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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쓸모』
우리말 60% 이상이 한자말이다. 한자말은 없앨 수도, 안 쓸 수도 없다. 漢字는 글자 하나하나마다 개별적인 뜻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글자마다 다름의 미묘한 차이를 빚고 때로는 천 리의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언어는 인문학적 소양의 결합을 담고 있으며, 우리 일상생활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말의 개념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고, 좀 더 윤택한 언어생활이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이 책을 소개한 내용과 책표지의 글을 보면서 느낌과 소회를 적은 것이다.
저자인 박수밀 선생은 ‘미시적 관찰과 거시적 조망의 균형 감각으로 문학을 교육, 역사, 철학과 연결하는 학문을 지향하는 생태 정신과 동아시아 교류사를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선생은 박지원을 오랫동안 탐구해 온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로서 저서로는 『연암 산문의 멋』, 『열하일기 첫걸음』, 『박지원의 글 짓는 법』외 『오래 흐르면 반드시 바다에 이른다』, 『청춘보다 푸르게, 삶보다 짙게』, 『리더의 말 공부』, 『고전 필사』, 『살아 있는 한자 교과서』등이 있다고하는데, 아직까지 내가 접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기능적 설명에 그치는 기존의 한자 관련 책들의 한계를 넘어서, 언어와 인문적 소양의 결합이라는 목표를 이루고자 애썼다. 漢字가 우리 삶에 문화를 해독하는 상징이며, 의미임을 밝히려 했다. 한자가 품고 있는 의미에서 인문적 성찰을 시도했다는 점이 책의 장점이다. 모쪼록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우리말의 개념어를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슬기로운 언어생활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고,“글자에 담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아, 나를 돌아보고 삶을 성찰하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책은 1부 ‘한자의 뿌리와 쓰임새’ 2부 ‘한자가 들려주는 삶과 문화 이야기’로 구성되었는데, 고전을 인용한 이야기들이 많으나 여기에 다 옮겨 소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 처음에 ‘본다는 것’의 차이를 소개했는데, 여기서부터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보는 것과 관련한 한자는 見, 看, 視, 觀, 察, 省 등이다. 그러나 이런 글자들은 모두 다른 성질을 갖는다. 볼 見은 단순히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을 말한다, 見學이 그렇다. 볼 看은 눈 目 위에 손 手 자를 얹은 모양이다. 눈 위에 손을 얹고 대충 훑어본다는 것이다. 走馬看山이 그런데 말을 타고 달리며 보는 산이 정밀할 수가 없다. 看過가 그렇다.
省, 視, 觀은 꼼꼼히 살피는 것이다. 看이 look이라면 이들은 watch에 해당한다. 눈(目)을 조그맣게(少) 뜨고 보는 것이 省인데, 省察은 꼼꼼하게 반성한다는 뜻이다. 視는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것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 두리번거리며 볼 수 없듯이 주목해서 보고 듣는 것이 視聽이다. 主試, 凝視라고도 있는데 응시는 뚫어지게 보는 것이고, 觀은 주의 깊게 보는 것이다. 피상적이지 않고, 주관적으로 본다는 말이다. 觀點, 視點이라는 말은 있어도 看點이라는 말은 없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瞻과 瞰도 본다는 뜻이지만,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첨이고, 아래를 굽어보는 것이 감이다. 瞻星臺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대고, 새처럼 굽어보는 그림이 鳥瞰圖다.
3.1절이나 광복절이 되면 늘상 느끼는 것이지만,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의사와 열사도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라면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義士, 烈士는 모두 나라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말한다. 일을 성공하면 의사, 실패하면 열사라는 말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의사는 성패와 관계없이 총이나 칼 등 무기를 쓰거나, 무력을 통해 항거하다가 순국한 사람을 말한다.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 박재혁 의사 등이다. 열사는 직접적인 행동, 물리력 행사 대신에 강력한 항의의 뜻을 죽음으로 내보인 사람을 말한다. 유관순 열사, 이준 열사 등이다.
