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머리말 2. 정부의 전통문화 정책 3. 학교의 전통문화 교육-서예과와 관련하여 4. 맺는말 |
1. 머리말
그동안 한국의 서예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은 변화와 발전을 하여 왔다. 학술과 예술로 구분되어 많은 학술연구자가 배출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서예가의 수적인 팽창과 서예의 대중화를 위하여도 노력해 왔다. 한국교육 당국의 서예에 대한 인식 검토를 하기에 앞서 서예와 한국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첫째, 취미와 직업이 구분되어야 한다. 둘째, 학술과 예술의 구분이 필요하다. 셋째, 전통서예(현대서예 포함된 붓과 먹, 화선지 사용한 예술적 표현)의 보호 육성과 실용서예(광고나 자막의 서체디자인 등의 상업서예를 포함)의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현재 문화관광부의 전통예술계승 보호육성과 교육인적자원부의 교육정책은 현실사회와 무엇이 얼마만큼 부합되며 부합되지 못하는가? 즉 정부는 사회에 필요한 점에 초점을 맞추어 정책입안을 기획하고 있는가? 학교는 사회에서 필요한 것을 지도하고 있는가?
미래의 전통문화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전통서예가 계승되어야 하겠고, 현대의 상용화와 관련하여 서체개발, 서체 디자인 등의 실용서예의 개발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어떠하였는가? 학교교육과 관련하여 지적하고 확인하여 방향설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정책입안과 학교의 교육정책, 사회의 상용화와 인식변화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 정부의 전통문화 정책
전통문화와 관련하여 정부의 정책은 어떠한가. 음악(국악), 미술(서예와 한국화), 공예(전통공예), 건축(고건축), 조각(불상조각) 등의 분야를 살펴보면 정책과 예산에 있어서 매우 불균형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정책에 있어서 문화관광부의 정책과 교육인적자원부의 정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문화관광부의 전통문화와 전통예술에 관련된 분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음악(국악), 미술(서예와 한국화), 공예(전통공예), 건축(고건축), 조각(불상조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 한국미술 정책은 국악과 고건축, 전통공예 등에 치중되어 정책이 입안되며 예산분배에 있어서도 전적으로 이들 분야에 지원되는 것이 현실이다. 즉 서예와 한국화는 철저하게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현안에서 배제되었다.
전통문화로 지정, 보호육성되는 사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시, 명절관련 82건, 전통건축 153건, 전통공예 66건, 전통놀이 136건, 전통무용 227건, 전통문화재 5485건, 전통음악 441건, 무속신앙 19건 등으로 국가에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다. 문화관관부 예술국 전통예술팀의 업무규정를 보면 대부분 국악에 치우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예술 진흥 종합계획의 수립 및 시행
전통예술의 원형 보존·개발 및 보급에 관한 사항
전통예술 분야의 창작활동 및 관련 단체의 지원
전통예술의 산업화·과학화에 관한 사항 전통예술경연대회에 관한 사항
전통예술의 국제 교류 및 해외 진출에 관한 사항
전통예술의 대중화·세계화에 관한 사항
전통예술에 관한 조사 및 연구
국립국악원 및 국악중고등학교에 관련된 업무
담당업무에 있어서도 전통예술의 명분 아래 모두 국악에 편중되어 전통예술팀이 아니라 국악팀이라고 해야 할 정도이다. 담당업무를 보면 다음과 같다.
담당업무: 김진곤 팀장
전통예술팀 업무총괄
홍성운 사무관
ㅇ 전통예술 관련 법·제도 개선 및 인프라 구축
ㅇ 전통예술 창작활동 및 관련 단체 지원
ㅇ 전통예술 해외진출 지원
ㅇ 국립국악원 지도 감독
김경래 직원
규제 개혁 및 자체규제개혁위원회 운영, 대한민국 종교예술제 지원, 백두대간 보호 관련 사항, 정책연구용역심의위원회 관련 사항, 전통사찰 관광안내 정보화 사업 지원
주재근 직원
전통예술의 원형 보존·개발·보급 및 조사연구, 전통예술 종합정보센터(아카이브) 운영 지원, 전통예술의 산업화·과학화, 전통예술 교육 활성화 및 고용 창출, 생활국악곡(의식음악 등) 개발·보급 지원, 해외입양아 국악교실 운영, 궁중음악 고궁공연
박상희 직원
ㅇ 전통예술 국악캠프, 찾아가는 프로그램 지원
ㅇ 국악방송 지원
ㅇ 전통연희 활성화 지원
ㅇ 야외상설공연 및 국악창작곡 개발
ㅇ 계기별특별공연지원 ㅇ 국악 중고등학교 지원
이와 같이 서예와 한국화는 예술팀의 업무규정3)과 문화예술교육팀 업무규정4)에도 명시되어있지 않다.
그런데다가 전통공예부문은 한국전통문화학교5)에서 학칙6)으로 “한국전통문화학교는 전통문화전문인을 양성하기 위한 이론교육과 체계적인 실기교육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라고 정하여 전문교육이 전수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예와 한국화는 없다. 여기서도 서예와 한국화는 배제되었다. 예산 분배에 있어서도 국악에 치중되고, 고건축의 복원에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서예와 한국화는 전통예술이지만 어느 곳에도 들어가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술의 전당 서예관의 업무내용을 보면 서예관은 예술사업국 전시사업팀의 소속이다. 그 팀별 업무를 살펴보면 “① 미술관, 서예관 전시기획 ② 미술관, 서예관 대관관리 ③ 미술관, 서예관 기획전시 홍보 ④ 전시장 및 부속공간관리 ⑤ 소장작품 관리 및 수장고 운영” 등으로 전시위주로 운영되고 전통문화 혹은 전통예술의 계승이라는 의도는 전혀 없다. 운영에 관하여 이사진 구성7)을 보아도 현대음악과 현대무용에 치우쳐 있고 전통예술과 관련하여 특히 서예와 한국화관련 이사는 단 한명도 없다. 이는 정책의 편협성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것이 서예와 한국화에 관련된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의 예술정책 전부이다.
교육인적자원부의 <교육기본법>9조8)에 “②학교는 공공성을 가지며, 학생의 교육 외에 학술과 문화적 전통을 유지·발전시키고 주민의 평생교육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화적 전통의 유지 발전을 원한다면 교육체계의 개편이 불가피하다. 우선 교사 임용배정을 바꿔 미술시간에 서양화만을 교육할 것이 아니라 서예와 한국화의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본분인 전통예술을 망각하고 서양의 미술을 우선시한다면 <교육기본법>9조 ②항에 위배되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의 미술(서예와 한국화) 교육정책은 여전히 서양화전공자가 교육하거나 아니면 서예나 한국화의 교육은 전혀 없는 것이 실정이다. <교육기본법>2장 <교육당사자> ②항9)에 “학교교육에서 교원의 전문성은 존중되며, 교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는 우대되고 그 신분은 보장된다.”라고 명시되어있다. 서양화전공자가 서예와 한국화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은 분명 위법을 하고 있는 것이며 교원의 전문성을 무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문화의 정체성확립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이러한 정책은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것은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이어온 인적자원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다. 이러한 정책의 부재는 기본법과 규정을 무시한 정책이고, <인적자원개발기본법>10) 에도 어긋나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정부의 2007년도 문화예술 교육의 세입세출 예산안을 살펴보면,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문화예술 교육 사업지원은 ‘06년 예산 보다 ’07년 예산이 59.5%로 증가하여 21,352백만원이 지원되고 있다.
내 용 |
‘06년 예산 |
‘07년 예산 |
증감 |
% |
문화예술 교육활성화 |
13,385 |
21,352 |
7,967 |
59.5 |
문화에술 교육사업지원 가. 학교의 문화예술 교육활성화 나. 학교의 문화예술 교육활성화(지자체) 다. 문화예술 기반조성 한국 문화예술 교육 진흥원 지원 |
12,080 |
19,963 |
7,883 |
65.3 |
6,680 |
11,990 |
5,310 |
79.5 | |
3,700 |
7,440 |
3,740 |
101.1 | |
1,700 |
533 |
▵1,167 |
▵68.6 | |
1,305 |
1,369 |
84 |
6.4 |
<표1> 문화예술 교육활성화(예산안)
<표2>에서 보면 문화예술 역량강화예산안은 문학 예술단체 지원 ‘06년예산보다 ’07년예산이 5.6%증가하여 29,327백만원이고, 전통예술 육성은 ‘06년 예산은 책정이 되지 않았고 ’07년 예산에 순증되어 66억원으로 편성되고 있다.
이와 같이 서예, 한국화에 대한 예산분배가 전무함을 알 수 있다.
내 용 |
‘06년 예산 |
‘07년예산 |
증감 |
% |
문학예술단체지원 |
27,780 |
29,327 |
1,547 |
5.6 |
가.한국문학번역원 |
3,956 |
4,539 |
583 |
14.7 |
나.예술의전당 지원 |
5,934 |
6,052 |
118 |
2.0 |
다.정동극장지원 |
3,545 |
3,560 |
15 |
0.4 |
라.국립오페라단운영 |
4,158 |
4,741 |
583 |
14.0 |
마.국립발레단 운영 |
4,032 |
4,113 |
81 |
2.0 |
바.국립합창단운영 |
2,553 |
2,604 |
51 |
2.0 |
사.서울예술단운영 |
802 |
818 |
16 |
2.0 |
아.디자인미술관운영 |
1,500 |
1,600 |
100 |
6.7 |
자.예술의전당교향악단운영 |
1,300 |
1,300 |
0 |
0.0 |
전통예술 육성 |
0 |
6,600 |
6,600 |
순증 |
가.전통예술의원형보존및 창작활동지원(신) |
0 |
3,600 |
3,600 |
순증 |
나.전통예술의대중화및산업화(신) |
0 |
2,500 |
2,500 |
순증 |
다.전통예술한류확산지원 |
0 |
500 |
500 |
순증 |
<표2> 문화예술 역량 강화(예산안)
예술장르별 정책지원과 문화예술 전문인력양성, 예술의 산업적 발전지원에도 서예술은 도외시 되고 있다. 이것은 기본법과 규정을 무시한채 배정된 예산편성임을 알 수 있다.
