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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기술 밥통 (누락)
인생은 드라마 와같이 젊으서 는 꿈만은 육상선수로서 촉망받는 청소년국가
대표 선수이기 도 햇고 신인발국 고교우수선수 합숙 태능 선수촌 입촌하여 지도 도 받앗고 유류파동으로 학업도포기 취업전선 신진자동차에 들어가기위해 용접 배운다 는 것에 조선소 에 입문하엿서나 갈등 적성 이루지못한꿈 에 늘 불만 속에서 결국 배겨 내지못하고 상업으로 뛰쳐 나온나 중년에는 자갈치 백화점의 번영회 회장 대표이사 로써 한 건물속의 대왕노렷으로
설합 속(매일 현금 백 만원 이상) 의부를 누렷고 번영회장이라면 자갈치 시장상인은 물론 중구에서 유지급으로 황금기의 40대를 보내고 권력 돈 모두를 가지기도 한 나엿 는대 이재 50대후반들어 는 또다시 처음사회발 디딤으로 회유 조선소에서 빛을 발하는 인생 드라마 같은 한 인생 전편에서 다시후속 은 천직에 다달은 직업을 역어본다
부산 영도 0강 기업 에서 일본 히로시마 고요조선소 물양 브-록 제작
월 1200톤 브-록 개수로는 일주일 에 두개증도를 오차범위 3mm 이내로
직선부재(철판) 들 어 간 부분을 직선으로 ,나온 부분은 들어가게 바르 개 하여 선주검사 까지 완료 받아 선적 하 는 일과 를 반복해왓습니다 앞 서 밝힌 바와 같이 기존 곡직 사 는 고정 관념의 작업과 물 호스를 들고 다니며 작업 한다. 나도 처음 에 는그랫 다 용접 사 들과 늘 다툼이다 물을 주므로 용접을 할 수 없어 니 까 그것은 경험부족에서다 불 조정에서 물을 안줘도 불 쌔기 강 약에 따라 물을 안줘도 댄 다 특 희 자동 용접선이 들어간 부분은 철저 희 철칙 에 따라 불을 대야지 나왔다고 무족 건 불 댓 다 가는
중국집에서 파는 공갈 빵 처럼 철판이 부 풀 어 오른 다.(이 기술 내 스스로 터덕 한 기술이다, 나의특허품인대 5년이 지나니 퍼져 현장 취부사 는 모두 섭득 해 있었다. 또 직선 철판의 변형 요철 부분 펴내는 기술에 ㄷ공구 물려놓고 쐐기를 두 세 개를 박아 원형대로 직선잡기 ) 모르는
사람은 놀 란 다 그리고 부재를 못 썰 수도 있고 철판을 교체(니뉴)해야 댈 때 도 있다. 옆의 파트에서 강판 한장을 교체하는것을 보 앗다 이러한 기술 곡직 을 나는 체험하고 이제 브록 어느부분 구석구석 못하는 곡직이 없다 고 여긴다.쭈거러진 깡통 말고는다 할수 잇다고 자부한다 ,0산업에서 옆 파트는 두 사람이 하는 곡직을 나는 나 혼 차서 다해내고 도 잔업 이 없 엇다
나는 늘 불만이다 햇금도 떨어지지 않은 5시면 퇴근시키는 사장이 봉급액수를 관리 하는 것이다
나는 잔업없어도 그래도 나 혼 차 서 지장 없이 열심희 하여 다 해 냈 서니까 그러나 월수입은 줄어 200만 원선으로 맟우 고 나만 늘
잔업 이 없다 고민 중에 옆 회사 0선조선소 협력업체 에서 월급을 많이 준다고 소계가 왔다 나는 들 렁 가 겟 다고 승낙하고 면담후에 출근햇드니 사장과 소장 간에 입 싸움이오가고 난다음 사장이 가만희 집에 대기하라기에 3일 동안 기다리는 것이 다른 대 못가게 붓 잡고 잇는것이다 3일이지나 어떻게 대느냐고 만낫드니 목포 에 잇는 조선소에 가 란 다 기가 찰 일이였다 화도 치밀 엇지만 당황했다 이재 다시 돌아간다 해도 별 눈치도 못 받을 것이고 그 사람을 고소를 할 려 다 손해배상으로 50만원을 받고 다른 곳으로 가기 로 마음작정을 했다 아 하 큰 실수였다 적어도 집에서 출근길 빠르고 좋은 것을 그동안 18개월 동안 에 세월 이 바 뀌 엇고 변 한 줄 몰 랏 다 년 초라 자리가 더욱 없 었 다. 실망 과 후회 가슴 아 팟 다 3일 놀다 보니 마음은 바빳다 거제도 친구 곡직 기 두벌을 선물을 한 친구에 전화를 냈다 그랬더니 그날 저녁 당장 내일 오란 다
