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빌딩숲 도심속 초록
가톨릭청소년 사목국
인성교육강사 보수교육
함께하며 깔깔깔
협력하며 웃을수 있는 시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지는 순간에 감사합니다.
귀가하며
들린 성전
오후 5시 30분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참 고와요.
제안에 거하시며
저를 이끄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늘 감사한 고운님들~♡
덕분에 늘 감사합니다.
저는 요즘
푸드표현예술치료, 푸놀치 하면서
김민용박사의 논문으로
20년간의 연구결과가
확실하게 K-Therapy 되어
전세계로 나가가는 전략
지구촌에
K-Therapy로 자리잡기 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중 입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날개짓 푸놀치 마음소풍
그리고
푸카시(PuKaSi)
시대를 앞서가는 감성융합 언어.
“푸.푸드로 표현하고,
카.카메라에 담아,
시.詩로 남기다”
생명정보를 깨우며 살아나기
〈평화의 불꽃〉
초록 위에 피어난 빛
작은 불꽃 하나.
사랑이 머무는 자리,
그곳에 평화가 자란다.
by 치유산타김지유
매순간
내안의 평화를
고요를 만나기
신비로움
강추합니다.
토마스머튼 신부님의
새명상의 씨
신은 존재하는가.
어려서 궁금했었다.
그런데
2018년 교통사고로
나는 믿는다.
신의 존재를
새 명상의 씨 - 예스24 - https://m.yes24.com/goods/detail/118446309
9. 우리는 한 사람입니다
80~85쪽
신비 생활의 역설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을 비우고 사심이 전혀 없는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다면 사람은 자기의 가장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 갈 수 없고
또 그 마음을 통해 하느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ㆍㆍ81쪽
내가 하느님과 일치하면 할수록 그분과 일치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
과 더욱 일치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 안에 사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은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의 생명이며 우리 모두의 생명이자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당신을 사랑하시는 그 같은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할 것 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일치하여 아버지와 하나이셨던것같이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내가 우리가 될 때에,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사랑하게 될 뿐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사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는 모두 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사랑하시는 분이 그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관상 생활의 최종적 완성은사람들이 저마다 보는 하느님에 대한 개인적 직관인 개개인의 천국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택된 모든 사람, 모든 천사와 성인들의 몸을 통해서 흐르는 사랑의 바다입니다. 그들의
관상은 그것을 나누지 않거나 나누더라도 소수의 사람이나 관찰력이 부족하거나 덜 기뻐하는 사람들과 나눈다면 불완전합니다.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명상하기 위해서 천국에, 그리고 명상 중에
있다면 나는 그곳에서 보다 많은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ㆍㆍ82쪽
우리가 하느님과 더불어 혼자 있으면 있을수록 서로 함께 있는 것이며 어둠 속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의지와 사랑에 따라 우리가 일과 활동과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갈수록 우리는 그분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은거 중에 있게 됩니다.
우리가 혼자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는 더 함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도시와 군중이 아닌 진정한 사랑의 교제 안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분과 더 홀로 있게 됩니다.
나의 영혼과 상대방의 영혼 안에서 나는 우리의 생명이신 같은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은 우리의 사랑 안에서 당신을 발견하십니다. 우리는 다 함께 낙원을 찾습니다.
그 낙원은 그분의 아버지께 대한 사랑을 성령의 위격 안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나의 진정한 인격은 신비로운 그리스도 안에서 다음과 같은 단 한
가지 방법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이 나를 통해서 당신과 모든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우리 모두를 통해서 그 사랑을 하느님께 되돌리기 위해 우리를 하느님께로 모으고, 그분의 무한한 자비에 따라 우리 모두를 그분에게로 되돌려 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집을 비추는 문과 창문들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을 때 하느님은 나를 통해서 당신을 사
랑하고 당신은 나를 통해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그 사랑에 대해서 문을 닫는 것은 당신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 그리고 당신과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그 특별한 표현 방식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내 안에 사시지
않으면 막힐, 색다르고 특이한 방향으로부터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에게 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 안에 있기 때문에 그곳이 아니면 오지 못하는 곳으로부터 나에게 올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 둘 안에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보다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달리 표현될 수 없는 둘 이상의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즉, 그것은 하느님이 안 계시면 있을 수 없는 둘 이상의 기쁨입니다.
이런 사랑과 이런 기쁨 중에 삽시다. 당신과 나,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그리고 관상 중에 삽시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우리로서의 우리 자신과 서로를 찾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마침내 진정한
실체가 되는 것은 이 사랑에서 뿐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이신 한 분이신 하느님의 생명을 진정으로 나누는 곳이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실재적 관계인 삼위일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은 모든 이기심을 무한히 초월하십니다. 하나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본성상 홀로 떨어져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서 존재하십니다. 이 삼위는 하나이시고 하느님은 이 삼위를 떠나 하나로 존재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삼위 더하기 하나의 본성, 그래서 넷이 아닙니다.
그분은 삼위이시지만 한분이십니다. 그분은 무한한 홀로임(하나의 본
성)인 동시에 완전한 사회(삼위)이십니다. 실재하는 세 관계 안에 있는 하나의 무한한 사랑이십니다.
세 위(位)안에만 계시는 하나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실체
와 사랑이 언제나 같고 항상 새로워지며, 완전하고 전체적이며, 언제나 시작이고 끝이 없으며, 절대적이고 영원하며 충만한 관계의 순환입니다.
성부 안에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은 언제나 시작하고 있으며 성자안에 항상 가득 차 있고 성령 안에서 완전합니다. 그 사랑은 새로워지며 영원한 원천에 머무르기를 절대로 그치지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위격 저 위격에게로 오가며 사랑을 좇는다면 그 사랑이 머무는 곳을 추적할 수 없으며 어느 한구석으로 몰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습니다. 마치 다른 위격의 사랑의 결실을 홀로 차지하는 게 적절한 것인양 삼위 중 한 위에 고정시킬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삼위의 하나의 사랑은 아무리 내주어도 끝이 없고 소진되지 않으며 단지 온전히 나누기 위해서만 받는, 하지만 자신을 온전히 내어 놓는, 무한히 풍요로운
자신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그 사랑을 멈추고 빼앗을 수 있
는 하나의 자만하는 '자아' 안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생명과 행복은 절대적으로 무한하며 완전하고 다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는 이기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세 위격은 하나인 생명을 주는 기쁨으로 흘러넘치고 사심이 없는 실존하는 세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내적 생명은 완전한 명상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생명은 그분들의 생명에만 참여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위격이 서로
위격 안에 사시듯 우리도 언젠가는 삼위 안에서 완전히 하느님과 우리들 서로 안에서 살 것입니다.
(새명상의 씨 80~85쪽)
NEW SEEDS OF CONTEMPLATION
written by Thomas Merton
Copyright © 1961 by The Abbey of Gethsemani, Inc.
<<새명상의 씨>>
토마스머튼 지음
오지영옮김
가톨릭출판사(1996, 2000 7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