 교회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돌아가게 하라. 적어도 방문자들이 당신의 교회가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받고 돌아가지는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직원들이 관리자들로 하여금 "성결 다음에 올 것은 청결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해야 한다. 물론 성경에 그런 말은 없지만 이 말이 사실인 것만은 분명하다. 만약 교회가 너무 작고 가난하여 직원이 단 한 명도 없고 관리원도 없다면 당신의 집에서 십대 자녀 중 한 명으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헌신되고 훈련되었으며 "아버지의 일"을 이해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당신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고 둘째는 누군가를 고용하는 것이고 셋째는 당신의 자녀들이 그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아이들은 못하게 하면 더 하려고 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 역자 주) 만약 당신의 아이들을 시켜서 일을 하게 하려 한다면 당신이 항상 감독자가 되어서 확인해야 할 것이다.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불가피할 때만 아이들에게 일을 맡기며, 그것도 일시적으로만 한다.
2. 청중은 당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좋지 않은 음향시설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러한 교회들이 좋은 음향시설을 갖춘다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사역을 수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한 일은 음향시설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은 교회들도 있다. 목사 자신은 자신의 목소리가 잘 들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잘 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목사들이 이안 페이슬리(큰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미국의 근본주의 목사 - 역자 주) 같은 목소리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빌리 선데이는 좋지 않은 음향시설을 가지고도 수천 명에게 설교했고 존 웨슬리는 자신의 아버지 무덤 위에서 교회 앞마당까지 길게 늘어선 사람들에게 아무런 음향기기도 없이 설교했다. 그러나 우리 중 대부분은 과거의 목사들처럼 그렇게 큰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지난 시대의 위대한 설교자들이 다시 살아나서 설교를 한다면 그들도 분명히 음향기기를 사용할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에서 행해지는 주일 예배와 청년부 모임을 여러 군데 돌아본 후 목사의 50%와 모임을 인도하는 70-90%는 잘 들리지 않는 광고를 하고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어차피 잘 들리지 않게 광고할 것이면, 도대체 왜 광고를 하는 것인가? 그러므로 볼륨을 키워라. 열심히 구령하는 큰 교회들은 대부분 교회의 맨 뒤에 있는 사람도 들을 정도로 볼륨을 키워 놓는다. 리 로버트슨 목사나 잭 하일스 목사가 설교하는 교회에서 설교 중에 조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광고할 때나 설교할 때 전 성도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볼륨을 키워 놓는다. 성공적으로 사역을 펼치고 있는 모든 목회자들의 경우와 같다. 설교가 들리지 않으면 사역의 효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설교라도 볼륨을 키워 놓고 하는 것과 줄이고 하는 것은 그 결과에 있어서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달콤한 말이나 떠드는 자유주의자들이나 영적으로 죽은 설교자들은 큰소리로 외칠 필요가 없을지 몰라도 지옥을 흔드는 설교를 해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볼륨과 음향기기가 매우 중요하다. 복음 전도자 히만 애플만 박사는 그에게 왜 설교를 할 때 외치고 울부짖느냐고 물었던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길 건너 공사장에 콘크리트 덩어리가 매달려 있는 것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만약 내가 당신의 머리 위에 저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면, 당신은 내가 그저 작고 점잖은 소리로 '실례지만 저 위에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져서 당신의 머리를 부수려고 하는군요. 좀 피하시는 것이 어떤지요.' 하고 말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즉각 알아듣고 이렇게 요청했다. "계속해서 외치십시오. 저는 당신이 설교하는 모든 말씀을 귀기울여 들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고 분명하게 말하라. 음향기기를 갖췄다 할지라도 크게 말하는 것이 좋다. 어떤 설교자들은 중얼거리면서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하지도 않은 채 말을 흐려 버린다. 설교할 때 문장의 끝을 얼버무려 버리는 사람이 있는데, 매우 안 좋은 습관이다. 당신이 크고 분명한 소리로 설교를 한다면, 모든 청중들이 감사해 할 것이다. 