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하는 순간에
내가 119 구급차에 실려서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이 아마 오후 5시경이고 침대에 실려서 507호 일반 병실에 눕게 된 것이 7시경이라고 하였으니 치료를 받은 시간이 거의 2시간이상일 것이라는 내 나름대로의 계산을 해보았다.
워낙 머리에서 피를 많이 흘린 후라서 병원으로 실려 왔을 때에 가해자는 내가 잘못되는 줄 알고는 겁을 많이 먹었다는 후문이었다.
병실에 왔을 때에 나는 허공에 떠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사뭇 갈아 앉지를 않으면서 몇 시간 전의 영상들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머리에 붕대를 잔뜩 감아서 그런지 머리는 지끈 지끈 아파오고 가슴까지 답답하여 붕대를 풀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손은 움직이지를 않는다.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을까 물이 먹고 싶고 집에다가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8인실 일반 병실에는 나를 포함해서 다섯 명의 환자가 누워 있었다.
내 손목 위의 팔뚝에는 주사바늘이 꽂혀 있고 폴대 ( 닝겔을 맞을 때 수액을 걸어놓는 대)에는 수액 한통이 매달려 있어서 행동이 부자유스러웠다.
양쪽으로 4개의 침대가 놓여 있고 나는 창가 쪽에서 두 번째인데 옆에는 손가락을 처맨 환자가 누워 있었다.
이날 나는 시장에 볼일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집을 떠나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후 2시경 한낮의 기온이 그날은 31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운 날씨여서 자전거 발거리에 힘을 쏟을수록 이마에서 나는 땀은 눈앞을 가릴 정도였다.
손수건을 삼각으로 개서 목에다가 두르니 한결 햇빛을 막을 수가 있었지만 등에서는 여전히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내가 지나가는 길은 인도였는데 웬 승용차 한 대가 앞을 막아 서있기에 나는 태평 치고 그 앞을 직선으로 지나가는 찬 라였다.
그런데 갑자기 서 있던 승용차가 출발을 하는 바람에 나의 자전거는 그 범퍼에 부딪쳐 " 어. 어. “ 미처 소리를 지를 사이도 없이 나가떨어진 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119 라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나의 정신은 몽롱하기만 하였다.
내가 응급실로 실려 오고 응급조치를 받은 뒤에 머리사진을 찍을 거라면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X선 촬영대 앞에 놓여 있었다.
“ 자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세요. 하나 둘까지 숨을 쉬지 마세요.”
촬영 기사는 나를 침대위에 뉘인 채 대여섯 번이나 멍석말이하듯 굴리면서 머리를 찍고 있었다.
“ 오늘 아저씨는 운수대통이시네요. 다른 사람이 이만한 부상이라면 그대로 꼴까닥하였을 텐데 살아나셨으니 말입니다.”
그는 사진을 다 찍은 후에 나에게 말을 하였다.
“ 꼴 까닥이라니 그게 뭔 말이래요.”
나는 그의 말투에 화가 나는 대로라면 욕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을 하였다.
“그래도 정신은 온전하신 모양이지요. 부상 정도로 보아서 살아나신 것이 다행이란 뜻입니다.”
한문 선생처럼 토까지 다는 것이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 열세바늘을 꿰매셨으니 골이 좀 아프실 거예요. 많이 아프시면 신호를 주세요.”
간호사가 병실로 나를 옮기면서 한 말이다.
병실로 옮기고 나서 내가 입고 있던 흰 와이셔츠를 보니 피 두루마리였다.
게다가 얼굴이며 목에는 응고된 핏덩이가 여기저기 묻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전투영화에 출연한 부상병의 모습 그것이었다.
그때에 가해자가 나타났는데 내가 너무도 잘 아는 사람으로 그는 인도중간에 차를 세우고 우회전을 하다 보니 자전거가 앞에 있는 것을 미처 발견을 하지 못하였고 차가 멈춘 다음에야 사람이 차에 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차에서 내려서 보니치인 사람의 뒷머리에서는 피가 많이 나고 있었지만 자신은 몸이 떨려서 감히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어떤 여자 기사가 119에 연락을 하고 20여분 만에 응급차가 도달하여 나를 병원으로 운반하였다는 것이다.
이날 가해자는 핸드폰을 가지고 나오지를 않았는데 만일 그때에 이곳을 지나는 차가 없어 신고라도 늦어졌다면 큰일 날 번 하였다면서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하였다.
