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자락 제일
명당 비로봉 청운대 아래 위치한 1천357년전 통일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한 오도암.
1천357년전 통일신라 원효대사가 팔공산에서 10여년의 세월을 수행하면서 창건한 역사 깊은 사찰인 군위 오도암.
오도암(悟道庵)은 경북 군위군 부계리 동산리 산1번지 팔공산 청운대 아래 위치한 조계종 제10교구 은해사 말사이다.
이 곳 오도암에는 금동불입상, 서당굴(원효굴), 좌선대 등 3가지 보물이 있다.
오도암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은 불상 높이는 약 9.4㎝로 작다. 아래를 굽어보는 것처럼 보이며 배를 앞으로 내밀고 있다. 눈, 코, 입, 귀의 생김새가 뚜렷하고 법의의 형태 등을 미루어 볼 때 8세기 중후반의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을 갖추고 있다. 광배와 좌대가 없어졌지만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완전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일부 도금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다.
주변 지역에서 금속제 불상이 나온 경우는 흔치 않아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2006년 6월 29일 경상도 문화재자료 제507호로 지정됐다. 이 금동불입상은 그 당시 아쉽게도 오도암이 너무 낡아 비가 새면서 보존에 어려움이 있어 현재 본사인 영천 '은해사'에 보관하고 있는데 오도암 복원을 통해 다시 모셔온다는 방침이다.
오도암에 딸린 수도석굴인 원효가 6년간 수도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서당굴(誓幢窟)이 있다. 서당은 원효의 다른 이름이다. 규모는 길이 280cm, 굴입구 높이 80cm의 둥근 원통형의 굴엔 쌍봉 낙타모양의 두 돌기가 파여 올라가 있다. 이 굴은 청운대 천인 절벽의 정남면에 남향해 인공으로 굴착한 횡혈(橫穴)석굴이다. 겨울에는 햇볕이 굴 안에까지 들어가고, 여름에는 굴 안에 햇볕이 들어가지 않는다. 굴은 천고의 신비에 가려 운무속에 감춰져 내려왔다. 6∼7명이 앉을 만한 공간의 굴엔 마실 수 있는 샘물까지 있는 서당굴에선 원효보다 22년 연상인 김유신 장군이 젊은시절 수도하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서당굴 부근에 있는 신비감이 감도는 청운대 절벽 좌선대. 팔공산에는 천기가 서러 있는 곳이 2군데 인데, 비로봉 정상의 한곳과 바로 오도암 좌선대이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좌선대에는 1시간만 앉아 있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전해지고 있다.
오도암을 오를려면 경북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동산계곡입구에서 곧장 오른다. 길은 외길이다.
오도암을 오르는 공식적인 등산로는 없다. 군사보안지역이므로 제한은 더 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디에도 안내 간판 하나없다.
동산계곡을 2 km정도 오르면 (오은사 500m전방) 오른쪽 작은 나무판에 농장 간판을 따라가는 길과, 오은사를 1km정도 지난 좌측 산사면에 돌망태로 만든 길이 30m 정도의 2단 석축이 있다. 그 석축 맞은 편 도로반사경 옆을 유심히 보면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로 들어서면 된다.
팔공산 청운대를 바라보면서 중간 쯤 되는 지점의 쉼터에는 누군가 그네를 매어 놓았다.
두 갈래의 길이 만나는 곳에는 나무둥치 위에 비닐장판을 깐 의자와 원효대사의 법어를 걸어놓아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가눌 수 있게 한다. 1시간정도의 가쁜 숨을 몰아쉬다 보면 해발 900m지점에 위치한 오도암에 다다른다. 오도암의 정문인 삽작문이 있다.
오도암은 1963년 이래 아무도 살지 않아 폐사가 되어 유허(절터)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절터에는 기왓장과 주초와 맷돌 바위만이 널려있고, 빼어난 상호의 불상과 고탱화가 전해 내려왔으나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다.
더구나 공군부대 아래 미사일보호구역 이어서 풀 한 포기 쉽게 손댈 수 없는 곳 이었지만 스님 한분이 원력으로 법당(오도암)과 삼성각, 토담집 하나를 세워 원효의 천년 고찰을 되살려 내었다.
젊은 시절 오도암에 와본 적이 있는 현대의 선지식 일타스님(1929~1999)은 이곳에서 일주일만 살아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 했다고 한다. 토담집에 붙여놓은 불인선원(佛印禪院)이란 편액글씨도 일타 스님이 써주신 것이라 한다. 불인선원(佛印禪院)이란 부처로부터 직접 인가를 받은 곳이란 뜻이다.
오도암 뒷편으로는 거대한 청운대 절벽 1000m 지점에 원효대사가 6년간 수도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굴(서당굴)과 천기가 서러 있다는 좌선대가 있다.
하지만 원효굴과 좌선대는 찾아 가는 길의 표시가 없어 이곳 스님의 안내 없이는 접근하기 조차 어렵다는 것이 이곳을 찾는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팔공산의 기운이 이곳에 모여 신비감 마져 감돈다는 오도암과 청운대 좌선대가 복원 및 개발돼 세상에 알려질 날이 멀지 않았다.
하루빨리 고증거쳐 복원…옛 명성 되찾아야
홍연백 문화해설사
필공산 제일의 명당 비로봉의 청운대 절벽아래 자리하고 있는 오도암.
이 절은 신라 654년(태종무열왕 원년) 원효대사가 창건해 오도(悟道) 한 곳이라 하여 오도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수행하면서 창건한 역사 깊은 사찰인 팔공산 중턱에 위치한 조계종 제10교구 은해사 말사인 '오도암' 복원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힘입어 경북 군위군과 은해사는 현재 자연공원법 저촉을 받는 팔공산도립공원구역내에 있는 오도암을 문화재 가치등을 집중 부각해 한국 불교사상의 여명을 밝힌 성지로서 명맥을 지키기 위해 경북도와 공원구역 변경 지정 등을 협의해 복원에 나섰다.
지난 2007년도에 법당과 삼성각을 비롯해 대지면적 843㎡, 연건축 면적 66.29㎡ 규모로의 오도암을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워 추진하다가 현재까지 중단된 상태이다.
그 이유는 팔공산공원관리사무소로부터 오도암은 자연공원법 저촉을 받는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의 팔공산도립공원구역내에 위치해 있어 고증된 절에 해당되지 않아 복원을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이 같은 안타까운 사실에 오랜 역사를 가진 오도암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늘도 지역주민과 불자들 사이에서 잇따르고 있다
군위군은 또 과거 오도암이 너무 낡아 비가 새면서 보존에 어려움이 있어 현재 본사인 영천 '은해사'에 보관하고 있는 '금동불입상(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07호)'을 오도암 복원을 통해 다시 모셔온다는 계획이였으나 아직 복원되지 않아 실행되지 못했다고 한다.
오도암은 원효대사가 수행하면서 창건한 역사 깊은 사찰로 원효대사가 팔공산 청운대 바위중턱 원효굴에서 득도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창건된지 1천여년 이상 지나면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바람을 피할수 없을 정도로 낡고 열악한 이 절을, 스님 한분이 법당과 토담집 등을 세워 외로이 지키고 있다.
하루빨리 군위 오도암이 고증되어 복원사업이 완료되고, 입간판 및 등산로도 함께 개설돼 신도 및 등산객들이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가까이 다가가서 볼수 있을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