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할미(麻姑할미)는 전설에 나오는 신선 할미로 새의 발톱같이 긴 손톱을 가지고 있으며, 마고할미가 긴 손톱으로 가려운 데를 긁는다는 뜻으로, 바라던 일이 뜻대로 잘됨을 이르는 말로 마고소양(麻姑搔?)이라 하는데 이때 한자로 마고(麻姑)라고 적듯이 옛부터 전해오는 전설 속의 노파(老婆)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전에 지리산 청학동 삼성궁에서 마고할미의 이야기를 접하고, 단양의 석문에서도 만나게 되어 그 모습이 궁금하던 차에 인터넷에서 한 장의 사진을 접하고 이를 찾아보던 중 마고할미는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788번지의 천황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습니다. 마고할미 상은 높이 74㎝, 얼굴 너비 46㎝, 몸 너비 43㎝의 변성화강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원래 마고할미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지리산 천왕봉에 모시고 있었다합니다. 역사의 모진 풍파 속에서 이 성모상도 많은 수난과 역경을 겪었습니다. 천왕봉 양지쪽에 세워진 사당에 안치되어 만인의 숭앙을 받던 석상이 고려말에 자주 침입한 왜구에 의해 박해를 입은 것이 첫 수난이었습니다. 지리산을 휩쓸던 왜구 하나가 그 흉폭한 성질을 드러내어 칼을 뽑아서 삭상을 후려치니 석상의 귀와 코가 떨어져 나갔고, 이 왜구는 그 길로 홈바위를 향하여 내려오다가 지렴바위에서 피를 토하고 즉사하였다합니다. 그때부터 그 바우를 피바위라고 부른고 있다합니다. 그렇게 훼손된 석상을 그대로 유지하여 오다가 시멘트가 처음 생산되었을 적에 진주사람 최씨가 시멘트로 결손부분을 보수한 다음 삼장면에 내원암을 짓고, 불상으로 모시고져 운반하다가 그만 석상의 중간 부분을 부러뜨리고 말았다합니다. 이에 다시 시멘트로 보수한 뒤에 절에 모셨는데 그 뒤에 흉년이 계속 들자, 산 아래에 있는 주민들이 최씨를 격렬히 성토하여 100여인이 석상을 다시 천왕봉 원위치로 환봉하였습니다. 그 뒤에 최씨는 비명횡사를 했다고 전하며, 1972년 어느 날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다 1987년 중산리에 살던 성기용씨가 계곡에서 몸 부분을, 진주시 비봉산 과수원에서 머리부분을 찾아내 천왕사라는 암자를 짓고 그곳에 지금의 모습으로 모셔두고 있습니다. 고대 산신숭배의 대상으로 그 영험이 크다 하여 지리산을 수호하는 민간신앙의 여신으로 신라시대 때는 삼산오악신(三山五嶽神)의 하나였고, 고려시대 때는 남악(南嶽)으로 삼아 중사(中祀)에 올랐고, 조선시대 때는 사악신(四嶽神)의 하나로 국가에서 제사를 올렸다합니다. 그래서 이곳 천황사에서도 매년 음력 3월 7일에 천황제를 지낸다합니다.
이 성모상은 신라시대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국가의 수호신인 지리산 산신으로 모신 것이라고도 하고,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威肅王后)라고도 전합니다.
지리산 성모상(智異山 聖母像)
농협경남지역본부에서 1997년에 발행한 ‘경남의 전설을 찾아서’ 177p 산청군 마고할미편을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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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역사와야생화 원문보기 글쓴이: 천부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