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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예루살렘 찬양대 신입대원 환영회>는 두 가지 면에서 예년과 달랐다. 하나는 명칭이다. 예전에는 ‘신입대원 환영회’라고 했는데 이게 어느 순간 ‘신입생 환영회’로 둔갑했다. 내가‘신입대원 환영회’가 아닌 ‘신입생 환영회’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들은 것은 지난 달 21일이었다. 조용하던 핸드폰이 드르륵 울렸다. 열어보니, 베이스 파트장인 박병길 집사님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이번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실 수 있나요?”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엥? 신입생 환영회? 이게 무슨 소리야? 아항~! 박 집사님이 학교의 다른 분에게 보내는 문자를 내게 잘못 보낸 게로군!' 이렇게 생각했다가 이내 그것은 곧 ‘신입대원 환영회’라는 것임을 알고는 이렇게 답을 했다. “‘신입생 환영회’라 해서 잠시 헷갈렸습니다. ‘신입대원 환영회’에 참석합니다.”
박 집사님이 ‘신입생’이라고 한 이유는 아마도 오랫동안 수학교사로 재직하고 있어서 ‘신입대원’이라는 말보다는 ‘신입생’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게 아닌가 한다. 하여간, 조만간 손주를 보게 될 대원도 신입대원에 속해있었기에, ‘신입생’라고 한 표현이 재미있었다. '신입생 환영회'라는 표현은 담임목사님도 출발기도하실 때 사용하셨다.^^
그리고 둘째로, 이번 환영회가 예년과 다른 또 하나는, 성도교회와 함께 70년의 세월을 함께해 온 예루살렘 찬양대의 전통 ‘윷놀이’ 대신에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한탄강 얼음 트레킹’이 자리한 것이다. 트레킹(trekking)이란 말을 찾아보니, ‘요즘의’ 사전적 의미로는 ‘전문적인 등산 기술이나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산악 자연 답사 여행으로,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산의 풍광을 즐기는 여행의 형태’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원래의 사전적 의미는 이보다 훨씬 낭만적으로 ‘소달구지를 타고 먼 길을 여행하다’는 뜻이란다.
하지만, 소달구지를 타든, 아니면 걷든 간에 내가 생각한 ‘트레킹’의 개념은 이러했다.
뒷짐을 지고 유유자적 하늘을 벗 삼아 슬근슬근 걸으며 숨 한 번 들이쉴 때마다 발가락 끝까지 시원한 공기를 몸 안으로 집어넣고, 숲에서 은은히 퍼져 나오는 피톤치드로 그동안 인간관계 때문에 머리끝까지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곤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그런 고상한 몸놀림...
그런데 임원진에서 발표한 ‘트레킹’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맨 땅도 아닌 얼음 위를 걷는단다. 내 몸에 달린 내 발도 내 맘대로 하질 못해 넘어지고 자빠지기 일쑤인 늙수구리 대원들을, 그리고 평지를 10분만 걸어도 무릎이 쑤셔 걷지를 못하는 판에 숲길도 아닌 얼음 위를 걷도록 한다니...