나는 짐을 차에 싢고 집사람과 아들의 작별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울 엇다
나의실수를 질책하며.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움직인 나 원망도 할 여가없이
거제도에 갓 다 내가 20년 전 대우조선소에서 하청 업을 했던 그곳 많은
발전과 바닷가의 조선소들 내가간곳은 한내공단 0한 산업 이란 곳이고
주로 배 의장품 들이였다 그중 배의앞부분 코처럼 튀어나와있는
그 부분을 만드는 업체 였 다 말로 만 듣던 코 부-록이다
일명 발바리 브록 개의 발바리가 앉아잇는모습이라하여 그렇게부른다
그 부분은 물 바가지를 업 퍼 놓은것처럼 엎어두고 제작하니 맨 앞 은 꼭대기 가 대고 밀 페 대고 만 다 곡직기의 불온도1500도 이상이다 그런 온도 가 냉장고만한 밀 페 댄 곳 그 안 에는 각 철판이 스페스 800mm로 두께10mm 아래로 열개증도가 잇고 홀은 사람이 들어 갈수 잇는 구멍 이 잇다 용어로는 후로아 훅 이라 부른다. 그런 것이 스페이스 간격 유지하며 구조가 잇는대 그 구조가 두꺼운 철판을 외판 밖에서 용접을 하니 변형이 간다 변형을 바로잡아야한다
그러나 곡직의 어려운 기술 중 항상 구멍이 문재 용접을 하고나면 변형 이 간 다 그것도 3mm 이내로 직선으로 해내야한다 어느 한 사장은 곡직사가 구멍하나 바로잡는대 반 나 절 식 걸린다고 물바다를 이루곤 한다고 험을 잡는대 나는 20분만하면 물 안주고도 해 낸다 이런 기술이지만 떠 거운 열기에는 도 저희 나도 견디지 못할 것을 알 앗다 공기를 뻬 내 는 연 통 프라스틱이 녹 아 내 린 다 처음 겪어 보는 또 하나의 체험에 사우나를 몇번을 하루에 하는것이다 맨꼭대기 에서의 작업은 도저희 지탱하기힘들고 한 개하고 부터는 자신 이 없엇다.
정상 브록 일을 하고 싶엇고 생활이 게다가 육지보다 거제도에서 집으로 온다는 것이 배로 오고 여간 힘들고 경비 또한 만은 돈이소요대니 이 상이 못 잇 갯 드 라 그즈음 사장 이 불렀다 갑자기그만두라고 햇 다 얻 거 제께 전 곡직사보다 빠르고 잘한다고 하드니 그래 나는 속으로는 잘 댓 다고 생각 자진 사표보다 그만두라는 것에 내게는 유리하니까 못이기 는 척 잘 댓 다고 생각하고 철수 하기로 결심햇 다.
이제 섬보다 울산이나 온 산 쪽으로 알아보기로 했 는 대 마침 한
곡직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온 산 0영산업의 협력업체 당장달려갔다 그래 좋다 함해보자 400만원 까지 준다고 하니 당장 출근 하란 다 3일후
온 산 덕신 리 에 단칸방을 구하고 잠을 자고 중간 기점 쉬는 곳을 정 햇 다. 역시 현대조선의 배 규모 가 컷 다 보통 2-300톤 의 브-록이다 늘 하든일이지만 곡직 사 는 일단 입사하면 태스트 를 한 다 일 부려 철판20mm 대는 것을 부분 구겨놓고 펴보라고 한 다 거나 심하게 자동용접 부분이 들어간 부분을 빼보라고 태스트를 한다.
공구를 쎳어 쌔기를 두개식이나 밖아 가면서 그 또한 처음보다 더 바르게 펴 낼 수 잇 다 나는, 회사를 옮김에는 그런 형태로 꼭 태스트 에 혼이 난다. 처음 태스트 부산에서의 곡직 그때 내가
지금도 안 써 러 운 것은 그라인드 를 하면 석면가루 쇠를 깍 는 쇠 가루
먼지 등이 꽉 찬 밀 페 댄 곳에 서 마스크 도 없이 긴장 댄 상태에서
해냈던 것은 기적 에 가깝고 그것을 못 해 냇 서면 오늘이 없 엇을 것이다
두 사람의 곡직 사 20년을 햇 다 는 그들이 못하는 것을 내가 해냈서니
운이 있엇을까 못햇다면 나는 실패했을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쁜
환경에 무방비로 죽기살기로 해낸 그 긴박한 순간을 후회하고잇다.