특히 잘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욱 큰 감사를 들리 것이다. 좋은 음향 기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나는 여러 교회에서 목회를 했는데, 매 경우마다 반드시 음향 기기를 갖추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음향 기기라는 것이 .매우 까다로운 것이어서 내가 사용할 때에는 괜찮다가도 다른 사람이 사용하면 제대로 기능이 발휘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 기술자를 불러서 조정을 했던 경우가 있었다. 당신은 예배를 최상으로 인도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의 하나인 음향기기 문제를 소홀히 다루지 말기 바란다. 만약 청중이 당신의 설교를 잘 듣지 못하게 되면 당신의 설교가 제아무리 훌륭한 개요로 골격을 맺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하게 된다. 내가 목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어떤 복음 전도자가 귀뜸해 주기를 복음적인 설교는 크게 울려 퍼지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했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의 말은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설교자가 청중들에게 소리를 지르라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되지도 않는 설교를 음향기기의 효과만으로 포장하지 말라. 그러한 짓을 설교자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악한 형태의 죄악이다. 그러나 음향기기를 사용해서 당신이 크게 소리지르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설교가 귀에 닿아야 마음에도 닿을 수 있는 법이다. 당신의 교회에 훌륭한 음향기기를 설치해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설교 도중 우는 아이들의 소리에 지지 않기 위해서 좋은 음향기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좋은 음향기기가 있으면 길가에서 들리는 트럭이나 오토바이 소리도 "무찌를" 수 있다. 에어컨이나 난방기의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도 훌륭한 음향기기로 "제압"할 수 있다. 교회에 비해서 많은 청중이 꽉 들어찼다면 더욱 좋은 음향기기가 필요하다. 제한된 공간에 많은 사람이 있으면 소리가 사람들과 그들이 입고 있는 옷에 묻히게 된다. 예배당에 깔아 놓은 카펫이나 방석도 소리를 많이 흡수한다. 좋은 음향기기가 없으면 귀한 설교를 망쳐 버리는 수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설교를 하다보면 목소리를 낮춰야 할 때도 있다. 그러한 때에 좋은 음향기기를 소유하고 있다면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말하는 이상 낮은 목소리지만 청중들에게는 크고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다. 만약 당신의 교회에 이미 훌륭한 음향기기가 설치되어 있다면 음량을 키워놓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다음 주일 설교시간에는 평소보다 음량을 키워놓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지켜 보라. 오랫동안 당신의 설교를 들었지만 전혀 꼼짝도 하지 않던 죄인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아마 많은 성도들이 당신의 설교로 도전을 받게 되었다고 간증할 것이다. 작은 교회도 큰 교회처럼 좋은 음향기기가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3. 예배 시 온도는 어떤가?
어떤 교회는 겨울에 난방을 무리하게 한 나머지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만들어 놓는 곳이 있다. 그리고 여름에도 두툼한 잠바를 껴입고 있어야 될 정도로 서늘하게 만들어 놓는 교회도 있다. 당신의 교회는 어떤가? 스펄전은 예배 시 좋은 설교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맑은 공기라고 했다. 겨울에도 맑은 공기가 순환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가뜩이나 예배에 흥미가 없는데 억지로 앉아 있는 청중들은(그러한 사람들은 어느 교회에나 있게 마련이다) 너무 더우면 아예 잠들어 버린다. 만약 당신의 교회가 중앙난방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예배 안내 위원들이 창문을 열고 닫는 것을 잘 조절하도록 일러둘 필요가 있다. 여름에는 에어컨에 자동 온조 조절 장치가 부착되어 있는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너무 온도를 낮게 설정함으로 청중으로 하여금 오히려 추위를 느끼게 한다면 당신이 아무리 불타는 지옥에 대해서 설교를 하더라도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입술이 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에게는 뜨거운 곳만큼 반가운 곳도 없기 때문이다. 많은 자매들이 교회 건물 안에서 떨지 않기 위해서 여름에도 스웨터를 가지고 다닌다. 에어컨을 너무 강하게 작동시킨 나머지 너무 추워서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노인도 있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온도는 적당하게 맞춰라. 모든 사람의 기호에 맞는 온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당한 온도를 맞추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4. 제 시간에 시작하라!
