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우리는 지난 과거를 생각해봐야 할것이다.
어떤 이유인지 대도시에서는 성당에 예비자들이 몰려들고있는데 지방의 공소는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거나 운영이 어려움을 겪게됩니다
전남의 어느섬지역에는 인구가 2천여명이 있고 어느본당처럼 등록신자의
일부만이 신앙생활을 하기에 주변에 흩어져있는 공소관리는 사제 혼자서 운영해 나갈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직접 보게되는데 신안군 자은도의 일이지만
내포와 호남의 지역에서 일어나고 일들의 한단면일뿐이었다.
이런일은 가장 천주교인의 수가 증가하던 1984년과 1989년의 행사이후였다는 것이다
서울의 마포 공덕동은 주택가가 아니기에 성당신자수는 몇 안되었지요
그런데요 그곳에서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여서 그런지 성당규모에 비해서
많은 예비자들이 몰려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당에서 준비한 예비자교리는
오랫동안 사용한 예비자교리서뿐이었지요
저도 본당에서 레지오를 하면서 예비자교리반에서 봉사하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그때에는 교육하시는 신부님이 오시기전에 먼저 나와서 예비자들을 위해서 공동기도도 드리고
출석부체크하고 불참자들에게 연락하는등 신부님을 도왔지요
그러면서 저도 예비자교육도 같이 듣곤하였습니다
제가 그때 늦긴것은 예비자교리가 너무비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저도 듣기가 어려웠던 부분이라 느꼈지요 요즈음은 서울교구도 많이 달랐지요
소공동체를 위한 주로하는 복음나누기7단계가 아프리카 선교프로그램인데요
그 프로그램을 개발한 연구소에서 펴낸 책을 기본으로 서울교구는 새로운 교리책을 편찬했는데
이것은 소공동체활동을 염두에 둔실제적인 것이었지요
사진도 많이 들고 실제로 내용대로 따라하기도 쉬웠지요 그안에는 가르치는 사제뿐만 아니라
보조하는 봉사자의 역할도 들어있기 떄문이었지요
지방은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주일학교에서 학생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것은
주로 대학생인 주일학교교가인것입니다. 물온 그들은 시간을 많이 할애해서 교구에서 훈련과
교육을 많이 받고 스스로 교리교제도 만들고 하지만 사실상 그들은 신앙체험은 거의 없는 편이었지요
주일학교도 그렇고 많은 예비자들을 위한 성인들의 교리교육도 결과적으로
전달교육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들 알겠지만 예비자과정은 어려운 교육을 받지만
주변에서 관심도 많이 갖고 잘 알려주기때문에 어려움이 없지만
세례이후 스스로 독자적으로 살아가야 했기에 세례이후 1년간이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되었된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세례후 1년이내에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많이 늘어가게 됩니다
레지오등으로 가입을 권유하기도 하였지만 대체적으로 후속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이들은 단체가입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었는데
구역모임만 활성화가 되면 세례를 갓받은이들이 그곳에 머물수가 있었는데요 구역모임이 활성화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부분은 나중에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웠지요
안산에 있을때에 성서를 잘 아시는 신부님이 오셨다. 그분으로 인해서 수원교구에서 하는
성서여정 프로그렘이 시작되었고 몇년간 지속되었다. 아마도 긴과정인 6년간이 개설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대체적으로 20여명이상이 몽여서 하게되는데 점차로 문헌에 의한 지식전달로
참석한 사람들이 힘들게되었고 차츰 인간이 감소하고 10여명도 안되는 참석자가 생길정도였다
저는 신약3년은 다 마치고 구약은 중도에 안산을 떠나는 바람에 1년을 채 못 채우고 나왔다.
교재를 보니 수원교구에서 재편집한 교재를 사용하는 여정이었다. 그이전에 본적이 있던 교재인데
캐나다의 어느수도회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에다 문하비평이론을 많이 가미했던 것이다.
나눔보다는 주오 말씀봉사자에 의한 지식전달이 주였다.
이는 성경말씀으로 인한 생활변화는 전혀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저도 낮에 근무하고 저녁에 피곤한 몸으로 가서 졸면서 듣기도 하였지만 단 한번을 결석하는바람에
3년개근을 받지못했다. 안타까운부분이었다.
지금도 교구에서 성서프로그렘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대구교구에서는 성서통독40주간을 하고있다.
40주간동안 성서전체를 읽어내려가는 것이다. 사실적으로 무리한 일정이다.
그리고 매주 한차례 관련도영상을 보아야하고 분기별로 온라인으로 평가를 받기에 시험을 쳐애헸다.
성당사무장에 의해서 들은 애기이지만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왜 우리에게 성서가 필요하면 성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감각이 둔한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힘들어하는 신자들을 위해서
본당신부님은 주보한면을 할애해서 성서에 대한 해설과 유대라삐가문에 대한 것을 어려운신앙책을
직접 번역하시고 연재하지만 이들은 우리 마음에 와닿지도 않고 어려운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 어려운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것은 다 생활변화를 위한것이라고 한다.
하느님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위해
낮은신분은 2천여년전에 이땅에 오셨다. 그분은 본디 하느님의 신분이지만 스스로 낮은자가 되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제자들을 물러모으시고 두루다니면서 가난한이들과 소외받은이들을 위로하셨는데
이는 우리도 예수님이 하셨던 일들을 하게 하셨던 것인데 요즈음은 그런일을 잘 볼수가 없다는 것이다
저는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교황님의 평일미사강론집을 보고 너무 놀라웠다.
