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따와나선원 일묵스님 /bbs]
팔정도와 계정혜 <맛지마니까야 '짧은 경'>
계 - 정어 정업 정명
정 - 정정진 정념 정정 → 사마타 수행(삼매를 닦는 수행)
혜 - 정견 정사유 → 위빠사나 수행
계율 자체를 수행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 토대, 기초
정정진 = 바른 노력
정념 = 바른 알아차림 or 바른 마음챙김
정정 = 바른 삼매
<1>정견이 있어야 정정진이 가능
'바른' 노력과 '삿된' 노력을 구분하는 것 = 정견
'바른' 노력 - 선(善)을 계발하고 불선(不善)을 버리는 방향 (가치관의 문제와도 관계있음)
불선(행복한 삶에 이익이 안 되는 것, 오히려 장애): 탐진치 삼독 / 선: 37조도품의 각 요소 등 (자비, 삼매, 알아차림 등)
그래서 정견은 모든 수행의 시작이자 끝 - 모든 단계에 정견이 작용해야 한다
정견(바른 견해, 바른 가치관)이 없으면 정정진(4정근)은 불가능
정견이 있으면 행동양식이 단순해진다
<2>정념이 있어야 정정진이 가능
정념 - '내가 지금 바른 노력이 일어나는지 삿된 노력이 일어나는지 알아야' - 알아차림, 자각이 필요
화를 내고 있으면서도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다는 걸 모르면 막을 수 있겠는가?
바른 노력이 가능하려면 또 '바른 마음챙김 또는 바른 알아차림'이 필요 - 정념
빨리어 사띠, 삼마사띠 - 중국에선 '념(생각 념念)'
미얀마 건널목에 '사띠'라고 써놓은 곳 많아 - '정신차리고 건너라'
원래 '사띠'라는 말은 '기억'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불교에서 매우 특화된 용어(수행의 전문용어로 정착)
- 우리나라에선 '마음챙김, 알아차림'으로 많이 번역 (일부 스님은 '새김(마음에 새긴다)'이라고 번역하기도)
중국에선 여기에 해당하는 말 없었다 - '념(생각 념念)'으로 번역 - 정사유, 정념(생각 념) 헷갈려?
念=今+心 - 사띠는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현재 내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잘 챙기는 것 (일종의 문지기 같은 작용)
정념을 사실 근래까지도 '바른 생각'으로 많이 번역. 그러나 생각하고는 별 관계없는 용어
- 정신이 또릿또릿한 거. 아주 깨어있는 상태 (뭘 잘 챙기려면 정신을 차려야 하듯)
화두를 안 놓치고 하려고 해도 정신을 잘 차려야 - 그래서 이건 '생각'이라기보단 깨어있는 상태
마음의 현상을 알아차림이 중요한 이유는? - 대상도 중요하다. 문제가 아닌 건 아니지만
좀 더 근원적인 걸 찾아보면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영어에서는 mindfulness로 정착 (현재 마음에 주의를 기울임)
▶바른 알아차림
'비구는 몸에서 몸을,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머문다' <대념처경>
<1>'나'라는 관념이 없어야 바른 알아차림이다
- '여기에서 '분명히 알아차린다'는 것은 '지혜'를 의미. 쌈빠자나(분명한 이해, 확실한 지혜) / '마음챙긴다'는 것은 사띠
- 이것을 한역에서는 '정지, 정념'으로 번역 - '분명히 이해하면서 알아차린다'
- 예) 걸어갈 때, '내가 걸어간다'가 아니라 그냥 '걷는 행위만 있다' 라고 알아야 '분명히 이해하고 알아차린 것' = 지혜가 작용
<2>번뇌가 없어야 바른 알아차림이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여러분도 '아, 내가 걸어간다' 라고 알 수도 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는 것과 경전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은 다르다.
우리가 보통 '알아차리는 것'에는 번뇌(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가 함께 할 수 있다
- 바른 알아차림이 아니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님)
▷'몸에서 몸을..' - 몸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
- 몸을 몸으로만 봐야지 나다, 내것이다.. 이런 게 들어가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신수심법, 네 가지 현상은 우리가 알아차리든 못 알아차리든 항상 일어났다 없어졌다 반복하고 있는데
그것을 놓치지 않고 현재 뭐가 오고 가는지 알아차리려면 '정신 차려야 한다' '깨어있어야 한다' - 바른 알아차림
알아차림, 이것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 (지금 몸과 마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게 해줌) - 모든 수행의 기본
▒ 알아차림의 특성
1. 정신을 또릿또릿하게 한다. 각성시킨다(성성하다)
신수심법을 안 놓치려고 하다보면 정신이 깨어난다.