3. 학교의 전통문화교육-서예과와 관련하여
서예교육의 당위성에 대하여 동양의 전통문화 중에서도 서예교육은 가장 중요한 고유문화이다. 필묵에 의하여 비롯되는 정신문화, 전통문화, 한자권역문화 등은 동양문화의 근간을 이루었다. 서양문화의 유입으로 문화의 근간이 흔들이고 있다. 얼빠진 민족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고유문화는 반듯이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민족의 얼은 바로 문화의 창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서예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1) 정신문화
서예는 ‘Hand Writting’이나 ‘Calligraphy’의 개념인 ‘쓰기예술’이나 ‘서체예술’만이 아니다. ‘서예’에는 서양과 다른 정신예술과 정신문화가 있다. 서양에서 바라보는 단순한 시각예술만이 아니라 내용 속에 포함된 정신문화가 있다. 한구절의 명언은 역사를 좌우하고, 개인의 인생을 바꾼다. 당 현종이 왕희지의 난정서를 왜 무덤에 까지 가지고 갈 정도로 애상하였는가를 알아야 한다. 서예에는 이러한 정신문화가 있다.
2) 전통문화
서예는 전통문화와 관련하여 인성과 심성을 구성한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기초교육은 사고의 기준을 설정해주는 요인이 된다. 각국마다 왜 전통문화를 주창하는지를 알 수 있다. 현재는 전통을 중요시하고 미래는 전통문화에 기초해야 한다. 요즘 얼굴만 한국사람이지 문화적 사고와 판단의 기준은 서구인이다. 이 누구의 책임인가. 전통문화를 외면한 교육자의 책임이 아닌가. 전통문화인 서예는 한국인의 인성과 심성을 한국적인 한국인으로 만들어준다. 곧고 청렴한 선비문화의 정신이 바로 서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한자권역문화
국제적으로 영어가 주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자문화권에서 한문교육을 소홀히한다면 우리 한국 젊은이의 미래는 반감할 것이다. 현대는 다국적 언어의 시대이다. 그 중에도 한자교육의 필요성과 서예를 통한 동양문화의 계승은 주체적인 민족의 앞날을 결정할 수 있다. 서예에는 향수가 있다. 그 향수는 조상과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꿈이다.
“서예, 「術」인가,「學」인가?”
‘書藝術’은 ‘書藝 術’이 아니라 ‘書 藝術’이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면 ‘書藝 術’은 ‘서예를 하는 행위의 기술․기능에 해당하는 것이다. 서예는 기술이나 기능이 아니다. ‘書 藝術’은 ‘서법예술’의 준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의 ‘서법’이나 일본의 ‘서도’는 ‘글씨 쓰는법’이라는 같은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서예’는 ‘서법예술’이라는 의미로 ‘書 藝術’에 해당하는 것이다. 용어의 정리가 필요하다.
“서예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여 21세기의 문자 조형을 서예과가 나서서 책임을 져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최소한 모든 ‘손글씨’는 다 서예의 범주 안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게 대두하고 있다. 서예를 실용미술과 근접한 ‘기술’로 이해하고 그러한 기술개발에 대학 서예과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의견과, “서예는 역시 서예일 뿐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거나 변질되어도 안 된다는 생각아래 서예의 본래 속성인 인문학적인 요소들을 적극 살리고 그러한 인문학에 바탕을 둔 전통 예술정신을 서예를 통하여 구현해 나감으로써 서예의 본래 면목을 이 시대에 부활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서예발전을 도모하는 길”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반영이 필요하다. 예술적 감각의 서예 이미지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언제나 붓과 먹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이런 점과 관련하여 서체미학의 개발과 실용미술과의 관계를 견지하고 서예와 다른 학제간의 관계는 존립하는 필수 조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학술로써의 서예와 예술로써의 서예로 나눌 수 있다. 학술로써의 서예는 인문학적인 범위의 역사적, 문헌학적, 동양미학적인 분야로 구성할 수 있다. 예술로써의 서예는 예술적, 현대적인 실용미술과의 관계를 말 할 수 있다. 서예계는 예술과 학술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 예술이든 학술이든 서예를 전공하기위한 난제다. 예술을 하기위해서도 학술을 모르면 유치한 작품을 면하지 못하고, 학술을 하더라도 붓을 잡고 쓸 줄 모르면 뜬구름잡는 식에 불과하다. 이점이 서예의 어려운 점이다. 서예과가 미술대에 있다는 것은 예술전공을 의미하고, 서예과가 인문대에 있다는 것은 학술전공을 의미한다. 그러나 예술대에 있던 인문대에 있던 서예를 하기위해서는 양자를 모두 갖추어야 하는 점이 어렵다. 이점이 다른 회화와 구별되는 점이다.
학제간의 문제에 있어서도 학제간의 영역이 없어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학문은 한 가지 학문만이 우뚝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수 없다. 모든 학문이 서로 깊이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예는 문자(한자)를 대상으로 삼아 그 미적 요소와 문학적 함의를 동시에 연구하고 또 표현한다는 점에서 중문학이나 한문학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그 외에 문자학, 서지학, 금석학, 역사학 등과도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학 서예과가 어떠한 방향을 지향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인접학문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특히 ‘통합학문’이나 ‘통섭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제 간 공동연구를 절실히 공감하고, 또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는 현재의 학계분위기와 풍토로 볼 때 서예과의 지향점 선택문제는 단순히 서예과만의 문제가 아니다.”는 점으로 지적된 것은 좋은 지적이다. 문제는 앞에서 거론한 학술과 예술의 구분이 명료하지 않은 데 있다. 그만큼 서예계의 작가는 안일한 예술세계를 추구하고 있고, 학술적인 면은 도외시하는 현실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다.
“어떠한 방향을 지향해야만 정부와 교육정책 당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지원도 많이 받고 또 사회적인 지지도 얻을 수 있을까? 아울러 대학의 학과로서 대학 내에서 확고한 자리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에 대한 견해는 최종의 목적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이른바 “제사에는 관심없고 제사음식에만 관심있는 꼴‘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은 누차 지적되었지만 전통을 바탕으로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실용서예의 접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예로 든다면 도시거리와 건물들의 간판문화와 책표지의 서체도안 등이 바로 이것이다. 대만이나 중국의 간판문화를 보면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와 다른 점을 알 수 있다. 알면서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현실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학과강의에 도입해야한다.
BK전북대 「中(漢)文고전적 번역대학원 추진사업단」은 “한국의 학문 발전을 위해서는 中(漢)文 고전적을 정확히 번역해 내는 일이 급선무라는 인식아래 中(漢)文 고전적 번역을 담당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사업단이다. 특히 전서, 예서, 초서 등 手寫本 고전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옛 서예작품의 詩文, 회화 작품 속의 제화시, 고간찰 등을 번역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국내 대학의 서예과와 전북대학교 「中(漢)文 고전적 번역대학원 추진사업단」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대학 서예과가 어떤 방향을 지향하느냐에 따라서 中(漢)文 고전적 번역대학원 추진사업단」의 인재 양성 방향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는 점은 서예의 학술에 관한 문제이다. 그래서 서예과는 서예의 역사와 한문교육이 필요하다. 학술적인 지식이 없는 서예는 치졸하고 유치한 점이 결점으로 될 수 있다. 학교에서의 학술적인 교육은 실기와 이론으로 구분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부문에 관한 교육으로 인정된다. 전통문화와 전통예술과 관련하여 실기와 이론을 겸비해야한다. 실기는 불문하더라도 이론교육은 (1) 서체론 (2) 용어(술어)론 (3) 서체에 대한 안목(분별력) (4) 한국서예사 (5) 중국서예사 (6) 한국인장사 (7) 중국인장사 (8) 한․중․일 서예․인장 관계사 (9) 문자학: 異體字의 字形변천 (10) 筆跡學 (graphology: Handwriting Analysis) (11) 한문교육 등은 기본적으로 서예전공자들이 갖추어야할 부문에 해당되며, 서체개발, 서체디자인 등 서체의 상업화와 실용화 계획의 영역은 전통을 바탕으로 우리가 연구개발하고 지향해야할 목표이다.
4. 맺는말
두 가지로 나누어 맺는말을 대신하고자한다.
첫째는 문화정책과 교육정책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국악의 예와 같이 서예와 한국화의 정책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정책은 서예인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이라는 기치아래 국가적으로 정책이 입안되어 실행되어야 할 사안으로 생각된다. 문화관광부에서는 서예와 한국화에 관련한 전통문화의 보호, 육성, 계승과 발전의 차원에서 서예와 한국화에 대한 정책입안을 촉구한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서예와 한국화전공자의 교사임용 정책을 확대하고, 전통문화의 교육에 관한 정책 아젠다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교육정책입안을 정부당국에 촉구한다.
둘째는 학교에서 교학상장의 이념과 산학과의 협력 아래 책임있는 교육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성있는 학교교육에 대한 중요성도 물론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학교에서도 “21세기 대학서예의 지향점 탐색”으로 예술과 학술부문으로 나누어 진행할 수 있다. 우선 예술부문에서 중요하게 지적되는 점이 실용서예에 관한 문제이다. 전통서예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통을 바탕으로 한 실용서예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것이고 일상생활에서 요구되는 상용예술부터 방법과 실행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교육 또한 그에 부합되지 않으면 현실과 괴리되는 예술이요 전통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정신문화와 전통문화가 중요하더라도 현실적이지 못하면 그림 속에 떡이다. 한글Font개발, 실용상업서예 등을 위한 한글서체개발은 서예계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게 할 수 있는 관건이 될 수 있다.
서체의 상업화는 사실 서양에서 일찍부터 도입된 분야이다. 그래서 독일의 벤츠는 독자적인 ‘벤츠체’를 개발하였고, 이어 ‘삼성체’를 산돌에서 개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대학의 교육도 이런 점을 감안하여 지향되어야 한다. 한국서화 전통예술의 장점을 살려 전통의 계승발전과 연구, 새로운 계발육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토론문>
「한국 교육당국의 서예에 대한 인식검토」를 읽고
조 수 현(원광대 서예과 교수)
2007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를 기념하여 「21세기 대학 서예의 지향점 탐색」이란 주제를 가지고 서예와 관련된 대학 선생님들이 한자리에서 만나 대학 서예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찾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주최측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서예과 설립은 아직 20년도 되지 않은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호남권. 영남권, 중부권, 수도권에 각각 고르게 자리하고 있어 평소 바람직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급변하는 사회현상과 맞물려 이공계. 인문계. 순수미술계에 찬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서예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으나 이 변화를 극복하고 대처해 나간다며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박영진 교수님은 경기대학교 전통예술대학원 초대원장을 역임하면서 이 분야에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 아울러 서예과를 설치하여 수도권에 서예에 대한 인식을 크게 넓힌 학자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박교수의 논고에서 문제 제기를 한 학술과 예술의 구분, 전통서예와 실용서예의 연구 개발의 필요성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전통 문화정책에서 고건축. 전통공예등에 정책과 예산이 편중되고 순수 전통예술인 서예와 한국화는 배제된 내용을 관계법령과 담당부서의 직원까지 상세하게 열거하여 밝힌 점은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특히 100%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한국전통문화학교의 서예와 한국화 관련 교육의 부재와 예술의 전당 운영에 있어 이사진구성에서 전문 서예인의 배제는 매우 우려될 만한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두 공감하며 이를 풀어간다는 의미에서 몇마디 여쭙고자 합니다.
