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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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신께 제 마음을 활짝 열어놓습니다.
당신은 제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며
제 눈과 말, 제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제 행동이
투명하지 않음을 알고 계시나이다.
이 시간 당신을 흠숭하며
제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여
제가 당신을 뵙고,
또 당신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게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성시간 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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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지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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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농민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
당신이 주신 손과 발로 땀을 흘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과 함께 하시어,
그들의 노고와 활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게 하시고
저희들로 하여금 고마운 마음으로 보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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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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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간 금요일 루카 9,18-22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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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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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든
아가다의 남편은 한창 나이에 실직하고 일터를 찾아 중국으로 건너갔다. 아가다는 십여 년 넘게 두 나라를 오가며 혼자 살림을 꾸리고 아이를 키웠다. 나 같으면 팍삭 주저앉을 상황에서도 그는 늘 웃었다. 그것은 베드로처럼 “하느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믿고 기댄 사람의 느긋함이라고 나는 그의 웃음을 부러워하며 십여 년 연상인 내 신체 나이를 부끄러워했다. 그는 혼자 익힌 중국어 실력으로 신구약성경 필사를 끝냈고, 얼마 전 한참 늦깎이로 방송대 중어중문학과에 들어갔다고 해서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요란하게 번쩍이지 않았지만 그는 빛났다. 그런 아낙들이 곳곳에 박혀 있어 우리나라가 이만큼 버티는 거라고 든든한 묵상을 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을 때 아가다는 마침 중국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평화방송을 시청할 수도 없었고 주일에 한 번 중국 건물을 빌려 미사를 드리는 형편이라 생각 끝에 아가다는 자기 집에 분향소를 차렸단다. 추기경님 사진을 모시고 촛불은 켰지만 영 송구스러웠고 그 며칠 간 옷 갈아입기도 민망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어설픈 분향소를 송구해하며 드렸을 아가다의 간절한 연도가 연상되어 콧마루가 찡했다. 추기경님의 영혼이 가장 달게 가장 먼저 그의 연도를 흠향하셨을 것 같았다.
사실 후닥닥 튀어나오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평소 그분을 ‘품고’ 그분을 ‘느끼고’ 그분을 ‘살았음’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아가다는 언제 어디서든 주어진 상황에서 예수님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의 침묵을 알아들을 사람(루카 9, 21 참조),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넘어 부활의 영광을 맨 먼저 내다볼 사람이 아닐까?
[이난호 (서울대교구 구로1동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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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독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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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영원한 빛을 받아들입시다
경건한 신심으로 주님의 신비를 받들고 경축하는 우리 모두는 영접하는 마음을 지닌채 그분을 맞으러 나갑시다. 이만남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하고 또 등불을 들고 가기를 거절하는 사람도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들고 가는 촛불의 광채는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만사를 밝게 해주시고 암흑을 몰아내시며 영원한 빛의 풍요함으로 비춰 주시면서 오시는 분인 신적 광채를 보여 주고, 또한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갈 때 영혼에게 광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극히 정결하신 천주의 동정 모친께서 당신 팔에 참 빛을 안고 어둠 속에 않아 있는 이들을 찾아가신 것처럼, 우리도 그 빛으로 밝혀져 모든 이들을 비추는 빛을 우리 내부에 들고서 참 빛이신 그분을 맞으러 나갑시다. 빛께서는 "참으로 세상에 오시어" 어둠에 싸여 있는 세상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데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그늘 밑에 안아 있는 이들을 비추셨습니다. " 우리가 오늘 경축하는 신비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비추어 준 빛을 표시하고 장차 그분에게서 받을 광채를 나타내 주는 등불을 손에 켜 들고 마중 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함께 모여 하느님을 맞으러 나갑시다. 모든 사람을 비추어 주시는 참 빛께서는 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 모두 그 빛으로 밝혀져, 그 광채로 빛납시다.
우리 중 아무도 이 광채로부터 제외되어서는 안되며 아무도 어둠 속에 남아 있기를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 광채를 발하면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 모두 함께 모여 빛나는 모습으로 연로한 시므온과 더불어 맞으러 나아가 밝고 영원한 그 빛을 받아들입시다. 그리고 모두 시므온의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에게 참 빛을 보내어 어둠을 몰아내시고 우리 모두를 빛나게 해주신 빛을 낳으신 아버지께 감사의 찬미가를 부릅시다.
우리 역시 그 빛을 통해서 뭇 민족 앞에 마련해 주시고 새이스라엘인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밝혀 주신 하느님의 그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이 그리스도를 본 후 현세의 사물에서 해방된 것처럼 우리도 코 빛으로 말미암아 어두운 옛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베들레헴에서 우리에게 나아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포옹하였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이방인이었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십니다. 우리는 육신을 취하신 하느님을 우리 눈으로 보았고 우리 마음이라는 품안에서 하느님의 가시적 현존을 받아들여 새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축제를 매년 지낼 때마다 이것을 기념함으로써 미래에도 이 신비를 잊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 성 소프로니우스 주교의 강론에서 (Orat. 3, de Hypapante, 6.7: PG 87,3,3291-3293)
[오요한 신부님의 '가톨릭 영성' 사이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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