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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9:37-43) 믿음이 없고 패역한 이 세대
누가복음 강해 (53)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 새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눅9:37-43)
변화산 이후 첫 말씀
예수님은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 천국에 있던 모세와 엘리야를 불러 내려서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크게 감격한 베드로가 초막 셋을 짓고 그곳에 계속 남아 있고 싶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구름이 덮이면서 당신의 아들인 예수의 말을 들으라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직후 구름이 걷히고서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의 눈앞에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기에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산 밑으로 내려왔습니다. 이튿날에 내려왔다고 하므로 변화산 사건이 그 전날 밤에 일어난 것 같으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 시간대가 언제였던 산 위에 임재한 하나님의 영광은 너무나 신비하고 찬란했습니다.
세 제자로선 크게 아쉬웠어도 두 가지 사항은 확실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첫째는 스승 예수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넘어서 하나님과 방불한 신적 존재라는 것과, 둘째는 그래서 성부 하나님의 지시대로 스승의 말을 잘 들으면 자기들도 모세와 엘리야처럼 천국 영광에 동참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스승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도 변화산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산 밑에서 처음으로 들은 스승의 말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라는 꾸중이었습니다. 산 위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에 관한 말씀인지라 세 제자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 전까지 스승의 가르침을 잘 따라야지 굳게 다짐했던 터라 크게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생략되었지만 헬라 원문에는 그 말씀의 맨 앞에 ‘오!’라는 감탄사가 붙어 있습니다. 단순히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내뱉은 꾸중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탄식하며 잘못을 깨우쳐 주려는 의도로 책망한 것입니다. 전후 문맥을 잘 살피면 변화산에서 들었던 성부 하나님의 지시와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세 제자가 산 위에서 느꼈던 감격과 새롭게 결단한 마음을 더더욱 온전히 간직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실패한 제자들
예수님 일행이 산에서 내려오자 큰 무리가 맞았습니다. 기껏 이틀 정도 사역을 쉬신 셈인데 그동안에도 주님께 치유와 가르침을 받으려고 많은 사람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나서서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외아들이 귀신에게 속수무책으로 계속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가슴은 찢어졌을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세리 마태는 간질 들렸다고 했으나(마17:15), 의사 누가는 귀신 들렸다고 합니다. 마태가 의학 상식이 모자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주님이 온갖 병자를 고치셨다고 설명하면서 귀신 들린 자와 간질하는 자로 구분했습니다.(마4:24) 고대에도 그 둘은 성격이 다른 질병이라는 지식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적으로 밝혀졌듯이, 간질은 뇌의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긴 정신 질환입니다. 반면에 귀신 들린 것은 악령이 사람의 영혼에 자리 잡고서 제 멋대로 그 지정의를 조종 농락하는 영적 현상입니다.
마태와 누가 중에서 누가 더 정확하게 진단했는지 따질 계제가 아닙니다. 모든 책은, 과학 실험 보고서가 아닌 이상, 사건이 발생한 훨씬 뒤에 기록됩니다. 그 간격이 더 벌어질 수밖에 없는 고대에는 저자의 기억에만 의존했는데, 두 사람의 기억에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다 간질과 귀신 들림의 증상이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너무 비슷해서 쉽게 분별하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환자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던 아이의 부모가 귀신 들렸다고 말했습니다. 주님도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기에” 간질이 아니라 귀신 들린 것이 분명합니다.