첫째, 지난달 예술의 전당 서예 박물관에서 남정 최정균 선생 유작전이 열려 전시되고 있습니다. 1988년 서예관 개관 전후만 해도 자문위원으로 원로 서예인들이 참여해 왔는데 지금은 배제 되고 있습니다. 이사진 구성에 있어 물량주위에 흐른 나머지 방송계. 합창단. 발레단. 오페라단 등 음악, 무용, 미술계 종사자에 국한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과 의견을 말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요즘 방송매체나 신문 등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로 한국의 학교교육은 미국에 유학 보내기 위한 예비교육기관으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또 시․도마다 영어 마을이니 전문영어 교육기관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논자께서도 전통문화와 관련하여 「얼굴만 한국 사람이지 문화적 사고와 판단의 기준은 서구인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전통문화를 외면한 교육자의 책임이 아닌가……곧고 청렴한 선비문화의 정신이 바로 서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공감합니다. 이에 대해 보완하여 의견을 말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세번째, 학술적 용어로 “서예술”에 대해 일부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논자의 지적과 같이 “서법예술”의 준말이 “서예술”로 타당하다고 하셨는데 한의학․의학․치과학은 “의술”이며, 무용․음악․미술 등을 모두 “예술”이라 구분하고 있습니다. 특히 체육은 크게 “이학”으로 구분되지만 결국 “인체과학”이라 하여 “치료학”과 밀접하고 “의술”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논자께서 “학술서예, 예술서예로 구분지어 설명하면서 예술을 하기 위해서도 학술을 모르면 유치한 작품을 면하지 못하고 학술을 하더라도 붓을 잡고 쓸 줄 모르면 뜬 구름 잡는 식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하셨는데 이 시대 서예의 학문심취․예술화․대중화 그리고 정신예술로써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자리 잡기까지는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를 대학 서예과에서 해내야 한다고 보는데 이를 어떤 방향과 지향점을 가지고 타개해야 할지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맺는말에서 첫째 정부당국의 문화와 교육정책에서 정체성 확립 차원의 정책입안을 촉구하고 교사임용제도 채택을 요구하며. 둘째 전통서예 뿐 아니라 실용 서예에 대한 계발 육성의 필요에 대해 “21세기 대학 서예의 지향점 탐색”으로 제시하셨는데 이에 대해 보충설명을 부탁드리며, 옥고 준비에 수고하신 박교수님에게 경의를 표하며 알찬 토론장이 되길 빌겠습니다.
인문대학 내의 서예학과
- 그 현실적 위치와 전망-
정 태 희 (대전대 서예과 교수)
1. 인문학과 서예
서예는 문자를 기초로 탄생하여 발전한 동아시아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담고 있는 예술이다. 書如其人이라는 말이 있듯이 서예에는 작가의 사상과 교양 뿐 아니라 인품이 반영되고 시대정신이 실려 있다. 이러한 서예는 각자의 독특한 풍격을 갖추고 다양한 심미의 감정을 함축하고 있다. 서예는 사람들에게 사상과 사실을 기록하고 주위에 전달하며 후대에 전하는 문자이면서 인간의 생생한 정서를 반영하고 드러내어 함양시키는 예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좋은 서예작품은 감상자로 하여금 다양한 심미감정을 느끼게 하고 풍부한 정서를 발양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추사선생이 강조한 ‘文字香 書卷氣’라는 말을 생각하게 한다. 선생이 강조한 이 말은 金石文, 瓦當, 古鏡 등을 통해 문자에 대한 풍부한 식견을 가지고, 고금의 많은 도서를 열람할 때 비로소 그 글씨에 그윽하고 깊은 향기가 발한다는 것이다. 문자에 대한 깊은 인지와 책 속에 들어 있는 깊은 소양을 갖추어야 좋은 글씨를 쓸 수 있음을 강조한 말인 것이다. 추사의 이 말은 서예란 학문의 기본인 人文學을 바탕으로 하여야 함을 강조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인문학은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과 언어가 녹아있고, 인간의 역사와 문화가 들어있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인간을 스스로를 박제화하지 않고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감지하도록 도와주어 인간으로서의 중심을 잡고 설 수 있도록 한다. 서예는 이러한 인문학을 바탕으로 두고 있으므로 서예연구는 바로 인간에 대한 탐구이자 인간 문화에 대한 연구이다. 이처럼 서예와 인문학은 항상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우리가 예술활동을 하면서 인문학을 배운다는 것, 인문적 교양을 갖춘다는 것은 우리 몸을 유지하기 위하여 매일 식사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훌륭한 작가, 좋은 작품을 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인문교양 뿐 아니라 과학, 종교 또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예측하는 안목까지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문화에 대한 이해는 바로 서예를 이해하는 심도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서예를 일종의 ‘예술’이라는 테두리에서만 인식하려는 견해에 구속될 필요가 없으며, ‘문화’라는 광의적 차원에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서예에 대한 예술 문화적 이해는 민족, 역사, 정서…… 문자학, 금석학, 한문학 등 인문학적 요소(문학, 사학, 철학)를 바탕으로 하여야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서예는 서양에서 요구하는 기술, 지식의 추구가 아닌 동양적 지혜와 철학이 담긴 인문적 소양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것이 반영된 학교 교육은 아카데믹한 학문의 장이 될 수 있으며,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사료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서예학과는 대부분 미술대학에 속해 있으나 대전대학교는 처음부터 인문대학에 소속되어 있다. 이는 동아시아 문화전통에서 서예를 문학, 사학, 철학이 반영된 학문으로 대하여 연구되고 계승되어 왔으므로 우리나라도 이러한 문화 정서를 바탕으로 해서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 생각되어 서예학과를 미술대학 보다는 인문대학에 속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술부문의 벽이 사라지는 요즈음의 즉흥적이고 시각적인 감성 위주의 시대조류에 대한 중심을 잡고 감성세대의 입시 경쟁력 확보에서도 인문대학에 소속되는 것이 장점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요즈음과 같이 커리큐럼이나 수강신청이 실질적으로 열려있는 제도 아래에서는 인문대학이나 미술대학 어느 곳에 속해 있어도 무방하다고 사료된다.
근래 일부대학에서는 기존의 경영대나 공대 소속의 CEO 과정과는 달리 문학, 예술, 역사, 철학과 관련된 교양 지식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지방과 해외 답사를 떠나고 있다. 즉, 창의적인 생각과 독특하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익혀 인문학과 예술을 일반 사회생활에 어떻게 접목시키고,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창조적 지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인문예술이 발전되어야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설 수 있다. 때마침 올해는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인문학진흥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문화관광부와 교육정책 당국으로부터 지원확대를 계기로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인 호응과 자연스러운 지지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서예는 인문학적인 요소들을 바탕으로 서예의 본래 면목을 찾고 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커리큐럼을 모색하여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여겨진다.
2. 서예학과의 현실과 진로 모색
일본과 대만의 서예교육 사례와 우리나라 서예교육의 현재 실정을 도표로 비교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구분 |
한 국 |
일 본 |
대 만 |
초 |
3-4학년 미술 교과 속에 연 8시간 정도로 구성됨 |
국어교과 속에서 습자로 편성됨 |
시각예술 교과 속에 단원내용으로 편성 |
중 |
1-3학년 미술교과 속에 연 4~8시간 정도로 구성됨 |
국어교과 속에서 습자로 편성됨 |
예술과 인문 교과 속에 단원내용으로 편성 |
고 |
1학년 미술교과 속에 연 6시간 정도로 구성 미술전문교과 10과목 중 선택과목으로 지정 |
예술에 관한 교과 음악, 미술, 공예, 서도 중에서 택일 |
예술과 인문 교과 속에 단원내용으로 편성 |
도표를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현재 서예교육은 한․중․일 3국에서 공통으로 실시되고 있으나 학교 교육과정에서 편성 및 운영은 다소 차이가 있음.
- 이전의 일본과 중국의 서예 교육은 습자 위주의 쓰기 중심 교육이었으나 최근에는 서예 교육의 본질적 측면을 강조하여 심성개발과 예법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변하고 있음
다음은 초ㆍ중등학교 서예의 독립교과 설정에 관한 교육인적자원부의 검토 의견이다.
1) 현재 ‘미술’교과에 속해있는 서예의 교과 독립은 교과목 축소, 주5일 수업제 도입에 따른 교육과정 시수 감축 등 참여정부의 교육 공약사항과 그 실효성 등을 감안할 때 실현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미술과에 포함되어 있는 서예영역을 충실히 지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부는 현실적으로 서예과목 독립은 어려움을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제7차 교육과정 도입이후 초ㆍ중등교육과정에는 서예가 미술교과서에 통합 편찬되어 초등학교 3학년부터 교육되고 있으며, 고등학교 전문교과의 예술에 관한 교과 중에서 ‘미술과’ 10과목 중 1개 과목으로 개설되어 있으므로 이 속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을 밝히고 있다.
현재 4년제 대학 서예전공 관련 졸업생 수는 연간 100여 명이지만 아직 중ㆍ고등학교 과정에서 서예 관련과목을 개설한 적이 없는 실정이다. 그 배경에 대한 교육인적자원부의 주장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서예는 우리 민족의 특유한 전통예술로서 내포하는 고유성, 미적정서의 함양 및 창조적 전인교육의 인격수양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는 점은 공감한다.
(2) 그러나 초.ㆍ중ㆍ고교 교육 현장에서는 현행 교육과정의 학습내용이 과다하다는 의견이 강하고,
(3) 서예교사를 미술교사와 분리시 현실적으로 임용수요가 거의 없어 서예교육이 보다 약화될 우려가 있다.
