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열흘만에 고향집에 왔다. 대문 열고 들어서면 자기집처럼 우리집을 지키던 길고양이가 슬며시 자리를 비켜준다. '저 양반들 잊어버릴만 하면 또 오네.' 라고 속으로 중얼거릴 것 같다.
생선을 일부러 살을 많이 남겨 그 아이가 자주 쉬는 곳에 두면 어느새 깨끗이 발라 먹는다. 먹이 주다보면 가족된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라 이름도 지어주고 가족 한번 만들어볼까 생각하다가 늘 고향집에 있을 수 없어 그만 두기로 했다.
올봄엔 비가 잦은 덕분에 물주는 수고가 덜었다. 심어 놓은 작물들이 죽지 않고 잘 자라고 있다. 풀도 덩달아 잘 자란다. 잡초매트를 깔아놓지 않은 곳은 완전 지 세상이다. 세상살이 공짜가 없다. 물 안 주는 대신 풀매기 해야 한다. 확 제초제 뿌려? 하다가도 내다팔 것도 아니고 자네 가족이 먹을 건데 가능한 풀약 치지 말라는 텃밭 농사짓는 동네 형님의 말이 생각나 그만 참기로 한다.
올해는 유난히 달팽이가 많다. 지난 해에는 집달팽이만 보였는데 올해는 민달팽이도 많이 보인다. 징그럽기 짝이 없다.
농약상하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올봄에 비가 잦아서 그렇단다. 방제약을 쳤다. 소개해준 방제약이 천연재료라 다행히 다른 식물에는 해가 없다고 한다.
잘 자라던 양파도 병이 들어 농약상 친구 시키는대로 살균제를 쳤다. 이것도 비가 많이 내려서 그렇다고 한다. 비가 병주고 약주고 한다.
비 덕분에 옥수수는 부쩍 자랐고, 오이는 하나씩 따먹기 시작한다. 넉넉하게 심었기 때문에 많이 열릴 거다. 집식구는 경로당 할매들 오이마사지 시켜드릴 거란다. 방울토마토도 곧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른 봄에 부산 구포시장 종묘상 아지매가 권하는 대로 양배추 적양배추 브로콜리 콜라비를 심었다. 이까짓 네 종류 이름 까먹겠나 싶어 이름표를 붙이지 않았더만 양배추와 브로콜리, 적양배추와 콜라비가 색깔과 잎모양 등이 비슷해 구별이 어려웠다.
브로콜리 콜라비는 양배추와 다른 작물을 교배해서 만든 거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차이를 보이고 있다. 참으로 신기하다.
자라는 식물 옆에 쪼그리고 앉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이런 게 촌에 살면서 텃밭 가꾸는 맛인가 보다.
무슨 일을 할 거라고 정하지도 않고 밭에 나간다. 가면 할 일이 보인다. 밭에 종일 붙어있다면서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동네 할매들이 한 마디씩 한다.
그냥 웃고 만다. 밭에 머무는 시간은 많은데 사실 일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멍때리는 시간이 훨씬 많다. 학창시절 책상에 앉아 있다고 다 공부하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도시에서나 촌에서나 똑 같이 귀찮은 게 있다. 폐기물 분리배출 하는 거다. 왜 이리 하기 싫을까. ㅎ 그래도 해야 한다. 너무 많이 쌓여 있다.
모이는 쪽쪽 버려야 하는데 모아두니 일이 된다. 세상살이도 그렇지 않을까. 버려야 할 것 제때 버려야지 쌓이면 처리하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느지막하게 일어나도 급할 거 하나 없는 시골살이다. 매일 넥타이 매고 출근하던 그 시절이 가끔 생각난다. 그리울 때도 있다.
그때는 이른 아침부터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당히 게을러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지금은 적당히가 아니라 완전히 게으름을 부린다. 그래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마음이 참으로 편하다.
5월 농촌, 밭에는 초록 작물이 자라고 논은 무논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곧 모가 줄지어 심어질 거다.
5월 고향에는 찔레꽃도 한창이다. 향이 참 좋다. 이 향을 글과 함께 보내드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