아이의 부모는 주님이 변화산으로 올라간 사이에 주님의 제자들에게 아들의 치유를 부탁했으나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지 않았던 까닭은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낸다는 소문을 이미 들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 얼마 전에 주님은 열두 사도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전도 여행을 내보냈습니다. 그때 분봉왕 헤롯마저 심히 당황할 정도로 축사와 치유의 이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눅9:1-9)
이 사람은 제자들이 쉽게 귀신을 쫓아내 주리라 믿었으나 실패하자, 주님이 산에서 내려오길 목을 빼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전처럼 더러운 귀신을 말씀 한마디로 꾸짖어서 쫓아냈습니다. 아이 부모는 크게 감사하며 돌아갔을 것이나, 문제는 제자들입니다. 전에는 전도 팀 두 명만으로도 귀신을 쫓았는데 이번에는 아홉 명이 함께 힘을 모았어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누가는 생략했으나, 마태와 마가는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해진 제자들이 주님께 자기들은 왜 쫓아내지 못했는지 질문했다고 증언합니다. 마태는 주님이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라고(마17:20), 마가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라고(막9:29) 대답했다고 기록합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주님의 꾸중은 세 복음서가 다 기록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제자들이 아예 기도하지 않았거나, 기도를 했어도 믿음이 없거나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도하지 않았다면 주님처럼 야단쳤으나 통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간이 섣불리 예수님 흉내를 내려 해선 안 됩니다. 물질계에 제한된 인간이 사탄이나 귀신 같은 영적 세력과 일대일로 맞서기는 아주 버겁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런 영적 세력은 삼위 하나님이 주관 통치하십니다. 신자 혼자만의 힘으로는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유형 기도 외에 쫓을 수 없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귀신을 쫓아내려면 목사님들, 그것도 축사의 경험이 많은 분들이 함께 전심으로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더러운 흑암의 세력과 절대 타협 조정 포용해선 안 되며, 단호하게 대적하며 거부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 중에 때로는 명령형으로 물러가라고 야단쳐도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귀신에게 명령만 해선 안 됩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는 신자가 귀신을 두려워해선 안 되며 사탄은 절대로 하나님의 맞상대가 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사탄과 그 졸개인 귀신들도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유대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온전한 믿음도 없이 제힘으로 귀신과 맞서려다가 거꾸로 귀신들에게 크게 혼이 났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19:13-17) 지금 주님이 모인 무리에게 믿음이 없다고 야단친 첫째가는 이유입니다. 모두가 귀신에게 겁을 먹은 것입니다.
패역한 세대
그런데 단순히 “믿음이 없다”라고 하지 않고 “패역한 세대”라고 덧붙였습니다. 주님은 귀신을 쫓지 못한 제자들이 아니라,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꾸짖었습니다. 당신께 받은 권세대로 축사를 잘 해냈던 전도 여행에서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그동안 너희 믿음이 얼마나 약해졌으면 귀신도 쫓아내지 못하느냐고 야단쳐야 합당합니다.
그 말씀은 우선 당신의 제자들은 당연히 포함되고, 아들의 아버지도 믿음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기도의 기본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방편입니다. 타인을 위해서 기도해 줄 때는 그 당사자도 순전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불신자의 경우는 하나님의 긴급하고도 특별한 계획이 있지 않은 한에는, 신자가 간절히 기도해 주어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 부모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실토하면서 주님께 도와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막9:24)
나아가 그 자리에 함께 모인 일반 백성도 해당됩니다. 주님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려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표적만 구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여러 번 야단쳤습니다. (눅11:29-32, 마12:38-42, 16:1-4) 세대라는 헬라어 ‘게네아’는 성경에선 동시대의 사람을 넘어서 종종 특정한 영적 성향을 가진 공동체를 지칭합니다. 주님은 사실상 이스라엘 전체를 두고 믿음이 없는 정도를 넘어서 패역하다고 야단친 것입니다.
주님은 공사역을 시작한 이래 당신의 신적인 권능과 은총을 넘치도록 베풀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도 전도 여행 중에 신유와 축사의 이적을 실현했습니다. 얼마 전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배불리 받아먹었습니다. 절대로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의 당신 되심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당신께서 실현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부인 거역하려는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을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패역한’의 헬라 원어 ‘다이스트라멘네’는 비틀어버리다, 왜곡시키다, 뒤집어 놓다 등의 뜻입니다. 문법적으로는 완료 수동 분사로 순간적인 행동이 아니라 이미 비틀려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거나 항거하는 행위를 넘어서는 차원입니다. 도덕적으로 이미 뒤틀려져 있고, 영적으로는 진리를 왜곡하여서, 항상 하나님의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상태입니다. 한마디로 그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품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사탄의 지배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종교적 열성을 품고 제사 드리고 기도해도 영적으로는 그런 사람일 뿐입니다.