위의 주장에서 현재 학생들이 이수하여야 할 교과목의 수가 많아 학습부담이 과중한 상황이라는 점과 서예교사를 미술교사와 분리시 현실적으로 임용수요가 거의 없어 서예교육이 보다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입장 역시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새로운 교과목의 신설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된다.
2) 서예학과 졸업자에게 교직 이수를 통한 교원자격 부여문제
서예는 ‘미술교사자격증’ 발급대상 분야이나, 미술을 초ㆍ중ㆍ고 교육과정에서 국민공통교육과정에 속하는 교과로 국민공통기본교과는 사범대 중심으로 양성한다는 방침을 시행하여 왔으나, 양성인원의 과다로 교원 임용률이 낮은 점을 감안하여 1997년도부터는 ‘미술’교과 교직과정에 대한 추가 승인을 일절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서예학과에 대한 ‘미술’교직 과정에 대한 승인은 어려움이 있다.
(참고로 2002-2005년 까지 4년간 미술교과 임용시험 경쟁률은 13 : 1이었다)
3) 서예학과 졸업자의 강사풀제 등 교단지도교육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교육과정 운영상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가능하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제22조(산학겸임교사 등)에 의하여 교원자격증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교육과정 운영상 필요한 경우에 산학겸임교사, 명예교사, 강사 등으로 서예학습을 희망하는 학생 등에 대한 방과 후 특기ㆍ적성지도가 가능하다.
4) 서예학과가 국어과목 관련학과로 교직과정 승인여부문제.
‘국어’ 표시과목의 기본이수과목 또는 분야에 포함되어야 한다. 서예학과에서 위 표시과목의 기본이수과목을 포함하여 전공과목 42학점을 이수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서예학과의 현 교육과정을 국어관련 과목으로 대폭 개선하여야 한다. 이 경우 더 이상 서예학과가 아니며 ‘국어’학과로 보아야 한다.
5) 서예학과가 미술과목 관련학과로 교직과정 승인여부
‘서예’가 ‘미술’ 표시과목의 기본이수과목 및 분야로 포함되어 있으나, 실제 미술교과에서 서예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아 이에 대한 대폭 확대가 필요하다.
이상으로 현재 처한 서예학과의 현실과 진로 모색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서예가 교직과정 및 독립교과로 승인받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1) 미술 또는 국어 등 관련학과와의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2) 서예의 학문적 체계화가 시급하다. 예를 들면 당장 서예과목의 교직과정을 위한 서예교육론이나 서예심리학이나 서예비평 등의 교과목연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서예에 대한 기본 연구가 진행되어 서예가 학문으로서의 사회적으로 필요함을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3. 서예교육 활성화 대책의 문제점
1) 필수 과목의 과다에 따른 교과목 확대의 어려움
우리나라 필수교과 수가 많다는 의견과 주 5일제 수업의 도입에 따른 교육과정 시수(단위) 감축으로 미술교과 수업시간 확대가 어려운 실정이다.
※ 우리나라 주요 필수 과목 수에 대한 의견
n=391
|
매우 많음 |
많은 편 |
작은 편 |
매우 적음 |
모르겠음 |
명(%) |
63(16.1) |
197(50.4) |
97(24.8) |
17(4.3) |
17(4.3) |
※ 주요국과의 필수교과 수 비교
구분 |
미국 |
영국 |
독일 |
프랑스 |
일본 |
한국 |
초 |
6 |
9 |
8 |
9 |
9 |
10 |
중 |
7 |
11 |
13 |
10 |
8 |
10 |
고 |
7 |
9 |
10 |
8 |
10 |
10(1) |
2) 서예 교재의 문제점
서예 영역이 미술과 교육과정이나 미술교과서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국어’나 ‘한문’교과처럼 내용이 진술되어 있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특별활동’과 ‘예술’교과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 미술교사나 학생들이 서예가 어렵다고 반응하는 원인이 된다.
3) 교육 수요 부족
서예교육에 대한 학생ㆍ교사ㆍ학부모의 교육 수요가 부족하여 서예관련 수업시간의 확보 및 프로그램 개설에 애로가 많다.
4. 방향과 대책
1) 기본 방향
(1) 교육과정 및 교과서에서의 서예교육 확대 방안 모색
(2) 학교에서의 서예교육 기회 확대 방안 강구
(3) 학교와 학교 밖 서예 강사풀제 적극 활용
(4) 교사 양성 및 연수기관에 서예교육과정 개설 권장
2) 대 책
(1) 교육과정 및 교과서에서의 서예교육 확대 방안 모색
◦ 주5일 수업 실시 대비와 미술과 교육과정 개정시 한국문화의 정체성 및 전통예술의 생활화 강조
구분 학년 |
현행 |
차기(주5일 대비) |
초등 |
8시간 |
10시간 이상 |
중학교 |
2시간 |
4시간 이상 |
고등학교 |
6시간 |
8시간 이상 |
◦ 미술과 교과용 도서편찬 방향 및 집필 지침에 서예교육 내용확대반영 권장
◦ 교과서 개편에 따른 서예교육 자료의 지속적인 개발 보급
(2) 학교에서의 서예교육 기회 확대 방안 강구
◦ 초ㆍ중등학교 재량활동 및 특별활동 부서에 서예분야 확대 권장
◦ 서예의 특기ㆍ적성교육 등 방과후 학교활동 참여 권장
- 방과 후 활동 및 특기적성 교육 활동에 서예교육 자료 개발지원
- 서예 기능 보유자 활용 강사풀제 운영과 보유자 발굴 명단 DB화
◦ 서예교육에 대한 학생ㆍ학부모 관심 제고
- 서예와 관련한 진로지도 강화(서예 전공시 진로방향)
- 학부모 평생교육 교실 운영시 전통예술 관련 내용 권장
◦ 서예 등 전통예술 발표 기회 확대
- 전통예술 중심 학생축제문화 조성(문화관광부 및 시ㆍ도청ㆍ교육청 지원유도)
- 지역사회와 학교 간 협력에 의한 전통예술 발표회 추진
- 학교 발표회에 전통예술 기능 보유자의 찬조출연 권장
(3) 학교와 학교 밖 서예 강사풀제 적극 활용
◦ 문화관광부와 서예교육 강사풀제 실시 협의
- 교육인적자원부와 문화관광부 공동 협력,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노력 중
◦ 우수 서예교육 프로그램 실천 사례 홍보
- 교육마당 21, 아르떼(arte), 교과서 지도보완자료 등에 우수 서예교육 실천사례 게재 및 홍보
(4) 교사 양성 및 연수기관에 서예교육과정 개설 권장
◦ 각종 교원 연수프로그램에 서예 등 전통예술교육 내용 확대반영 권장
- 일반 연수, 자격 연수 등 교육과정 확대
◦ 교원양성 대학 전통예술 분야 교육 강화
- 교육대학 및 사범대학에 전통예술 분야 교과목 개설 권장
◦ 서예교육에 관한 교원연수 기회 확대
- 서예실기교육 연수과정 개설 운영을 시ㆍ도교육청에 권장
- 서예관련 기관의 요청시 교원연수 기관으로 지정 운영
(연수 결과, 교원연수 연구 학점에 반영)
5. 맺음말
1) 향후 활동방향
서예 학습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활동이 진행되어야 한다. 온라인을 통해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 및 정부부처, 국회의원 홈페이지 등 관련 홈페이지 게시판에 지속적으로 서예관련 요청 글을 게재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일선 소방공무원들이 노후차량 교체를 요구하여 교체한 사례가 있다. 다음에, 서예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 전문 서예 사이트를 개설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서예교육에 동의하는 대국민 서명운동을 전개하여야 한다.
(1) 서예를 학문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서예가 단순한 과목이 아닌 서예학으로서의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
(2) 서예학회를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활성화시켜야 한다.
- 서예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 학술대회, 세미나, 강연회 개최
- 서예 과목을 위한 학습 커리큘럼 연구
- 서예인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 개발
- 국제학회 개최ㆍ참가 및 교류
2) 서예교육 전망
(1) 새 교육과정에서 서예교육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
- 현재 개정중인 새 교육과정에서 미술교과는 7차 교육과정과 시수의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어 제한된 수업시간에서 서예 영역을 대폭 증가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 또한 고등학교 미술에 관한 전문교과 중에서 서예과목의 폐지가 예상 되는 바
(서예 선택 학교가 전혀 없음-2004년도 교육통계자료) 필수교과인 미술과목 속에 서예를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교육과정 속에 제시할 예정이다.
- 현재, 서예 단원은 미술교과서의 내용 중 교사와 학생들에게 가장 흥미가 낮은 영역이며, 초등학교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유로 ‘재미없고 어렵다’라고 진술함(「미술과 교육과정 실태분석 및 개선방향연구」, 교육과정 평가원, 2004).
- 또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들이 서예수업을 기피하는 이유로 ‘교실에서 수업 후 뒷정리 문제’를 가장 많이 지적한 바, 각급 학교에 실기실 확보를 적극 권장할 것임.
(2) 주 5일제 수업에 따른 특기적성 교육활동에서 서예교육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
- 향후, 특기적성 교육활동은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수요자의 요구에 의하여 활성화 될 수 있으므로 우선 학생이 원하는 서예활동이 될 수 있도록 학회와 서예관련단체 차원의 자구 노력이 강구됨.
-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문화관광부와 공동협력으로 지역사회와 단위학교를 연계하여 우수 강사를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발표기회를 확대할 계획임
(현재 학교문화예술교육 사업이 진행중임)
(3) 서예교과서 개발 방안이 필요하다.
- 제6차 교육과정까지는 서예교과서가 미술교과서의 별책으로 편찬되었으나, 제7차 교육과정에서 미술교과로 통합요구가 수용되어짐.
(중등학교 서예교과서 편찬방법 개선에 대한 건의. 1977. 12. 15 - 서예관련단체, 서예교과서 저자, 서예학과 교수 요구)
- 현실적으로 서예과목의 개설이 없이는 교과서 개발이 어려움.
미술교과서 개편에 따른 서예교육 자료를 지속적으로 개발 보급하는 것이 타당함 (현재 출판사별로 실습용 학습지가 다소 개발되어짐)
(4) 학교 교과목 개정과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적극적 모색 방안이 필요하다.
먼저 현 서예학과의 커리큐럼을 졸업 후의 진로와 연계하여 대폭 수정 보완하여 현실적 변화를 수용하며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문자디자인, 서예치료, 서예와 폰트, 한자교육강화, 중국어 등이다.
