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아름다운 경관 따라 지리산둘레길을 완주하다.
심산 씀
백두대간의 끝자락 한반도 남부에 자리한 거대한 산, 지리산...
남부의 알프스, 또는 어머니의 산이라고 부르는 지리산을 오르내리고 둘레길 걷기를 누구나 희망한다.
지리산은 크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산으로 넉넉하고 포근함을 안겨준다. 골짜기마다 물이 흐르고 농경지가 있어 예로부터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소박하게 살아왔다. 반면 어머니의 품 같이 넉넉한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는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었고 비운의 한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천왕봉을 정점으로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수많은 생물, 사찰, 계곡과 촌락을 이루고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될 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난 지리산은 많은 사람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지리산둘레길은 3개도(전북, 전남, 경남) 5개 시・군, 21개 읍・면 120여개의 마을을 잇는 긴 둘레길로 옛길, 고갯길, 산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나는 지리산둘레길 22구간 285㎞를 느림의 문화 속에서 자연과 삶의 숨결 따라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완주는 또 하나의 기쁨을 얻었다.
따스한 봄길, 노오란 산수유 꽃과 흰 매화꽃과 벚꽃으로 수놓은 평화로운 산골 마을길은 무릉도원의 길을 걷는 기분이고 일 년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정성이 담긴 손길을 대할 때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계곡의 맑은 물과 숲 속의 피서객들을 만나기도 하고 가을에는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과 들녘의 황금물결, 산촌마을의 풍요롭고 정다운 열매들을 보면서 지리산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가 있다. 또한 눈 덮인 겨울의 지리산 자락과 마을에서는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체험하기도 하였다. 자연은 변함없고 사계절은 되풀이되기에 지리산 자락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행정구역이 다르고 말투가 달라도 삶의 모습은 같다. 전북 남원시 주천면에서 부터 경상도 함양과 산청, 하동을 지나 전라도 구례군 산동에서 남원시 주천에 이르는 285㎞ 지리산둘레길은 가는 곳 마다 경관이 다르고 역사가 있고 지역의 특성이 있다.
산내면에 있는 콘도에 머물며 둘레길 걷기가 시작된다. 남원땅에서는 구룡폭포, 운봉의 너른 농경지와 국악박물관, 송흥록 생가, 산내의 등구재를 중심으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며 다랭이논길과 산촌마을길을 걷는 동안 지리산 자락의 문화와 역사를 음미하게 된다. 깊은 산중에 흐르는 염천강을 따라 걷는 함양길은 여러 사찰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고즈넉한 마을 옛길과 숲길 따라 재를 넘으면서 걷는 동안 함양고을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기도 하고 함양∙산청사건 추모공원을 지나면서 동란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기도 한다. 지리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산청고을을 휘감아 흐르는 경호강을 따라 마을과 마을이 이어지는 길을 걸으면서 산청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가 있고 웅석봉 8백여 미터 고지를 오르는 급경사의 고행길에서는 나의 체력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기회가 된다. 하늘만 바라보이는 지리산 골짜기, 끝없이 이어지는 임도에서는 맑은 공기를 주입하며 휠링의 시간이 되었고 산중의 청계저수지와 단속사 절터에 있는 유적을 보면서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되새길 수가 있었다.
운리,덕산 구간은 작은 폭포와 소를 품고 있는 백운계곡길을 걸으면서 더위를 식히는 피서길이 되었고 덕산 고을 골짜기에는 온통 붉게 익은 감나무 밭이다. 이곳은 곶감 생산지로 전국 으뜸이란다. 또한 덕산은 남명 조식선생이 머물던 산천재가 있는 역사의 고장이며 천왕봉을 배경으로 덕천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고장으로 천왕봉을 오르는 중산리마을로 가는 길목이다. 이곳에서 1박을 하며 목욕탕에서 피로를 풀던 일이 추억으로 남는다.
하동군 옥종면 위태마을, 조그마한 산간 마을에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제 지리산 남쪽, 하동땅을 걷로나면 청암면 하동호에 가두어진 푸른 물결이 나의 피로를 풀어준다. 하동호 따라 계곡을 오르면 청학동이다.