世와 代는 족보 등에서 흔히 언급되지만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세는 시조로부터 센 세순을 말하고, 대는 자신을 기준으로 위로 올라가는 깃을 말하므로 나는 시조 문다성으로부터 몇 세가 된다고 할 수 있고, 대는 나를 포함하지 않으므로, 한 대가 빠지는 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아버지가 1대 할아버지가 2대니까 3대조가 되는 것이다.
조선의 왕들은 세종, 고종처럼 宗인 경우와 세조, 영조, 정조처럼 祖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도 아닌 연산군과 광해군이라고 세자 때 이름을 그대로 부른 경우도 있다. 종,조를 묘호라고 하는데 임금이 죽은 뒤 다음 왕과 신하들이 정한다. 선조의 묘호는 善宗이었다. 그러나 이이첨과 허균 등이 임진왜란이 끝난 뒤 나라를 지킨 공로를 내세워 선종을 선조로 바꿀 것을 요청하였고, 광해군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인조는 선왕이 광해군으로 강등되고 새 왕이 되었으니 새로운 왕조를 시작했다는 논리로 정해졌고, 영조, 정조, 순조도 본래는 영종, 정종, 순종이었으나 철종이 순종을 순조로 높이고, 고종이 직계 혈통인 영종과 정종을 영조와 정조로 높인 것이다. 이성계 외에 조가 붙은 임금은 정치적 목적이 작용했던 것이다.
임금이었으나 묘호를 정하기 못한 임금은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군은 그들이 세자시절에 받은 명칭인데 왕좌에서 좇겨 나자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종묘에 모시지 않고 묘호를 받지 못한 것인데 단종도 본래 魯山君으로 강등되었으나, 후에 복권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묘호다.
바다를 뜻하는 한자말이 海洋인데, 海와 洋으로 구분된다. 왜일까? 동해와 흑해, 태평양과 대서양 등으로 말이다. 해는 육지와 붙어 있거나 육지와 가까운 바다, 양은 육지와 멀리 떨어진 바다를 말하는데, 전세계에는 5개의 대양이 있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북빙양, 남빙양이 그것이다. 해와 양은 영어로도 구분해 쓰는데, 해는 Sea, 양은 Ocean이라고 한다. 灣은 물굽이라는 뜻으로 바다가 육지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형태다. 항만은 항구와 만을 결합한 개념으로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거나 머무르는 장소를 말한다. 광양만, 영일만, 진해만, 속초만 등이다.
언어는 역사가 있고 그것이 만들어진 사연이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썰매는 우리말 같지만, 한자말 ‘雪馬’가 변한 말이다. 흐지부지 넘어간다고 할 때도 이것은 ‘諱之秘之’가 변한 것이다. 휘는 피한다는 뜻이고, 비는 숨긴다는 뜻이니 휘지비지는 피하고 숨긴다는 것인데 일을 분명하게 끝맺지 않고 어물쩍 피하고 감추는 태도를 말한 것이다.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잡동사니가 한데 뒤섞인 모양을 ‘잡동사니’라고 한다.이 말은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쓴 『잡동산이(雜同散異)』에서 유래했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 제도, 유교 경전, 지리, 경제 등 각종 분야의 글을 추려 모으고 이것저것 잡다한 지식을 수록한 책인데, 그것이 모두 53책이나 된다.
어떤 일에 익숙하지 못하거나 잘하지 못할 때 ‘젬병’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순우리말 같지만, 한자에서 왔다. 煎餠이라고 불리는 떡 이름이 바뀐 것이다. 찹쌀가루와 수수가루 따위를 반죽하고 속에 팥을 넣어 부친 것이 전병인데, 순우리말은 부꾸미다. 그것은 만들어서 그냥 두면 기름이 말라 부피가 줄고 눅눅해져 떡 모양이 형편없이 되고 만다. 이로 인해 형편없어진 모양이나 일에 소질이 없는 경우를 ‘전병같다’라고 했는데, 이것이 젬병으로 바뀐 것이다. 아이들의 술래잡기 놀이에서 술래는 巡邏에서 유래했다. 순라는 도둑이나 화재 등을 경계하기 위해 도성 안팎을 순찰하던 군대를 말한다. 순은 돈다는 뜻, 라는 순행한다는 뜻이니 오늘날 순찰과 같다. 순라가 술라로 발음되다가 지금의 술래가 된 것이다.