다음에 문화 예술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모색이다. 현재 5개 분야의 예술강사 파견(강사풀)사업이 운영 지원되고 있다. 국악, 연극, 영화, 무용, 만화ㆍ애니메이션 과목이 초중고 2,335개교에 1,350명 내외의 강사를 파견하고 이에 대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서예의 강사풀제 도입은 교육수요자 파악, 예산의 확보 등 여러 문제가 있으므로 국회와 적극적으로 협의하에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에 분야별 문화예술교육에 서예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문화관광부 및 국방부 등에 대한 서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지속적인 이미지 개선 작업과 상호 협의가 필요하다.
한국 대학 서예과의 활로
- 지향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
여 태 명(원광대 서예과 교수)
1. 머리말
오늘 제가 말씀드릴 주제는 “한국 대학 서예과의 활로-지향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모두 6개의 대학이 학부에 서예과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과정에도 서예 전공을 운영하는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오늘은 대학 서예과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이므로 한국 대학 서예과 대학원의 실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서예과는 원광대학교가 처음 입니다. 1989년 당시 작고하신 남정 최정균 선생님의 노력으로 원광대학교에 서예과가 처음 신설되었을 때 서예계는 물론 예술계와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과연 서예가 예술과 학문의 경계를 아우르며 대학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공통의 관심사였습니다. 결과는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성공적으로 정착했습니다. 첫 해 서예과를 단일 모집단위로 하여 신입생을 모집했을 때 3:1을 웃도는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이후 해마다 늘어나는 지원률은 미술대학 내에서는 가장 높았으며 대학 전체적으로 평가했을 때도 높은 편에 속했었습니다. 당시 우스개 소리로 미술대학은 서예과가 먹여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서예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각 대학 서예과가 미달 사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원광대학교에 서예과를 신설했을 당시 서예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의 목적도 다양했습니다. 실기를 전문적으로 연마해서 뛰어난 작가를 희망하는 경우도 있었고, 서예 이론을 깊이 연구하여 서예비평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학원을 운영하거나 학교에서 서예지도를 하면서 느꼈던 지식의 한계와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원한 경우도 다수 있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경우 이외에도 다양한 목적의 지원 동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표면적으로 보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학생들의 지원 동기에서 공통된 점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체계적인 실기 능력을 갖추고 싶다는 욕구이고, 또 하나는 서예 이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었습니다. 도제식 교육으로 서예를 배우다가 느낀 지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론이든 실기든 깊이 있고 다양하게 배워보겠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한국 대학 서예과의 활로는 여기서부터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을 실천해 왔는가 하는 문제를 더듬어보면 현재 대학 서예과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비책은 내놓지 못할지라도 향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보완책은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정통 서예교육의 가치를 추구하는 대학
2001년 5월호 월간서예에 소개된 이상득 선생의 서예에 관한 설문조사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소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내용인데 막상 수치로 비교해보니 느낌이 달랐습니다. “우리나라 서예는 전승․보존될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하는가?” 항목에서 90% 이상의 응답자가 보존해야 한다고 했고 “아들 딸에게 서예를 권하실 생각은?” 이라는 항목에서는 응답자의 60% 정도가 서예를 권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예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긍정적인 것으로 판단 할 수 있겠습니다.
위 설문조사는 학부모들의 의견이기 때문에 대학 서예 교육의 바로미터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 통계에서 저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그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중등학교 일선에서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지도 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과 고전번역 및 문화예술기획 등 학예사의 인력을 배출하는 것이 한국대학 서예과 교육의 책무라고 생각 했습니다.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받았던 교육은 한 사람의 가치관을 결정하기 때문에 객관적이고도 최선의 교육이어야 합니다. 서예 교육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 교육과정에서의 서예 교육은 최선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정식 교사가 지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정규 수업 시간보다는 방과 후 특기적성 교육을 통해 외부에서 초빙된 계약직 강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서사 능력은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는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의 꾸준한 지도가 있어야 비로소 자유로운 운필로 개성이 드러나는 글씨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교육은 대학 서예과를 통해 교원자격증을 취득한 졸업생들이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고전번역(전서.초서) 및 문화예술기획 등에 관심을 기울여 유능한 졸업생을 배출 하는데 더욱 관심을 기울여햐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서예술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대학
예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것으로 시대마다 사회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예술이 17세기예술과는 다르듯이 서예도 시대성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앉은 자리가 어디인가를 인식하고 내가 누군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자기의 생각을 표현 할 수 있는 매체로서의 서예가 중요한 것이지 과거의 양식을 재현하는 수단에 그친다면 그것은 이 사회의 예술로서 필요한 존재가 아닐 것입니다.
시대성을 표현하는 예술로서의 서예를 위해서는 우선 고전을 통해서 재해석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북위서나 한글의 궁체를 임서하는 이유가 뭘까요? 판박이처럼 똑같이 베끼기만 하는 것은 서예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서사능력을 키우는데 필요한 작업입니다. 서예는 그 종류가 무엇이건 자기수련으로 얻은 표현능력과 조형의식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정이 목적이 될 수 없듯이 진지하게 고전을 섭렵한 후에는 자기의 것을 찾고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열심히 필사하고 닮게 쓴 이후에는 반드시 학습 과정에서 익혔던 형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정도 수련이 되면 서예가 지니고 있는 본질을 우리 문화에 맞게 미적 직관력(直觀力)을 가지고 시각예술의 심미적 대상으로 표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핝 것입니다. 아마도 그 순간이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표현하는 단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예는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시대 미 추구”라는 상충과 갈등 구조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통의 소중함은 그것이 시대에 적응되는 전통이라야 가치가 있습니다.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롭게 재해석해내는 능력을 체득해야 합니다. 곧 서예는 시대의 문화에 맞는 스타일로 탄력적으로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예는 예술이고 예술은 문화의 한 쟝르입니다. 21세기는 문화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흔히 문화전쟁으로도 비유되는데 우리의 서예는 어떤 무기로 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서예의 발전과 직결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서예가란 문자나 문장의 인식을 강요하는 전달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감을 쓰더라도 작가(서예가)의 마음을 담아내는 표현으로 작품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필사로서의 서예가 아닌 순수한 서예작품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정점에 머물러서 똑같은 운필과 장법으로 일관하는 것은 예술로서 서예를 대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서예 전공자들은 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대중들에게 서예를 사랑해 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작가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 보아야 할 것 입니다. ‘서예술의 다양성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는가?’ 라고 말입니다. 이 시대에서 서예작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상자에게 읽혀서 뜻이 그대로 전달되는 ‘쓰는 서예’가 전통적인 방식인 반면 감상자가 나름대로 해석하고 느낄수 있는 ‘표현하는 서예’ 도 존재합니다. ‘쓰는 서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표현하는 서예’의 필요성도 인정해야 합니다.
서예의 지․필․묵은 한정된 재료이기 때문에 표현의 한계성이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각을 넓혀보면 표현할 수 있는 재료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화선지라도 오당지를 사용한다면 번짐의 효과를 더 낼 수 있고 오합지나 삼합지를 쓴다면 두꺼운 장지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또 화선지에만 머물지 않고 두꺼운 마분지나 옹기 등의 재료를 선택하고 컴퓨터를 활용 한다면 새로운 양식으로 서예를 표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예의 한계를 서예가들이 스스로 좁히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서예의 범위를 좀 더 넓혀 나아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 문화는 다양성에 그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재료로 현재 우리들의 삶 속에서 묻어나는 자유로운 조형성이 다양하게 드러나는 서예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3. 대중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대학
생활과 예술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은 서예는 서예가들의 전유물일 뿐, 일반인들이 쉽게 동참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예라고 하면 일정한 규격의 종이에 일정한 형식으로된 작품이라고 인식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몇 몇 파격적인 형식을 선보이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서예가나 일반인이나 별로 인식의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차원에서의 접근이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서예가 한 걸음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서예라면 일반인들도 서예를 접근하기 힘든 예술로서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서 보다 친숙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마디로 현대 서예는 우리 생활에 쓰임새가 있을 때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간판이나 상표 등을 비롯한 생활에 실용적 예술로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딱딱하고 틀에 짜여진 그래픽 폰트에서 벗어나, 감성적 접근이 가능한 손글씨가 각종 매체의 타이틀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전주에서도 서예가들이 쓴 간판 글씨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캘리그래피(손글씨)는 서예를 발전시킬 수 있는 한 분야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 MBC 뉴스데스크에서도 한국직업연구센터의 보고를 인용하여 10년 후에 각광받을 직업으로 아트위크메니저, 유전자감식원, 학습메니저, 개인자산관리사, 산업보안전문가 등과 함께 캘리그라퍼가 소개된 바 있습니다.
캘리그래피는 Advertising. Editorial. Font. Website. Sign Art 등에서 한국적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자디자인의 한 분야로 각광 받고 있습니다. 문자디자인 (Lettering)은 문자 및 문자를 그리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문자디자인으로 언어 본래의 의미뿐만 아니라 글 자체를 고려한 조형이나 색채에 의해 감성이 풍부한 내용을 전달 할 수 있습니다. 캘리그래피는 기존의 서예 글씨를 변형시켜서 다양한 영역의 문자 조형의 구성 원리와 다양한 개성의 서체를 만들어 내는 표현 양식입니다. 캘리그래피는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붓과 종이, 먹 등 서사 도구를 고를 때도 획일적인 기준이 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서예를 전공한 캘리그래퍼들은 대개 붓을 선호하지만 표현하려는 내용을 정확하게 나타낼 수만 있다면 연필, 사인펜, 펜, 크레파스, 납작붓, 메이크업 브러시, 심지어 잡초, 나무젓가락, 이쑤시개, 막대기, 면봉까지 쓸 수 있는 도구면 모두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가 가능한 생활 속의 도구가 모두 문자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것은 서예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캘리그래피는 컴퓨터그래픽이 주는 기계적 느낌을 보완하고 인간미 넘치는 친밀감을 전달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호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캘리그래피는 영화 타이틀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에서부터 각종 브랜드 디자인, 웹 사이트에서 플래쉬와 어우러지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때는 이름조차 없었던 캘리그래피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제 작품의 일부를 영화 <축제>에 도용했을 때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저 뿐만 아니라 서예인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언론에 알리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는 승소로 이어졌고 이 사건이 서예가의 창의성을 인정받는데 제도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새천년 이후 캘리그래피는 많은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는 물론이고 주류의 상호에도 사용되었는가 하면 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패션쇼에서 한글 디자인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포장디자인, 지면광고, 영상광고, 책표지, 앨범 재킷, 인테리어, 환경디자인 등 캘리그래피의 영역은 사회 전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합니다.
