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보물을 찾았습니다. 오랜 시간 한 선수를 찾아보자고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마음을 먹었더니 역시나.(구글신은 진정 대단합니다) 그 이름은 스베틀라나 보긴스카야.
보긴스카야란 존재가 각인이 된 건 88년 서울올림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며 여자 기계체조 종목을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제게 이 종목은 요정처럼 작은 친구들이 몸의 근육과 관절을 기이할 정도로 사용해 '어떻게 인간이 저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란 찬탄을 자아내는 일종의 서커스로 다가옵니다. 그러다 보긴스카야의 마루운동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이 선수의 공연은 이전 친구들의 공연과는 그 느낌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서커스 단원의 공연을 보다가 갑자기 무희의 공연을 봤다고 할까요?
이상이 제가 보긴스카야란 선수를 기억하는 이유입니다. 그녀에 대해 위키와 기사 몇 개를 해석 대충 조합을 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그냥 접었습니다. 아무래도 체조 부문에 대해 알지 못하고, 그나마도 올림픽을 통해서나 이 종목의 경기를 드문드문 본 탓입니다. 기계적으로 해석을 하는 일은 별 의미나 재미가 없기도 하고요.
다행히 다음 블로거인 '캐논비치' 님께서 이 선수의 팬이었고, 이런저런 정보를 모으셨더군요. 덧붙여 제가 이 선수의 공연을 보며 느꼈던 감정과 아주 유사한 감흥을 보이신 터라 가져왔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 글은 적잖게 편집했지만 원문의 내용을 바꾸진 않았습니다. 정보의 신뢰도에 대해서는 직접 확인하지 않거나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주관이 들어간 글이기에 적절한 필터링이 요구됩니다. '*'가 들어간 부분은 참고를 하시라 이런저런 정보를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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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조계 여신의 탄생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자 체조선수는 많다. 그들 대부분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높은 위상을 세울 수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실로 깜짝 놀랄만한 기교를 완벽하게 펼쳐보였던 위대한 운동선수 나디아 코마네치도 포함되겠다. 이들 중 나에게는 Svetlana Boginskaya라는 선수가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보긴스카야는 1988년 서울올림픽 체조경기를 통해 처음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15세 소녀에 대한 첫인상은 큰 체구와 무표정하지만 슬픈 눈을 가진 선수였다.
서울올림픽에서의 여자체조는 구소련의 Elena Shushunova와 루마니아의 Daniela Silivas 간의 경합이 예상됐다. 이미 이들은 85년부터 87년까지 세계선수권 및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여왔고, 매번 '대회 당일 누가 실수를 덜하느냐'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어온 터였다.
슈슈노바의 전성기가 85년과 86년 실리바스의 전성기가 87년으로 보다 많은 이들이 실리바스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루마니아 여자대표팀은 당시 러시아대표팀을 능가하는 전력을 증명해왔다. 보긴스카야는 1986년 주니어 선수권자였지만, 1~2년 사이 신장 및 체구가 급격히 커져 미래가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대표팀 선수로서 국제대회 출전 횟수도 많지 않아 주변으로부터 그리 큰 인정을 받지도 못했다.
88올림픽의 여자체조 부문은 뚜껑이 열리자마자 슈슈노바와 살리바스의 경쟁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개인종합(All-Around, AA)에서는 슈슈노바가 간발의 차이로 살리바스를 누르고 우승하였지만, 종목별 개인전에서는 살리바스가 3관왕을 차지하며 슈슈노바를 압도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슈슈노바는 심판진의 덕도 조금은 누렸다고 믿는다. 이 판정에 대해 뒷말이 나왔다고 기억하고 있다.
참고로 85년부터 91년까지 슈슈노바와 실리바스 그리고 보긴스카야 세 선수의 주요대회 입상경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개인종합분야)
1985년 세계선수권 |
(금)-슈슈노바 & 오멜리안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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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유럽선권 |
(금)-슈슈노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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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멜리안칙(소) |
1986년 북경월드컵 |
(금)-슈슈노바 |
(은)-실리바스 |
(동)-오멜리안칙 |
1987년 세계선수권 |
(금)-도브레(루) |
(은)-슈슈노바 |
(동)-실리바스 |
1987년 유럽선수권 |
(금)-실리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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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슈슈노바 |
1988년 올림픽 |
(금)-슈슈노바 |
(은)-실리바스 |
(동)-보긴스카야 |
1989년 세계선수권 |
(금)-보긴스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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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유럽선수권 |
(금)-보긴스카야 |
(은)-실리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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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유럽선수권 |
(금)-보긴스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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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세계선수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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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보긴스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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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보는 바와 같이 슈슈노바는 전성기를 지나가고 있다. 반면 실리바스는 전성기 였다. 보긴스카야는 이제 막 국제대회에 등장한 신성이다. 보긴스카야의 전성기는 88올림픽 직후인 1989년부터 1991년 사이의 기간이다. 이 기간에 그녀의 적수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쟁자가 될 수 있었을 선수들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88올림픽 직후 슈슈노바는 은퇴하며 결혼했고, 실리바스는 89년 무릎부상으로 조기 은퇴를 선언했다.