다시 0영산업 협력업체에서도 사장의 몇 개의 태스트 겹 주문을 했다
나는 하라는 대로 해 냇 다 물안 주고도 할 수 있는 나의 불은다른이의 불 보다 틀 린 다
불 조정으로 강약으로 평철판 을 뒤 접 어 놓는" 불의 마술사" 라 했다
(부산 0강 기업 에서)사장이 잘한다고 칭찬이대단하드니 그런대 20일 쯤 지나서 사장이 나를 불 럿 다 갑자기 내일부터 거만 두어야 한 단 다
이씨는 이재 쉬어야 한 단다 이게 또 무슨 소린가 이상 햇 다 청천벼락 같은 말이다
작은 배의 작업 에서 큰배의 브록 작업에 다 직선부록을 전적으로 제작하던 업체에서 집체 몇대 만 한 선수 선미 곡 브록을 하니 아직 나의미숙한 점이 노출이 댄 것이다
실로 나도 그 큰 브록 곡이잇는 외판 두꺼운 철판 다루는대는 기술부족 아직 내 기술이 미치 지 못한 부분 서툰점 나도 느끼기도 한 바가 잇다
그러나 그 마음을 알수없엇다 70가까이댄 영감을 입사 까지 시켜놓고
다른대 알아 보란다 기술적인 문재라면 이재 나는 이것으로 곡직사로써 는
더이상 일 할수 없는것인가 이번 달 만하고 그만두라는말에 단념하고
이재 집으로 가서 또 한 운명을 기다리는 인생으로 전략하기로 마음가짐을가지고 또 고민해야 한다는 마음에 설움과 크나큰 실망 햇 지 만 도리 없 엇다 .
힘없는 발걸음 혹 또 받아줄까 혹시 옛날 현대 조선소 제직때 의 동료라도 만날 수 있을까하고 온산공단을 해 맸 다, 온 산 바닷가는 온통 조선소 엿 다 과연 우리나라가 세계의 1위 조선소답게 큰 브-록 제작 업체 가 수 없이 많 앗다
그와중에 비가오는 토요일 점심을 먹고 휴게실로 가든중 비가너무와 브록 밑으로 비를 피하며 간다 는 것이 브록 아래 배관 의 돌출 후랜지들 그 후랜지에 충돌 하고 말앗다
우의를 입고잇섯는대도 머리에 손을 넣어보니 축축하다 피 이 일을 어찌하나 피를 흘리며 머리를 움켜지고 나의 차를 몰고 온산에 잇는 한병원으로 운전햇다 거울을 보니 얼굴에 온통 피다
피를 너무 흘려 죽을까도 생각햇다 병원에 도착 한숨을 내쉬고 응급실로 향하고 머리한가운대가 6센치 증도가 짖어 졋 단다 산재처리하면 불이익이 잇다해서 사장에 알리지도 못하고 자비로 치료하고 머리를 붕대로 싸메고 집에 왓고 출근햇다 그래도 그사장은 냉정햇다 피를 흘리며
얼굴에는온통 피투성이 로 운전할때의 심정 아찔했습니다
그 순간 막 그만두고 내일 집 에 가서 모던 걸 단념해야 한다 는 각오 밖에 없 엇다
그런대 전날 알아본 업체 0코리아 라는 업체 소장으로 부터 도와 달라고 긴급요청이왔다
통 사정 햇 다 내일부터 출근 해 달라고 나의 사정 모르고 통사정이다 월 급여도 달라는 대로 다 준 단다 하는 수 없이 이판사판 출근햇다 내가 곡직 기 2개와 백 철자 1m자를 들고 출근 한 곳이 재일 000엔지니어링
이라 는 회사 속의 대 0성 이라 는 업체 엿 고 송강 기업 spp조선소 브-록 과 똑 같은 것을2개(1개120톤) 만들어 놓고 자동용접 선이 꺼 저 빼 내 지를 못하고 곡직 사 는 멍 하니 보 고 있 었 다 그것은 나의 특기중의 특기 기술이다 금방 나는 해 냇 지요 그 곡직 사 에는
미안하지만 그 사람은 곡직 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이 엿 다 경험 하지 안은 사람은 모른다 깨끗하게 해냇지요 나는 명 줄을 이을수잇는그날 5월27일 이다 . 그 사람이 나를 살린 것이다 그 외 모던 곡직을 내가 척척해놓으니 젊은 작업자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 앗다 부산에는 조선기술의 메카다 늙은 기술자들은 곡직이고 모두 다 해 낸다
그러나 이 기술은 망치질하고 붙 치고 용접하고 보다 다른 노하우 이것이중요하다
