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밀린 대운하가 다시 우리에게 왔다. 이름만 바뀌었다.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정말 지겹다. 언제까지 우린, 이 사회는 이 문제로 치고받고 싸워야 하나. 지난 촛불 정국 때 이명박 대통령은 말했다.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사실 돌려 말하면, 국민이 원하면 추진하겠다는 말이다. 즉 그는 대운하를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다시 대운하 카드를 꺼낼 것이란 게 일반적 견해였다. 그 뒤 경제 위기가 왔다. 금융위기의 진앙지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경기부양과 더불어 대규모 빅딜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나라에서 다시 대운하 이야기가 나올까봐 조마조마 했다. 경제 위기를 빌미로, 경기 부양의 이유로 삽질을 할 게 뻔해 보였다. 그런데, 그 불안감을 금방 현실이 됐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정비 사업에 세금 14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제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이라는 단서도 사라졌다. 그냥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4대강 정비를 하는 대신 대운하는 국민이 원치 않으면 절대 안 한다는 것을 천명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할 때가 되면 하고, 안 할 때가 되면 안 하면 되지 미리 안 한다 할 필요가 있느냐.” 정말이지,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신뢰, 진정성 같은 건 영원히 기대하지 말아야 하나보다. 말은 처지에 따라 달라지고, 행동은 상황에 따라 돌변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그런 특징이 있다. 약속의 신빙성, 말의 솔직함, 행동의 진정성 따위의 인간적 품위는, 그에게 없는 듯하다. 지난 6월 해체했다던 대운하추진사업단도 국토해양부 산하 한강홍수통제소에 거의 그대로 옮겨놓고 비밀리에 가동하고 있다는 것도 드러났다. 이쯤 되면, 국민을 상대로 한 이 정부의 꼼수와 거짓말은 ‘사기 9단’ 수준이다. 돌아보면 이런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는 새로운 게 아니다. 지난 촛불 정국 때를 생각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뼈저리게 반성했다며 국민에게 두 번이나 사과했다. 그러고선 촛불이 약해지자 곧바로 관련자들을 연행하고, 경찰로 소환하고, 감옥에 쳐 넣었다. 차라리 사과를 하지나 말지. 말과 행동이 다르고, 앞뒤가 다르며,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고 꼼수를 부리는 사람에게 세상은 관대하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은 그런 사람을 향해 “싸가지 없다”고 말한다. 대운하 추진. 이건 정말 싸가지의 문제다. 인간은 복잡한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우선적으로 상대방의 싸가지를 검토하고 따진다. 아무리 거창하고 그럴듯한 사람도 ‘싸가지 제로’이면 더 이상 볼 것도 없다. 그게 세상의 마음 씀씀이다. 대운하를 애지중지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래의 사진을 권한다. 경북 문경 인근의 한 하천이다. 저 멀리 아파트와 골프연습장이 보인다. 더 멀리에 육중한 산도 보인다. 그리고 가까이로는 허리를 굽히고 다슬기를 잡는 세 아낙도 보인다.
대운하는 저 산에 구멍을 내고, 이 맑고 깨끗한 하천의 땅바닥을 파낸 다음 그 주변에 시멘트를 바르고 배를 띄우겠다는 발상이다. 이것이 과연 창조적 발상인가? 너무 잔인하지 않나? 물론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풍경이 파괴돼도 별 느낌이 없을 것이다. 그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시절이던 2007년 8월 지리산 노고단에 올랐다. 그곳에서 물결치는 지리산의 능선과 구례의 들판과 그 들판을 적시며 흐르는 섬진강을 보고 이런 한 마디를 남겼다. “아직 개발이 덜 됐어.”
지리산 노고단에서 본 풍경
이쯤 되면, 상대방의 말보다 듣는 내 귀가 의심된다. 그야말로 감수성 제로이자 싸가지 제로다. 이 '제로의 쌍두마차'가 끌고 가는 게 바로 대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