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3

[까치밥]

 형이 마지막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엄마가 건넨 봉투를 되돌려주었다. 5월 초의 저녁하늘을 나는 봉투는 매우 하얬다. 종이비행기 보다 빠르고 짧은 비행이었다. 하얀 봉투는 달도 안 뜬 깜깜한 사위를 날아 시멘트 벽돌로 둘러친 담장 안으로 휙 날아들었다. 사람 세 명이 동시에 드나들기 힘든 그 자리를 마당이라 불렀지만 거기는 사실 담벼락을 둔 이웃집과의 경계선이었다. 마당에 심은 장미나무는 책갈피처럼 담벼락에 붙어 있었다. 엄마의 먹물 같은 눈길이 붉은 꽃 위에 앉은 봉투를 따라갔다. 담장 밖으로는 둔탁하게 뛰어가는 형의 군화소리가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었다.

  “어서 가서 손에 꼭 쥐어주고 와, 어서.”

  “아, 알았어요.”

 엄마는 은규의 등을 몇 번 치면서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은규는 페인트칠 다 벗겨져 초록색인지 갈색인지 분간이 안 되는 쪽대문을 열고 사라진 발소리를 따라 달렸다. 어두웠는데도 형은 제 형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경사진 골목길이 형을 아래로 더 빠르게 가도록 도와주는 것 같았다. 짝짝짝 삼선슬리퍼는 달리는 은규의 발바닥을 쳐댔다. 발밑의 울퉁불퉁한 지면에 걸려 넘어질 것 같았지만 이내 달려간 은규는 골목을 막 돌아가는 형의 허리를 잡았다. 군복이 서걱이며 손에 잡혔다. 재활용의류수거함에 부딪치며 형을 놓칠 뻔 했지만 은규의 손에 잡힌 형은 가만히 있어주었다.

 “형, 엄마가 이거 가져가래.”

 형이 걸음을 멈췄다. 그때 보았던 형의 젖은 눈빛을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하나. 은규는 지금도 그 눈빛을 뭐라 설명을 못하겠다. 들고 있던 봉투를 형의 군복 상의 주머니에 넣으려 하자 형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여리고 부드러운 손에 힘을 준 형은 봉투를 다시 은규에게 쥐어주었다.

  “엄마랑 아버지 모시고 나가서 맛있는 거 사드려. 엄마한테는 내가 받아갔다고 하고. 내 걱 정은 마. 알았어? 다음 휴가  나올 때까지 엄마 아버지 잘 모시고 있어!”

  “형.”

 형은 은규의 어깨를 한 번 툭 치더니 버스 놓치겠다면서 가버렸다. 은규는 형이 시킨 대로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고 엄마는 그제야 얼굴이 밝아져 멀뚱히 티비를 보는 아버지에게 ‘현규가 받아 갔대요.’ 했다. 아버지는 리모컨을 여기저기로 돌리다가 자꾸만 눈을 껌벅였다. 덜 삶아진 꼬막처럼 아버지의 눈은 눈물에 잠겨 있었다. 은규는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 바지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냈다. 만 원짜리가 열 장 들어 있었다.

  형은 정확히 한 달 뒤 죽어 돌아왔다. 보급품을 싣고 오기 위해 트럭을 몰고 나가다가 마주 오는 트럭과 충돌한 것이다. 하사의 업무를 대신하다가 사고를 낸 까닭에 은규의 부모는 더 기막혀 했다. 형이 생사를 오갈 때 헌병대에서 찾아왔고 형이 숨이 끊긴 날 다시 찾아왔다. 부하가 자원한다고 해서 업무를 맡긴 하사의 책임도 크지만 형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그러면서 형의 죽음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보상금을 서둘러 지급하겠다고 했다. 은규의 아버지는 자식의 죽음 앞에서도 ‘하사에게 너무 큰 처벌은 원하지 않는다.’고 부대 측에 전했다. 나중에야 은규는 전역한 형의 동기들로부터 들었다. 전 날 만취한 하사가 사고 당일 아침에 술이 깨지 않아 형에게 업무를 맡겼다는 것이다. 형이 싫다고 했지만 ‘잘 판단해. 남은 군 생활 잘 하고 싶으면.’하사는 그렇게 협박을 했다. 은규는 곧 부대로 달려가 진상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마지못해 살고 있는 부모님께 억울한 형의 죽음을 알릴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비문증에 시달렸다. 눈앞에 날아오르는 실타래처럼 엉킨 길쭉한 원형들이 모양을 바꿔가며 아른거렸다. 고양이가 날아가는 나비를 잡으려 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고개를 들고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폈다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아버지의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엄마는 입을 닫았고 입의 쓸모가 말에 있지 않음을 증명하는 사람처럼 살았다. 은규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봤지만 치료의 방법이 없다며 저절로 사라지거나 계속 그 상태로 살 거나 둘 중 하나라고 했다. 정신과에서는 엄마가 자신을 무인고도에 가둬두었으며 그 유배기간이 언제 끝날 지는 엄마에게 달렸다고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비좁은 마당 담벼락에 가까스로 붙어 피어나는 장미꽃은 하얀 봉투가 닿았던 자리에 더 붉은 꽃들을 피웠고 꽃이 지면 그 자리가 유독 더 쓸쓸했다.

