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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지팡이
마경덕
- 이기와 시집 「그녀들 비탈에 서다」 (서정시학. 2008)
- 김신영 시집 「불혹의 묵시록」(천년의시작. 2008)
이기와 시인
1. 속죄양, 이 시대의 제사장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이후 7년 만에 선을 보인 이기와의 두 번째 시집 「그녀들 비탈에 서다」를 읽으며 “고름과 진물을 만졌던 손가락을 책갈피 여기저기에 문질러 닦았다“ 는 모 시인의 시집 후기를 생각했다. '비탈에 선 그녀들'을 만날 때마다 끈적한 핏물과 울음이 손가락을 타고 올라왔다. 시집 한 권이 온통 먹고 먹히는 밥이다. 세상의 밥이 된 그녀들, 나는 입안에 밥을 잔뜩 밀어 넣고 삼키지 못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읽던 책을 덮고, 창녀와 세리와 과부와 병들고 가난한 자의 친구였던 예수를 생각하며 몇 차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기와의 시집에서는 머리카락 타는 냄새, 손톱 타는 냄새, 울음이 타는 냄새, 역하고 비린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시를 읽는 내내 신에게 소와 양을 잡아 제단에 피를 뿌리는 번제처럼 피를 뿌리고 불에 태우는 의식을 떠올렸다.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은 흠 없고 티 없는 온전한 것들이라면 이기와가 세상에 올리는 속죄제의 제물은 흠투성이의 죄인들이다. 음지에 버려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다. 이기와는 몸을 팔아 하루하루 목숨을 잇는 창녀, 포주, 절도범을 발가벗겨 세워두고 당신들을 위해 대신 제물로 바쳐진 이들을 보라고 소리친다. 누가 내 어머니와 누이와 오빠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자신의 환부를 다 보여주는 정직하고 용기 있는 시인, 이기와는 누구인가? 곱고 연약한, 여자의 몸 어디에 이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숨어있는가? 숨기고 싶은 진실을 이기와는 당당하게 외친다. 그동안 슬픈 척, 아픈 척, 거짓 포즈로 엄살을 떨어온 시들이 많았다. 그녀는 시를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 그녀에게 시는 구원이다. 시를 빚는 원천은 궁핍과 슬픔이다.
야근을 마치고
창백한 유령의 얼굴로 돌아와 둥글게 모여 앉은,
초라하다 못해
먼지의 무게처럼 가벼운 저녁 밥상
어머니가 가발공장에서 가져 온 머리카락 양념
언니가 봉제공장에서 가져 온 실밥 양념
오빠가 제관공장에서 가져 온 쇳가루 양념이
식은 밥덩이와 함께 덤벙
양푼에 쏟아져
현대양식으로 쓱쓱 비벼지고
대책 없이 짜고 매운 시절의 비빔밥은 완성되고
어머니는 비벼진 언니의 실밥을 골라내느라
언니는 오빠의 쇳가루를 골라내느라
오빠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골라내느라
밥은 못 먹고 맹맹한 구슬픔의 뒷맛만 다시고
서로의 못난 티를 다 골라낼 수 없어
아예 꿀꺽 삼켜버린 까칠한 생의 보푸라기들
입맛 없을 땐
주저 없이 물 빠진 그리움의 작업복을 입고
별미인 공장밥을 먹어 볼 일이다
-「공장밥」전문
식모살이 봉제공장 공원 포장마차 등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시인은 쇳가루 양념으로 비벼진 공장밥맛을 잘 아는 사람이다. 따뜻한 밥을 앞에 두고 반찬투정이라도 하고 싶은 날은 공장밥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픈 과거로부터 도망치고자 한다. 할 수 있다면 과대포장으로 자신을 위장하거나 상처를 숨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기와는 가라앉았던 기억들을 휘둘러 고름이 흐르고 진물이 나는 환부를 들추고 바라본다. 그녀는 어둡고 춥고 메마르고 소외된 자의 절망을 외면하지 않는다. 시인의 고백을 통해 편견과 고정관념에 잡힌 우리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고백이란 말에 주목해보자. 고백이란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함인데 불교에서는 타인에게 용서를 비는 뜻으로 쓰인다. '회개' 또는 '고해'라고 불린다. 