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포스코의 비사 2 - 종합제철 실수요자 대한중석

[경우(7반)]

◆ 종합제철 실수요자 대한중석

1967년 9월 11일, 종합제철사업 실수요자로 대한중석이 선정됐다. 이 날 열린 정부 여당 연석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같은 내용을 공표했던 것이다.
대한중석이 실수요자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같은 해 8월 초. KISA와의 실무교섭단 단장이던 황병태 경제협력국장이 박대통령에게 브리핑을 하는 자리였다. 박대통령은 “종합제철사업을 대한중석에 맡기면 어떻겠느냐”고 의향을 밝혔다. 사실 박대통령의 의중은 이미 박태준과 대한중석에 종합제철사업을 맡기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2년 전, 지지부진한 종합제철사업을 성사시킬 방법을 궁리하던 박대통령은 대한중석 사장이던 박태준을 불러, 절망적인 당시 상황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 박태준 사장과 박대통령은 머리를 맞대고 종합제철사업을 성공시킬 방법에 몰두했다. “전후 일본을 부강한 나라로 일으켜 세운 것은 ‘철’이 있기에 가능했다, 가까운 일본에서 그 방법을 배우자, 도와줄 사람을 찾아보자.”  
박태준 사장은 일본 가와사키제철 니시야마 야타로(西山彌太郞) 사장의 방한을 추진했다. 일본 정계와 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야스오카 세이토쿠(安岡正篤) 선생의 지원 덕분에, 니시야마가 선뜻 방한에 응했다. 박사장과 니시야마는 당시 입지로 거론되던 지역들을 돌며 의견을 나눴다. 제철산업 전반에 대한 지식과 안목도 키울 수 있었다. ‘부강한 조국’을 위해 한몸 바칠 각오 또한 굳어져 갔다.
며칠 후 박태준 사장은 박대통령에게 니시야마 사장 방한 결과를 보고했다.
“나를 좀 도와주게. 제철소 건설을 도와달란 말이야. 계획단계부터 참여해서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주게. 임자 마음은 이미 철강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닌가?”
박대통령은 박사장의 결의와 안목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더욱이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대한중석을 맡아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은 능력과 뚝심 아닌가. 1965년 7월의 일이었다.
그 뒤로 박사장은 대한중석 부설 금속연료종합연구소에 종합제철소 예비 건설계획을 진행하도록 하는 한편, 일본정부에 철강조사단 구성과 사업타당성 연구를 의뢰했다. 박대통령은 이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반드시 철강사업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한중석은 국영기업체였으며 사내 유보자금이 풍부해 내자조달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재정상 종합제철에 단독으로 출자하는 것이 어려운 형편이었다. 또한 대한중석에는 능력있는 인재들이 포진해 있어서 추진인력을 구성하기도 편했다. 배석했던 장관들이 동감을 표명했다. 대한중석이 공식적으로 종합제철사업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한편, 런던 메탈마켓센터에서 중석 판매협상을 진행하고 있던 박태준 사장은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대한중석이 종합제철소 건설사업의 책임자로 선정되었음. 박태준 사장은 종합제철건설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되었음. 이 전문을 받는대로 즉시 귀국 바람.”                
박사장은 의자에 깊숙이 등을 기대고 숨을 내쉬었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자신을 싫어하는 정치세력들이 은근히 실패를 바라면서 대통령의 생각에 찬성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목숨을 걸고 성사시키겠다.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겠다.’    
그는 회신을 보낸 다음 9월 30일 귀국했다. 이틀 전, 한국정부와 KISA는 기본협정서에 서명한 상태였다.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담은 ‘종합제철건설 일반지침’도 관계자들에게 배포되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대한중석의 민간주주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익잉여금을 포함한 대한중석의 보유자금을 종합제철 건설자금으로 사용한다’는 정부의 투자방침에 대해, 그들은 “대주주인 정부의 횡포”라며 주주총회를 열어 사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종합제철은 위험성이 높은 사업이기 때문에 대한중석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많았다. 앞서 만성적자로 배당을 받지 못하던 민간주주들이 경영정상화 이후의 이익잉여금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박태준 사장은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종합제철사업은 별개 사업으로 분리해 추진하며, 새로운 회사가 설립될 때까지만 건설업무를 대행한다는 것이었다. 민간주주들이 박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약속대로 대한중석은 종합제철 프로젝트 관련업무를 전담하는 신사업개발부를 구성했다. 팀장으로 황경로 관리부장, 부팀장에 노중렬 개발실장이 임명됐다. 1967년 10월 8일, KISA와의 교섭 담당 주무부서인 경제기획원은 종합제철소 건설과 관련한 제반업무를 대한중석에 이관했으며, 대한중석은 포항종합제철이 발족하는 1968년 3월까지 종합제철소 프로젝트의 개척자로서 그 몫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