  은규는 잠깐의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을 만큼 집을 비우는 게 불안했다. 혹시나, 부모님이 나쁜 마음이라도 먹을까 봐 학교 가는 일 빼고는 언제나 부모의 곁에 있었다. 웃음이나 기쁨 같은 단어들은 증발해버리고 차가운 밀랍 속에서 먹고 자고 일어나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둠이 뭉글뭉글하게 창가를 감싸던 어느 날, 엄마가 동그랗게 퍼진 치마 안에서 컴퍼스가 원을 그리듯 손을 움직였다. 은규가 보니 엄마가 자신의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하나 저기서 하나 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고 있는 행위는 신성한 의식 같았다. 원 안에서 원 밖으로 이어지는 반복적인 손놀림은 마치 저편 세계에서 이편 세계로 무언가를 담아 오는 것 같고 사라진 기억을 끌어 모아 곱씹는 것도 같았다. 어두운 밤, 무뚝뚝한 형광등 아래, 생명이 허물어진 바닥 위에서 엄마는 박제된 인생이 어떤 건지 보여주고 있었다.

  은규는 그런 엄마를 넋 놓고 바라보다가 시디를 꺼냈다. 형이 가고 난 뒤 들은 적이 없는 시디엔 먼지가 한 올도 만져지지 않았다. 형이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하나인 드뷔시를 틀었다. ‘형, 누구 거야?’ ‘드뷔시의 곡인데 스윙글싱어즈가 부른 거야.’ 책에 눈을 둔 채 형이 말했었다. 설마 이 아카펠라가 굳어버린 엄마의 입에 침을 발라줄 것을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피에타를 위로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엄마, 좋죠?”

 방바닥을 더듬어 머리카락을 줍던 엄마의 손이 멈추었다.

 “제목이 뭐더라. 기억이 안 나네.”

 은규가 혼잣말을 했다. 갑자기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언젠가 잠자는 엄마의 엉덩이에 번지던 붉은 생리혈 같은 울음이 펑 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은규는 엄마의 울음에 놀라서 어떻게 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창자가 끊어지는 소리에다 걷잡을 수 없는 물줄기가 쭈글쭈글한 눈 옆 잔주름에서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온 뺨의 주름에까지 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엄마의 입은 자신의 눈물을 언제까지고 계속 받아 마실 것 같았다.

  한참동안 눈물에 젖어 있던 엄마의 입이 열렸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태초의 두려움을 고발하고 벗어나려는 몸부림 같았다. 거기엔 트럭에 온몸이 구겨지고 으스러지면서 핏덩이를 쏟아냈을 형의 입술도 있었다. 군홧발에 채이고 꺾여 불쏘시개처럼 사라진 스물다섯 해의 아침과 저녁이, 허무와 사랑이, 고단함이 물려 있었다. 눈앞을 날아다니는 실타래를 휘젓는 아버지의 공허와 밤마다 형을 붙잡지 못하고 깨는 은규의 악몽이 엄마의 이빨 사이에 물려 있었다. 엄마는 눈을 꽉 감고서 입에서 나오지 못한 말을 끌어내느라 안간힘을 다했다. 혼신을 다하는 입에서 말 대신 조각난 창자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다.., 다.., 다, 달.빛”

  엄마에게 너무나 길었을 그 시간. 기다림 끝에 이빨에 물린 창백한 혀가 들어가고 말이 터진 것이었다. 은규는 먹먹했다. 엄마의 말이 피뢰침에 스며든 번개처럼 은규의 가슴 깊숙이 퍼졌다.

 “형이... 엄마 목소리...듣고, 무지 좋아하겠다.”

  엄마를 안고 있는 은규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마루에 앉아 있던 아버지의 굽은 등도 심하게 흔들렸다. 하늘 어딘가에 떠 있는 달이 엄마의 ‘달빛’을 들었을 그 밤, 피에타의 단단했던 원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구교형]

아직 멈출 수 없는 눈물들. 여러가지 잔상들이 떠오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