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에 새로 난 쌀’을 ‘햅쌀’이라고 한다는데
‘그 해에 새로 나온’의 본 뜻은 ‘햇’이라고 하고
그래서 ‘해마다 나는 것으로 그 해 처음 난 것’을 ‘햇것’이라고 하는데
유독 쌀에 대해서만은 ‘햅쌀’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햇쌀’이라고 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문법의 흐름을 보면 같은 받침이 이어지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으니
아마도 시옷 뒤에 쌍시옷이 나오는 것을 피하려고 비읍을 써서
‘햅쌀’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무식한 추측을 해 볼 따름,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문법적인 것이 아니라
살면서 정서적으로 느낀 ‘쌀’과 ‘햅쌀’에 대한 수많은 것들,
어렸을 때 학교에서 한국인의 주식(主食)이 쌀이라고 배웠는데
그 무렵 논이 귀한 산골에서 자란 나와 내 또래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그 말이 몹시 낯설었던 기억,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 주식은 쌀이 아니라 보리쌀이었던 까닭이었습니다.
그래도 가을걷이를 하게 되면
배짝 마른 아이의 궁둥이 넓이쯤 되는 산골 다랑이의 논에서 거둔 벼를 방아 찧어
그야말로 햅쌀밥 한 그릇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평상시 보리밥을 먹을 때마다 쌀밥이 갖는 그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달착지근하게 혀에 감기는 맛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쌀밥만 먹으면 몸에 어떤 영양소인가가 모자라게 된다면서
어렸을 때 그렇게 먹어대던 다른 곡식들을 일부러 섞어 먹게까지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무엇이 몸에 좋다더라고 하기만 하면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그걸 찾아대는
알 수 없는 굶주림은 또 무엇인가 싶기도 한데
쌀밥만 마음껏 먹을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던 그 시절의 꿈이
엄연한 현실이 된 지금
‘햅쌀’이라는 낱말 앞에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
쌀밥이 행복이 아니라 그저 행복의 한 가지 조건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는데
어디 쌀밥뿐이겠습니까,
행복은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응하는 삶의 자세라는 사실,
이제 다시 어떤 조건을 그리워하지는 않을 수 있을 듯도 한데
햅쌀 한 줌으로 지은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혀에 단 맛 은근하게 감도는
쌀밥 한 그릇이 갖는
의미의 무게가 얼마 정도가 되는지를 가만히 살피며
이야기는 여기서 접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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