하지만, 총무 남명관 집사님의 지엄하신 발표이기에 아무리 내가 목사라도 일단 그 말에 순종하기로 하고, 만반의 준비를 다 한 다음, 교회로 왔는데 교회에는 시간약속이라면 목숨 내걸고 철저히 지키는 대원들이 진작부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원래 정각 9시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피치 못할 일 때문인지 약속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을 것 같다는 이은실 권사님의 연락이 있었는데, 원래 예루살렘 대원들은 대부분 FM들이라, 1점 1획도 가감이 없고, 1초의 에누리도 없이 출발하는 게 관례였지만, 이 권사님의 평소 교회생활을 미루어보건대, 권사님은 차라리 결석이라면 모를까, 어지간해서는 늦으실 분이 아니었기에 모처럼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드디어 모든 대원들이 버스에 올라 착석을 하고 잠시 기다리는 순간, 마침 담임목사님께서 토요일마다 있는 전교역자회의 때문에 교회로 오셨다. 출발 기도를 부탁받은 목사님은 “아이고, 이렇게 추운 날에 무슨 트레킹이예요?”라고 농담을 하신 후, 안전사고 없이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출발이 예정보다 조금 늦었지만, 우리는 오랜만의 야외행사라 더없이 행복하고 즐거웠다. 교회 버스는 거의 만석이었다. 사실 강추위가 이어지는 요즘 날씨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참석할까 내심 걱정이 되었으나, 추위가 예루살렘 대원들의 열성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버스의 각 좌석에는 오늘의 필요한 양식(물, 찹쌀떡 두 개, 과자 두 개)이 있었고... 무엇하나 흐트러짐 없이 세심하고 꼼꼼하게 섬기는 분들과 대원들의 건강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돕는 손길들이 있어 대접을 받는 우리는 언제나 감동이다. 이번 트레킹에는 찬양대원 외에도 넘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들(김한세, 명고은, 백승연, 백승훈 가나다순)이 함께 했고, 오래 전에 벧엘 찬양대 반주자로 섬기면서 함께 믿음 생활했던 박주연 집사님(박성연 권사님의 동생)도 언니를 따라 동행했다. 나는 처음에 박주연 집사님을 볼 때, 상당히 낯이 익은 것 같아 ‘1부 예배’를 드리시는 분인가? 했었는데... 알고 보니 초면이었다. 하지만, 믿음 안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도 다 같은 가족 아닌가! 마치 오랫동안 함께 한 대원처럼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버스는 철원을 향해 강변북로를 달렸다. 트레킹의 설렘 때문인지 지난밤에 잠을 설친 대원들은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깨어있는 대원들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며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버스는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옛날 길이 아닌 새로 난 도로를 달려 예전보다 약 20여 분을 절약해 철원 수양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수양관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간단한 예배를 드렸다. 날씨가 춥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며 눈으로 뒤덮인 수양관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내게 주어진 설교 시간도 짧고 다음 순서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 간단하게 예배를 드렸다. 다음은 환영회 예배 설교다. 원래는 까페에 올리려고 하지 않다가 환영회에 참석하지 못한 대원들도 있고, 꼭 필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에 여기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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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3일(예루살렘 찬양대 신입대원 환영회)
좋은 습관을 들이자!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사람에게는 누구나 ‘습관’이라는 게 있습니다. 제가 전에 강도사 시절 때, 일산 백석동의 어느 상가에 위치한 작은 개척교회에서 섬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아주 충성스러운 여 집사님이 있었는데 그 집사님은 무슨 말을 시작하려고 하면 언제나 ‘아니’라는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아니, 강도사님 오늘 교회에 몇 시에 오셨어요?” “아니, 도대체 오늘은 왜 이렇게 더워?” “아니, 목사님! 금년에 여름성경학교는 언제 하지요?”...
이 분이 언제나 ‘아니’라는 말로 말을 시작하여 제가 농담 삼아 집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허? 집사님은 언제나 ‘아니’라는 말로 시작하네요?” 그러자 집사님은 깜짝 놀라며, “아니, 제가 그랬어요? 어머. 진짜네. 어쩌면 좋아?” 이러며 무척 당황해 했습니다. ‘아니’는 본인도 모르게 들은 습관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때부터 자기의 버릇을 고치려고 ‘아니’라는 단어를 안 쓰려고 하는데 ‘아니’가 빠지니까, 말이 시작이 안 되더래요. 그러면서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강도사님! 제가 노력해도 이게 잘 안 고쳐져요. 그래서 제가 ‘아니’라는 말을 쓰더라도 슬쩍 눈 감아 주세요.”
슈퍼마켓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멘트도 잘 들어보세요. 100이면 100 모두 ‘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자! 지금부터 야채코너에서 시금치를 세일하겠습니다.” “자! 한 단에 1500원 하던 시금치를 단돈 500원에 모십니다.” “자, 빨리 빨리 오세요.”, “자! 지금 오시면 돈 버는 겁니다!”, “자! 시금치가 한 단에 오백원 오백원!”... 그래서 제가 이번에도 장난삼아 ‘자’라는 말을 빼고 멘트해보시라고 하니까 이 분도 멘트를 못하는 거예요. ‘자’를 빼니까, 말이 안 나온대요.
하여간, 습관은 대부분 주로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게 많습니다. 예를 들면, 늦게 자는 습관, 늦게 일어나는 습관, 가만히 있으면 다리를 달달 떠는 습관, 모임에 지각하는 습관, 예배 시간에 조는 습관, 책 넘길 때 손가락에 침 묻히는 습관, 헛기침하는 습관...
