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彌勒)의 꿈.

[팬다]

[09.11.29] 미륵(彌勒)의 꿈.

내 어메 젖무덤 같은 미륵의 덩싯한 유방이 그리운 날.
겨울비도 추적추적 내릴 참이다.

미륵의 이름 내건 산에 들어
미륵의 이름 내건 절집의 풍경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없으면 소리도 없는법.
산에도 절집에도 미륵은 없더라.

그렇다면 사내의 우악한 손아귀와 사람 좋은 웃음의 끝,
설핏 비치는 시커먼 얼굴 속 희멀건 치아가 미륵.

똥꽃

                            전희식

감자 놓던 뒷밭 언덕에
연분홍 진달래꽃 피었더니
방안에는
묵은 된장 같은 똥꽃이 활짝 피었네.
어머니 옮겨 다니신 걸음마다
검노란 똥 자국들. 

농꾼시인의 치매 모친 불초소생 노릇이야 말로 미륵.
그가 알뜰살뜰 피워낸 똥꽃이야 말로 미륵.

통영의 진산인 미륵산(461m)을 찾았다.
미륵의 마음 읽기야 내 몫이 아닐 터,

폭신한 고샅 느릿느릿 걷다 사방의 시원한 눈맛에
찰나 미륵의 육덕에 빠진 양 혼자 한번 히죽할 뿐.

인적 드문 오솔길을 택했다.
금새 저만치 관음사가 보인다.

불사(佛事)가 한창인 절집을 기웃거리다
아쉬운 듯 이내 걸음을 재촉한다.

도솔암.
목도 축이고 스님과 두어마디 대화도 갖는다.

능선으로 곧바로 오르는 길이 있을까요?
미안하게도 줄로 경계를 지웠으니 돌아가시면 합니다.

암자의 곁을 따라 오솔길이 분명하다.
발길은 흔치 않은 듯 도심의 뒷산임에도 참말 소요(逍遙)의 길이다.

봉우리 너머,
미륵의 정토.

미륵의 꿈이 대체 얼마를 더했을 것인가.
능선의 길은 맨 살을 속속 드러내었다.

도솔암에서 송신탑 쪽으로 직등하여
그 환한 능선을 쫓아 작은망(정토봉, 335m)에 닿았다.

정토봉에서 바라본 통영 시내
내항의 저편으로 우측의 남망산과 강구안, 서호시장이 연이었다.

금새 미륵치에 닿았다.
800m만 가면 미륵산 정상이다.
 

미륵산 가는 길, 뒤돌아 보니 소나무 한그루 넓게 잎을 펼쳤다.
미륵 오시면 제 허리춤서 쉬어 땀일랑 훔쳐 가시라는 모양.

소나무가 가린 너머로는 저멀리 남평리 죽전마을서 일어나
현금산과 정토봉을 이어 솟은 산세가 유장하다.

좌측 능선 너머엔 박경리 선생의 묘소가 있을테고
저 멀리 삼덕항 너머 바다엔 추도며 두미도며 곱게도 수 놓였을 테지만
오늘은 마음으로만 그려야 한다. 미륵의 산에 들어 그마저도 품는 것은 욕심.

정상엔 사람들이 많다.
관광 자원화의 깃발이 요란하다.

문듯 왁자한 사람의 소리가
미륵의 풍경 소리 마저 삼킨 것은 아닐까 근심이다.

서둘러 재촉한 걸음의 끝,
숲 속 절집의 광배가 빛난다.
 

미래사(彌來寺)
미륵이 도래할 절집이어 그런가 무척 단정(端正)하다.

울울창창 편백의 상서로운 기운이 감싼 아래
스님과 보살의 부지런함과 친절이 곳곳에 서렸다.

미륵 오실 길, 행여 질척일까
고운 자갈로 굳이 길 내었다.

그러고선 행여 타인의 고요를 방해할지 모르니
스님 걸어가는 저 길, 밤엔 걷지 말라 권한다.

해우소엔 '냉난방 가동중'이라는 고마운 안내가 있고
수생식물의 겨우살이 준비도 살뜰하다.

미륵이 곧 오실 절집이라 하여
어디든 부처의 마음 드리웠을 것을 두리번 하니 시선 닿기로

세상의 모든 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슬픔없이, 티끌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야 말로 더없는 행복이네.

옳다구나. 이것이 미륵일 제, 안다하여 다 행한다 할 것이며
행한다 하여 다 마음이라 할것인가.

속인으로 미륵의 산 깊은 곳, 미륵의 도래를 소원하는 절집에서
정성을 다해 합장하는 것으로 족하다 해야지.

쉬이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긴다.
절집의 깨끗한 용모에 내 마음도 한 뼘 맑아진 듯하다.

띠밭등의 하늘엔 케이블카가 연신 이어달리기 중이다.
이름처럼 잘 조성된 잔디밭엔 연배 지긋한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식사중.

띠밭등에서 용화사로의 하산길.

어느 정성이 이리 가지런히 동백을 심었는지 수백의 동백이 미륵의 길을 내었다.
어느 해의 봄엔 저 붉은 도열을 심장도 뜨겁게 한번 걸어볼까. 

용화사의 만추.

겨울을 하루 앞둔 절집 앞엔 가을이 이토록 섧다.
어이 보내려는가. 차마 눈 마주칠 수 없구나.

용화사.