‘을씨년스럽다’는 역사적 사건인 을사보호조약과 관련이 있다. 1905년 일본이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한 강제로 맺은 조약이다. 그것을 맺은 날은 우리에게 매우 분하고 억울한 날이었다. 그 분위기로 어둡고 쓸쓸한 날을 을씨년스럽다고 한 것이다. 을사년이 을씨년이 되고, 쌀쌀한 가을 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된 것이다.
코미디 프로에서 남의 목소리나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내는 사람 있다. 그런 사람을 두고 聲帶描寫를 기막히게 잘한다고 칭찬한다. 성대는 목구멍의 중앙에 있는 소리 내는 기관이고, 묘사는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는 뜻이니 맞는 말처럼 보인다. 그래서 ‘성대묘사’를 귀막히게 잘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묘사가 아니라, 摹寫라고 해야 한다. 모사는 ‘원본을 똑같이 베낀다’는 뜻으로 무엇을 흉내 내어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다.
元祖라는 말이 있다. 음식점 골목에는 의례히 ‘원조’라고 쓴 간판이 있다. 어떤 분야나 사상의 최초 창시자 혹은 그 기원을 의미한다. 元은 머리를 크게 그린 사람의 형상을 본뜬 글자다. 머리는 사람의 맨 꼭대기에 있어서 ‘으뜸이나 처음’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설날의 다른 이름인 元旦은 새해 첫 아침이라는 뜻이다. 원조는 처음 시작한 조상이란 뜻이다. 鼻祖라고도 있는데 어떤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 혹은 사물의 처음이라는 뜻이다. 문화나 학문, 예술 등 특정 분야에서 그 기초를 닦은 인물을 말한다. 글자대로라면 비조는 ‘코의 조상’이라는 뜻이다. 중국 사람들은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생길 때 코부터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인데, 시조를 일컬어 비조라고 하는 것이다.
볼일 보러 가는 곳을 化粧室이라고 한다. 순우리말은 ‘뒷간’이라고 하며, 便所 또는 廁間이라고 하기도 한다. 경상도, 제주도에서는 ‘통시’라고 하였는데, 통시는 볼일을 보는 곳과 돼지를 기르는 곳을 하나로 합쳐진 말이다. 그 어원은 여럿이지만, 통시(通屎)라고 써서, 배설물(屎)이 흐르는 곳(通)을 의미하기도 하고, 돈시(豚屎), 즉 돼지가 있는 변소라는 뜻도 있다. 다른 어원은 큰 볼일에 ‘통’하는 소리가 나고, 작은 볼일을 ‘시’라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解憂所는 근심을 푸는 곳이란 뜻이다. ‘꾸미고(化) 단장(粧)하는 방(室)’이라는 ‘화장실’은 글자대로라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옛날 형벌은 오늘날과 많이 달랐다. 찢고, 베고, 때리는 등 잔혹한 것이 많았다. 자유 없이 속박된 상태를 桎梏이라고 하는데, 질은 발에 차는 차고를 말하고, 곡은 손에 차는 수갑을 말한다. 아무리 해도 알 수 없다는 ‘도무지’는 형벌과 관련이 있다. 도무지는 도모지(塗貌紙)가 변한 말로, 얼굴에 바르는 종이가 도모지다. 창호지를 물에 적셔 죄수의 얼굴에 겹겹으로 달라 붙게 한 것인데, 죄수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고 종이가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을 쉬지 못하고 죽어갔다. 이런 끔찍한 형벌만큼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도리’라는 데서 도무지(도모지)라는 말이 나왔다.