“운이 좋은 날 이렇게 다칠 수가 있단 말이야” 하고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머리는 아프고 정신까지 몽롱하였던 나는 그럴 힘도 없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비록 부상은 심했다 할지라도 그만 하기가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나는 것이었으니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그날 내게 뇌진탕이라도 일어났다면 나는 다시는 이 세상의 나타날 수도 없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119를 불러준 사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일반 병실로 옮긴 후에야 나는 집으로 전화를 할 수가 있었다.
“ 나 지금 병원엘 왔는데 머리를 조금 다친 가 봐.”
“ 뭐예요, 웬 일이에요.”
아내는 한마디를 하고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 내가 지금 머리에 붕대를 잔뜩 감고 있으나 큰 부상은 아니니까 놀라지 말아요.”
전화를 끊고 나자 아내는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온 것보다도 빠르게 병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시장에 볼일만 보고 바로 집으로 올 사람이 오지를 않자 아내는 걱정을 하였을 것이다.
아내는 심장이 약하기 때문에 집에서도 가끔 문이 바람에 세게 닫혀도 놀라고 천둥소리는 물론 어떤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려도 깜짝 깜짝 놀라서 가슴이 후둥대는 사람이다.
“ 머리를 꿰맸다는데 이상이 없다니 걱정하지 말아요.”
“ 머리 말고 다른데 다친데 는 없대요.”
“ 다른데 는 이상이 없다고 하였으니 근심할 것 없어. ”
“ 정말 이상이 없단 말이에요. ”
“ 그렇다니까.”
“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네요. 부처님이 돌보아주셨껬지.”
" 웬 부처님."
당신 만날 절엘 찾아다니니 하는 소리지요."
“ 하기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의사의 말로는 넓적다리에 멍이 들고 왼쪽 정강이에도 상처가 깊게 나서 치료를 하고 붕대를 감았다고 하더라구 .”
“ 거봐요. 교통사곤데 머리만 다칠 리가 있겠어요.”
부부간에 서로에 대해서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보통 누구에게나 있는 일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어떤 부인들은 남편과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것이 지겹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우리 아내는 그런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나의 안위에 대해서 너무 걱정을 많이 해서 탈이다.
“ 내가 한두 살 먹은 애야 걱정을 하게.”
아내가 말을 할 때에 가끔씩 한마디를 하면 아내는 갑자기 어디서 읽다만 소설책을 들춰내듯이 바로 내엮는 말이 과거에도 귀가 따갑게 들었던 말들이다.
“ 젊어서부터 엎어지지 않으면 물건에 잘도 부딪쳐가지고 들어와서 마키 롬을 달고 살더니 어쩌면 잊을 만하면 이렇게 사고를 내고 있으니 나이를 먹어도 헛먹은 줄이나 알아요.”
어느 해 겨울의 일이다.
매일 같이 다니던 새벽산행에 나서자 아내는 한사코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가지 말라는 것이다.
“ 뭔 소리여. 눈 오는 날이면 얼마나 산의 경치가 아름답고 운치가 있는데 날더러 가지를 말라는 거여.”
“내 녹음기가 낡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의 예감은 틀리지를 않아서 그래요.”
그렇지만 난 어차피 신돌 매이를 하고난 뒤라서 골목길을 지나서 산길로 향하다 보니 눈송이는 굵지를 않았으나 길에는 벌써 웬만큼 쌓여 있었다.
이런 날은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것도 좋으련만 아내는 새벽의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산엘 오르다 보니 나보다도 앞서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간혹 여자들도 끼어 있었는데 그야말로 겅둥겅둥 뛰어가는 노루새끼 모양으로 잘도 가고 있었다.
정상에 닿으니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소나무에 등을 부딪치거나 줄넘기를 하는 사람에 어떤 이는 철봉에 매달려서 원숭이 흉내를 내느라 뱅그르르 돌다가는 미끄러져 자빠지기도 하였다. 철봉이 눈에 젖어서 물 끼가 있는 것을 평상시로 생각하다가 떨어졌을 것이다.
‘ 재주 부리지 말 라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소리도 못 들었는가. ‘
아는 사람이라면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인데 아니나 다를까.
어디가 아프던지 단단히 아플 텐데 한참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궁둥이를 외로 틀면서 슬슬 하산을 하는 것이다.
나도 맨손체조를 몇 번을 하다가 아무래도 눈송이가 점점 굵어지는 것이 불안하여 하산을 시작하는데 눈은 그 사이에 많이 쌓여서 길이 미끄러웠다. 등을 오므리려 조심을 하면서 몇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나무뿌리를 밟았던지 쭉 미끄러지면서 공중 잡이로 나가떨어지는데 하필 궁둥이뼈를 나무뿌리에 부딪쳤는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지나가니 엉겁결에 일어나긴 하였으나 걸음을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몹시 아팠다.