호수길, 개울길, 대나무숲길, 아이들이 학교를 다녔던 고갯길을 걷다보면 삼화실에 이른다. 복사꽃, 매화꽃, 배꽃이 많이 피는 마을이라 하여 삼화실 이란다.
둘레길 중 지선이 두 구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서당마을에서 하동읍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적량들판에서 풍요로운 농촌을 만나고 차밭과 매화꽃이 만발한 둘레길을 걷는다. 마침 섬진강이 굽이쳐 흐르는 강변의 도시 하동읍과 강 건너 광양 홍쌍마을과 산자락에는 매화꽃이 만발하여 축제가 한창이다. 소복으로 갈아입은 하동읍에의 숙박은 머리속에 오래 간직된다.
이제 섬진강 따라 구례를 향해 산자락을 오르고 내린다. 이 구간은 산길이 많아 난이도가 높은 구간이다. 섬진강 70십리 강변의 산자락은 계절별로 특색을 이룬다. 봄에는 아름다운 꽃동산, 여름에는 푸른 숲, 가을에는 오색 단풍과 다양한 열매, 겨울에는 소박한 설경이 장관을 이룬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악양면 평사리 들판과 최참판댁 관광단지, 형제봉 따라 걷는 길은 둘레길이라기 보다 산행길이다. 화개면 원부춘마을에서 부터 고산 지역을 걸으면서 지리산의 웅장함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산자락에 펼쳐지는 차밭의 풍광에서 아름다운 차 향기를 느끼고 화개천 십리 벚꽃 길을 걸을 때는 소박했던 벚꽃을 다시 떠올려 본다.
가탄, 송정, 오미마을로 가는 길은 둘레길이라기 보다 산행길이 계속 이어지고 목아재에서 당재를 있는 두 번째 지선 구간은 피아골로 가는 길로 고찰 연곡사를 만난다. 피아골 종점인 직전마을에서 부터 지리산 산책로와 등산로가 시작된다. 붉은 단풍아래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지리산의 자랑이다.
남한의 3대 길지 중 하나인 구례군 토지면 오미마을에서는 운조루, 곡전재 등 고택을 만나고 문전옥답을 보며 예로부터 부의 고장임을 알 수 있다.
구례구간은 넓게 펼쳐지는 구례분지를 조망하며 낮은 산자락길과 농로와 숲길, 마을길을 걷는 순탄한 둘레길이다. 천년고찰 화엄사를 만나고 천은사와 성삼재를 오른는 길목인 방광마을을 지난다. 낮은 산자락에는 과수원 천국이다.
진시왕의 명을 받은 서불이 와서 불로장생의 약을 찾았다는 지초봉 옆 구리재에 올라서면 구례분지의 넓은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임도 따라 내려오면 산동면 지리산온천관광단지에 이른다.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산수유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밤을 보내던 추억이 생생하다.
이제 둘레길 마지막 코스인 산동, 주천 구간은 큰 밤재를 넘어야 한다. 흰 눈이 여기저기 날려있지만 햇살은 포근하다. 산수유 고장인 산동면을 지나 밤재를 오르는 길은 산수유 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편백나무숲길과 지리산의 영봉 노고단을 조망하며 걷노라면 피로를 잠시 잊는다.
노오란 산수유꽃이 만발한 산동고을을 연상하며 밤재를 넘으면 이제 전북 남원시 주천면으로 둘레길 출발점에 이르러서 가장 긴 16㎞의 마지막 코스를 완주하며 긴 여정을 통해 지리산둘레길을 완주한다.
계절 따라 숙박하며 2~3일 단위로 10회에 걸쳐 지리산둘레길을 완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완주의 굳은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본다. 산행다운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동안 교통문제, 건강문제, 한적한 산길에서의 외로움과 안전문제 등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도전정신과 목표달성을 통한 성취감과 기쁨을 얻으며 전 코스를 완주하기까지 동행한 아내와 중도에서 동참한 동순과 헌록 친구에게 감사를 전한다.
*참조 blog.daum/shs73333 보는 만큼 젊게 산다(구간별 소고와 사진 탑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