욕설 가운데는 형벌에서 따온 것이 아주 많다. ‘경을 칠 놈’할 때, 黥은 경형을 말한다. 경은 도둑질한 사람의 이마나 빰, 팔뚝에 글자를 새기는 것으로, 경형은 먹으로 새기는 것에서 墨刑으로도 불렸다. 이 형벌은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하여 영조 때 폐지되었다. ‘육시랄 놈’이라는 욕도 있는데, 戮屍는 이미 죽은 사람의 시신을 꺼내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베는 형벌로 剖棺斬屍와 같은 말이다. ‘육시랄’은 ‘육시를 할’의 줄인 말이다. 무언가 마뜩잖을 때 ‘젠장맞을’이란 말을 쓴다. 이는 ‘제기 난장을 맞을’이 변한 것으로 ‘제기’는 못마땅하여 불쾌할 때 내는 욕이고, ‘亂杖’은 여럿이 죄수를 가운데 두고 때리는 형벌이다. 패륜의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이런 형벌이 가해졌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라질’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오라질’에서 유래했다. 오라는 죄수를 묶는 포승줄이므로 오라질은 포승줄로 묶여서 관청으로 끌려가는 상황을 말한다. 이렇게 모진 형벌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라 하여 모두 사라졌지만 욕설로는 남았다.
옛날에는 옷을 직접 집에서 만들어 입었다. 옷감을 만들기 위해 베틀에 실을 고정시키는데, 세로줄인 날줄은 고정시키고 거기에 북으로 씨줄을 끼워서 베를 짰다. 이때 세로줄인 날줄을 經이라 한다. 이 경은 변하지 않는다 하여 經典이라는 말이 나왔고, 씨줄은 緯라 하는데 위는 이리저리 움직인다. 날줄과 씨줄이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옷감이 완성된다. 일을 전개하는 과정을 經緯라고 하는 이유다.
전쟁과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병법서가 『손자병법』으로 춘추시대 孫武가 썼다고 전한다. 거기에는 오늘날까지 꼽 씹는 말이 있는데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말이 그것이다. 또 美人計, 즉 미인을 이용한 계략이란 말도 나온다. 손자병법 36계 중 31계로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린다는 말이 실감되는 것이 미인계다. 36계는 다른 병법서에도 나오는데, 36계의 마지막 계가 ‘走爲上策’이라 하여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이라고 하였다. 苦肉策, 彌縫策도 36계 중 하나다.
순우리말 같지만 아닌 것 중에는 ‘어영부영’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시대 三軍門 중의 하나인 御營廳이라는 군영 이름에서 유래한 이 말은, 어영청이 기강이 매우 강한 부대였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전투력이 약해지고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제 역할을 못하는 오합지졸이 되었다. 이를 두고 어영은 군대도 아니다(非營)라고 하여, ‘어영비영(御營非營)’이라고 수군거렸는데, 이것이 지금의 어영부영이 된 것이다.
우리말 중에는 우리말인 줄 알고 쓰고 있지만, 일본말인 경우도 많다. 우동, 오뎅 이들 모두 일본말이다. 가락국수, 생선묵으로 바꿔 쓰는 것이 맞을 것이다. 18번은 일본의 대중 연극 가부키에서 유래하고, ‘기라성’이라면 곱고 아름다운 비단을 뜻하지만, 이 말도 ‘귀하다. 반짝이다’는 일본어 기라(きち)의 발음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일본에서는 병원 로비도 待合室이라고 하여 우리와는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역 구내를 굳이 대합실이라고 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다행히 서울역은 ‘맞이방’이라고 하여 우리말로 바꿔쓰고 있기는 하다. 시말서, 정거장, 촌지 이런 말들 모두 일본의 잔재다.