서예를 이용한 문자디자인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디자인계에 확산되고 있고 기성 서예인들과 서예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문자디자인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디자인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문자디자인으로서 캘리그래피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서예 전공자의 진출 영역이 문자디자인으로까지 넓어지는 것은 다소 진부하게 인식될 수 있는 서예를 이 시대가 원하는 양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 할 수 있겠습니다. 서예의 다양한 표현 양식을 모색하면서 문인화와 전각기법을 접목시키는 작업도 다양성의 추구라는 점에서는 필요 할 것입니다.
4. 기존 공모전과의 차별성이 있는 대학
일정 기간 글씨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의 글씨를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원광대학교에 서예과가 신설된 1989년도는 서예인들이 평가받을 수 있는 방법은 각종 공모전에 출품하여 입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단체전이나 개인전을 개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당시는 경제적인 문제, 혹은 전시 공간 문제 등으로 개인전이나 단체전이 지금처럼 다양하게 개최되지 못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서예인들은 실력 있는 서예가로 인정받기 위해 각종 공모전에 출품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공모전에 입상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공모전은 그 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일부의 정해진 사람들만 입상을 할 수 있었던게 사실이었습니다.
대학 서예과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공모전의 폐단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공모전에 출품하여 입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대학에서 과연 서예 교육이 필요한가? 라는 자괴감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실기에 한정된 감정이지만 작가로 나서기 위해서는 4년 동안의 공부 후에도 결국 공모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서예를 공부하면서 공모전에 출품하게 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다른 출품자와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배우는 자세이고 둘째는 자신의 글씨가 어느 정도 수준인가를 정확히 평가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정확히 평가받고 있습니까? 특히, 그 출품자 중에는 대학 서예과 졸업생이나 재학생이 상당 수 포함되어 있는 점은 대학 서예 교육의 정체성마저 혼란스럽게 하는 현상입니다.
전문가 정신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대학 서예과를 선택한 이상, 대학에서 서예 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 서예인들과는 차별성을 두는 가치관이 필요합니다. 일반 서예인들의 경우에는 공모전이 거의 유일한 서예 작가 등용문이기 때문에 공모전을 선택하는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대학 서예과 학생들은 공모전 대신 다양한 방법의 돌파구를 찾아가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공모전이 아니라도 자신의 역량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전이나 단체전과 같은 전시를 개최한다거나 서예 자료를 정리하고 자신의 글씨와 이론을 담은 학술 저서를 간행한다거나, 대중 교육의 현장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이론과 실기를 병행한 교육을 실시한다면 굳이 공모전이 아니어도 충분히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대학 서예과의 교과과정도 학생들이 공모전 대신 자신의 역량을 평가받을 수 있도록 개편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로만 프로 정신을 강요하면서 모든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학생들에게 돌리는 태도는 대학 서예과 발전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즉, 학과의 교과 과정이 근간이 되고 학생들의 노력이 어우러진다면 적어도 대학에서 서예 교육을 받은 전공자들이 공모전에 예속되어 정체성을 잃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 학생, 교수 모두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공모전을 주최하는 협회들의 인식, 즉 공모전을 1년 농사로 생각하는 폐단도 문제입니다. 공모전의 수익을 통해 협회가 운영되지만, 여기서 발생한 수익으로 국제 교류전을 개최한다거나 세미나를 열어서 서예계의 활로를 모색하는 등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민족서예인협회가 설립된 것도 공모전의 폐단과 한국 서예의 답보상태를 탈피하려고 노력했던 결과입니다. 대외적인 교류나 학술세미나 등을 통해 소외된 계층을 아우르고 대중 속에 살아 숨쉬는 예술로서 한 단계 끌어 올리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공모전의 형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방향을 찾아보려는 취지에서 시작하게된 것인 만큼, 한국미족서예인협회의 구성원은 서예과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대부분입니다. 기존 서예계에서 활동하는 작가보다는 젊은 작가들이 지향하고 있는 새로운 의식을 반영하기 위해 젊은 서예 전공자들로 구성한 것입니다.
공모전이 협회 운영의 현재 100%를 차지하고 있다면, 공모전의 비중을 30% 비중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세미나나 학술대회, 국제적인 교류전 등에 할애해서 서예계에 활력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공모전을 폐지하자는 입장은 아닙니다. 공모전의 순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공모전에 전력투구하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심사제도에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다수의 심사위원을 위촉하여 진행되는 점수제나 합의제도 겉으로는 공정성을 기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명이 하다보니 딱히 책임자는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책임 심사를 하든지, 아니면 한 사람에게 전권을 위임하여 심사의 모든 책임을 지게 한다면 지금보다는 공정한 책임심사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심사제도가 투명하게 개선된다면 무보수라도 심사에 응해서 실력 있는 작품을 선발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5. 맺음말
최근 우리 사회는 산업화․정보화 사회의 부작용으로 대두된 극단적인 개인주의, 인간성의 타락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전통 문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훌륭한 전통 문화중에서 특히, 서예는 예로부터 인성교육의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인성을 계도할 수도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서예치료의 각종 연구 보고는 교육적 측면에서 서예의 가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서예를 예술이라고 인식하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표현 양식에 있어서는 논란의 소지가 많습니다. 앞에서 시대에 맞는 서예술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은 예술의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가 창작이기 때문입니다. 창작이란, 단어 그대로 미증유의 예술적인 양식을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새롭게 쓴다고 해서 모두 서예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움 속에서도 예술적인 가치를 내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그것을 시대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추구하는 다양성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서예가 예술적인 가치 중에서 정신적인 것에만 집착하고 형식의 변화에는 너무 인색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예가 보편적인 시각 예술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대학의 서예과는 그 시대에서 변화와 발전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예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모든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일상생활과 예술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서예가 한걸음씩 생활 속으로 파고 들어가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서고, 그렇게 됨으로써 일반인들도 서예에 대하여 마음을 열 수 있는 방법의 일환으로 작업을 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서예라고 하면 서예가들도 그렇고 일반인들도 필사적인 현상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고전 판독 및 번역이 현 한글세대에서는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 서예과에서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결실을 맺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간판이나 상표 등을 비롯하여 생활 속에 살아 숨쉬는 실용적 생활예술로 활성화 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지하실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작품에서 깨어 나와서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학 서예 교육에서도 현실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한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공모전의 폐단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간, 공모전의 발전을 위해 많은 세미나가 있었지만 학술 토론으로는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에서 조차 관망하는 자세로 일관할 수는 없습니다. 소위 전문가를 양성하는 대학에서 학생들이 졸업 후에 다시 공모전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을 지켜 볼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공모전의 효과와 버금가는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단기간에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면 대학 서예과가 주관을 하고 서예 전공자들만이 출품 할 수 있는 공모전을 만들어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다같이 힘을 모을 것을 제안합니다.
끝으로, 제가 몸담고 있는 원광대학교에서 서예과의 활로를 위해 선택한 현실적인 방안을 소개하겠습니다. 원광대학교에서 서예과는 특성화 지원학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에 맞추어 변화를 시도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학과의 명칭을 2008학년도부터 "서예·문자예술학과“로 개명하는 것을 학과 교수의 만장일치로 합의했습니다. 세부 전공은 전공기초과목과 고전판독 및 번역․문자디자인․서예교육 및 서예치료로 구분하여 현재 교과 과정을 대폭 수정․보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힙니다.
<토론문>
한국대학 서예과의 활로
김 광 욱 (계명대 서예과 교수)
상기의 주제로 여태명교수가 다양한 각도로 발표하신데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의 견해도 여교수와 동일선상에서 간략하게 정리를 하고자 합니다.
書藝는 글씨의 예술이다. 또한 서예는 문자를 매개로 하여 자기의 사상과 정감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예란 광의의 개념으로 藝와 道와 法과 學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협의적 개념으로 말하자면 書藝는 글씨의 예술로서 審美를 추구하고, 書道는 인격도야와 수양을 지향하며, 書法은 법칙과 이치를 중시하고, 書學은 실기와 이론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예로부터 서예는 예․도․법․학을 통해 형태의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동시에, 정신적으로 고상한 인격완성을 추구하는 데 그 의미를 두어왔다. 서예란 문자를 통해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예술적 형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수양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이며, 자신의 인격완성에 최고의 가치를 둔다. 따라서 서예는 예술적 의미와 수양적 의미, 법칙적 의미와 학문적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이상에서 정의한 내용들이 대학의 서예과에서 동시에 교육이 되어야하며, 다각적인 홍보를 통해 일반인들에도 이러한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됩니다.
서예의 미술화, 그 필요성과 전망
석 용 진 (서예가)
1. 머리말
현재의 서예는 오랜 역사적 전통과 많은 수의 서예인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예술의 타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침체되어 일반 미술애호가와 화랑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서예뿐만 아니라 서구열강세력의 침투이후 서양문물의 유입으로 말미암아 서구화로 변해가는 세태 속에서 그 가치가 재인식 되지 못하는 모든 동양예술과 문화에서도 그 공통점을 살펴볼 수 있다. 상당수의 영역이 서구화 이후 전승이니 무형문화재니 하는 이름으로 그 명맥을 겨우 이어가는데 비해 서예는 여러가지 면에서 그래도 다소 형편이 나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서구화 이후 현대 과학 문명의 발달과 매스미디어의 폭발적인 영향력은 이미 모든 한국인의 시각과 사고에 영향을 미쳐 우리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물론 유전정보를 통해 이어져온 우리문화권의 집단무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추구하는 미적기준의 변화는 우리의 인물과 체형조차 바꿔 놓았으며 건축구조와 생활환경 등 의식주 전반이 변하였다. 이러한 시대에 서예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연한 사고와 더불어 타 영역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인식을 이제 우리는 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시각예술계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서양미술의 흐름을 되짚어보고 현재 서예가 위기에 처하게 된 배경과 원인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서예가 나아가야 될 방향을 모색해 봄이 적절한 듯 하다.
