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문학 40집 원고-
<동화>
개구리가 없다
김태두
“주인장 계십니까? ”
톡톡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주인 이씨는 읽던 책을 멈추지 않고 열중하여 계속 읽어나갔다.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하룻밤 묵어가도록 해 주십시오.”
그러자 사랑채 문이 열리며 이씨의 얼굴이 나타났다. 깡마른 얼굴에 꼭한 모습이다.
“방이 없소. 조금만 더 걸어가면 주막이 나올 거요. 그리로 가오.”
“주인장! 날은 벌써 어둠이 짙게 깔렸고, 더 이상 가려니 힘도 없습니다. 거절하지 마시고 하룻밤 쉬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 참! 방이 없는데……, 나랑 같이 하룻밤 묵어도 괜찮겠소?”
“예, 고맙습니다.”
나그네는 한참 동안 산속을 헤매어 지친 몸이라 더 걷기도 힘들었지만, 그것 보다 이 집 대문에 쓴 글귀를 보고 그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애걸을 했다. 이 집 주인이 범상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주인 이씨는 곧 안에 사람을 불러 저녁상을 올리게 했다.
“찬이 변변찮습니다만 드시오.”
나그네가 바라보니 밥상 위의 보리밥에 간장 한 종지와 무짠지 그리고 콩나물국이 전부였다. 하지만 허기진 배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고, 한쪽 방구석에 누워 주인이 책 읽기가 끝나도록 기다렸다. 대문에 붙어 있는 글귀가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그냥 잘 수가 없었다.
‘유아무와 인생지한’이라는 글귀! 나그네는 바로 이 나라 임금이었다.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알아보려고 몰래 나왔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었다. 임금이 되기 위한 공부를 배울 만큼 배워 모르는 것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풀이하면 그렇다. 아무리 요리조리 맞추어 봐도 모르겠다. 이 주인은 대관절 어떤 사람이기에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글귀를 대문에 붙여놓았을까?
기다리다 지친 임금은 좀이 쑤시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염치를 무릅쓰고 말을 건넸다.
“주인장 어른! 이제 잠시 쉬지 않겠소? 저하고 이야기나 나눕시다.”
“이것마저 읽고요.”
주인 이씨는 한참 동안 그 뒤에도 아주 재미난다는 듯 열심히 글을 읽다가 자정이 다 되어 책을 덮었다. 임금은 졸려 고갯방아를 찧다가 일어나 앉았다.
“대문에 붙여놓은 글귀 여덟 자가 도대체 무슨 뜻이지요?”
“허허 그걸 봤소? 그 별것 아니오.”
“아니, 그 글 속에 깊은 뜻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깊은 뜻이라기보다 내 신세를 한탄한 글귀외다.”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으신지?”
“신세 이야기보다 제가 옛날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립지요.”
하며 이야기를 꺼내는 주인 이씨.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을 때 심술이 난 까마귀가 내기를 하자고 했다.
“사흘 뒤에 노래시합을 나하고 하자. 백로를 심판으로 하고.”
이 제안에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노래를 잘 하기는커녕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의하다니……
하지만 월등한 실력을 자신했기에 시합에 응했다. 그리고 사흘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연습은 안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 다녔다.
약속한 사흘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의 판정을 기다렸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동안 꾀꼬리는 노래시합에서 까마귀에게 진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주고, 까마귀가 뒤를 봐 달라고 힘을 쓰게 되어 꾀꼬리가 패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꾀꼬리는 크게 낙담을 하고 실의에 빠졌다.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한이다’ 라며 중얼거리며 다녔다.
그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은 임금은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그 꾀꼬리 신세가 주인장 신세라는 이 말씀이군요.”
“맞소. 세상이 싫어서 사람들 대하기도 꺼려서 이렇게 숨어산다오. 그런데 당신은 첫눈에 천사처럼 보여 내 방에라도 묵어가게 하고 싶어졌소. 내 마음이 아닌 모양이라 내 마음이 돌아오면 다시 쫓아낼 줄 모르니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주무시는 게 좋겠소.”
“잠깐만!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혹시 과거 보러 갔었습니까?”
“바로 보았소. 과거 보러 가니까 부정불의가 판을 치니 아무리 공부해 간들 소용이 없습디다.”
“그러면 됐습니다. 제 이름은 왕치겸이라 하오. 저도 지금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 특별 임시과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개경으로 가는 중이거든요.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같이 떠납시다.”
“싫소. 이번에도 말짱 헛일이 될 게 뻔하오. 당신도 안 가는 게 좋을 게요.”
“속는 셈치고 한번만 더 가 봅시다.”
“내가 몇 번을 과거시험을 치룬 줄 아오? 소용없다니까.”
“내가 척 보니까 주인장은 지식이 풍부한데 운이 좋지 않았던 거요. 이번에는 그런 사람들을 뽑는 과거라니까. 내 말을 믿어보시오.”
“당신이 무슨 용빼는 재주라도 있단 말이요?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잡시다.”
주인 이씨는 몇 번을 당한 쓰라린 낙방의 경험을 맛보았기 때문에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왕치겸은 마지못해 같은 방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뒷날 아침 고맙다며 인사하고 떠나던 임금은 다시 이씨를 권해보기로 하고 가던 발길을 돌렸다. 그의 학식 높음을 알았기에 이씨를 등용해 자기 곁에 두고 싶었다.
“주인장! 생각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어서 가시오.”
“앞으로 과거 볼 생각이 없으면 책을 던져버리고 밭에 나가 땅이나 파는 게 나을 겁니다.”
“팔 땅도 없소.”
“그러면 산에 가서 나무나 해 나르는 것이…….”
“도끼가 없소.”
“그러면 계속 책을 읽어야겠습니다그려. 책을 읽은 이상 무엇을 하든지 끝장을 봐야 할 게 아닙니까?”
“…….”
“이 달 보름날이니 잘 생각하여 오십시오. 제가 과거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먼저 가오. 좀 생각해 보겠소.”
“꼭 오세요. 이번에는 당신 같은 책벌레는 틀림없이 합격할 겁니다. 내 말이 어긋나면 손가락에 장을 지지도 좋습니다.”
“먼저 떠나오. 나도 준비하여 가보기는 하겠소.”
고집쟁이 이씨가 마음을 돌려 보름날 과거장에 나타났다. 두리번거리며 왕치겸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속았다. 그가 실없는 소리로 여기까지 나를 오게 만들었어. 힘이 빠졌지만 이왕 온 걸음이니 과거장 안으로 들어가 여러 선비들 속에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내 걸은 시제가 바로 ‘유아무와 인생지한’이란 여덟 글자였다.
엥! 깜짝 놀란 이씨는 고리눈이 되었다. 곧 고개를 들어 높은 보좌에 앉은 사람을 쳐다보았다. 곤룡포를 입고 있는 임금이 이씨를 보고 왼눈을 끔뻑하며 뜻있는 눈짓을 보냈다.
이씨는 자기 집을 찾아온 사람이 다름 아닌 임금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어나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을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씨는 벌써 답을 다 써서 내었다. 장원급제를 한 것은 물론이다. 그가 바로 유명한 학자가 된 고려시대 이규보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