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3주 앞둔 어느 날 저녁 의사로부터 뜻하지 않은 전화를 받고 저자는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정밀촬영 결과 태아의 뇌에 피가 고여 혈종이 생겼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렉스라는 이름의 이 아이는 생후 8주 때 혈종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경과를 지켜보고 있던 어느 날 렉스가 시신경 장애로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추가로 발견됐다.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생후 6개월부터 시각장애센터에 다니던 렉스는 언젠가부터 이상한 행동들을 보였다.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흔들었고 청각이 예민해져 물소리에도 고통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자폐 판정이 내려졌다.
혈종, 시각장애, 자폐….
그 뒤로도 렉스에게는 운동신경장애, 연결기능장애, 언어장애 같은 새로운 병명이 따라붙었다.
힘든 상황을 견디지 못한 남편은 저자와 렉스를 두고 떠났다.
책을 쓴 이는 올해 13세인 렉스의 어머니 캐슬린 루이스 씨.
그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거듭되는 좌절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걷기와 말하기를 반복해서 가르쳤다.
주변 사람들의 비관적인 전망에도 흔들리지 않고 아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절망과 기쁨이 엇갈린 저자의 일상이 책에 꼼꼼히 담겨 있다.
끝없는 시련에 괴로워하던 저자는 어느 날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비 오는 날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갈 때였다.
차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천둥소리에 렉스는 비명을 질렀다.
진정시키기 위해 라디오를 켜자 모차르트의 음악이 흘러 나왔다.
그 순간 렉스의 몸이 진정됐고 렉스는 평온한 자세로 모차르트의 소나타에 귀를 기울였다.
두 번째 생일 때 전자피아노를 선물로 받은 렉스는 피아노에 흠뻑 빠졌다.
매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
렉스가 3세 때이던 어느 날 아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들은 렉스는 음악이 멈추자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환희의 송가’였다. 딱 한 번 들은 곡을 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기적이 계속됐다.
제대로 걷지 못하던 렉스는 운동장애를 극복하자마자 달리기 시작했고
뜻 모를 음절을 웅얼거리던 렉스가 ‘컵’ ‘피아노’ 같은 단어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리듬을 쉽게 외우는 재능은 날로 발전했다.
어느 핼러윈 파티 도중 렉스의 피아노 연주를 들은 리처드 모턴 씨는 렉스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의 아리아’를 들려주자 렉스는 처음 들은 이 곡을 그대로 재현했다.
천재성을 발견한 모턴 씨의 권유로 정식 피아노 교육을 받기 시작한
렉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억력과 청음력으로 명곡들을 빠르게 익혀나갔다.
한 번 들은 곡을 왈츠풍, 베토벤풍 등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실력까지 보였다.
렉스는 자폐로 인해 단절돼 있던 세상과 음악을 통해 점점 연결되기 시작했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렉스에게 학교 장기자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기회가 주어졌다.
렉스/캐슬린 루이스 지음·이경식 옮김/388쪽·1만3000원·Human&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