감추어 둔 것을 끄집어내는 일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대중 앞에 솔직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기와는 첫 시집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에 이어 고백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시 속에 나오는 길다방 송양, 집 보는 애완견으로 복제된 아버지, 30년 술장사한 어머니, 어머니를 접어 딱지치기 하는 아이들, 길에서 만난 포주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 절도범, 지체부자유 처녀를 농락하는 이웃 사내, 길에 버려진 비루먹은 개는 그녀가 끌어안고 가야할 애물단지이다. 버릴 수도 없고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애증의 대상이다. 체험이 실린 그녀의 시들은 리얼하다. 그 어떤 수사와 기교로도 당해낼 수 없는 뭉클한 감동이 시인 이기와의 힘이다. 독약처럼 쓴 삶의 비애, 잡초처럼 살아남은 삶의 집착, 눈앞에서 펼쳐지는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밤마다 만나는 사내들에게 몸을 상납하고
끼니를 때우던 어머니가 오셨군
정부미 한 가마니와 물물교환된 오빠가
용케 원산지를 찾아 되돌아왔군
방직공장 공장장에게 강간당해 임신한 언니도
후다닥 애를 버리고 처녀로 돌아왔군
팔뚝 여기저기 면도날을 그어대던 막내도
강돌처럼
세월의 물살에 쓸리다 절묘하게 모인 명절날
감방 죄수들같이 다소 어정쩡하게 둘러않아
잘 차려진 침묵의 음식을 먹는다
잔인하도록 말없이
누구 하나 과거의 기억을 흘리는 일 없이
입 딱 오므리고 질근질근 먹는다
맵고 짠 서로의 상처에는 젓가락을 대지 않는
진통도 신음도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밥상머리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최악의 날을 목격하고도 변호하지 않는 증인들
끝까지 살기 위해 식물인간처럼
아예 정신을 놓아버린
아흐-
소름끼치는 저 철면피들
-「의식불명의 가족」전문
강에 구르는 돌처럼 세파에 구르던 식구들이 모이는 날은 명절날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간 어떻게 살았느냐고 묻지 않는다. 상처투성이 가족들은 감방 죄수들처럼 둘러앉아 침묵한다. 최악의 날을 목격하고도 변호하지 않는 증인들, 살기 위해 식물인간처럼 버티는 제 정신으로 살 수 없는 의식불명의 가족이다.
누군가 그랬다. 가난은 다만 불편할 뿐이라고, 그러나 이기와 시집을 읽고 있으면 가난에게 심장을 물려 피를 뚝뚝 흘리게 된다. 가난은 대물림된다. 가난하기에 짓밟히고 힘이 없어 불이익을 당해도 침묵해야 한다. 돈이 없어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기에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돌고 도는 굴레, 당신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았는가? 돈 몇 푼에 비참하고 비굴해본 적은 없는가?
잡초 같은 삶, 그러나 목숨도 가난만큼 질기다. 지하실 단칸방에 사는 모녀도 살아내는 일에는 프로다. 들풀 같은 슬픔도 오래 묵으면 덤덤해진다.
수족관같이 좁고 어두운 지하실 단칸방
물갈이하지 않은 혼탁한 수질 속
지체장애자인 그녀와 치매인 그녀의 어머니가 산다
그녀의 어머니가 투명 랩을 뜯지 않은 채
자장면 위에 장을 붓는 순간
단칸방은 이내 시커먼 바다로 번들거린다
치맛자락에 쏟아진 걸쭉한 바다를 치대며
단무지처럼 기억이 노란 어머니가
싱글싱글 웃는다
그러자 그녀의 삐뚜름히 돌아간 입에서도
찰진 반죽의 웃음이 쏟아진다
얼떨결에 멀쩡한 나도 따라 웃어보지만
내 웃음은 가짜, 속이 덜 익은 군만두
영 서툴다
그녀는 프로다 피할 수 없는 난간함을
웃음으로 커버하는 노련한 선수다
-「그녀는 프로다」부분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녀도 웃고 치매인 어머니도 웃는다. 살다보면 슬픔도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얼떨결에 화자도 따라 웃어보지만 그 웃음은 가짜다. 슬픔을 다스리는데도 훈련이 필요하다. 발가락으로 식사를 하는 그녀는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프로다.
백화점도 모르고 핸드폰도 모르고 짬질방도 모르고 밭에 나가 쇠똥구리처럼 쇠똥만 퍼나르던 이 땅의 늙은 어머니들, 지겨운 광주리를 이고 그저 살아보려고 장날도 아닌데 장에 나가시던 어머니는 이제 암에 걸리고 치매에 걸려 낯선 곳에 버려지는 시대, 술주정뱅이 남편에게 걷어차이며 목숨처럼 길렀던 자식들은 그 어머니를 잊었다.
