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따라잡기] 오페라 앙코르(encore)
"청중에 답례" "흐름 깨뜨려"… 앙코르 보는 시선 엇갈리죠
오페라 앙코르(encore)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입력 2024.09.23. 00:30 조선일보
지난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공연 도중에 루마니아 출신 유명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59)가 무대로 뛰쳐나와 지휘자에게 고함을 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토스카’ 3막에서 남자 주인공 카바라도시 역을 맡은 한국인 테너가 유명한 아리아(독창곡)인 ‘별은 빛나건만’을 앙코르(Encore)로 한 번 더 부른 것이 발단이었지요. 당시 게오르기우는 손을 휘저으면서 “이건 독창회가 아니다. 나를 존중해달라”고 객석까지 들릴 만큼 크게 소리쳤어요.
이달 초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서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기우(오른쪽)와 테너 김재형이 공연하는 모습. 게오르기우는 며칠 뒤 공연에서 김재형이 앙코르를 부르자 무대로 뛰쳐나와 지휘자에게 항의하는 소동을 벌였어요. /세종문화회관
이날 공연이 끝난 뒤에도 게오르기우는 관객 야유가 쏟아지자 무대 인사를 제대로 마치지 않고 서둘러 퇴장했어요. 이 때문에 공연장에선 관객의 항의는 물론이고 환불 요청까지 잇따랐지요. 보통 독주회,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는 앙코르가 일반적이지만, 이번 ‘토스카 사태’처럼 오페라 공연 도중에 같은 아리아를 앙코르로 한 번 더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청중의 환호가 쏟아지는데도 앙코르를 안 하면 어쩐지 인정머리 없이 야박해 보일 것 같고, 반대로 앙코르를 부르면 극의 흐름이 깨지거나 공연 시간이 늘어날 우려가 있지요. 과연 어느 쪽이 옳을까요. 얼핏 질문은 간단하게 보이지만 대답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오페라는 음악과 드라마가 결합된 복합적인 ‘음악극’이기 때문이지요.
빈번했던 오페라 앙코르
바로크 시대와 모차르트의 고전주의 초기까지만 해도 오페라 공연 도중에 아리아를 한 번 더 부르는 앙코르 관례는 성행했습니다. 특히 영화 ‘파리넬리’로 유명한 전설적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가수) 파리넬리 같은 성악가들은 오늘날의 팝 스타와 같은 인기와 부를 누렸고 앙코르도 빈번했어요. 음악 칼럼니스트 이준형씨는 “17세기 이후 이탈리아 오페라가 가수의 초절 기교(virtuosity)를 보여주기 위한 장르로 변모하면서 모든 관심이 가수들에게 집중됐고 아리아 앙코르 역시 일상적 관습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작곡가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18세기만 해도 오페라 공연 도중에 앙코르를 부르는 일은 관행이었습니다. /위키피디아
모차르트의 1786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초연 당시에도 청중의 앙코르 요청이 쏟아졌다는 기록이 있어요. 객석에서 이 공연을 지켜봤던 아버지 레오폴트는 자신의 딸이자 모차르트의 누나인 마리아 안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네 동생의 둘째 날 공연에서는 5곡의 앙코르 요청이 쏟아졌단다. 세 번째 공연에서는 7곡을 다시 불렀지. 그중에서 짧은 이중창은 세 번이나 불러야 했단다.” 여기엔 아들의 성공을 대견스럽게 여기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하지만 당시 앙코르 요청이 쏟아지자 공연 시간이 한없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요제프 2세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독창 외에는 앙코르를 하지 말 것’이라는 독특한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오페라 공연 도중에도 앙코르가 다반사였다는 의미이지요.
금지되기 시작한 앙코르 관습
하지만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오페라가 드라마와 음악, 무대와 연출까지 아우르는 종합예술로 변모하면서 오페라의 앙코르 관습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특히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오페라 같은 경우에는 아리아 앙코르는 물론이고 막이 내릴 때까지 중간 박수도 금기시되기에 이르렀어요. “바그너 오페라는 드라마적 요소가 중시되고 노래가 쉼없이 이어지는 ‘무한 선율’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아리아 앙코르’는 꿈꾸기 힘들다”(유정우 한국바그너협회장)는 설명이에요.
이탈리아 출신 명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그는 오페라 공연 중간에 앙코르를 부르는 걸 금지했어요. /미 의회 도서관
20세기 들어서도 오페라 앙코르를 금지하는 추세는 점차 강화됐어요. 이탈리아 오페라 종가(宗家)인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을 이끌었던 전설적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는 오페라의 흐름을 끊는다는 이유로 1921년 이 극장에서 앙코르를 금지했어요. 마찬가지로 ‘미국 오페라 1번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메트)에서도 오페라 공연 도중에 같은 아리아를 다시 부르는 일은 1994년부터 자취를 감췄어요.
하지만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고 ‘앙코르 금지령’도 언젠가는 깨지기 마련이에요. 특히 페루 출신의 인기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51)는 2007년 라 스칼라 극장과 이듬해 메트에서 모두 ‘앙코르 금지령’을 깬 이색 기록을 갖고 있어요. 도니체티 오페라 ‘연대의 딸’ 공연 도중에 고음이 즐비한 고난도 테너 아리아를 마친 뒤 관객의 박수 갈채가 쏟아지자 이를 앙코르로 다시 불렀어요. 당시 플로레즈는 “(앙코르는) 언제나 청중이 무얼 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페루 출신 인기 테너인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는 오랜 '앙코르 금지령'을 깨고, 2007년 라 스칼라 극장과 2008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앙코르를 불렀어요.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홈페이지
반면 게오르기우는 오페라 도중의 앙코르 관행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이에요. 지난 2016년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도 공교롭게 비슷한 사건이 있었어요. 같은 오페라인 ‘토스카’에서 같은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앙코르로 거듭 부르자, 게오르기우는 그에 항의하며 퇴장해 한동안 공연을 지연시켰지요.
과연 공연 도중이라도 청중이 원하면 같은 아리아를 한 번 더 부르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오페라도 한 편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극적 흐름을 끊는 행위는 삼가는 편이 좋을까요. 어쩐지 모차르트와 플로레즈는 ‘오페라 앙코르’를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 같고, 반대로 바그너와 토스카니니는 손사래 치며 반대할 것 같습니다.
☞ 앙코르(Encore)
앙코르는 ‘한 번 더’라는 뜻의 프랑스어입니다. 정작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선 같은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비스(bis)’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아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 같은 기악 연주자의 리사이틀(독주회), 성악가의 독창회,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앙코르는 청중이 보내는 박수 갈채에 대한 ‘따뜻한 답례’에 해당해요. 러시아 출신 명(名)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은 지난 2006년 첫 내한 독주회 당시 10곡의 ‘폭풍 앙코르’를 선사해서 연주 시간만 총 3시간 15분에 이르기도 했지요.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편집국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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