오늘 본문에 보니, 모이기를 싫어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능하면 교회에 모이기보다는 각자 개인 생활하는 걸 더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런 거지요. 어느 날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자고 하면 “아, 뭐 꼭 모여서 그렇게 해야 돼? 그냥 각자 알아서 하라 그러면 안 돼?” “꼭 모여야 하나? 안 모이고 예배드리는 방법은 없나? 바쁘고 힘든데 왜 꼭 교회에 모이라고 하는 거야?” 아마 이랬나 봐요. 그러다보니, 예배드리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그대신 개인 시간은 많아졌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중한 믿음은 퇴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모이는 걸 없애는 습관은 나쁜 습관이다.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말고, 서로서로 권하여 주님 오실 날을 바라보고 더욱 잘 모여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예루살렘 찬양대는 올해에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출발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습관’을 들이는 일입니다. 우리 찬양대가 가져야 할 좋은 습관은 우선 잘 모이는 겁니다. 모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점점 개인주의로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모이기를 싫어하고, 모이려고 하면 길에서 버리는 시간도 많고 몸도 힘들다며 모임을 줄이려고 하지만, 그렇다보면, 결국 모임이 사라지기 때문에 나중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날이 옵니다. 그건 불행한 일입니다.
물론 이렇게 잘 모이는 여러분에게는 별로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하여간 우리는 잘 모여야 합니다. 모든 모임에 모든 대원이 다 참석할 수는 없으나, 가능하면 열심히 모이도록 서로서로 격려하고 애를 씁시다. “올해는 잘 모이는 것!” 이 습관을 들이는 게 우리의 과제입니다.
지난주에 찬양대실 광고판에 붙은 금년 계획표를 보니, 부활절 찬양이 잡혀 있더라구요. 올해 부활절이 4월 1일이고 오늘이 벌써 2월 첫 주니 따져보면, 날짜는 많으나 정작 우리가 연습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올해 우리가 찬양대원으로 임명받았으니 어떻게 해서든 찬양대 일을 우선으로 하여, 잘 모이는 습관을 만듭시다. 습관을 들이려면 처음에는 좀 힘들지만 일단 어느 정도 발동이 걸리면 그때부터는 힘들지 않습니다. 저절로 모든 게 움직입니다.
작년을 돌이켜 보면, 아쉬운 점이 좀 있었습니다. ‘좀 더 열심히 연습하고 좀 더 집중했더라면 더 좋은 찬양을 드릴 수 있었는데...’ 이런 것 말이지요. 그런데 왜 이런 아쉬움이 생겼을까요? 그건 충분한 연습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금년은 작년의 복사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임원진에서 모이자고 하면 두 말 하지 말고 열심히 모여 주어진 시간 충실히 연습하여 연습 부족의 아쉬움이나 후회 없이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이런 좋은 일이 자꾸 반복되다보면, 나중에는 습관이 들어 찬양 준비에 소홀히 함이 없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이거야 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올해 예루살렘 찬양대가 잘 모이는 ‘좋은 습관’을 들여 우리 교회 찬양대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작성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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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마친 후, 우리는 “예~”로 시작하는 대장 집사님의 위엄있는 광고를 들은 후, 잠시나마 눈으로 뒤덮인 광경을 즐기기 위해 밖에 나갔다. 밖은 ‘눈’이 수북히 쌓여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셨다. 추울 줄 알았는데 막상 눈 위에 서니 생각보다는 그리 춥지 않았다. 간혹 알프스의 눈 위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선탠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수북이 쌓인 눈을 만난 아이들은 신이 났다. 눈위에서 뒹구는 아이들을 보니, 문득 영화 Love story에 나오는 눈장난 노래가 생각났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ㅋㅋㅋ
이 정도의 추위라면 하루 종일 눈 위에서 뒹굴며 놀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랑만두 전골’이 진작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대장 집사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 위에서 노는 것도 좋지만, 먹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 대원들은 단체 사진을 찍은 후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예약만 없었더라면 <남자 대 여자>로 편을 갈라 한바탕 신나는 눈싸움을 하는 것도 재미있었을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