내가 아는 수많은 교회들이 예배를 제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런 교회들의 대부분은 짧게는 1분에서 길게는 10분을 넘어서 예배를 시작한다. 바쁘게 아이들을 챙겨서 서둘러서 교회에 왔는데 예배 시간이 몇 분 지나도록 목사는 보이지 않은 채 찬양대원들끼리 어슬렁거리며 잡담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짜증나는 일은 없다. 주일 아침 예배는 시작 전에 여유 있게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어야 한다. 허둥지둥 준비를 하고 시간을 늦춰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청중들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의 교회가 항상 늦게 예배를 시작한다면 청중들도 정확히 예배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습관이 들린 청중을 다시 교육시키는 것은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힘들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반주자가 예배 시작하기 수분 전에 반주를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실제로 예배가 사정이 생겨서 몇 분 늦어지더라도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찬양 인도자는 교회에서 급료를 받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하나님의 일은 다른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며 반드시 제대로 제 시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찬양대에 있어서 예배 시작 몇 분 전에 하는 마지막 연습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반주자가 연습 때문에 예배 시간에 미리 반주를 하지 못한다면 교회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예배 전에 정식 반주자가 올 때까지 미리 피아노를 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찬양대는 여유 있게 연습을 끝내고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예배실에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찬양대는 어떠한 이유로든지 연습 때문에 예배에 빠져서는 안 된다. 예배를 정확히 제 시간에 시작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만약 예배를 늦게 시작하게 되면 목사는 제 시간에 끝내기 위해서 설교를 좀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로 준비했던 설교를 시간에 쫓겨 줄인다는 것은 얼마나 큰 비극인가! 나는 보통 주일 오전 예배에서는 25-30분 짜리 설교를 한다. 예배를 늦게 시작하게 되었을 경우 끝나는 시간을 넘어서까지 계속 설교를 하느냐 아니면 설교를 줄이느냐 하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만약 당신이 목회하는 교회가 예배를 제 시간에 시작해서 제 시간에 끝낸다면 청중들과 방문자들은 당신의 교회가 잘 조직된 교회라고 신뢰할 것이다. 주일 오전 예배에 만족한 사람은 주일 오후 예배에도 참석하게 마련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당신이 예배를 주도하는 중에 예배의 분위기가 어떠한 방해 요소로 인해서 흐트러지게 되면 간단한 광고 메시지를 전하거나 설교하기 전에 짧은 성경 구절을 하나 읽는 것도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력을 다시 이끄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표 기도를 시키면 한없이 길게 함으로써 회중이 설교를 듣기도 전에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설교 전에 하는 기도를 당신 스스로 한다면 주의를 다시 당신의 설교에 집중시키고 기도도 짧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로 설교 전에 청중들을 지치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당신이 예배를 한없이 길게 질질 끌면 사람들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할 것이다. 나는 설교가 끝나면 구원받을 사람들과 헌신할 사람들을 초청하는데 오전 예배의 경우에는 12시 전에 초청하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도 예배를 끝내지 않으면 사람들은 밥 생각만 하게되기 때문이다. 예배를 늦게 끝내면 당신이 그들에게 헌신과 구원을 요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의 마음은 식당에 가서 요리를 주문하고 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주일 저녁 예배 설교는 오전 예배 설교에 비해서 약간 길어도 무방할 것이다. 아주 명 설교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긴 설교에 지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설교가 마냥 길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주일 오전 예배 설교에서 시간을 엄수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우리와 같은 많은 근본주의 교회들은 버스 사역(bus ministry)을 통해서 구령을 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버스가 항상 제 시간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긴 설교가 그들의 믿음을 파괴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주일학교 교사도 제 시간에 수업을 시작해야 한다. 모든 것을 정해진 시간에 따라 엄수해야 신용을 잃지 않게 마련이다. 찬양 인도자도 시간을 엄수하도록 해야 한다. 예배가 불가피하게 길어지게 되었다면, 끝나는 찬양을 16절까지(영미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는 대개 16절까지 있다 - 역자 주) 다 부르지 말고 2-3절만 부르고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목사의 집무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긴 설교를 하는 유명한 목사들에 대해서 들었을 것이다. 창세기에서 시작해서 대환란을 지나 천년왕국까지 들어가는 "대장정"에 걸친 긴 설교를 하는 설교자들도 있다. 설교를 길게 하고도 성공적인 목회를 하는 목사가 있다면 "법칙"이 아니라 "예외"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아 두라. 예없는 법칙은 없다. 긴 설교를 하는 것이 그의 성공의 비결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성도들이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하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잘못이다. 그러나 성도들로 하여금 예배에 흥미를 잃게 만드는 데는 우리 목회자들의 책임도 무시할 수는 없다.