시내산의 반역
제자들과 백성이 주님을 믿고 기다리고 있는데 너무 심한 말씀이 아닌지 조금 의아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은데, 똑같은 표현이 구약 성경에 나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비뚤어진 세대로다.”(신32:5) 이스라엘 일 세대는 가데스 바네야에서 불순종함으로써 광야에서 사십 년간 방황하다 죽었습니다. 이제 가나안을 점령할 신세대에게 모세가 율법을 다시 가르친 책이 신명기입니다. 그는 31장까지 율법을 다 가르친 후에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회상하면서, 이스라엘 구세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비뚤어진 세대였다고 단정 지었습니다. 지금 주님은 시 세대의 영적 상태가 출애굽의 패역했던 세대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 셈입니다. 잘 따져 보면 두 세대 사이의 결정적인 공통점 하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출애굽 세대의 가장 큰 잘못은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음란하게 숭배한 일일 것입니다. 모세는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께 거룩한 율법을 전수 받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후에 모든 족속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제사장 나라로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부터 열 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는 이적으로 당신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충분히 보여 주었습니다. 광야에서도 반석에서 물을 내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떠나 있는 기간이 지체되자 산 밑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은총과 권능은 금방 잊어버리고 애굽으로 돌아갈 궁리를 했습니다. 삭막하고 지루한 광야 생활이 싫어진 것입니다. 노예였어도 수시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애굽의 삶이 그리워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느니 우상을 섬기며 온갖 쾌락을 즐기는 세상 사람처럼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모든 사태를 알고 계신 여호와가 산 위의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두고 부패하여서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지칭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출32:7-9) 하나님은 그 한 번의 불순종과 악행을 탓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처음부터 목이 곧은 백성이라서 하나님인 당신을 버리고 스스로 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죄의 멍에를 뒤집어쓴 사탄의 종이라고 야단친 것입니다.
예수님도 지금 변화산에서 내려와선 백성들의 믿음이 시내산 금송아지 사건 때의 이스라엘 세대와 같다고 합니다. 그동안 기껏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고,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님 오시길 목매달고 기다렸습니다. 아직 성령을 충만히 받기 전이라 제자들의 믿음이 미숙해서 귀신을 쫓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땅이 꺼질 듯이 탄식하며 패역하다고 야단쳤습니다. 너무 심한 것 같으나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 타당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주님은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당신은 너희와 계속해서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항상 함께하던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언제 내려올지 몰라서 크게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을 위로해 줄 가시적인 신상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눈앞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나, 권능이나, 축복을 쥐고 있지 않으면 곧바로 믿음이 없어지는 세대였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어야만, 최소한 예측 정도는 할 수 있어야 겨우 안심하는 존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은 영계에 계시며 그 실체를 보면 바로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기들을 택하여서 큰 권능과 은총으로 보호 인도해 주신다는 진리도 이미 수없이 목격하고 체험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드는 동안에도 하늘에서 내려 주신 만나를 먹고 있었습니다. 뭔가 화끈한 축복은 없고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삶이 너무 싫었던 것입니다.
광대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신의 실체를 보여 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잘 알고 있는 대로 죄에 찌든 인간이 그분의 실체를 보면 그 자리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환경과 사건과 사람의 배후에서 당신만의 완벽한 뜻과 계획에 따라 보이지 않게 주관 통치하고 계십니다. 어리석은 인간으로선 그분의 무한한 지혜를 도저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 신묘한 섭리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므로 그분에 대한 순전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의 통치를 예측할 수 있게끔 미리 다 보여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컨대 출애굽 때, 홍해 바다를 건너야 하고 물과 먹을 것이 없는 광야로 들어가야 한다면, 애굽에 남겠다고 고집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출애굽 세대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상이 자기들 요구와 기호에 완전히 맞아떨어져야만, 가까스로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평을 거두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무사 무탈할 때만 잠시 믿는 척한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환난이 닥치면, 아니 너무 지루하기만 해도 곧바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거역했습니다. 근본적으로 그분을 순전하게 믿고 따를 생각은 없고 자신들의 비뚤어진, 즉 패역한 영혼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 이전까지는 모세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모든 것을 지시해 주니까 그나마 참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속히 내려오지 않으니까 급격히 불안해진 것입니다. 곧바로 여호와를 금송아지와, 모세를 아론과 대체해 버렸습니다. 산 위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거룩한 율법을 받는 사이에 산 아래에선 자기들만의 신을 새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해선 지금껏 믿고 따르던 ‘자기’라는 신에게 돌아간 것입니다.