떨군 고개, 구부정 허리의 뒷짐 진 노구(老軀)의 걸음이 애틋하다.
저 노구의 걸음의 끝, 미륵이 섣부른 손 내밀어 반겼으면.

*******

비가 추적추적, 겨울이다.
부러 창을 열어 바람을 맞는다.

어메 젖무덤 같은 미륵의 구원은 요원한 꿈일까.
요절의 천재,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가 좋다.

일하고 또 일해도
내 형편 여전히 피지 않네.
물끄러미 손을 바라볼 밖에.

친구가 모두 나 보다  행복해 보이는 날은
꽃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즐긴다네.

멀쑥한 김연수의 사랑은 또 어떤가.
그 말랑말랑 연심도 미륵이다.

지금도 나는 뭔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기만 하다.
그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질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김연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중에서)

 
철길 / 안도현 시, 이지상 곡 노래

이상 행복팍팍 사랑팍팍 팬다

[팬다]

익숙한 것이 가장 무섭다더니 도심의 산이라 그런가 더우기 케이블카마저 설치된 터라 통영길에도 눈길만 갈 뿐, 찾을 마음 없더니 여유 시간이 짧아 토욜 오전에 짬을 내어 휘리릭 한바퀴 했습니다. 차츰 날이 흐리고 비까지 온다기로 서둘렀는데 낮은 구름으로 조망은 별로였지만 생각 보다 산은 고졸한 정취더만요. 관광자원화의 소음이 지나친 것 아닌가 아쉬웠지만 그럭 다녀갈만한 하였습니더~~~~~

[산비장이]

개발은 묵시하고 환경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이상주의일까? 자본앞에 무너진 지구촌을 보면서 여전히 이땅에 개발논리로 환경을 멸시하는 인간들 보면 치가 떨립니다. 통영 국제음악페스티벌때 한번씩 찾는 곳이지만 정말 아름다운 곳이죠. 항상 자동차 바퀴가 아닌 발로 선 길 위에서 보내는 주말이 참 부럽습니다.

[팬다]

언제든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환경일텐데요...하지만 허리 구부정한 할매, 할배 저리 올라 사방의 바람에 지난 인고의 세월 녹여내는 모습 보노라면 어느 것이 대체 맞는 것인지 알쏭달쏭하기도 하네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푸른항해]

사진도 글도 멋지지만..특히 음악선곡이 너무 좋아요..팬다님의 글을 접하고 나면..맘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팬다]

고맙습니다^^ 별 것 아닌 것인데요~

[오션집시(나창식)]

배 부르고 날씨 좋고 간만에 원두 갈아 한잔 마시면서 팬다님의 작품후기 찬찬히.. 그리고 이렇게 댓글을 남기고.. 사는거 머 없죠 ?? 늘 감사합니다.ㅎㅎ

[팬다]

미륵이 도래한 셈인가요^^ 즐겁게 겨울 맞으세요~

[비담]

중독이 된 팬다님의 글을 마주하니 기쁨이 두배 입니다... 지난 봄 새싹이 파릇파릇할 즈음 걸음하신 코스와 같이 산보하였는데... 통영의 아름다움을 조망할 수 있어 좋은 산이라 생각하였답니다... 정상석이 새롭게 단장된 듯하군요... 그나마 통영 미륵산처럼 시내와 가까운 곳의 케이블카 운영은 큰 무리없어 보이나....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하니...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산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해가 되려나 ....짧은 생각을 쓰고 말았네요.

[팬다]

예^^ 능선도 곱고 사방 조망도 훤하고 참 좋았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처지이지만 지리산 케이블카는 좀더 많은 논의와 검토가 있길 바래봅니다~

[희망봉]

통영 미륵산 가본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낚시 갔다가 날씨가 꽝이라... 산이나 가자 해서 간 미륵산인데 이젠 케이블카에 전망대,,, 등등 많이 변했군요... 팬다님 후기를 보면서 추억과 함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네요... 즐거운 후기와 행복한 글들.... 고맙습니다... 혹시 통영 가면 팬다님하구 닌자뚱님하구 다 만날 수 있나요? ^^;

[팬다]

닌자뚱님이 통영이 댁이라시던데 언제 한번 인사 여쭈어야겠네요^^ 희망봉님과의 조우도 기대합지요~

[HanSon]

너무 좋습니다.. 오랫만에 팬다님의 글을 접하는군요.. ^^*

[팬다]

고맙습니다. 건강히 겨울 맞으세요^^

[시몬(이영호)]

멋과 아름다음이 어우러진 풍광이네요. 팬다님의 후기만 보아도 나는 이미 통영을 다녀온듯 눈에 선하네요...^^

[팬다]

골목골목 아기자기한 문화가 생생한 곳인가 합니다^^

[팬다]

멋진 가족여행이 되었겠어요~ 공감도 있다시니 좋습니다^^

[ninja ddung]

미륵산 자주 찾던곳인데... 케이블카 운영이후로 올라선적이 없네요... 정상에서 보는 풍경이 넘 아름다운 곳이져...^^ 멋진 사진과 후기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팬다]

닌자뚱님 참 좋은 고장에 사십니다^^ 부러워요~

[케빈황]

세상에 대한 여유로운 시각과 경험의 깊이를 또한번 배우고 갑니다.

[팬다]

케빈황님의 박학과 다식의 깊이를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