2.현대 서양미술의 흐름
인간의 감각은 자연의 일부로서 생존해 왔던 경험과 정보의 누적, 그리고 문명이 생겨난 이래 그 문명 전체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특히 예술은 한 시대의 역사적 상황의 반영으로 인간이 미의식을 갖게 된 이후 오랜 시간, 역사의 발전과 문화의 변천속도와 함께 완만한 변화를 이루어왔다. 물론 이러한 속도는 금세기의 전 영역에 걸친 폭발적이고도 경이적인 변화와 발전에 비교되어 그렇다는 것이지 매 시대마다 역사는 그 시대의 상황이 요구하는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꾸준히 그 모습을 변모해왔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문화의 급격한 변화는 20세기에 들어서면 가속도가 붙어 단순히 변화라는 말과 시대적 상황의 특색이라는 느긋한 서정적 표현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극심한 변화의 양상을 띤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에 걸쳐 일어난 세계대전은 인류의 전통과 기존의 도덕성, 철학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전통과 정신적 가치관을 요구하였으며 또 한 편, 증기나 전기, 석유와 같은 에너지의 개발과 더불어 원자력의 이용이라는 경이적인 에너지의 사용은 인간의 삶과 일상생활에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였다. 동시에 교통과 통신, 정보망의 발달은 인간의 활동을 지구촌이라는 개념으로 확장시키고 이러한 요소들은 경제적인 측면에도 영향을 미쳐 자연과 농촌이 자정작용을 잃고 황폐화 되는 결과를 낳았고 모든 활동을 도시중심으로 바뀌게 하였다. 더불어 고전적 물리학에 머물러있던 인간의 과학적 지식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나 보어의 양자역학에 의해 우리의 인식이 단순히 보고 듣고 관념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기준을 넘어 우주의 무한함과 상식을 넘어서는 미시세계에 까지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 성취는 인류로 하여금 더 넓은 우주로까지 시야를 넓혀 삶과 의식에 있어 새로운 장을 열지 않으면 안 되게끔 하였다.
이러한 바탕위에 1839년 발명된 카메라의 출현은 기존 회화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흔들 수밖에 없었다. 르네상스 이후부터 발전된 일루져니즘(illusionnismme)의, 묘사하고 재현하는 기술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고 1888년 코닥회사에 의해 카메라의 자동화가 대중화됨으로써 우리의 눈이 가진 사실의 포착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카메라의 출현과 기존의 과학적 성취, 인문학적 변화는 화가들로 하여금 미술의 근본목적에 의문을 갖게 하였고 미술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러한 결과들은 이후에 일어난 여러 미술사조들로 대변되며 모든 예술품은 작가 개개인의 철학과 다양한 해석방식 속에서 절대적 진실의 모호함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서 서구의 회화는 1860년대 이후 일본미술의 유입으로 더욱 가속화 되었다. 이 결과는 인상주의 이후 불과 50년 만에 입체파, 야수파, 다다이즘, 추상회화, 앙포르멜운동, 추상표현주의 까지 그 이름의 나열만으로도 한 페이지를 넘기게 될 정도로 다양하게 분화되어갔다.
물론 이러한 경향조차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미술계에 끼친 여러 상황에 비하면 단지 서막에 불과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세계대전의 영향은 작가 개개인의 활동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시회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 현대미술에 대한 서적들의 범람, 국가적 차원의 후원에 의한 여러 비엔날레와 같은 다양한 미술시장의 형성 등등의 외적요인의 증가와 더불어 미술 각 장르 간의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영역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인식의 확장으로 인해 디자인이나 사진, 공예와 같은 분야에 부여되었던 준 예술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만들었고, 사이버 공간의 확장으로 인해 형성된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 아트와 더불어 설치, 개념미술, 환경미술 등 이제는 예술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광범위한 예술세계를 만들었다.
3.서예의 현실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인식이 우리에게 처음부터 이해 가능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1945년 해방이후 급격하게 밀려든 서양식 교육과 문물은 한동안 우리를 혼란케 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어렸을 때 과학시간을 통해 모든 물질을 쪼개어 나가면 분자가 되고 분자를 더욱 나누면 원자가 되며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루어졌다고 배웠다. 그리고 핵은 나누어질 수 없으며 역으로 조립해 나가면 다시 물질이 되는 요소환원주의식의 서양식 논리를 배우며 자랐다. 그러나 과학이 더욱 진보하면서 원자도 쿼크라는 단위로 쪼개어 질 수 있으며 현대물리학의 발달로 부분이 전체를 반영한다는 동양의 사고를 이제는 과학적으로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예술전반에 걸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 미술대학의 경우에도 서양화, 한국화, 조소, 디자인, 공예 등으로 세분화되어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평면이니 입체니 하는 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예술전반에 걸쳐 탈장르의 바람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필자는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하고 서예가로 전향하였는데 그림을 전공한 선후배들로부터 서예도 예술이냐?,서예는 예술이 될 수 없다.는 식의 질문이나 부정적 시각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들의 생각은 서예가 스승의 체본이나 法帖만을 베끼기 때문에(臨書)예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서예계 전반에 만연되어있는 병폐에 대한 지적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서예의 본질적인 문제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한 질문들은 마치 음악에 있어서 작곡을 제외하고는 연주가나 성악가는 예술가가 아니다 라는 말과 상통되기 때문이다.
서예가 예술로서의 특성이 모호함을 살펴보면 첫째, 많은 사람들이 글씨 쓰는 행위를 수양의 방편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흔히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왜 서예를 하는가 물어보면 그냥 좋다는 막연한 것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먹을 갈다보면 먹향이 좋고 글씨를 쓰면 마음이 가라앉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과거보다 오히려 시간에 쫓기고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에게 더욱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둘째, 글씨를 쓸 때의 행위에 있다. 자세나 손가락과 붓끝의 작용, 호흡 등은 기의 흐름이나 손가락의 작용으로 인한 奇經八脈의 연결로 이어져 한의학과의 연계를 생각게 하고 힘을 사용하는 방식도 태극권과 같은 무술의 요령과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셋째, 서예에서 일컫는 간가결구의 원형이 건축학적인 것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특히 해서는 건축학적인 구조의 완성을 보여준다. 넷째, 비문이나 전각과 같이 새김에 의해 이루어지는 조각적요소라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서예가 발달하게 되는 가장 원시적인 시작은 새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시각적 요소이전에 기록이라는 의미가 더욱 컸다. 지금은 전각이 서예에 포괄되어 하나의 문자적 새김예술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역사만큼이나 복합적인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다섯째, 목판인쇄에 의한 서체의 타이포그래피적인 쓰임이다. 여섯째, 문자의 획수에 의한 수리적, 철학적 해석과 더불어 문자의 符籍化는 서예가 고대의 주술적인 요소와 연계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발굴된 最古의 문자인 갑골문 역시 왕실의 길흉을 점치는 占卜의 기록인 것을 보면 현재 이렇게 연결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예가 미술과 다른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文字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미술은 다양한 장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자를 몰라도 작품 제작에는 지장이 없지만, 유독 서예만큼은 문자를 소재로 하기 때문에 그 시작부터 지배계층인 사대부나 識者들에 의한 餘技의 예술이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미의 개념으로서의 예술로 정의내리기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많다. 서예가 가진 이러한 특징은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세계를 구축한 배경이 되었고, 識者들에 의해 주도되던 서예이니 만큼 시대가 흐름에 따라 당시의 다양한 철학적 사상적 내용들을 서예 속에 융화시켜놓은 이론서인 많은 書論들은 마치 동양 오천년 역사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농축시켜 놓은 것과 같이 방대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특질은 문자학과 문학 등과 더불어 방대한 소양을 요구하여 서예가 예술이 아니라 마치 인문학의 한 분야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서예가 다른 예술과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간예술과 시각예술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이다. 글씨를 쓸 때의 과정은 마치 무용과 음악처럼 시간성을 가지게 되며 완성이 되었을 때는 시각예술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서예의 이러한 찰나성과 시간성은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다듬고 누적시킨 서양회화에 비해 어쩐지 가볍고 공이 들어가지 않은 듯한 인상을 부여하여 예술작품의 환금성을 따지는 현대에 와서는 대단히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서양미술이 산업 혁명 이후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급격한 변화와 진통을 겪는 동안 동양의 서예는 청 말기에 와서 조지겸, 오창석과 같은 여러 대가의 출현에 의해 고전의 재해석으로 인한 부흥의 꽃을 피우게 된다. 이 시기의 서예부흥은 인류전체의 시대적 동조현상에 의해 서양과는 다른 풍토와 환경위에 전혀 새로운 서예의 대 부흥을 예감케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가능성은 서구 열강의 동양에 대한 침탈과 그로 인한 폐해로 인하여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서구문물의 유입과 정착화시기로 말미암아 정체성의 혼란과 더불어 고전의 재현에 머물고 만다. 물론 1950년대 일본의 이노우에 유이치에 의한 전위서도운동과 196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墨象과 같은 서예운동이 있었지만 이 세기의 서양미술의 다양화와 심도에 비한다면 아주 작은 몸짓에 불과하였다.
이와 같은 요인으로 인해 고전의 답습에 그치고 만 서예는 지난 100년 전의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신인류라고 까지 불리는 현대인의 다양한 욕구와 시각, 감성 등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중장년층 이상의 세대가 가진 고전과 옛 것에 대한 향수 등이 작용하여 명맥을 유지하긴 하지만 필자의 느낌은 마치 시한부 인생을 보는 것 같다.