모던경험 철판을 다루어야 하는 기술 그러니 작은 배에서 직선부록 제작에서 큰 배 제작 선수, 선미 곡이 잇는부록 조선기술중에서 재일어려운 브록 작업을 기초 기술과
접목시키는 또다른 세계의 작업을 이제 마스터 하고 지금이야말로 이제 사 다배운 "불의마술사 "가 댄 기분이다 메주덩어리같이 만들어
놓은 브-록 도 골재만 맞어면 이 불의 마술사가 곡직으로 바르게 만들어 낸 다 그러니
나를 모시고 잇 다 온산 바닥에 나 같은 기술을 가진 자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그러니 보수도 소장 직장 월급과 일당 아닌 월급으로 같다 지금은 울산 미포조선소 배의 선수 브-록을 전 담 하여 만들다. 대우조선소 자 회사 신한기계 주,의 협력업체에서 최고의 브록제작 파트에서 세계 재일의 곡직사로 자타가 공인하며 일한다 불모지 업체 온 산 에서 나는 긍지와
보람으로 오늘도 열 심 희 일 한 다 괜한 오해 그 업주의 나를 배재하기위한 술책에 한인생을 끝 낼 번한 그 순간 나는 그때도 기술이 부족했고 그 업주는나를 내 보내기 위한 수단이엿다
지금도 생각만 해도 그때 기술부족으로 취업을 할수없다면 오해엿고
도둑 재발에 걸린다고(나의 건강상의 이유) 나는절망에빠졋을 것이고 그 젊은 이강0소장 그 사람은 자기가 필요햇지만 나에게는 은인 중의 은인이다
그후 나는 세계 속의 조선 업 게중의 기술 세계속 의 곡직사 자부심을 가지고 나는 오늘도 열심희 일하고 잇다 현재는 신한 기계(주) (대우조선소소속 )에서 0아 라는협력업체에서 부산에서 통근버스로 통근하며 출근한다 이재 더욱 발달대고 숙달댄 곡직사 돌아다니며 바둑의 묘수 풀이하듯 태스트 받아가며 입사한 회사들 배워가며 일하는 자새 한 주어진 일에 젊어서 운동한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고 연구하는 자세 현대 중공업 프랜트사업 해양구조 생산부시절에 고리원자력2호기 를 담당할때 감독관이 영국 G.E.C시절 도면상의 부재를 아이탬 만 말하면 규격을 다 외 웟 서며 온산 동재련소 지을때 수만은 철골부재중 한 부재가없다고 법석에 분명 출고 대엿는대 없다기에 내가 직접현장에 가서 찾아 준 일이잇다.
그때만 해도 온산동재련소 부근은 흙탕이엿다 ,운동선수출신의 한 일과의 집중력에
그당시 부 차장으로 부터 칭찬을받기도햇고 그당시 새마을 지도 자 상까지수상햇다
내가하는임무에 아직도 못배운 기술 정상적 부재의 자연발생 곡직 부분은 원래보다
더 바르게 곡직할수잇다 그중 나는 아들의 숙원사업 기중기를 사달라고 늘 졸랏댓지만 어디 크래인 이 장난감인가 그러나 기천 만원 가져잇서보아야 그렇고 그날 08년 5월27일 날
기중기 일본산 중고를 계약하고 내가 죽다가 다시살아 난 그날을 기리기 위해 우리집 의 날로 정하기로 햇다 내가 벌어 기중기 (하이 돌 크래인 25톤)한대 싸주고 일 나가면 하루 50만원을 벌수 잇다 다행이 올해는 장마가 없어 한달 일천만원을 벌수잇는 운을 가졋다
젊은 나이에 잘하는것 같고 나의 생애에 재일의 보람을 가진다 그래도 고됀 일과에서도 일주일2일은 나는 취미의 태니스 온 산 동 재련소의사택 코트에서 매주 젊은 사람보다 경륜으로 이기는 개임을 한 다
오늘도 내가거친 조선소 소장 사장 들이
부산 의 곳곳에서 오라고 전화가 오지만 현재 의 회사 소장과의 약속
최고의 보수 의리상 마음 의 은혜 용기 감사 희 생각하고 끝까지 다닐 계획 하고 열심 희 일하고 잇 다 세계 속의 조선업계 곡직의 기술사 불의마술
사 세계 제1의 곡직사로 열심희 일하고 아마 건강이 허락 하는 대까지 일하고 살 것이다.
08년 7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