5. 광고
만약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예배 광고를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그 사람이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주의시켜야 한다. 당신이 직접 광고를 할 경우에도 간략하게 요점만 전달해야 한다. 광고가 길어지고 요점이 없으면 결국 광고시간에는 아무도 경청하지 않을 것이다. 제발 부탁하건대 "자, 잊는 광고 시간입니다." "몇 가지 광고를 드리겠습니다." 따위의 어색한 말은 하지 말라. 만약 당신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로 중요한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졸거나 다른 것을 읽거나 옷가지를 만지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것이다. 만약 광고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말라(중요하지 않은 광고는 아예 게시판을 통해서 알리는 것이 낫다). 광고를 알릴 때 이런 식으로 해보자. "여기 몇 가지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릴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찬양을 한 곡 부르기 전에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항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게시판을 이용하라. 교회 내의 계획들 중에 더욱 진척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광고를 통해서 성도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다. 광고시간에 빼먹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아픈 성도들을 위한 기도요청이다. 어떤 사람들은(수요 기도회에 한 번도 참석해 본 적이 없는) 교회에서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이 광고 시간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실 아픈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시간은 수요기도회 때라는 것을 성도들로 알게 해야 한다. 수요기도회 시간은, 모든 기도제목을 받고 기도를 나누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인식시켜야 그들이 기도회에 참석할 것이다. 만약 주일 예배 도중이라도 어떤 성도가 갑작스럽게 아프다거나 한다면 그를 위해서 짧고 간략한 기도를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짧은 기도도 긴 만큼이나 경청하신다. 토요일 저녁이나 주일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성도 중 한 명이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었다면 주일에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교회에서 항상 언급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일은 필요하다.
6. "다양성"은 삶의 한 방편이다.
나는 언제가 장례식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교회에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죽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면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른다.) 죽은 사람은 뚜껑이 반쯤 열린 관 속에 누워 있고, 장례예배는 한창 진행중이다. 관과 그 주위는 꽃들로 장식되어 있고, 가족들은 애도하고 있다. 오르간 반주가 시작되고 운구하는 사람들은 관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시체가 관을 열어젖히고 일어나더니 죽지 않았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장례예배를 인도하던 목사가 뛰어나와서 소리쳤다. "이봐 그러지 말고 계속 누워 있어. 당신 지금 장례식을 방해하고 있잖아!" 수많은 교회들이 의식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교인들은 딱딱하게 정해진 죽은 의식이 진행되는 순서에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시계를 보면서 언제 무엇이 끝날 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목회자들이여, "예배를 방해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무슨 말인가 하면 예배를 형식적으로 이끌고 가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한 어느 정도의 다양성은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배는 너무 경박하면 안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형식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모든 성도들이 다 뻔히 알고 있는 순서를 계속 진행하다 보면 결국 교회에는 생명을 가진 자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예배가 항상 송영으로 시작될 필요는 없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하면 신학적인 논쟁을 하려 들지 모르겠으나 성경에는 그러한 지침이 전혀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똑같은 송영으로 예배를 시작하면 그것은 당신의 교회가 죽은 교회라는 것을 광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은 그리스도인의 전투에 대한 찬송으로 예배를 시작함으로 형식주의에 빠진 성도들을 놀라게 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찬송이 끝나고 두 번째 찬송을 시작하려 할 때 짧은 광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광고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광고하지 말기 바란다). 첫 번째 찬송과 두 번째 찬송 사이에 기도를 한다면 기도가 끝나고 짧은 몇 마디의 광고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조언을 하겠는데, 제발 기도할 때마다 똑같은 "소리"로 기도하지 말라(예를 들면 "전지전능하시고 만유의 주재이신 …"이라든가 "온 세상"을 이해서 형식적으로 그것도 매번 똑같은 말로 하는 기도 같은 말이다. 기도하기 전에 기도할 것들을 간단히 메모해 두라. 그러나 절대로 "기도문"을 전체 써 가지고 와서 읽지 말라. "죽은 교회들"이나 그렇게 하는 법이다. 기도할 것을 미리 메모해 두었다가 그것을 진솔하게 기도하라(유창하고 거창한 말보다는 진솔한 기도를 듣고 성도들이 더 큰 감명을 받고 동의할 것이다). 설교를 할 때도 준비를 하는데 왜 기도를 할 때는 미리 준비하지 않는 것인가? 