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나는 파란 이 가을을 사랑한다.
이 나이에도 사람이 여물지 않아 가끔 마음이 바람을 탄다. 그리고 가을을 탄다.
잔디밭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하늘을 본다. 어렸을 적 이렇게 하늘이 높은 날이면 우리는 가을소풍을 갔다.
나는 6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소풍은 평상시 꽁보리밥을 먹었어도 그 날만큼은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여기에 멸치볶음, 계란말이, 생선전 한 가지라도 있으면 소풍날 아침의 발걸음은 구름위를 걷는다.
가방이 없던 그 시절, 친구들의 손에 들린 보자기에는 삶은 달걀 두서너 개와 칠성사이다, 그리고 삶은 밤 한 주먹이 들려 있었다.
더군다나 그 시절의 소풍은 학생들만의 소풍이 아니다. 엄마, 할머니, 동생까지도 함께 가는 가족 전체의 소풍이었다.
이렇게 소풍가는 날이면 엄마들은 온 식구가 먹을 음식을 둥근 찬합에 층층치 싸 들고 이관산을 올랐고 구봉산을 올랐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여러 명의 장사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삼각형 비닐봉지에 든 단물과 노란 달걀 얼음과
작은 유리상자를 어깨에 메고 당고를 파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것은 용돈이 궁했던 그 시절에 소풍날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는 용돈으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군것질꺼리였다.
잠시 쉬는 시간이면 남자애들은 '야바구' 를 한다고 정신이 없다. 그래서 '야바구판' 주위는 남자애들로 인산인해다.
빙빙 돌아가는 둥그런 원판에 남자애들은 목숨을 건다.
이 야바구판 장사 옆에 풍뎅이를 이용한 뽑기에도 남자애들이 지르는 아쉬움의 탄성과 기쁨의 고성이 들린다.
이것이 소풍날의 풍경이다.
소풍에서 빠지지 않는 행사 하나는 보물찾기다. 각 반의 대표들이 장기자랑을 하는 동안 선생님은 적당한 장소에 표시가 되어있는
종이를 숨겨 둔다.
나는 재주가 없어서인지 번번이 보물찾기에서 실패했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좀처럼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보물을 찾아 연필과 공책을 받은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안타까워 보였는지 어느 때는 담임선생님이
몰래 보물을 손에 쥐어 주어 상품을 탔던 기억도 있다.
이것을 우리는 신용 준다고 표현했고 그것은 다른 친구들의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의 시선이 그렇게 따가울 수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을 석달에 한 번씩 하고 있다. 약 30명 정도의 친구들이 참석해 가끔은 기억 속에 있는 우리들의
얘기들을 꺼내 놓고 한참을 서로 행복해 한다.
요즘 우리 아이들의 소풍에는 멋이 없다.
먼 훗날 이 아이들은 소풍날을 회상하며 어떤 추억을 꺼내 놓고 행복해 할까.
엄마가 싸 주는 도시락 보다는 천원짜리 김밥을, 아니 그것도 귀찮다고 돈으로 달라고 한다.
메고 가는 가방도 없고 간식거리를 싸가지고 가는 가방도 보이지 않는다.
각자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목적지에 도착하면 약간의 유의할 사항을 듣고 자유 시간을 가진 뒤 별 추억도 없이 해산 하는 것이
요즘의 소풍이다.
매 번 겹치는 장소에 싫증을 내고 그냥 밥만 먹고 온다는 소풍을 무척 짜증스럽게 얘기하는 아이들도 있다.
소풍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우리의 설레는 마음을 지금의 아이들은 얼마나 헤하릴 수 있을까.
친구들이 싸 들고 온 반찬에 내 젓가락이 가고, 내가 싸 온 반찬을 친구에게 내 놓았던 따뜻한 나눔이 있었던 그 추억을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 것을 내 놓을 줄 아는 사랑을, 배려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소풍을 통해서도 배웠다.
그 때의 우리 엄마들은 선생님께 드릴 삶은 밤도 우리의 손에 들려 주셨고, 맛있는 과일도, 들려 주시며 감사의 표시를 했다.
요즘 교육 현장에는 새로운 것이 좋은 것도 있지만, 옛 것이 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많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소풍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는 기념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친정 엄마가 가지런히 정리 해 놓은 앨범을 펼쳐 놓고 내 손을 잡았던
짝꿍도 찾아보고, 선생님이 신용 준다고 유난히 질투를 했던 친구도, 장기자랑 때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었던 내 모습도 찾아보고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잘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도 사진 속에서 찾아봐야겠다.
헌데, 유리 상자에 들어 있던 당고가 왜 이렇게 먹고 싶을까!
첫댓글 선배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참 맛깔스럽습니다. 어쩌면 40년도 더 지난 소풍의 추억들을 스캔하듯이 완벽하게 기억하시는지...아직도 무뎌지지않은 그 총총한 기억력과 넘치지도 모자람도없이 담담히 써내려가는( 흑백사진을 보는듯한) 절제된 필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간의 글을 모아서 에세이집을 내셔도 여느 수필가와 견주어 손색이 없겠습니다...문득, 생각나는 제 소풍 기억에는 억울(?)하게도 "칠성사이다"를 싸간 기억이 없습니다.(비쌌거든요^^) 소줏병에 담긴 값이 싼 "금실사이다"만 가져갔던 기억이 새삼 납니다.(여수에서 만든 것으로 탄산은 거의 없고 맹물에 사카린만 풀어넣은 밍밍한 맛이였죠. 아마 ^^*)
잊어버렸던 단어 하나.... "금실사이다"
고운햇살님...!!^^
옛날생각나게하네용...^^
중요한건 보물찾기 한번도몾찮았슴...ㅋㅋㅋ
초딩시절. 뒤돌아보니 세월이많이....!!? 좋은글 감사감사 나갑니다
그래 요즘 아이들은 추억이 있기나 할까??? ............ 그래 우린 추억이 있어 좋다....*^^* ....항상 건강하고 감사......... 당고~~~~ ^^*
부족한 글 따뜻한 맘 담고 읽어 주어 감사할 뿐이고.....난 또 열심히 공부할 뿐이고.....모다들 좋은 친구들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