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 김행도 부부
<박경리 약력>
☻ 1926년 10월 28일 경남 통영시 문화동 328번지에서 출생
☻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 졸업
☻ 1946년 1월 30일 김행도 씨와 결혼. 딸 김영주 출생
☻ 2008년 5월 5일 현대아산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 금관문화훈장 추서
☻ 2008년 5월 9일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1426-6(양지농장)에 영면
☻ 주요작품 (계산, 김약국의 딸들, 토지)
< 남편 김행도>
☻ 1923년 거제시 사등면 지석에서 출생, 일본 중앙대학교를 졸업
☻ 1948년 인천 전매청 관리인 근무
☻ 1950년 6.25 전쟁 시 서울에서 남로당 활동 참가 추정. 死刑
김행도(김해김씨70대손)씨는 거제시 사등면 지석에서 대체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본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전매국(현 전매청)에 근무한다. 1946년 박경리씨와 결혼하여 인천에서 결혼생활을 한다.
행방되기 전 우리나라는 혼란하여 識者들은 대부분 좌익활동(남로당)에 가담하게 된다. 김행도씨도 인천 주안 염전농장에 근무하면서 노동자들과 같이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좌익사상을 갖게 되고 합류하게 된다. 인천 금곡동에서 근무할 때 큰아들을 낳고 부인 박경리씨는 작은 책방(배다리)운영한다. 1949년 직장을 서울 흑석동으로 옮긴 후 부인 박경리씨는 서울수도사범대학을 졸업한다. 1950년 황해도 연안여중 교사가 되었지만 전쟁으로 6개월만에 교사생활을 접는다. 김행도씨는 6.25당시 부역혐의로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사형을 당한다. 이때부터 김행도 생은 마감되고 박경리씨의 인생행로는 고행의 길로 들어선다.
김행도씨는 큰아들을 낳았으나 죽고, 그 뒤 외동딸 김영주를 두었다. 김영주는 1973년 시인 김지하와 결혼하였다. 남편 김해도씨는 박경리씨에 묻혀 별로 알려진게 없다. 김행도씨는 김해김씨 사군파 70대손으로 지석에서 대체적으로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일본 중앙대학교를 나온 거제의 인제였다. 해방 전 후 좌우갈등의 희생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외동딸 영주씨가 통영여중에 다니던 때는 사등면 지석리의 본가와는 왕래하며 살았다고 하는데 통영을 떠나 강원도 원주로 이사를 가게 됨으로 연을 끊게 된다. 박경리씨가 媤家와 연을 끊게 된 이유는 잘 알 수 없으나 남편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중 본가에서 적극적인 구제활동을 벌리지 않는 이유라고 하나 더 이상 알 길이 없다.
박경리씨는 원주에 박경리 토지문학관이 있으며, 통영에는 박경리 기념관과 묘소가 있다. 그리고 하동 앙양에는 박경리 토지문학관이 있다. 그러나 그의 남편 김행도씨의 묘소는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지석에 있겠지~~~.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태어나 불행한 생을 마친 박경리씨의 남편 김행도씨를 생각해 본다. 만약에 살아 있었더라면 국회의원을 하고 남음이 있었겠지~~~~.
박경리&김행도 결혼사진
통영 박경리 공원에 있느 박경리 기념관
첫댓글 고.박경리 작가님을 추모하며...
좋은 내용 잘~ 봤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소설 속의 최참판댁을 평사리 지어놓고 요즘은 입장료까지 받고 있으며,
일반 관광객들은 옛날에 원래 최참판댁이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동군수님과 악양면장님! 머리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