기도가 설교보다 못하다는 것인가?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라. 그리스도인은 성경과 반대되지 않는 이상 국가의 명령을 존중하는 사람들이며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의 청중이 당신의 기도를 통해서 그러한 사실을 알게 하라. 국가에 닥친 큰 재난도 잊지 말고 기도하라. 성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위해서 기도해 주라. 성도들은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나 관심을 그들의 목사가 알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있음을 알 때 더욱 감사할 것이다. 성경이 명령하고 있는 것처럼 권세를 가진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 사회의 민감한 문제들도 기도하라 .만약 당신이 낙태나 음란서적이나 TV를 반대한다면 당신의 청중들도 당신의 분명한 입장을 알도록 하라. 모든 문제에 대한 당신의 분명한 입장을 성도들이 알게 하라 당신이 그러한 문제를 기도하면 별 다른 광고가 없어도 청중들은 당신의 입장이 어떠한지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기도해서 성인 영화관을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음란 서적 판매소를 문닫게 만들었다. 우리 교회는 항상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며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한다. 나는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라디오 설교를 통해서도 최대한의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한다. 물론 나는 강단에서 단 한 번도 "플레이보이" 같은 음란서적의 제목을 말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저 "음란 서적"이라고 말할 뿐이다. 나는 그러한 책들의 특정한 제목을 아는 것도 없고 또한 강단이나 설교 중에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설교자들이 그러한 책들과 영화들에 대해서 설교에서 언급함으로 인해서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그러한 죄에 빠지게 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그러한 더러운 잡지를 설교 시간에 광고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비록 반대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잡지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악영향만 미칠 뿐이다). 나는 그러한 잡지들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숨겨진 "철학"을 청중들에게 밝히고 그것에 대해서 경고한다.
7. 방문자를 환영하라.
교회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그들을 일어서게 하고 그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데에는 사실 조심스러운 편이다. 그들을 일어서게 하고 이름을 부르면 청중들이 그들을 쉽게 알 수 있겠지만 본인들은 좀 당황스러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친숙해지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을 나타낸다. 그들은 이미 목사가 그들을 일으켜 세워서 이름을 대게 하기 전에 충분히 어색해하며 당혹해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을 어색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자유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음 번 집회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방문자 카드를 주고 스스로 작성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회중 전체 앞에서 자신들의 소개를 하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방문자 카드를 작성해서 자신들을 알리는 것이 그들에게는 덜 어색하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방문자 카드는 헌금함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8. 목사들이여, 긍정적이고 낙천적이 되라.
만약 당신이 열렬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당신의 청중들이 그러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청중들이 성별되고 경건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죄악의 부정적인 부분을 설교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긍정적이고 기쁘게 생각해야 할 많은 것들이 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사에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어떤 경우에는 주님의 오심을 사모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기도 하지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 천 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들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시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도 건재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하늘 나라는 확실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다배 주신다. 성경은 우리의 확실한 토대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보좌에 앉아 통치하신다. 당신이 비관적으로 될 때 이러한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 풍성히 열매를 맺는 교회들을 보라. 그런 교회의 목사들은 대부분 주님의 사역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운을 내라. "즐거운 마음은 그 자체로 좋은 약이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인도하는 리더로서 우울하거나 비관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당신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힘쓰며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라.
