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석입니다. 시간 참 빨리 흐릅니다. 정월 대보름이 어제 같은데 오늘은 2월의 보름날, 커다란 둥근 달이 구름과 숨바꼭질 하고 있네요.
월석은 태양석과 더불어 수석의 대표적인 문양석중 하나입니다. 이 돌의 달은 양각으로 도드러져 더욱더 실감나고 멋스럽습니다.
저녁 간식으로 내놓은 귤을 손에 쥡니다.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스치고, 둥글고 도돌도돌한 표면이 단단한 무게로 손바닥을 누릅니다.
천천히 쥐었다가 놓습니다.
창가에 귤처럼 노란 달이 떠있습니다.
달을 만질 수 없으므로 나는 이 작은 우주를 손에 담습니다.
껍질을 벗기면 향기가 퍼집니다.
향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만납니다.
그때의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달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달에 손을 뻗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손끝에 와 닿는 감촉은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달은 손에 닿지 않았고, 대신 귤인가 탱자인가 한 알이 내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달이라 여기고, 그 위에 나만의 세계를 그렸습니다.
귤은 작은 우주가 되었고, 나는 그 세계 속에서 자유로웠습니다.
나는 기껏 귤의 동화적 세계를 꿈꾸었는데
뉴턴은 달을 보며 생각했다지요.
사과는 떨어지는데 왜 하늘의 저 큰 달은 떨어지지 않는걸까...
어떻든...
살아간다는 것은 저 멀리 있는 달을 바라보며 귤을 쥐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
손에 쥘 수 없는 것을 바라보며, 닿을 수 없는 것들을 꿈꾸며,
우리는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귤 한 알이 손안에서 우주가 되듯, 우리의 삶도 조용한 연금술을 반복합니다.
허공에 뜬 희미한 비상구처럼, 어딘가로 향하는 길이 있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굴러오는 날들을 주워 담으며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삶은 귤의 향기만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부서진 껍질을 마주하며 귤 속의 쓴맛을 알게 됩니다.
귤인줄 알았는데 고작해야 탱자일지도 모른다는 절망감도 덮칩니다.
달이 멀게만 보이는 밤,
쏟아지는 빗속에서 귤을 움켜쥐며 추위를 견디듯,
삶의 비애가 우리를 덮칠 때 우리는 더욱 그것을 움켜쥡니다.
그러나 삶에는 달콤한 순간도 있습니다.
귤을 반으로 갈랐을 때 터지는 상큼한 과즙처럼, 노력 끝에 얻어낸 성취감이 우리를 기쁨으로 적십니다.
길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 마침내 손에 쥔 따뜻한 순간들,
마치 봄날의 햇살이 손끝을 스치는 것처럼 우리를 감싸줍니다.
귤 한 알에 담긴 쓴맛과 단맛처럼,
삶은 기쁨과 고통의 층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향해 걸어가며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멈춰 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귤은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는 달이 되어 하늘에 걸립니다.
그리고 그 달은 늘 나를 따라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웃음,
작은 성취에서 오는 뿌듯함,
그 모든 것이 귤 한 알처럼 작고 소중한 행복이 됩니다.
시간은 데구루루 굴러오는 귤처럼 쌓입니다.
하나, 둘, 셋... 귤이 쌓여 가듯, 우리의 날들도 차곡차곡 쌓여 갑니다.
어린 시절의 귤, 청춘의 귤, 황혼의 귤.
그 모든 시간들이 한곳에 모입니다.
때로는 삶의 무게가 귤껍질처럼 얇고 연약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귤을 바라보며 지난 날을 떠올립니다.
하나의 귤 속에 담긴 햇살과 비와 바람과 땅의 기억을 떠올리듯이,
우리의 날들도 저마다의 빛과 어둠을 머금고 있습니다.
그 기억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룹니다.
삶이란 결국 저 달을 만질 수 없어 귤을 쥐는 일,
혹은 잘못하면 탱자를 만지작거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결국 현실이고, 그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주의 비상구를 찾습니다.
때로는 귤을 쥐며 달을 꿈꾸고,
때로는 달을 바라보며 현실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문득 깨닫습니다.
손바닥 안의 귤이야말로,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유일한 달이라는 것을.
삶은 그렇게 흐릅니다.
우리는 데구루루 굴러오는 날들 속에서,
서로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달이 되고,
서로의 손 안에서 작은 우주가 됩니다.
비록 우리는 저 달로 사라질 수 없지만,
이 자리에서 또 하나의 귤을 주워 듭니다.
이 귤이 탱자가 아니길 바라며
노란 빛이 손바닥 위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그 안에서 희미한 문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