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애벌레
5월 초순, 바로 이때가 애벌레가 비처럼 쏟아지는 때다. 녀석들 덕분으로 산새가 배부르고 땅 아래 벌레들이 춤을 춘다. 얼마 전엔 갓 피어오른 아카시아 향에 취하여 뭣도 모르고 나무 그늘 속을 지나다가 인정사정없이 들이닥치는 녀석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길을 돌아서야 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옷도 여미며 움츠리고 피하지만 그래도 살펴보면 열댓 놈은 옷에 매달려 있기 일쑤인데 생김이 또 징그럽기 그지없어 정감은커녕 소름까지 돋는다.
털까지 숭숭한 놈들은 달라붙었다하면 이상하게도 맨몸 살갗으로 몰려든다.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손 톱 끝으로 툭 튕겨 내동댕이치고는 밟아버린다. 그리고도 손톱 끝이 꺼림칙하여 연실 옷소매에 문지른다. 누가 가르쳐주어서 그리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놈이 스멀스멀 몸으로 기어들어와 우툴두툴 부어오르고 가려움증을 유발하여 짜증이 났던 어릴 적 경험이 자연 그렇게 행동을 이끄는 것이다. 분명 적개심이다.
깡통도 귀한 어린 시절에 복숭아 캔 하나 겨우 구하여 산으로 올라가 송충이를 잡았었다. 그때 만해도 단지 난 그 놈이 다 큰 놈이고 그렇게 살다가 죽는 몹쓸 놈 인줄로만 알았다. 그 놈이 커서 솔나방이 된다는 것은 알지 못하였었다. 그 놈을 잡다가 어쩌다 암갈색 가장자리에 돋은 털에 찔리면 그렇게 고약스럽게 가려울 수가 없어 물로 서너 번 헹구었었다. 그래도 가려움은 여전하였다. 그런 녀석들은 다 자란 것이 아니다. 애송이라 할 것이다.
녀석들이 흉측하고 쏘이면 따끔하기도 한 것은 그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녀석들은 땅 아래 안착하여 땅 속에서 탈바꿈을 시도 할 것이다. 그래서 태어나는 것이 나비와 나방이다. 그럼에도 하는 소행이 괘씸한 탓에 녀석들이 성충의 것으로 여전히 잘못 인식하고 만다. 실제 나비와 나방은 모두 나비목에 속하며 이 둘의 차이는 생태적인 차이와 관련해서 구분된 것이며 계통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나비는 몸통이 가늘고 낮에 활동하는 반면에 나방은 몸통이 두껍고 밤에 활동하며 앉을 때 나비는 접고 앉으며 나방은 날개를 펴고 앉는 정도이다. 송충이처럼 털이 덥수룩한 애벌레라고 하여 성충이 나비가 아닌 것도 아니며 털이 없는 놈이라 하여 나방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러니 털이 많은 놈이라 하여 괘씸하다고 밟아 죽인 놈 중엔 나비도 더러 섞여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니 그런 애벌레 살생을 하도 많이 하여 겁도 안 나고 오히려 신바람 내며 밟아 죽인 것이 허다하다.
큰 나무를 피하여 몸체 적은 나무 밑에 들어서 땀을 닦지만 그래도 많이 꼬인 애벌레 터전이다. 녀석들이 이로운 것인지 아닌지 자체의 판별은 어디까지나 인간중심이다. 지구상 어느 관점에선 다 사는 남다른 이유가 있을 터다. 그놈이 커서 삶의 의미로서 성충이 되려니 오늘은 가만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랬더니만 내 앞에서 여러 놈이 일시에 묘기를 부린다. 거미줄을 빌려 타고 내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몸에서 실 하나 빼어 낙하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유희를 즐기듯 내려오는 포즈가 보통이 넘는다. 바람결에 실린 것도 같고 내 콧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같고 자기 스스로 용빼는 힘을 다하는 것도 같은 그런 유형으로 술술 내려온다.
이왕 내려 올 것이면 땅까지 단번에 닿는 것이 덜 힘들 것인데 또 그렇지 않다. 내려오다 주변을 살피기라도 하는 양 한동안 몸을 길게 늘여서 그네를 타듯 휘청휘청 대며 서있기만 한다. 바람이 멈추자 또 슬슬 내릴 차비를 하더니 녀석이 땅위에 안착이다. 내려앉을 때 녀석은 착지 법은 또 어디서 배운 것인지 몸을 둥글리듯 빙 말아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러더니 기진맥진하여 주저앉아 가만 죽은 체 하고 있다. 누군가 쳐다보는 것을 땅에 내려앉아 비로소 알아버렸다는 것인 양 정말 죽은 것처럼 꼼짝을 안한다.
보다 못한 내가 풀 하나 뜯어 그 녀석 곁에 두었다. 그랬더니만 자기를 삶으로서 인정하여 고맙다는 것인지 어린아이 마냥 좋아 마구 뛰는 것처럼 자갈 위를 데굴데굴 굴러 어디론가 향한다. 그 녀석을 보내며 속으로 말하였다. 녀석이 나비였으면 좋겠다. 그놈을 보내고 일어서려는 때 어느 험상궂게 생긴 녀석이 내 배낭위에 올라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가만히 보니 그놈은 분명 송충이였다. 밟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놈은 임자를 잘못 만난 것이다.
하지만 놈을 밟지 않았다. 기껏 살아야 몇 개월 남짓 아니던가. 내가 죽이지 않는다하여도 성충이 되어서 알을 배면 곧 바로 죽음이 닥치는 놈들이다. 해충에게 그런 말이 해당되느냐 할 것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아내는 보시를 하겠다고 새벽녘부터 나가서 허드렛일을 하며 기원을 하는데 산바람 좋을시고 찾은 산행에서 오늘만이라도 필요 없는 살생은 삼가는 것이 좋을 성 싶었다.
송충이를 물끄러미 바라다보려니 내 스스로도 알듯 모를 말이 흘러 나왔다. “녀석이 송충이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녀석인들 자신이 송충이인줄 알고 태어났겠는가.” 때 맞춰 산 아래 용주사 목탁소리가 바람타고 생의 인연을 간간이 말하듯 끊어질 듯 이어져 들려온다. 그렇게 애벌레도 끊어질듯 이어지는 삶을 바람 속에 펄럭이다가 훨훨 날아갈 것이다. 말을 마저 하였다. 이왕이면 다음엔 나비로 곱게 태어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