2부 '영자의 봄'에서 이기와는 뒷골목 영자가 되어 날마다 화대장부와 영업일지를 쓴다. 제 몸을 사주세요. 밥 좀 주세요. 하고 매달리는 영자는 온몸이 빨대이다. 음식물을 빨아들이는데 생을 탕진한 영자, 그 허기는 약물로도 총칼로도 막을 수 없다. 도시의 식욕은 곧 성욕과 맞물린다. 성은 이제 상품이 되어 버젓이 팔려나간다. 바람난 도시는 제 2, 3의 영자를 생산한다. 텍사스촌에서 도매금으로 넘어온 피기도 전 말라버린 어린 꽃송이들, 둥근 해를 ‘고철덩어리’라고 부르던 영자의 몸에 벌겋게 녹이 슬고 있다. 유리벽 안에 줄줄이 꽂혀있는 영자에게도 정녕 봄은 오는가?
변두리 주유소에서 주유받은 나쁜 피와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상놈의 호적, 인간이라면 멸치똥처럼 발라내고 싶고 돈이라면 사지를 찢어발기고 싶은 그녀의 자조적인 시들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문제를 다루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 그중 첫째는 먹는 일이다. 맹인안마사도 손을 붙잡는 고객에게 밥줄인 이 손을 놓으라고 저항한다. 출소한 절도범도 먹고 살기 위해 다시 감옥으로 들어간다. 코피가 쏟아져도 먹던 밥은 먹어야 하고 굶주린 남자들은 비아그라를 먹고 여자를 사서 허기를 메워야한다. 야근을 마치고 둘러앉은 가족은 어머니가 가발공장에서 가져온 머리카락 양념과 언니가 봉제공장에서 가져온 실밥양념과 오빠가 제관공장에서 가져 온 쇳가루 양념으로 비빈 공장밥을 먹는다. 지하방 두 팔이 없는 여자는 발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밤은 곧 목숨과 연결된다. 그들에게 체면이란 한낱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기와 시들은 살덩어리, 고깃덩어리처럼 축축하고 비리다. 핏물이 흥건한 시들이다. 이기와는 온몸에 핏물을 묻히며 이들의 상처를 싸매준다. 타인의 이목을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버린 영자를 안아주고 보듬어준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녀는 ‘신춘문예’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실력을 검증받은 시인이다. 영자를 떠나서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역량 있는 시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배고픈 사람을 위해 기꺼이 시로 밥을 짓고 병든 사람의 피고름도 닦아준다. 그녀는 오지랖이 넓다. 미련하게도 넓은 그 오지랖이 그녀에게 시를 쓰게 하고 다시 살아가게 한다. 밖에서 걸어 잠근 방에 갇혀 질식한 윤락가의 영자들, 갈 곳 없는 비탈에선 영자들이 도처애서 슬피 운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세상에 바쳐진 숱한 영자들, 그녀는 병든 영혼을 치유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제사장이다.
김신영 시인
2. 홍해 가르기
첫 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이후 무려 11년 만에 출간된 김신영의 두 번째 시집「불혹의 묵시록」은 삶과 믿음에 대한 갈증이며 소망이며 고백이다.
‘묵시록’이란, 여러 가지 환상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비(非)인간적 세계의 사건들을 묘사한 문학을 말한다. 요한계시록이라 불리는 묵시록은 신약 성경 27권 중 마지막 권이다. 예수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쓴 것으로 파트모스'밧모'섬에서 받은 환상적인 계시(啓示)를 적은 것이다. 선교 도중 밧모섬에 사로잡힌 요한에겐 견디기 힘든 때였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목숨까지 바쳐야 했다. 그때 환상을 통해 요한은 예수의 재림과 천국이 올 것임을 믿었고 힘을 얻었다.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 시대에 박해를 받는 교회와 고난당하는 신도들을 위로하기 위해 묵시록은 쓰여졌다. 그렇다면 묵시록은 고난의 때에 주어진 희망이요 소망이라 할 수 있다.