이 시대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간에도 너무나 큰 괴리감을 준다. 컬러TV시대 이후 패션과 디자인, 생활방식의 변혁과 더불어 컴퓨터의 보급은 아예 이 시대를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것처럼 느끼게 할 만큼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 이래 우리의 삶은 인간이 이제까지 진화하면서 변화해왔던 폭보다 더욱 큰 폭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의 삶 뿐 만 아니라 특히, 서예에 준 영향은 과거 카메라의 보급 이후 서양미술이 처한 상황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작용하고 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각 인쇄소에는 필경사라고 하여 여러 인쇄물들의 원고를 초안하였고 명함, 상장 등은 세필로 직접 써서 인쇄원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양한 폰트의 개발과 컴퓨터를 이용한 편집으로 간단하게 해결 되어 버렸다. 이러한 것들은 일반적인 필기에 까지 영향을 미쳐 학생들의 레포트, 서류정리와 더불어 간판광고, 비석공장, 꽃집에서의 화환에 이르기까지 컴퓨터에서 다양한 서체를 바로 출력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도 점점 발전하여 서예에서 추구하듯이 각기 다른 폰트서체들을 사용자가 자신의 개성과 감성, 필요에 따라 고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은 글씨를 단순히 반듯하게 잘 쓴다는 의미만으로 볼 때, 이미 컴퓨터에게 우위의 자리를 내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19세기 후반의 서양미술이 카메라의 발명과 급진적인 과학이론, 새로운 철학이념 등의 요인으로 인해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서예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지금의 우리 상황은 19세기 후반의 유럽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현실이다. 과거와는 다른 가옥구조와 벽면처리는 기존의 서예작품이 가진 규격이나 고전적 액자, 족자 양식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공간에 어울릴 수가 없게 되었으며, 컬러TV의 보급이후 혁신적으로 변한 현대인의 색조감각과 디자인 선택의 안목에는 서예인들이 주장하는 개성 있는 작품들이 모두 비슷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매년 열리는 100여개가 넘는 공모전의 동일한 규격과 비슷한 작품체제는 서예계 전체에 치명적으로 작용하여 어떤 이들의 눈에는 서예가 마치 자멸하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서예현실은 소수 전문가에 의해 주도되고 이루어지는 타 분야와는 달리 대다수의 서예인이 공모전을 위주로 하는 취미생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암담하다. 소수의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는 서예가들조차 서숙이나 서예학원의 공모전 지도로 인한 시간낭비, 잦은 행사, 예술가로서의 전문의식의 미흡으로 인한 자기연찬의 결여 등은 서예라는 분야를 벼랑 끝으로 까지 몰아넣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서양 문명의 유입 이래 열성적인 학구열과 수많은 학자들에 의한 학문적 성취의 바탕과 눈부신 경제 발전의 토대위에 민족의 정서를 반영한 새로운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현 한국의 서단을 이끄는 중장년층 이상의 서예가는 단순한 취미생활이나 서숙출신이 대부분으로 현시대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는 작가로서의 성장과정이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서예가들로 하여금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가로서의 역량과 면모를 갖추는데 필요한 여러 요인들을 습득하기에는 대단히 미흡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
4. 서예의 새로운 가능성
따라서 미래의 서예는 심도 있는 정규 커리큘럼을 이수하고 서예과를 졸업하여 전문성을 갖춘 신세대 서예가들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과거와는 달리 대학에서의 전문적인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컴퓨터의 능숙한 사용으로 사이버공간에서의 활동 역시 자연스러우며 사고방식 또한 과거의 서예관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편이다. 그들은 또한 몇몇 진보적인 작가군의 노력에 의해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새로운 서예운동부터 1991년 창립된 현대조형서예협회, 1997년의 물파 그룹이 탄생하면서 시도된 다양한 새로운 서예작품들을 자연스럽게 접하면서 대학시절을 보낸 셈이다.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예계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은 어느 덧 강산이 두 번 쯤 변할 만한 시간이 흘러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없었던 서예가들뿐만 아니라 이제는 일반인들에게 까지 다양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서는 상업디자인과 본격적으로 합류하여 영화, 광고, 상품디자인의 표제, 북 디자인과의 결합 등 서예의 쓰임이 디자인과의 결합으로 그 영역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필자도 여러 차례 CIP작업을 한 바 있으며 특히 작년의 광주비엔날레 포스터도 디자이너 박금준 선생에 의해 필자의 서예작품과의 결합으로 완성된 것이다. 특히 「601비상」에서 제작한 박선생의 〈둘, 어우름〉이라는 책은 전 페이지에 걸쳐 필자의 글씨가 사진과 함께 완성된 작품으로 뉴욕페스티발 은상, 독일의 레드닷상, 원쇼상 등 세계적인 북 디자인상을 받기도 하였다. 앞으로는 서예가 캘리그라피라는 이름 하에 디자인과의 결합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따라서 미래의 서예가는 사이버공간의 사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디자인에 대한 공부와 상업미술에 대한 인식의 확산, 폰트개발에 대한 적극성 등을 갖출 필요가 있으며 한편으로는 회화와 같은 순수미술작품으로의 위상을 갖추어야 한다. 회화의 영역에는 오히려 서예적 요소를 도입한 마크토비나 추상표현주의의 여러 작가들도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남관, 이응노 같은 작가들도 서예적 요소를 빼 놓고는 애기할 수가 없다. 서예가 순수회화와 같은 시각예술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도와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기존의 변화 없이 나열된 3~4줄의 종서나 횡액의 작품, 구태의연한 전통액자 양식이나 족자형식은 나날이 눈높이를 더해가는 현대인의 기호와 욕구를 충족시키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더구나 현대인은 과거와 같이 시문을 논하고 그 서체를 감상하는 한문학적 소양이 사라지고 서양미술의 흐름이나 다양한 색, 서구화된 여러 디자인들에 눈과 인식이 젖어있다.
따라서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일반적인 서예관에서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는 여러 요소들을 요약하면 첫째, 우리는 컬러시대에 있어 흑백미술이 갖는 의미와 위치를 재학인하여 현대라는 시대와 걸맞는 먹의 강함, 단순함 등을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복잡한 패턴과 컬러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오히려 단순함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둘째, 표의 문자가 갖는 원시적 원형질의 생명력과 더불어 기표와 기의의 합일화 등 시대성에 걸맞는 양식으로 재창조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한글 같은 경우는 표음문자가 갖는 기호로서의 상징과 더불어 추상성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넷째, 붓질이 갖는 속도감과 율동성을 더욱 강조함으로서 현대성을 갖는 작업이다. 다섯째, 문인화처럼 그림과 글씨가 공존하는 양식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새로운 양식의 그림과 글씨가 공존하는 화면도출이다. 여섯째, 서각과 같은 입체적 양식과 서예의 평면적 양식의 결합이다. 일곱째, 사이버공간의 활용과 비디오아트, 홀로그램 등 여러 가지 변모가능성이 있는 현대적 물성과의 결합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변모가능성이 있는 몇 가지를 나열해 보았다. 물론 서예의 새로운 변모가능성은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며 작가의 철학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가능성과 변화가 생겨날 것이다.
5. 맺음말
앞에서 우리는 서양미술에 비해 동양의 서예가 발전하지 못한 여러 배경에 대해 살펴보고,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현실과 나아가야 될 방향에 대해 거론해 보았다. 그리고 필자는 위에서 서예의 미래가 대학에서 전공한 신세대 작가들에게 달려있다고 거론하였다. 그래서 대학도 서예가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생겨나는 인문학적 특성에 대해, 미술의 경우 미학만을 전공하는 학과가 있는 것처럼 문자학이나 금석학, 서론 등을 묶어 따로 전공학과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실기의 경우에도 과거 사범대의 경우처럼 2학년 까지는 공통으로 이수하고 3학년부터 디자인이나 타 영역과의 교류활성화 등으로 상업성을 고려한 시각예술분야의 서예가를 양성하는 그룹과 창작활동을 주로 하는 그룹으로 나누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학뿐만 아니라 서예를 업으로 삼는 모든 서예가들의 의식 확장과 새로운 모색에 대한 열정만이 서예가 이 시대에 도태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현대는 약 한 세기 동안 이제까지 유래가 없는 격동의 과학적, 문화적, 환경적 변화를 겪어 왔으며 현대인은 그 속에서 어쩌면 혼란과 정체성 결여 등의 심적인 공황상태에 있는지도 모른다. 굳게 믿어왔던 뉴턴의 결정적 세계관이 무너지고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카오스이론 등의 혼돈이 진실인 확률적 세계관이 우리의 사고를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게 만들기도 한다. 서예도 그렇게 격동의 시기를 겪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뉴턴의 시대가 밝혀낸 우주가 있듯이 오랜 역사 속에서 응축된 서론을 통해 서예를 이해함이 정석인 시대가 있고, 아인슈타인 이후의 시대가 밝혀낸 우주가 있듯이 새로운 개념의 서예가 출발할 시기가 이제는 온 듯하다. 현재 우리가 두 과학적 세계관을 무리 없이 인정하듯 새로운 개념의 서예도 전통적인 서예와 함께 공존하며 단지 다른 옷을 입은 다른 시대의 사람일 뿐, 뿌리는 하나라는 동질성을 가지며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서예는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절실한 고민과 현실적인 통찰을 하여야 할 것이다.
<토론문>
석용진 선생 글에 대한 질의문
선 주 선(원광대 서예과 교수)
석선생의 생각과 본인의 생각과 너무나 차이가 많아 어떻게 서두를 열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서예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은 같다는 마음에서 펜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견해는 온통 서예의 응용, 서예의 대중화, 서예의 환금성 등에 비중을 두고 전개한 논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본인은 11살 때부터 서예의 한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지금도 늘 서예의 精華에 한걸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한일자 하나로 자신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 옛날 당태종이 書學은 小道라고 언급한 것에 아직도 동감하고 있으며 서예는 너무 지고한 것이어서 늘 “상을 본뜨면 겨우 중의 결과가 얻어지는 것이며 중을 본뜨면 하의 결과 밖에 얻어지지 않는다(取法乎上, 僅得其中, 取法乎中, 不免爲下)”라는 말을 전제로 하면서 요즘 말하는 현대조형서예는 末流의 것으로서 본질로 볼 때 그 下이므로 下를 取法하면 그 다음은 무엇이 되겠는가 하는 의문으로 일관해 왔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본인이 40여년 전 처음 글씨를 배워 중등시절을 보낼 때 서울 인사동에 일중, 검여, 원곡, 어천선생 등 몇몇 분이 활동하였고 그분들이 서예계의 중추로서 서예계를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몇 사람 안 되지만 학문이 다 높았던 까닭에 그들은 어느 분야 누구에게서도 인간대접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초대작가만 1000여가 넘는 시점이기에 가히 지금이야 말로 서예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숫자가 많아도 진정한 서예가가 누구이며 몇이나 되느냐에 핵심이 있다고 봅니다.
서예가는 너무 많을 필요도 없고 많이 있을 수도 없으며 많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여깁니다. 지난날 같이 단 십수명이라도 진정한 소명과 사명의식을 가지고 서예역사속의 승선계후를 자부하는 자들로써의 덕목을 지키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선생이 말씀하시는 대로 서예가 흘러갈 적에 나중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광영일까요? 발전일까요? 바른길일까요? 그것이 더 자멸의 길을 재촉하는 길이지는 않을까요?
가장 서예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평범한 말로 끝맺겠습니다.
첫댓글 선생님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서예계뿐만 아닌 다른 분야에 계신 분들과는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더 넓은 길이 열리길 기원합니다.
좋은내용 잘 보고 갑니다.
많은 내용 열심히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