구원 사역을 대행할 신자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첫째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이고, 둘째가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원죄로 인해 자기라는 절대적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마저 자기 요구에 따라 주기만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열심히 기도해도 고난이 수시로 덮치므로, 자기를 위로라도 하려고 뭔가 눈에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서 섬깁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은 너무 머니까 가까운 곳에 산당을 만들어 섬겼던 까닭입니다. 현대인들은 미신 같은 우상은 만들지 않아도 자기에게 너무 소중하기에 하나님을 대체할 만한 가시적인 대상을 붙들고 삽니다. 자기를 치장할 수 있는 재물, 권력, 자식, 건강, 지성, 명예 등을 최대한 취득하려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습니다.
지금 변화산 아래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어도 예수님이 리더인 베드로 포함해 세 제자를 데리고 잠시 출타했습니다. 남아 있는 아홉 명의 제자로선 주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어딘가 허전하고 불안해져서 귀신을 쫓아낼 자신이 없어진 것입니다. 처음으로 전도 여행에 나갔을 때는 스승을 대신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잘 쫓아내었습니다. 성령의 권능에 충만해서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전심으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는 특별히 어려운 일도 없고 스승이 항상 바로 곁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자라지 않고 그저 무사 무탈하게 지내며 게을러진 것입니다.
산 위의 세 제자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초막 셋을 짓고서 그곳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영영 지내고 싶다는 뜻도 눈에 보이는 대상을 섬기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가만히 있어도 주님이 다 알아서 해줄 것이므로 세상에 그런 낙원이 없습니다. 표적만 구하는 음란한 세대라고 주님이 야단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시적 증거, 이왕이면 권능이 넘치도록 실현되어 자기들을 여유롭게 만들어 주는 그런 축복만 찾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믿고 따르는 이스라엘마저 그분을 자기들 요구대로 따르는 우상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위로받고 싶은 사항만 그분께 요구하지,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순종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변화산에서 주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당신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것, 즉 이 땅에서 떠나 하늘로 다시 올라가는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제 곧 십자가 구원 사역을 마치고 천국 보좌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베드로가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자 처음으로 당신의 수난을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가르쳤고, 나아가 당신을 위해서 죽으면 구원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미 그렇게 순종해서 죽었어도 영생을 얻은 증거로 모세와 엘리야를 하늘에서 불려 내렸습니다. 주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부터 당신이 이 땅을 떠난 후에 제자들이 당신의 사역을 대신해서 헌신하도록 본격적으로 제자 훈련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산위의 세 제자는 그곳에 계속 남자고 요구했고, 산밑의 제자들은 겨우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당신이 함께하지 않는다고 이전에 받은 성령의 권능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으로선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해야 하겠느냐고 탄식 섞인 꾸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 예수의 말을 들으라고 지시한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고 나면 그 십자가를 너희들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승 없이도 너희가 이전의 너희처럼 원죄에 찌든 세상 사람들의 영적 스승이자, 구원으로 초대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은총과 권능이 눈에 보이도록 실현되지 않으면 곧바로 하나님을 의심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인간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정확히 보여 알게 하려고 성자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변화산에서도 여호와를 보지 못해도 그분의 말씀만 붙들고서 자기 소명을 완수한 모범으로 모세와 엘리야를 세 제자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절대로 의심 불안해하지 말라는 뜻이었고, 그래서 앞으로 스승의 말을 잘 들으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당신이 어서 빨리 십자가에 제물로 바쳐지고 부활하여서 승천해야겠다고 서두르고 계십니다. 그때까지는 당신 혼자서 구원 사역을 감당할 것이나, 승천 후로는 제자들로 당신과 똑같은 십자가를 지고서 그 사역을 대신 감당케 해야 합니다. 모든 족속으로 당신의 자녀로 만들어야 하므로 모든 제자에게 성령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가 제자를 길러서 누룩이 온 반죽에 번지듯이 거룩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편만하게 확장되기만 간절히 바랐습니다.