그렇다고 해서 88올림픽에서 보긴스카야의 전적(*. 여담으로 그녀는 서울올림픽에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흑인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 초라했던 것은 아니다.
단체전-금메달
개인 뜀틀-금메달
개인 마루운동-은메달
개인종합-동메달 |
#. 보긴스카야의 성적 매력과 그 무기를 살리기 위한 안무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여겨본 여자체조 국제경기가 1968년 동경올림픽(기록영화)의 것이었고, 그 대회에서 우승한 체코의 챠블로프스카의 경기스타일에 매력을 느꼈다. 챠블로프스카는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당시 여자체조의 관점은 성숙한 여성의 몸놀림이 관건이었다.
여자 체조계의 지형은 1976년 코마네치의 만점(1.0으로 표시되어 화제가 되었던) 사건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후에는 말마따나 '기계'체조가 됐다. 선수들의 연령은 낮아졌다. 체구가 자그마한 선수들 중심으로 판이 짜여졌다. 반면 보긴스카야는 다른 선수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키가 컸다. 몸매에서 여성적인 특징이 두드러졌다. 경기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안무엔 무용적 요소(*. 발레 요소라 한다. 그렇다면 다른 선수들의 공연에선 발레에서 맛볼 수 있는 특유의 느낌을 엿볼 수가 없는 것일까? 드라마적 요소나 예술적 요소를 말이다. 이 분야에 대해 문외한이란 사실을 밝힌다. 내 판단으로는 '그렇지 않다'이다. 기계체조 선수들은 발레 레슨을 기본으로 받는다. 예컨대 발레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실비 기옘은 기계체조에서 시작해 발레로 종목을 바꾼 인물인데, 체조의 교육 코스에서 발레와 연결이 돼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이다. 그러니까 말을 하자면, 정도의 차이에 의해 앞선 차이가 두드러지게 발생했던 거라 조심스레 예측을 해본다)가 강하게 배어들어갔다.
보긴스카야의 마루운동 스타일은 이전 챠블로프스카의 연기와 현대적 연기의 중간 정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근대적 체조연기를 마지막으로 보여준 선수로 여겨질 것이다.(*. 후배인 스베틀라나 호르키나는 더 큰 신장으로 더 뛰어난 커리어를 쌓았다. 비슷한 유형의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녀처럼 마루운동에서 큰 키와 긴 사지를 활짝 펼치며 유연함을 과시하던 연기 스타일은, 이후에는 다시 찾아 볼 수 없었다. 기껏해야 150cm 정도의 신장에 곡선이 아닌 소년과도 같은 직선 몸매를 지닌 선수들로서는(*. 21세기 여자 기계체조 부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딱히 관심을 둔 적이 없어 알 수가 없는데,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신장이 그리 작지 않은 선수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중심은 150cm 안팎이지만. 부상으로 인해 이번 올림픽에서의 성적이 우려가 되고 있는 기계체조계의 신데렐라 알리야 무스타피나나 지난 올림픽 개인종합 금메달을 차지했던 나스티아 리우킨 등의 키는 160cm이다) 표현하려야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하게 있을 테니까.
#. 벨라루스 백조의 우아한 퇴장
1998년 Rock & Roll FX에서 볼 수 있는 보긴스카야의 몸매는 전성기 때와는 많이 다르다. 그렇지만 그녀의 기량은 보기에 좋다. 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은 긴장감속에서 무표정하게 연기하던 현역 시절엔 찾아볼 수 없던 것이다. 자신의 공연을 보는 이들에게 '은퇴한 지금은 체조를 즐기고 있어요'라 한껏 과시하는 듯하다. 배경음악인 'I Will Survive' 까지도 그녀의 선수로서의 격에 어울린다. 선수 역정에 관하여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을 대변하고 있는 듯이 말이다.