(보통은 좀 오염되고 좀 고흐릿한 상태로 살아간다)
<1>대상에 깊이 들어간다: 물에 나무조각을 놓으면 뜨고, 돌을 놓으면 가라앉는 것처럼
정신이 흐릿한 상태에서 대상을 보면 그 껍데기를 맴돌 수밖에 없지만 (수박 겉핥기식. 그냥 '컵' 이렇게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또릿또릿한 정신으로 바라보면 (단순한 '컵' 아니고 물질이구나, 사대의 결합이구나.. '컵'은 이름에 불과하고..)
평소에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이 통찰하게 된다 - 이렇게 깊이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사띠
공부할 때도 또릿또릿한 정신상태로 책을 봐야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것처럼..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 알 수 있다
이름 이전의 본래모습, 그 본성을 보려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 - 각성도가 높을수록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깨어있는 시간이 1시간, 2시간, 3시간 되는 사람.. 깊이가 다르다
대상에 대해 떠다니지 않게 된다 ('떠다닌다'=표면적 이해만)
사람을 만나도 무슨 옷을 입었고.. 하는 외모만 아는 것하고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상처를 안고 있고.. 속성 등.. 깊이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사물을 볼 때에도 그냥 형식적으로 보는 것하고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사띠의 역할
<2>개념(이름)과 실상(실재) <자동차=개념, 그 실재와는 다르다>
개념 덕분에 편리하긴 하지만 너무 개념에 빠져들면 실상을 못 본다 (고정관념,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든다)
개념을 벗어나야 실상을 볼 수 있다 -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사띠가 필요하다
이름 붙이기 이전 그 사물의 본래모습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알아차림이 강할수록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2. 기억하는 역할
<1>바로 직전에 있던 걸 기억해냄
예) 내가 방금 화가 났다가 사라졌어, 이걸 알아차리는 것은 '초단기 기억'
정신이 흐릿한 사람은 자기가 방금 전에 한 것도 기억을 못 해 ('내가 뭐 했나?' 몰라)
<2>부처님 가르침을 잘 기억하고 있음
처음에는 부처님 가르침을 (머리로, 생각으로) 잘 배워 익히고 있다가
막상 화가 나는 상황에 처하여 '아, 이건 위험한 상황이다' 적용하려면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부처님 가르침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적용하게 하는 것도 사띠의 역할
'새김'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는 이런 기능을 좀 더 강조한 것 - '내가 한 어떤 행위를 딱 명심하고 새긴다'는 의미로.
인도 바라문들의 주된 역할 - 의식 집전 - 매우 복잡 (챈팅, 염불도 가락에 맞추어 정확하게)
그러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기억을 잘 해야 한다
사띠는 원래 '기억'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인데 불교에선 보다 깊은 의미로 활용
3. 대상과 직면 (특히 자신의 마음상태)
우리는 대개 자신의 진면목에 맞닥뜨리기 싫어한다 (부족한 면 숨기고 싶어 해)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이긴 싫고 원하는 것만 보이고 싶고, 원하지 않는 건 보이기 싫다는
탐욕과 성냄이 같이 작용하고 있다 - '나'라는 집착이 있기 때문에.
수행자는 솔직하게 자신의 진면목에 직면해야 한다, 도망가면 안돼 - 외면하다보면 변화가 없다
수행은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 그래야 극복 가능 - 지혜 향상
그러려면 어떤 게 나타나도 그걸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안돼
'아, 이게 내 모습의 일부다' 이렇게 봐야지 '이건 나한테 없었으면 좋겠다. 이런 것만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취사선택에는 자신의 욕망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했다 ('세상'=오온, 존재하는 모든 것)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고 하지만,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다. 남들은 다 봐.
중국 고사에 '엄이도령(掩耳盜鈴' 자기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치는 도둑 이야기
- 자기 허물을 감추려는 게 자기 허물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내가 이렇게 화도 잘 내고, 질투도 많은 인간이었나?' 처음엔 인정하기 싫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자기가 성장한다
※알아차림(있는 그대로 보기)은 곧 수용(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이다.
갈애나 저항 없이 보는데 어찌 있는 그대로 안 보이겠는가?
※ 사띠 - 산스크리트어 스므리티(smrti), 팔리어 사띠(sati,念).. 기억한다 (recollection,회상하다) <용수스님>
사띠는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 ①현재 현상을 알아차림 ②부처님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 <전현수 박사>
☞ [대념처경] 그냥 알아차리기만 하는 것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 http://cafe.daum.net/santam/IQZL/397
명상 아닌 명상, 최고의 명상 <용수스님> http://cafe.daum.net/santam/IQZL/535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직도 마음은 자꾸만 밖으로 향하는데..
공부 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