그분의 강론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다들 그런것은 아니지만 본당미사강론에서는
포괄적인 성서지식을 전달하는데 반해 교황님은 바티칸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곳에서 30분이나 아니면 10분정도
의 짧은 강론을 하시면서 실제 우리주변에서 경험할법한 이야기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뒷담화를 하지않으면 성인이 될수가 있다'라든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셨다
처음 할머니따라 미사에 가셨던 말씀도 하셨다.
요즈음은 찾아보기가 어렵지만 한때에는 유투브에서 짧은동영상으로 볼수가 없었다.
제가 서울에서 구역장을 하고 있었을때에는
본당에서는 전신자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하고 있었다. 때로는 토요일야간과 주일새벽에 걸쳐서
구역별로 모여서 성서를 읽고 그룹모임도 하기도 하였고
신부님은 구역별로 일정을 계획해서 가정방문도 하고 구역미사도 들렸다.
그이후 코로나거리두기로 모든 소모임이 사라지기 이전에도 이런 전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운동장에서 하는 행사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정착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이런 모임은
없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성당밖에서 긴행렬을 이루고 본당안으로 들어가는 보여주시식은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성서공부와 모임 기도세미나랑 기도공동체모임에는
사람들을 모을수가 없었다.
열성적인 봉사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준비한 외부강사의 증언이 있을때에만
더러 적지않는 참석자들이 모여들었다. 사실 신자들이 게으른것 같지만 프로그램에 따라서
성서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잘 보여주는것이라 여겨진다.
저는 이런글을 쓰면서 여러가지 고민을 해본다.
저는 운이 좋아서인지 여러가지를 경험할수가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라도 이런것들에대한 애정과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성령기도회가 매주 한번 저녁에 모입니다. 참석자가 점차줄어들어서
어떨때에는 봉사자 몇분만이 모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사전모임도 하고 말입니다
그들은 비용을 몇몇봉사자의 주머니돈으로 해결하곤합니다
그 덕분인지 교구행사때나 지구행사때 빠지지않고 참석할수가 있었지요
사람들은 이런 경험들을 늘려가야 할것입니다
다들 현실적으로 생활로 연계할수 있는 나눔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저는 다른 단체에서 볼수가 없는 내용이 성서형제회 교본에 들어있는것을 보고
아주 감동적이었지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공동식사라는 부분입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같이 모여서 먹을것을 나누웠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이런부분은 성서에서도 더러 언급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실제적으로 보여지는 무엇인가가를 나누워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 나눔으로 그쳐서도 안될것이고 이는 이웃을 보고 대할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고 대하듯이 하셔야 할것입니다. 성서에서 주님은 누구와 같이 했거나 슬퍼서 울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만 즐거워했다는 내용은 잘 볼수가 없다는 것이다.
저는 안산에서 계약직으로 차량등록소에서 일할때에 낮은임금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동네에서 만난 어느개신교목사의 도음으로 많은 것을 회복할수가 있었다.
그분이 사목하는 교회는 아주 가족적인 교회였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돌아갈때에
그 교회옆을 지나가게되는데 그교회는 항상 개방되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 들어가서
비치된성서를 일고 혼자서 통성기도를 30분이상 바쳤던 것이었다.
그때에 느낀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성서를 전부 다 이해하는 것보다 어느것 하나라도
일고 이해하고 이를 생활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라 여겼다.
저는 차량등록소에 오시는 여러종류의 민원인을 만났다. 떄로는 어려운사람들도 있었다.
공원주변에서 노숙을 하는 이들도 적지않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성당옆에 살기에 가끔 성당에 나오게되면 어려운사람들이 오셔서 본당신부를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물질적인 도움을 받을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아는 친척이 광명에서 장로로서 봉사는 개신교회가 있었다
친척형을 돕는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매주마다 참석하고 끝나면 그곳 신자들과 같이 식사하고
교회옥상에 마련된 탁구도 함께 쳤다. 그들은 매년 VIP초대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저는 정년퇴직직전 2년간 공원에서 청소일을 하였다. 공원내에는 가건물이 없기에 화장실사용이
가장 큰문제여서 이를 위해서 공원가까이에 있는 큰교회를 이용하였다. 더운 여름날이면 피할곳
도없는 때에는 가까운 교회안으로 들어가서 쉬는것이 일종의 쉼이었다.
교회안에 설치된 자판기의 음료는 아주 저렴했기에 더위를 식히는데 큰역할을 했다.
가끔 보너스로 그곳에서 요한묵시록 강의를 들었다. 매일 조금씩 낮에하고 강의를 할동안에는
에어콘이 가동되었기에 저는 그곳에서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보충을 할수가 있었다.
늘 교회는 주변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려는 것이었다.
성서형제회도 내부적인 것만 생각할것이 아니라 성당주변도 생각해야 할것이라 여겹니다
이는 한순간에 준비하고 이루기는 어려울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여러사람들이 나누워서 고민해야 할것이라 여기기에 옛생각을 짜내어서 올려봅니다
요즈음 이렇게 몸부림치는 이유는 지금 나이가 들면서 몸과 마음이 옛날같이 맑지못하기 때문이고
이것이 가능할때에 남겨두자고 생각했기 떄문입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좋은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한것이라 여깁니다
이를 표출할수도 있는 성서형제회라는 좋은 공동체를 만난것도 그와 같다고 여깁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