반면에 산 밑에는 모든 인간이 사탄에게 미혹되어 자기만 높이는 죄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백성은 그렇다 쳐도 제자들마저 당신의 가르침을 전혀 알지 못했고, 수제자 베드로도 자기가 하는 말의 뜻도 모르고 있습니다. 제자들도 원죄에 묶여서 자신들의 형통과 출세만 바랐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탄식하며 야단친 까닭도, 어폐가 있지만, 아주 큰 조급증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장되게 말해서 주님이 십자가로 가기 전에 화병이 걸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마지막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가?
지금 고대 이스라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진리는 물론 시내산과 변화산을 비교해서 주님의 온전한 뜻을 정확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자기 인생을 헌신하겠다고 세례식에서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성령이 내주하는 거룩한 전이자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 구원 사역을 마치고 승천한 후에 성령을 보낸 뜻도, 당신이 없이도 당신을 대신하여 당신의 사역을 이어받아 실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땅끝까지 끝 날까지 당신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서 신자들의 앞과 뒤에서 거룩하게 역사해 주신다고 보장한 것입니다.
신자는 본문과 정반대로 주님께 ‘믿음이 충만한 의로운 세대’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없이도 주님과 같은 사역을 행할 수 있어야 하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순전한 믿음으로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귀신도 쫓을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사역하면 더 큰 권능이 나타납니다.
주님은 분명히 너희들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약속했습니다. 사탄과 죄악에 포로 된 자를 풀어주고, 대신에 그 사탄과 죄악을 묶으라는 소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정말로 열심히 충성한다면 그 약속이 실현 안 될 리 없습니다. 최소한 신자 자신부터 사탄과 죄악의 시험과 유혹을 너끈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을 진지하게 다시 점검해 봅시다. 현재 이런 권능을 실제로 실현하고 있습니까? 최소한 이런 진리를 알고는 있습니까? 혹시라도 신앙생활의 목적이 무사 무탈한 인생은 아닌지요? 믿음이 좋아져서 내 삶을 내가 통제 할 수 있으면, 최소한 예측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여기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스스로 신이 되겠다는 교만이자 탐욕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은 갈 바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본토 친척 아비 집까지 버렸습니다.
눈에 보였던 변화산의 장엄한 영광과 골고다 언덕의 무한한 은혜는 승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의 권능과 은총은 기록된 당신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도록 성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주님이 명한 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면 모세와 엘리야와 똑같은 영광을 얻습니다. 만약 풍족하고 고통 없는 삶이 소원이라면 그 길은 아주 간단한데,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로 다시 돌아가면 됩니다.
여호와는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당신과 대체했음에도, 당신의 언약을 취소하지 않고 이스라엘 신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게 해주었습니다. 변화산 밑에서 믿음이 없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어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 앞에 당신을 대신할 제사장으로 세워주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해도 주님의 말씀을 순전히 따르면, 사도들 이상으로 당신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렇게 하라고 구원해 준 것입니다. 신자라면 삶의 모든 차원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탄과 죄악을 묶고서 천국 구원을 여는 열쇠를 사용하고 있어야 합니다.
(10/4/2026) 박진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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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지기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 카페운영도 포기해야 할 형편입니다
요즘은 끼니도 거르며 하루하루 겨우 살고 있습니다
예수코리아 카페에서 알려드리는 글입니다
도움을 주셔야만 문서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한분이라도 도와주시길 거듭 부탁드립니다..
카페에 후원이 필요합니다 카페지기는 아주 어렵게
지냅니다 투병중에 생활고로 어렵습니다
도와주신 분들께 박경옥 전도사가 하루 두번
기도해드리고 있습니다 다
먹을것도 없습니다 한 분이라도 도와주셔서...
용기릏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후원이 없다 보니 공과금도 못내고 먹을것도 못삽니다
1만원 이라도 도와주시면 카페지기는 큰힘을 얻습니다
건강문제로 박스나 고물도 줍지 못합니다
앿값이 없는데 먹을것을 사야합니다 오늘은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용기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먹을것도 못사고 공과금도 밀리고 치료비도 없습니다
공지글에 수급자에서 탈락되는 이유를 올렸습니다
지병으로 투병하며 카페일로 소일하며 지냅니다 수입이 전혀 없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 코리아 카페를 도와주실분을 기다리고 작정기도합니다 매월
자동이체 정기후원 회원님이 계셔야 카페를 운영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이체 회원이 없습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카페후원계좌-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카페후원계좌-농협 233012-51-024388 예금주.황종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