백수를 지나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을 ‘乾達’이라고 한다. 이는 인도어 ‘간다르바(Gandharva)에서 왔다. 간다르바는 부처가 설법할 때마다 나타나 바른 불법을 찬양하고, 불교를 수호하는 음악의 신이었다. 향기만으로 살며 노래와 춤을 추었다. 간다르바를 한자로 번역하면서 乾達婆라고 했는데, 본래 의미는 사라지고 돌아다니며 노래하고 춤춘다는 이미지만 부각되어 건달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평등, 인상, 결과, 인연, 미래, 나락, 이판사판, 야단법석, 무진장, 아수라장 이런 말들이 모두 불교에서 유래했다. 종교는 단순히 사상에 영향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상상의 동물 용이 있다. 둘은 뱀이나 도마뱀을 닮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도 많다. 동양의 용은 턱밑에 신비한 조화를 부리는 如意珠가 있고, 비늘로 덮여 있다. 낙타의 머리에 사슴 뿔, 토끼 눈과 사슴의 귀를 가졌다. 반면에 서양의 용은 날개가 있으며 입에서 불을 뿜는다. 동양의 용은 신령한 존재로 제왕을 상징하지만, 서양의 용은 공포와 두려움을 주는 존재다. 서양에서 뱀은 사탄의 이미지였기에 그를 닮은 용은 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던 것이다.
金銀銅은 사람들이 차례대로 좋아한다. 돈을 의미하는 말은 金도 있고, 錢도 있다. 그런데 왜 은행이라고 할까? 고대 중국에서는 금보다 은 중심으로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 은이 더 많이 생산되고, 폭넓게 이용되었으므로 은이 화폐 역할을 하면서 은을 보관해 주던 가계라는 뜻으로 은행이라고 한 것이다. 銀行의 行은 ‘널어선 가게’라는 뜻이다. 銅은 구리를 말하는데 금과 같은(同) 금속이란 뜻이다.
사람들은 긴 것을 좋아한다. 長壽가 대표적인데, 그것을 좋아하다 보니 불로초를 찾고, 十長生을 좋아하게 되었다. 해(日)와 달(月) 산(山)과 물(水), 대나무(竹)와 소나무(松), 거북(龜)과 학(鶴), 사슴(鹿) 그리고 불로초(不老草)가 십장생이다. ‘한 자의 길이도 짧을 때가 있고, 한 치의 길이도 길 때가 있다’(尺有所短 寸有所長)는 말이 있다. 한 자는 약 30㎝, 한 치는 그 1/10로 3㎝인데, 그 길이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도 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듯이 어떤 상황에서는 쓸모 있고, 어떨 땐 쓸모없는 단점만 있는 사람은 없다. 나름대로 역할이 있는 것이다. 寸이 약 3㎝라면, 尺은 약 30㎝, 丈은 어른의 키 정도를 말하는데, 10척이 1장이니 약 3m다. 사람 키 치곤 좀 크다. 우리말로는 ‘길’이라고 하는데, 한 길, 두 길이 깊이가 그것이다. 分도 길이의 단위인데, 푼으로 발음하고 10분은 1촌과 같다.
거리를 걷다 보면 ‘금일 휴업-주인 白’이라고 쓴 것을 볼 때가 있다. 집주인이 백씨구나 하고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이때 白은 ‘아뢰다’는 뜻이다. 告白이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생각을 고해 아뢰는 것이고 獨白,自白도 같은 의미다. 이제부터는 2부로 넘어간다. 2부에서는 ‘한자가 들려주는 삶과 문화 이야기다’처음에 살펴볼 이야기가 결혼 이야기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예식장에 온 사람을 축하객 또는 하객이라고 한다. 본래는 祝客과 賀客을 구분했는데, 祝은 제상(示)앞에 입을 벌려 기도(呪)하는 사람이고, 賀는 재물(貝)을 더해(加) 주는 사람으로 축객은 말로 축복해 주는 사람이고, 하객은 재물을 보태주는 사람이다. ‘하객 여러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면, 부조금을 내지 않은 사람은 조금 민망한 일이 될 것 같다. 華燭은 결혼식에 사용하는 다양한 빛깔(華)로 만든 밀초(燭)을 뜻한다. 가난한 사람은 소기름과 돼지기름으로 만든 초를 썼고, 밀랍으로 만든 밀초는 비싸고 구하기가 힘들어 관청에서 배급받아 쓰곤 했다고 한다. 화촉은 결혼식에서나 쓸 수 있는 초이다 보니 결혼을 대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披露宴은 큰 잔치로 피로할 테니 위로해 주는 잔치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피로에는 다른 뜻이 있다. 披는 헤치다. 열다는 뜻이 있고, 露는 명사일 때는 이슬이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드러내다. 