시집 한 권을 읽는 동안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어온다. 허기와 갈증은 어디서 오는가? 김신영의 시들은 세찬 바람을 견디며 사막을 횡단한다.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레 걷는 행간에 불기둥 같은 힘이 숨어있다. 도무지,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 올곧음이 곳곳에 보인다. 인내의 한계를 넘어 극기를 즐기는, 시인은 모래바람에 눈을 뜰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 안으로 펄펄 소리 없이 끓는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견디는 김신영은 불혹이라는 또 하나의 사막을 만난다. 공자는 사십 세에 이르러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고 하였건만, 불혹은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나이, 늙지도 그렇다고 젊지도 않은 마흔은 인생의 갈림길에 서있다. 생의 반을 소비해버린 불혹에, 무엇을 이루었으며 남은 생은 또 무엇을 이룰 것인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버릴 수도 없다.
시인은 불혹을 가지 끝에 달아놓고 '오래도록 흔들린다'고 한다. '부둥켜안았던 사회들이 불의 혹처럼 즐비하다'고 한다. 아직도 여성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는 세상에서 마흔의 여성은 사막에 서있는 고독한 선인장이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선인장이 가시와 목마름을 두려워하지 않듯 김신영은 믿음으로 상처를 돌아보며 치유한다.「불혹의 묵시록」은 시인이 마흔 고개를 맞아 스스로 시인에게 주는 희망이며 다짐이다.
가시 이파리에 비가 떨어지고
선인장의 발목 뿌리를 적시고
모래언덕을 적시고 사막을 두루 적실 때
한 방울 물도 네 뿌리 곁에 두어
모두 네 몸속에 가두어야 한다
일 년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가시로 진화한 네게 내리는 축복
네 몸속에 머물러 굵은 줄기를
한껏 키울 수 있는 축복
열두 달 사막의 열풍을 견뎌야 하느니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뜨거운 열 두 때를 견뎌야 하느니
바람이 실어오는 모래의 따가운 매를 견뎌야 하느니
그 사막을 다 마셔 네 철창에 가두어야 한다
그래 삼백예순날 다음의 비를 기다릴 수 있다
오늘의 물은 삼백예순날이지만
삼백예순날 보다 오늘은 더더욱 길어
물을 긷는 수고가 네 근성이 된다
사막의 열풍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한다 할지라도
오늘 너는 그 사막을 다 마셔야 한다
-「그 사막을 다 마셔야 한다」전문
소망하는 낙원은 어디 있는가? 지팡이 하나로 홍해를 갈라야 한다. 낙원에 닿기까지 사막이 비를 기다리듯 기다려야 한다. 남은 불씨를 추슬러 불씨 한 줌 붙잡고 365일을 견뎌야 한다. 한 방울의 물도 아껴야 하는 선인장에겐 가시도 축복이다. 하늘에 닿는 기도는 가장 절실할 때 나오는 것, 어찌 물을 긷는 수고를 두려워하랴. 고난이 없다면 기도는 깊어지지 않는다.
길기도 하여라
더위에 묻혀 꿈을 씨로 만드는 일
길기도 하여라
오래 너를 품고 기다리니
밤이 길기만 하여라 낮은 쉽사리 밤으로 변하고
다시 낮이 오지않으니
초바늘 돌아가는 소리
하늘을 찬다
불질러진 지 오래인 집터에서
이 밤, 잠을 청하리니
여름날은 잠을 깨우고
청랑한 가을빛 도대체 멀도다
하여, 내 시를 벌하여야 하겠다
이렇게 여름이 씨를 만드느라 뜨거움에도
내 시가 씨가 되지 않으니
내 시를 벌하여야 하겠다
너를 가만 두어선 안 되겠다
-「너를 가만 두어선 안 되겠다」전문
스스로 채찍을 들며 '지금 어디에 서있나'를 점검하는 시인은 영혼의 파수꾼이다. 이와 같은 의지는「사막의 꽃」과「파리지옥」에서도 볼 수 있다.