1988년 올림픽이 끝나고, 보긴스카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 된다. 올림픽이 끝나고 삼일 후, 또 한 명의 어머니라 할 수 있었던 전담코치(Lyubov Miromanova)가 자살을 했다. 몇몇 세인들은 그 코치의 자살동기에 관하여, 그녀가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제자인 보긴스카야의 88올림픽에서의 성적에 만족하지 못한 탓이라고 수군거렸다.(*. 미제사건이다) 이 때문에 그녀는 크나큰 슬픔뿐만이 아니라, 주변인들로부터의 무언의 압박까지도 견뎌내야만 했다.(*. 보긴스카야는 지금까지도 미로마노바와 관련된 기억을 꺼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보긴스카야는 새로운 코치와 함께 체조에 열정을 쏟아부어 바로 이듬해인 1989년부터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한다. 1989~1991년에 그녀는 세계 여자체조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었다.
이 시기는 구소련연방의 해체가 이루어진 시점이다. 올림픽과 관련된 보긴스카야의 국적은 애매해진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그녀는 구소련 소속 동유럽 국가들이 한 팀으로 뭉친 EUN(*. Unified Team)에 속해 단체전에서 금메달(*. 선수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 메달이라고 한다. EUN이 한시적일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을 획득하였다. 한편으로 벨라루스 국가대표팀에 속하여 벨라루스의 백조로 불리며 활동하다가, 1992년 올림픽 직후 은퇴를 했다.
놀랍게도 보긴스카야는 1995년에 다시 현역복귀를 해 1996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나는 그녀의 이 입상기록을 높이 평가한다. 몸매와 유연함이 생명인 여자체조에서 전성기로부터 5~6년이 지나 그것도 3년 동안의 공백기 후에, 또 세계 최정상급 무대인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나타나 멋진 기량을 뽐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처했던 상황을 보자. 구소련 대표팀에서와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코치진을 비롯한 연습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보긴스카야는 95년 휴스턴으로 이동해 복귀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인프라가 탄탄하게 갖춰진 기계체조 강국 중 하나이다) 그녀의 몸도 나이가 들어 완연하게 무거워져 있었다. 그녀의 1995년 컴백과 같은 극적인 재기가, 세계 여자체조 역사에 또 있었는가를 확인해보라.
이 귀환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모국인 벨라루스 대표팀을 이끌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만을 두고 보자면 좋지 않았다.(*. 복귀의 변으로는 피겨계 여제인 카타리나 비트의 1994년 올림픽 복귀를 들었다. 올림픽이란 무대에서 성적으로부터의 압박감을 벗어날 수 있음을, 나아가 분위기 그 자체까지도 즐길 수 있다는 점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두 개별종목에서 5위와 6위를, 개인종합 14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렇지만 수많은 관중들은 노장이 된 이 체조계 전설의 행복한 도전에 찬사를 보내며 함께 공연을 즐겼다. 그녀가 원했던 장면도 이러한 것이 아니었을는지.(*. 보긴스카야는 '소녀는 여인이 된 순간 기계체조를 포기해야만 한다'라는 불문율인 '17세 룰'에 저항하고자 했다. 자신의 도전을 통해 나이가 든 여자 선수들도 이 무대에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 90년대 중후반 이후 체조계의 여왕으로 불린 스베틀라나 호르키나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올림픽 3회 출전을 달성한다)
보긴스카야는 자신의 기량이 이미 정상권 밖으로 밀려나 있음을 선선히 받아들여 올림픽 직후 은퇴를 선언, 프로무대로 돌아선다. 아래에 삽입한 영상엔 그녀의 프로 커리어에서도 마지막 무렵에 펼쳐진 공연이 담겼다. 어떤가. 선수로서의 모든 중압감을 훌훌 털어낸 이 공연,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 무대를 떠난 지 십수년이 흐른 현재, 스벤틀라나 보긴스카야는 미국인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휴스턴에서 거주중이다. 온라인에서 체조복을 파는 비즈니스를 하고 여름 캠프(ST★RS gymnastics)에서 시즌마다 3~400여명에 달하는 학생들에게 체조를 가르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I Will Survive의 가사 중
Did you think I'd crumble?
Did you think I'd lay down and die?
Oh no, not I. I will survive.
Oh as long as I know how to love I know I'll stay alive.
I've got all my life to live.
I've got all my love to give and I'll survive.
I will survive.
내가 무너질 거라 생각했나요?
내가 포기하고 죽을 거라 생각했나요?
아녜요. 난 살아남을 거예요.
내가 사랑하는 법을 아는 한, 난 살아남을 거예요.
나에겐 살아갈 인생이 있답니다.
타인에게 줄 사랑도 있답니다.
난 살아남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