노출하다는 뜻이다. 피로란 열어 헤쳐 보여 주다. 혹은 드러내 보여주다는 의미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을 여러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자리가 피로연이다. 幣帛은 신부가 시댁 어른께 인사를 올리고 준비해간 옷과 음식을 드리는 것을 의미하지만, 요즘은 간소화되어 예식장 안에서 폐백을 한다. (그것도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폐백 할 때는 꼭 대추와 밤을 던져주는데 왜일까? 대추 棗는 이를 早와 발음이 같고, 밤 栗은 두려울 慄과 발음이 같은데, 일찍 일어나라는 뜻과 행동을 삼가 두려운 마음으로 몸가짐을 단속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물론 밤, 대추를 합치면 棗栗子가 되는데, 이는 중국어 早立子, 혹은 早利子와 발음이 같다. 조립자는 일찍 아기를 낳길 바란다는 뜻이고, 早利子는 빨리 부자가 된다는 의미가 담겼으므로, 점차로 폐백에서 부귀와 자식을 기원하는 염원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喪家와 관련된 것이다. 상가에는 ‘弔’라고 쓴 커다란 조등이 켜져 있는데, 조상한다는 뜻이지만, 조는 사람(人)이 활(弓)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은 옛날 風葬을 할 때, 들판이나 숲에 시신을 두면 짐승들이 종종 시신을 훼손하곤 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사람이 활을 들고 시신을 지킨 데서 유래한 글자다. 弔의 속자가 ‘吊’인데 이는 오늘날 세태를 반영한다. 입(口)으로 곡을 하고 巾(수건)을 등에 매단 형태다. 요즘은 매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는데, 불교에서는 화장을 茶毘라고 한다. 다비는 한자 뜻과는 관계없이 인도어로 ‘태우다’는 뜻이다.
짧은 시간을 눈 깜짝할 새 또는 ‘瞬息間’이라고 한다. 눈 한 번 깜빡(瞬)이고, 숨 한 번 쉬는(息) 사이가 순식간인 것이다. 瞥眼間의 별은 언뜻 스쳐 지나간다는 뜻이고, 霎時間의 삽은 가랑비 또는 이슬비를 말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는 시간이란 뜻이다. 모두 짧은 시간을 말한다. 더 짧은 시간 단위로는 札剌도 있다. 인도어 크사나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찰라의 반대말이 永劫이다. 그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가장 긴 시간 단위다. 천지가 한 번 개벽한 후 다시 개벽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불경에는 선녀가 사십 리나 되는 돌산을 백 년마다 한 번씩 옷을 스쳐 돌산이 전부 닳아 없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하루를 24시간이 아닌 12시진으로 나누고, 1시진을 2시간씩 나눴다. 1시진을 다시 8각으로 나누었는데,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할 때 頃刻은 시간 단위로 치면 15분 정도다. 寸刻이라고 하는 단위도 있는데, 각의 10분의 1을 말하므로 1분 30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다. 촌각을 촌음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명심보감』에는 ‘젊음은 쉬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촌음의 순간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少年而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고 하는 말이 있다.
평생 해야 하는 것이 공부라고 한다. 그런데 왜 그것을 工夫라고 쓸까? 공부는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닦는 것을 말한다. 장인 工, 아비 夫,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工夫는 불교의 做工夫에서 유래되었다. 주공부란 도를 열심히 닦는다는 뜻이다. 특히 참선과 기도를 말한다. 공부할 때는 간절 해야 하고, 다른 생각을 말아야 한다. 공부는 단지 지식을 쌓는 것만이 아니다.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무엇이든 공부가 될 수 있다. 지겹지만 평생 씨름해야 하는 것이 공부고, 숙제다. 삶이 곧 공부고 숙제인지도 모른다.