옆에 서있는 소나무 기둥을 잡고 한참동안 서 있다가 발걸음을 옮기려 하니 보통 통증이 심한 것이 아니다.
이를 악 물고는 한참동안을 썰썰 매다가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 움직여 보니 겨우 걸
음을 뗄 수가 있을 정도여서 간신히 기다 싶이 해서 집에 도착을 하였다.
상을 찡그린 채 집으로 들어서자 아내는 대뜸 한마디를 한다.
“ 왜 우거지상을 하는 걸 보니 어디가 아파서 그래요.”
“ 기왕 붙들고 싶으면 앞길을 막았어야지. 나 지금 꼬리뼈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파서 죽을 지경이야.”
“ 맙소사. 병원부터 어서 가야겠네요. 내가 뭐라고 하였어요. 도통 초등학교 아이처럼 말을 듣지 않더니. 으이구.”
나는 졸지에 초등학교 아이처럼 꾸중을 들어야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예감이 좋지를 않아서 나가지 말라고 하였는데 말을 들었으면 이런 사고도 나지 않았을 거예요. 밤낮 말을 듣지 않다가 손해를 보기만 하니 애들 같으면 매일같이 회초리가 몇 개는 부러졌을 거야.”
아내의 혼잣말에 나는 들은 척도 하지를 않았다
나야말로 속으로는 가해자가 왜 하필 그 시간에 거기에 서 있었는지 원망스러웠다.
내방에는 환자 여덟 명이 있었는데 모두가 교통사고로 입원한 사람들이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온 사람은 나 모양으로 머리에다 붕대를 잔뜩 감았는데 보기에도 흉측스러운 것이 마치 꿈속에서 유령을 보는 것 같았는데 입원실 안에 있던 사람들도 내가 그 모습으로 입실을 할 때에 이와 같은 감정을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다 끼쳤다.
그래서 나는 머리의 상처가 다 낫기도 전에 붕대만이라도 풀어 달라고 하자 간호사는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 머리가 안 아프고 싶으시면 가만히 계시라고 하였다.
그의 말속에는 병원에서는 환자가 간호사나 의사의 말을 들어야지 왜 멋대로 자기 혼자의 판단으로 병원 질서를 어지럽히느냐는 언급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별별 사람들이 다 섞여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병원이 극히 심한 편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데 온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서 입원을 하였지만 도무지 낫지를 않는다고 하였다.
거기에 입원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말은 하루속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의사의 처방은 한 달 또는 두 달 간을 입원해야 한다고 진단을 하는 것이니 의사의 말을 배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처음으로 안 사실은 가볍게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은 보험사 직원과 합의 하에 하룻밤만 자고는 합의금 30만원을 받아가지고 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 간혹은 보험금만 노리고 교통사고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니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사회의 암적 존재로 용인되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느낀 것은 간호사들이 너무 많은 고생을 한다는 사실이다.
직업이 간호업무라지만 밤낮 없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면서도 한밤중에라도 환자가 부르면 즉각 찾아와서는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었으니 그 분들이야말로 자신의 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맡은바 임무를 다 하는 분들이다.
남을 위해 헌신하고 아픈 사람들을 내 몸처럼 보듬어주는 사람들! 이런 어렵고 힘든 일을 아무나 할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하루 동안을 병원에서 환자들과 함께 하다가 보면 때로 기진맥진하기도 하고 쉬고 싶기도 할 것이지만 간호사들은 환자를 우선시해서 시간 맞춰 순회하고 약 챙기고 물까지 떠다 받치니 이 분들에게는 특단의 처우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2주일이 지난 다음에야 상처가 거의 완치 단계여서 퇴원해도 좋다는 의사의 지시를 받고 나서 되돌아보니 정말 지루한 나날이었다.
탁한 공기 속에서 매일같이 환자들 속에서 묻혀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 매일같이 겪는 일이지만 병원에는 이러지를 못하고 누워서 생활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자기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고 아무 곳이라도 가고 싶다면 즉각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장애인에 대해서 최대한의 배려를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나일론 환자 소리를 들어가면서 6개월째 병원 생활을 한다는 미장이 기술자는 내가 퇴원을 한다고 하자 서운하다면서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이제는 집이 그리워서 못 있겠다면서 자기도 당장 퇴원수속을 밟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인간이 출생하여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당한다면 그것처럼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며 더구나 그들 가족에게는 평생 동안 슬픈 멍에를 안겨주는 일이다.
잠깐 동안의 부주의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당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한 2주간의 병원생활이었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