9.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당신의 사역 정 중앙에 있게 하라. 물론 시사성이 전혀 없는 설교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중들은 성경적인 설교를 듣기 원한다. 사람들이 단순히 "뉴스"를 듣기 위해서 당신의 교회에 온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강단 아래에 모인 사람들은 굶주린 양이다. 세상에서 벌어진 뉴스를 전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을 먹이라.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기르고 죄를 폭로해야 한다. 그러나 완악한 마음을 쪼개는 동시에 쪼개진 마음을 싸매 줘야 한다. 성도들의 아픈 마음을 감싸주고 말씀으로 먹어 주며 치유해 주지 않으면 결국 아무도 설교를 들으러 오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시간을 성경 읽는데 써야 한다. 항상 성경을 읽고 묵상하라. 그래서 당신의 청중들이 항상 "신선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부를 수 있게 하라 .청중들은 항상 "성경 말씀"을 들으러 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설교하되 그 말씀이 그들의 삶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전해 주어야 한다. 내가 목회를 시작했을 때 가장 듣기 좋았고 나를 격려했던 말이 있었다. 그것은 예배가 끝나고 교회의 현관에 서서 인사를 하는데 어떤 자매님이 "양들이 배불리 먹고 갑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목자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격려가 되는 말이 있겠는가? 성경 구절들을 암송하라. 그것보다 더 당신의 설교를 축복되게 하는 것은 없다. 그 책(성경)의 사람이 되라. 청중들은 어떤 위대한 신학자나 다른 유명한 목사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원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거듭난 청중들은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알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한해서 당신은 항상 긍정적이 될 수 있다.
10. 몇 가지 추가적인 조언
강단 위에 밝은 조명등을 설치해서 당신이 "빛 가운데서" 설교하는 것을 청중들이 알게 하라(설교자가 어두운 곳에서 설교하면 뒤에 앉은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설교자들은 매우 어두운 곳에서 설교하는데 자고로 빛을 싫어하는 자는 어두움에 거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설교자가 밝은 빛 가운데서 설교해야만 청중들이 설교자의 얼굴의 표정을 잘 볼 수 있다. 어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이 서 있는 강대상보다 찬양대석이나 회중석을 더 밝게 해놓았다. 그러나 설교 시간에는 설교자가 가장 주목을 받아야 한다. 더군다나 설교자는 설교 도중 설교 원교와 성경을 읽어야 하므로 밝은 조명이 필요하다. 가능하다면 교회 전체의 조명도 밝게 하라. 어떤 교회는 수도원이나 카타콤(지하 무덤) 수준의 조명시설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매우 좋다. 그러한 곳에 대한 적당한 성경 구절은 {빛이 있으라.}(창 1:3)이다. 만약 건물 자체가 어둡다면 가능한 한 밝게 할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젖히고 내부의 색을 밝은 색으로 칠하라. 가능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교회 내부를 밝게 하라. 우리는 밝고 깨끗한 하늘나라에 갈 사람들이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께서도 친히 빛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거하지 말자." 어떤 교회는 강단 위에 조명이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는데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전기를 아끼려고 그랬다면 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아낌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이 세상에서 쇼를 하는 사람들도 무대 위에 조명을 켜지 않으면 해고를 당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얼마나 더 중요하겠는가! 예배를 시작했으면 너무 잡다한 순서를 많이 갖지 말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청중들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예배가 너무 형식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배가 서커스 쇼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들이나 혹은 하나님께 너무 경솔히 대하지 말라. 설교자로 강단에 선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이자 특권이다. 그 명예를 스스로 실추시키지 말라. 유머감각을 지니라. 그러나 농담을 위한 농담만을 일삼지는 말라.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가끔씩은 설교 중간에 다함께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넣는 것도 좋다. 그러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 대해서 농담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 사람들 앞에서 너무 거룩한 체하지 말고 자신에 대해서 농담하므로 사람들이 당신을 하나님처럼 떠받들지 않게 하라. 만약 실수를 했다면 솔직히 인정하라. 다른 사람이 당신에 대해서 웃는 것에 화내지 말라. 그들은 그러한 일을 통해서 당신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다른 성도를 비난하는데 강단을 사용하지 말라. 강단을 인격적인 비난을 하는 데에 사용하면 다른 성도들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특정한 성도를 비난하는 일을 삼가라.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러한 일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설교단에서는 특정한 성도에 대한 비난을 삼가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라.
무엇보다도 성실한 사람이 되라. 당신의 양 무리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라. 무엇보다도 믿음을 굳게 하라. 그래야 사람들이 주일 저녁 예배에 참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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