毒이 되기도 하고, 藥이 되기도 하는 것이 술이다. 술은 항아리(酉)에 담긴 물이라 하여 술 주(酒)를 쓴다.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해서 발광주(發狂酒)라고 하기도 하고, 근심 걱정을 들어준다고 하여 망우물(忘憂物)이라고도 한다. 플라톤은 ‘술은 신들의 음료’라며 극찬하기도 했지만, “젊었을 때는 술을 멀리하라. 술은 정신과 육체를 함께 망친다.”라며 경계하라고도 했다.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술은 燒酒다. 고려 후기 몽골에서 들어왔다고 하는데, 燒는 불이 타오른다는 뜻이니 소주는 불타는 술이다. 燒酒 대신에 燒酎라고 쓰기도 하는데, 불에 탈 만큼 순도가 높은 술을 의미한다. 순수한 술을 여러 번 증류하면 알콜 도수가 높은 燒酎가 된다. 술에는 按酒가 따른다. 按은 ‘누르다’는 뜻이니 안주가 술기운을 누른다는 의미다. 安酒라고 써기도 하는데 속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사람의 겉모습은 눈으로 보지만, 속은 술로 본다’는 말도 있으니, 술 취해 후회되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말자.
서양사람들은 자기 술잔을 스스로 채워 마시는 自酌文化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對酌文化라고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酬酌文化 전통이 있다. 수작이란 술잔을 서로 주고 받는다는 뜻이다.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따라주는 것을 뜻하는데, 報酬의 어원이 ‘보답하는 뜻에서 술을 따라준다’는 것이므로 수작이 맞다 싶다. 짐작(斟酌)이라는 말도 있는데, 속이 보이지 않는 술잔에 술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어쨌든 술을 권하는 것이 酬고, 따라주는 것이 酌이다. 그 수작이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는 뜻으로도 쓰이는데, 1940년대 이후 남을 속이는 말이나 행동을 낮추어 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며 술잔을 부딪치며 하는 乾杯라고 있다. 乾은 ‘마르다’는 뜻이므로 술을 마시면서 건배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杯는 나무로 만든 술잔이다. 어쨌든 ‘술잔을 마르게 하다’술을 남김없이 비운다는 것이 건배다. 영어로는 원샷.
옷이 날개라고 한다. 옷의 핵심은 옷깃이다. 옷깃을 마구 풀어 헤치면 猖披다. 猖은 옷을 입고 띠를 매지 않은 모양, 被는 옷을 풀어 헤친다는 것이다. 옷깃이나 치마끈을 풀어놓고 매지 않았다거나 속옷이 보이면 민망하다. 옷깃을 뜻하는 한자가 領이고, 소매는 袖다. 둘의 도드라진 특성이 영수란 말이 되었는데, 한 조직의 우두머리 혹은 수뇌를 말한다. 인간 생활에서 가장 필수적이 3가지 요소를 衣食住라고 하는데, 衣가 왜 처음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선조들은 옷을 제대로 입는 것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흔히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바둑판은 가로, 세로 19줄로 모두 361개의 교차점이 있다. 그 위에서 흑·백 바둑알로 집을 짓는 과정에 많은 수가 생긴다. 바둑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일상에서 사용되기도 하는데, 布石과 長考, 惡水, 妙手, 自充手, 勝負手, 訓手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이 무엇일까? 밥일까? 김치일까? 김치는 순우리말 같지만, 沈菜라는 한자 말에서 왔다. 침채가 딤채로, 김치가 되었다. 침은 담근다는 뜻으다. 김치에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고춧가루다. 그런데 고춧가루는 16세기 후반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러니 고춧가루 없는 김치, 즉 소금물에 절인 김치가 그전부터 있었다는 이야기다. 김치의 순우리말은 ‘지’다. 옛날에는 김치를 ‘디히’라고 하다가 ‘지’로 바뀌었다. ‘싱건지, 짠지’에 그 어원이 남아 있다. 지(漬)는 담근다는 뜻이다.