긴 목숨의 내 삶이
너를 오래도록 기다리지
간질간질 내 육질을 지지면서
거리마다 자장을 흔들어
너의 새끼발가락까지 내 무릎에 올려놓으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젠 너를 놓아줄 수 없어
누구와도 물 한 잔 나누지 못해
홀로 서 있었지
불어대는 모래바람 속에서
건조한 살들을 만난다는 것은
사랑, 이라 말하기 불편했어
---- 중략--------
너의 분홍빛 살점을
다시는 내어주지 않으리
나, 오랜 사멸의 늪에서 무척이나 버둥거렸지
삶인지 죽음인지 초로를 마시고 모운을 삼켰지
그리고 이제 내 사랑은 지옥에 있거든
나는 파리지옥에 와 있거든
-「파리지옥」부분
파리지옥은 무서운 덫이다. 잎으로 벌레들을 유혹하는 파리지옥, 3쌍의 감각모(感覺毛)가 있어서 벌레가 두 번만 닿게 되면 잎의 양면이 갑자기 닫힌다. 산과 소화액을 분비하여 벌레를 분해하고 흡수한다. 벌레에겐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곳곳에 복병처럼 숨어있는 파리지옥, 그 달콤한 유혹에 한번 발이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다. 굶주린 파리지옥은 쉽게 먹이를 놓치지 않는다. 사소한 실수는 멸망의 덫이 되어 죽음으로 끌고 간다. 실족을 조심하라. 발밑을 경계하라. 김신영은 세상과 자신을 향해 경종을 울린다.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인내한다. 오래 참는 희생정신은 일찍이 어머니로 부터 물려받았다. 김신영 시의 뒤편에는 남편과 자식의 그림자로 살다가 그늘로 사라진 수많은 우리의 어머니가 있다.
나는 여자야/이름이 없는 여자야/ 우리들 집안은 아무 데도 없어/'우리 집안'은 다 남자들 천지지/나의 여자 조상은 누군인지 알 수도 없어/오래전 웅녀만이 내가 아는 유일한 조상이야/그도 이름이 없어/그런데 그는 처음엔 곰이었지/참는 거 하나로 은혜를 입고 사람이 되었어/내가 머물 곳을 못 찾겠어/친정에 가도 내 집이 아니고/시댁에 가도 더욱 내 집이 아니야/지금 사는 집도 내 집이 아니지/ 내 집은 없어 참는 거 하나로 은혜를 입으며 살고 있지/늘 죽어도 죽는 일뿐이야/ 그래도 나는 착한 여자지/남편 집에서 남편의 아이들을 키우면서/시댁과 남편의 수발을 들지/ 나를 절대로 믿어주지 않는/불신의 벽에 복종하지/ -「죽어도 죽는 여자」전문
김신영은 여성에 대한 편견, 부당한 대우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어머니 미라 영전」에서도 김신영은 몇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머리를 숙인 내 어머니의 어머니를 만난다. 부서진 코에 긴 머리는 아직도 비단처럼 흘러 어깨를 넘는데, 삶을 사위던 문명의 흔적은 근간을 이루며 한 지형을 남기며 잠들어있다. 미라가 된 어머니, 봄이 왔건만, 그 옛 부장품속에 어머니 뼈에 붙은 살가죽이 숨 쉴 때가 되었건만, 여전히 어머니는 그늘이시다.
그자들의 살을 떠서
신들에게 바칩시다
내장과 머리는 따로 놓으세요
번제로 드린다면 만족하실 겁니다
각을 뜰 때에는 조상들을 기억해요
조상들이 번제로 도살했던
수많은 양들을 기억해요
우리는 그자들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들은 죄를 지었어요.
죄 때문에 히이스 냄새가 나요
폭풍의 언덕에
당신의 그림자를 놓으시고
양들의 살을 흠향하소서
-「신성한 祭儀」
김신영은 신에게 번제를 바친다. 신이 흠향하는 것은 죄 없고 순결한 양들임을 알고 있지만 여성을 짓밟던 폭력을, 맹종으로 일관했던 여성의 무지를, 번제로 태운다. 그녀가 찾는 지상의 낙원은 어디 있는가? 천상의 낙원이 오기까지는 걸어야할 사막은 얼마나 되나? 터져 나오는 울음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시인의 가슴엔 기도로 그렁그렁 채워진 눈물단지가 놓여 있을 것이다. 그녀 또한 모래폭풍이 휘몰아치는 도시의 사막에서 구원의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가나안을 땅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마른 지팡이에서 주렁주렁 살구가 달릴 것이다.
<서시> 여름호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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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회적 병리, 신학적 태도 등에 대한 시와 사회와의 역학 관계를 보여 주는 듯한 시들이 꿈틀되고 있네요, 시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이 나타나는 포스를 느낍니다.^^& 좋은 시들 감상에 푹 마음을 담아 봅니다.ㅎ^^* 늘 좋은 공부를 시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