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녀 / 이광범
요즘 우리 방안에 낯선 손님이 들어온다.
나른한 몸을 일으켜 창문 열고 밖을 내다보려니
그 틈새를 비집고 따스한 고운 바람이
겨드랑이 사이로 살랑거리며 불어 온다.
얼음을 부수고 강을 밟으며 봄이 걸어오는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어느날 오일장에 꽃이 제일 먼저 와서는,
슬근거리며 누군가 우리 집으로 유기견처럼 따라들어 왔다.
도꼬마리 씨앗이 옷에 달라 붙어 옮겨간다는 이야기는 시 한 편
읽으며 알게 되었는데,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어릴 적에 아버지는 마당 한구석에 똥개를 기르셨다.
봄에 새끼를 낳으면 강아지들이 어미의 젖을 빨았고,
나는 귀여워 자주 안아주고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몸이 가려워지면 내복에 숨어들은 벼룩을
자주 발견하기도 하였다.
호기심에 강아지 발가락을 벌려서 벼룩을 보곤 하였는데,
틈에 오밀조밀 달라붙어 젖을 빠는 모습들을 보면,
아기들이란 어느 것이나 하나같이 앙증맞아 보이기는 다 마찬가지였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봄은 우리 집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지난 초겨울부터 자리를 비어버린 화분을
베란다 구석에 쌓아 두었는데, 화분마다 하나씩 다시 봄이
여왕벌처럼 들어와서는 제집처럼 살림을 꾸려놓는 것이다.
온실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베란다를 끼고서 여태 살아온 터라,
하는 수 없이 겨울이 오면 화초의 숫자를 줄여야 하는 결과이기도 하였다.
함께 잘 지내다 냉정하게 인연 끊듯이 내치는 짓은 그리 유쾌한 결정은 아니다.
이래저래 뾰죽한 수가 별로 없는 상황이라
벌어지는 일이다.
사람은 나이가 늘어갈수록 성품이 유순해지게
마련이다.
저를 보면서 봄마져 엉겨 붙는 이 일을 어쩌지 못하고,
자꾸 벗이라도 들이는 것처럼 신나는 일이 되고야 말았다.
마누라는 나와 6살 차이가 난다.
이제는 젊은 여자라고 문득 생각하기도 한다.
마누라는 속으로 나를 영감이라고 대할지도 모르겠다만,
자꾸만 화초를 사들인다고 돈이 썩어난다고,
새것을 볼 때 마다 입술을 삐쭉거리며 심술을 떨곤 하였다.
내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괜히 고마우면서도 집사람은 딴죽을 걸어대기만 하였다.
연애를 할 때는 조금 튕겨대면서 못 이기는 척
마음을 허락하던 그사람 아니었던가,
긴 세월 함께 부대끼어 살다 보니 잘 알 수가 있었다.
생활습관이란 버릇으로 뒤바뀌게 마련이었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봄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서는 건 순전히
나의 취미가 되어버렸다.
젊은 아낙네가 공주병에 걸려서 소파에 편히 누워 있었다.
말질만 퍼대는 얄미로움을 보다가, 그래도,
저 아내꽃이 사계절 내내 한 지붕 아래서 변함없이
피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세상에서 제일 어여쁜 꽃이었더라 말해도 되겠다.
꽃이란 옹기종기 모여있을 때와,
여자가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하고 있을 때가,
더 아름답다는 사실을 엉큼한 영감 만이 알아차릴 뿐이지, 젊은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긴 의자에 누워서 티브이만 시청하고 있었다.
첫댓글 긴 글 잘 읽고 갑니다.
닉네임으로 적혀 있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자주 뵙겠습니다.....^^
다음카페 어풀 다운할 때
닉네임에 적은 닉네임이
대표자 이름으로 나오네요
어렵사리 찾아서 이름을
고쳤는데 바뀌지 않는군요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아틈 작가의 본명이 니ㅣ타나도록 찾아볼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