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 관심은 건강이다. 지난 크리스마스를 영국 딸네 집에서 보내면서 그래도 견딜만하던 무릎 통증이 심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점점 더 심해지면서 걷기도 어려워졌다. 동네 새로 생긴 정형외과가 괜찮다는 이웃의 추천에 못 이기는 척 가보았다. 새롭게 설비를 갖추고 젊은 의사가 진료를 했다. 환자가 많았다. 엑스레이를 찍고 마주 앉은 의사는 내 병력을 묻고 사진을 보고 진단을 하더니 허리와 다리에 주사를 맞으라고 한다. 그동안 맞지 않고 버텼던 주사를 맞았다. 아프니까 도리가 없다. 처음에는 날아가듯 했다. 아프지도 않고 몸도 가벼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팠다. 병원에 갔다. 처방은 다시 주사. 아플 때마다 주사를 맞을 것인가?
내 상황을 아는 봄산 목사가 수기 치료를 권했다. 수기치료를 다니는 동안 치료사는 어싱(맨발걷기)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하라고 했다. 우리 집 주위에는 공원이 엄청 많고 걸을 수 있는 평지 산책길도 많다. 해안길도 있어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는 길도 있다. 문제는 모든 길이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다. 어싱은 나무데크도 안 된단다. 맨발로 흙을 밟아 지구의 기운을 받아들여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어싱이다.
흙길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늘솔길 공원에서 한 곳을 발견했다. 메타세콰이어 숲. 나무데크 길로 연결된 편백나무 숲 아래, 하늘을 찌를 듯 큰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어둡고 습해 보여 잘 들어가지 않던 곳이다. 그 숲 가운데에는 대형 훌라후프가 있어서 아줌마들이 애용하는 곳인데, 나는 훌라후프를 돌리지 못해서 가지 않았었다. 그 숲을 한 바퀴 걸을 수 있게 작은 길도 나무 사이로 나 있다. 그곳을 몇 바퀴 돌면 운동이 될 것 같았다. 당장 신발을 벗고 걸어 보았다. 악, 비명이 나온다. 작은 돌들과 키 큰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발을 찌른다. 땅은 습기가 적당히 있어서 촉촉하고 좋다. 아파도 참고 걸어야지. 건강이 회복 된다는데...
일이 있어서 온 봄산 목사에게 이 길을 보여 주고 같이 걸었더니 어싱 할 길로 좋단다.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나가서 걷는다. 그런데 발이 너무 아프다. 나뭇가지들이 찌르고 돌들은 발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걸으며 혼자서 중얼거린다. ‘다른 곳에서는 어싱을 할 수 있는 길을 따로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제공한다는데, 이 공원에서는 조금만 신경 쓰고 정리해 주면 될텐데...’
어느 날 아침 걸으러 갔는데 갑자기 발이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여느 날과 다르다. 산책길에 가득했던 나뭇가지와 돌들이 치워졌다. 게다가 움푹 파인 곳은 붉은 황토로 메꾸어져 있다. ‘으음 역시 공원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구나, 좋다.’ 기분이 좋아서 힘든데도 불구하고 몇 바퀴 더 돌았다. 그다음 날 갔더니 황토가 몇 군데 더 깔려 있다. 그리고 빗질한 자국도 있다. 매일 조금씩 손질한 자국이 보인다. ‘이건 공원 측에서 한 일이 아닌가 보다. 누가 이걸 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걷는다. 그리고 보니 길이 좋아지니까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혼자 걸을 때에는 사람들이 “발 안 아파요?”하고 묻고 지나갔었다. 이제는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늘어, 혼자 빙빙 돌던 길을 앞뒤로 줄 서서 걷는다. 앞에서 천천히 걷던 아주머니는 뒤에 인기척이 느껴지자 얼른 메타세콰이어 나무에 기대어 길을 내준다. 자연히 “고맙습니다” 인사가 나온다.
메타세콰이어 숲에 아침햇살이 들어온다. 누군지 모르지만 매일 이렇게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고맙다. 걷는데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잊고 있던 노래다.
“이 세상 어딘가엔ㅣ 남이야 알든 말든
착한 일 하는 사람ㅣ 있는 걸 생각하라
마음이 밝아진다.”
한편 부끄러워진다. ‘불평하고 공원 관리자가 해주길 바라기 전에 네가 빗자루를 들고 올 생각은 왜 못 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