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를 비우고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는 거룩한 훈련
오늘날 현대교회 안에서 “금식”이라는 단어는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과거 한국교회는 금요철야와 새벽기도, 그리고 금식기도를 통해 뜨겁게 하나님을 찾았지만, 오늘의 시대는 편리함과 풍요 속에서 영적 절제를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넘치는 음식과 정보 속에 살아가지만, 정작 영혼은 공허함과 메마름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John Wesley가 강조했던 “은총의 수단(Means of Grace)”으로서의 금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웨슬리에게 금식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위한 영적 통로였으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거룩한 훈련이었다. 그는 기도와 말씀, 성만찬과 함께 금식을 매우 중요한 은총의 수단으로 이해하였다. 특별히 웨슬리는 금식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영혼이 하나님께 더욱 민감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의 교회는 다시금 금식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끊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회복하는 영적 결단이기 때문이다.
1. 웨슬리에게 금식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갈망하는 은총의 수단이었다.
웨슬리는 금식을 매우 진지하게 실천하였다. 그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따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하는 삶을 지속하였으며, 감리교 목회자들에게도 이를 권면하였다. 실제로 웨슬리는 금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목회자 후보자들에게 강한 경각심을 주기도 했다.
왜 웨슬리는 금식을 그렇게 강조했는가? 그것은 금식이 인간의 공로를 쌓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게 만드는 영적 훈련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웨슬리에게 은총의 수단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은혜를 전달하시는 통로였다. 성경읽기, 기도, 예배, 성만찬, 찬양, 그리고 금식은 모두 하나님께 나아가는 거룩한 길이었다. 특별히 금식은 육체의 욕망을 잠시 내려놓음으로 영혼이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금식은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만든다. 인간은 배부르면 쉽게 하나님을 잊는다. 그러나 배고픔은 인간 존재의 한계를 느끼게 하며, 동시에 하나님만이 참된 만족이심을 깨닫게 만든다. 웨슬리는 바로 이 점을 깊이 통찰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음식뿐 아니라 미디어, 소비문화, 쾌락, 바쁜 일정들이 우리의 영혼을 끊임없이 채우고 있다. 그러나 영혼은 세상의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그래서 금식은 단순히 먹지 않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의 소음을 줄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영적 행위가 되는 것이다.
금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욕망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게 된다. 육체의 만족보다 영혼의 충만함을 추구하게 된다. 웨슬리는 바로 이러한 영적 갈망의 회복을 위해 금식을 강조했던 것이다.
2. 금식은 회개와 성결을 이루는 거룩한 훈련이었다.
웨슬리는 성화(Sanctification)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단순히 죄 사함을 받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삶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금식은 이러한 성결의 삶을 위한 중요한 훈련이었다.
성경을 보면 금식은 언제나 회개와 연결되어 있다. 다윗은 회개하며 금식했고, 느헤미야는 민족의 죄를 붙들고 금식했으며,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금식하셨다. 초대교회 역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웨슬리는 이러한 성경적 전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금식이 인간의 교만을 낮추고 죄를 깨닫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돌아보게 만든다고 보았다.
특별히 웨슬리는 금식을 외적인 형식으로만 행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그는 바리새인처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을 비판했다. 금식의 핵심은 굶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 역시 형식에 머물 위험이 있다. 예배를 드리지만 회개가 없고, 기도는 하지만 변화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금식은 우리를 다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세운다.
금식은 자신의 죄를 직면하게 만든다. 또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웨슬리는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금식을 통해 더욱 깊은 회개와 성결의 삶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진정한 금식은 우리를 더 거룩하게 만든다. 더 겸손하게 만든다. 그리고 더 사랑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금식은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가는 영적 훈련이기 때문이다.
3. 금식은 이웃 사랑과 영적 부흥으로 이어져야 한다.
웨슬리는 금식을 결코 개인적 경건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는 참된 금식은 반드시 이웃 사랑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이사야 58장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단순히 머리를 숙이고 굶는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자를 자유하게 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는 삶이라는 것이다.
웨슬리는 실제로 매우 검소한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이 절약한 돈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금식은 단지 자신의 영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민감해지는 사랑의 실천이었다.
오늘날 금식이 회복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사회는 풍요롭지만 동시에 매우 이기적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만족에는 민감하지만, 이웃의 아픔에는 무감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참된 금식은 우리의 눈을 이웃에게로 향하게 만든다.
배고픔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이의 배고픔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섬길 여유를 갖게 된다. 웨슬리는 금식이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웨슬리는 영적 부흥의 현장마다 금식과 기도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경험하였다. 인간의 힘으로는 교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프로그램과 기술만으로는 영혼을 살릴 수 없다. 참된 부흥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무릎에서 시작된다.
오늘의 교회는 다시금 영적 갈망을 회복해야 한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한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갈망이 필요하다. 웨슬리가 강조했던 금식의 영성은 바로 이 갈망을 회복하게 만든다.
금식은 우리를 비우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 비움은 공허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 빈자리를 은혜로 채우신다. 육체를 절제할 때 영혼은 더욱 깨어나고, 세상의 소리가 줄어들 때 하나님의 음성이 더욱 선명하게 들려온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영적 부흥을 이루기 원하신다. 웨슬리가 걸어갔던 은총의 수단으로서의 금식의 길은, 여전히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깊은 도전과 은혜의 길이 되고 있다.
글로벌 웨슬리 목회 연구소(The Global Wesley Center)
이사장 이현식 목사, 사무총장 곽일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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