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일할 때 였는데,
일본에 간지 얼마 안됐을 때 일이다.
그곳은 오후 5시만 되면 호스티스들이 우르르 몰려와, 드라이, 세팅, 올림머리를 하느라고 미용실이 정신없이 바빴다.
오래된 미용사들은 보통 업스타일을 10분안에 올릴정도로 손이 능숙하게 빨랐는데, 난 새내기여서 올림머리를 할 줄 몰라, 디자
이너들 전기세팅을 말아주거나, 뒷머리드라이등등 온갖 스텝일을 도맡아 해야했다.
굳이 요새 직급으로 따지면 초디정도 됐다고 보면 될것이다.
그 시간대에는 컷트손님은 잘 안오는데, 가끔씩 가게 분위기를 모르는 눈먼 손님들이 들어오는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그런 손님들은 죄다 늦게 들어온 나같은 신입들 차지가 되었다.
그날도 정신없이 바쁜 날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뚱뚱한 일본중년남자가 들어왔다.
"카또 데끼루?"(커트 됩니까?)
"하이 데끼마스"(예 됩니다.)
스타일북을 보며 디자인을 고른뒤 커트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그시간대에는 정말 정신이 없다는것이다.
고양이 손도 빌리고 싶을 만큼 대기하는 호스티스 손님들이 많은데다, 알다시피 호스티스들 성격이 너무 급하고 보통 괴팍한게
아니라서, 맘이 조바심이 날 수 밖에 없는데, 고참미용사들까지 일이 늦어질세라 옆에서 빨리빨리 하라는 독촉의 눈치를 주다보
니 나같은 신침은 제정신을 가지고 일을 하기가 힘들었다는것이다.
지금 생각에 그 날은 평소보다 훨씬 손님들이 북쩍였던것같다.
솔직히 한국에서 일본어 공부도 해오는등 많은 대비를 하고 갔었지만, 그 때는 일본에 간지 3개월도 안돼서 많은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비록 남자컷트가 자신있긴 했어도,많은것이 낯설었기 때문에 늘 마음이 긴장상태였다. 오죽했으면 그런 긴장을
풀려고, 가방에 술을 가지고 다니며, 주방에 들어가서 아무도 몰래 한모금씩 마시고 일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긴장된 마음으로 커트를 시작한지 15분쯤 지났을까! 머리를 거의 다 자르고, 토끼바리깡으로 면도질을 하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정신이 안정돼가자 주위의 상황이 시선에 들어 온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손님 옷에,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엄청 묻어있는 것이었다.
바로 커트보를 안하고 드라이보만 하고 컷트를 했던 것이다.
나는 퍼뜩 정신이 들어 얼른 커트보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참으로 우스운것은 아무도 나의 실수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더라는것이다.
일본손님은 바보인것인지, 자기옷에 그렇게 머리카락이 떨어져 묻는데도 그냥 바보처럼 거울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고, 일하는 디
자이너들은 10명이나 되는데도 다들 자기일에 집중하기에만 바쁘지, 나의 실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디자이너들은 그렇다 쳐도, 그 일본 손님은 긴시간동안 왜 그저 멍하니만 앉아 있었을까 정말 미스테리다.
아마도 한국미용실은 원래부터 그런식으로 커트보를 안하고 짜르나 보다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던 것일까?
지금도 이 실수를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미용사가 평생 한번도 저리르기 힘든 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이후 한국에서 또한번 저질렀다.
다행히 그땐 초반에 얼른 사태를 파악하고, 빨리 수습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미용실 상황이 매우 바쁜 상황이라서,
긴장한 탓에 그랬던것같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이런상황을 두고 하는 얘기인것같은데, 혹시 다른분들도 이런 황당한 경험이 있을려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