동치미는 ‘冬沈’에서 온 말이다. 겨울에 담가 먹는 채소라는 뜻이다. ‘나박김치’라고 있다. 무를 네모지게 썰어 절인 다음 고추, 파, 마늘, 미나리 등을 넣고 국물을 부어 익힌 김치다. 나박은 蘿蔔에서 온 말로 나박김치를 나복저라고 하기도 한다. 나복을 댓무우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날 ‘무’가 되었다. 흔히 먹는 무가 그것이고, 배추는 白菜가 변한 말이다. 믿둥이 흰 채소를 백채라고 한 것이다.
오늘이 2026년 새해이니 새해, 설날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설날은 愼日이라고 하기도 한다. ‘삼가다, 조심하다’는 뜻이다. 설날의 어원 가운데 하나인 ‘사리다’는 의미가 거기서 왔다. 사리고, 조심하고,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이 담겼다. 설과 추석에는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 진다. 그것을 귀성이라고 하는데, 귀향이라는 말이 있는데도 왜 굳이 귀성일까. 고향을 찾는 것은 회귀본능이다. 귀향은 귀양과 발음이 비슷하고 혼동되다 보니 조상을 찾아가는 일을 이와 구별하기 위해 歸省이라고 쓰게 되었다고 李瀷은 《성호사설》에서 적고 있다. 省은 생으로 발음하면 ‘줄이다’는 뜻이지만, 성으로 읽으면 ‘살피자’는 뜻이다. 조상의 묘소를 찾는 일을 省墓하고 하는 것과 같다.
경복궁, 창덕궁 이런 데를 宮闕이라고 한다. 宮은 왕이 거처는 곳이고, 闕은 궁을 지키는 담과 성문, 누각을 가르킨다. 돌담과 정문인 광화문은 궁이 아니라 궐에 해당한다. 경복궁의 정문이 光化門이다. 빛이 사방을 덮고 덕은 만방에 미친다는 ‘光被四表 化及萬方’에서 따왔다. 궁마다 정전이 있는데, 正殿은 임금이 정사를 보고, 신하들과 국정을 의논하는 곳이다. 경복궁에는 근정전이 있고, 국보 223호다.
물고기인 생선은 그 이름이 ‘치’와 ‘어’로 대변된다. 치는 비늘이 없고, 어는 비늘이 있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오징어만 봐도 어인데도 비늘이 없고, 멸치는 비늘이 있다. 아니면 치는 우리말로 된 고기, 어는 한자어로 된 고기라는 설도 있다. 그것도 일괄적이지는 않다. 지구상에는 3만 종이 넘는 물고기가 있고, 식탁에 오르는 종도 수백 종이나 된다.
나라마다 좋아하는 생선들이 각기 다른데 중국은 잉어, 일본은 도미, 미국은 연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은 ‘조기’다. 助氣는 ‘기운을 돕는다’는 뜻이다. 머리에 단단한 은황색의 뼈가 있어서 石首魚라고 하기도 한다. 문헌에 따르면 조기는 鯼魚(종어)였는데, 급하게 발음하다 보니 조기가 되었다고 한다.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리면 屈非다. 굴비는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조 있는 고기다.
물고기는 단순히 먹거리 이상으로 서양은 풍요와 지혜의 상징으로, 동양은 장수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각종 장신구에 물고기 문양이 등장하고, 김수로왕릉 앞 숭의문에도 물고기 문양이 새겨져 있다. 고구려 주몽이 부여에서 쫓겨 도망할 때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주어 탈출할 수 있었다는 전설도 있다. 민족마다 다양한 상징을 지녔지만, 희망과 번영, 풍요의 상징으로써 물고기가 생태계의 건강을 만들면 더 좋겠다.
과녁의 한가운데를 正鵠이라고 한다. ‘정곡을 찌른다’고 쓴다. 정과 곡은 새의 이름이다. 정은 몸집이 아주 작은 ‘제견조’라는 새인데, 작아서 쉽게 맞추지 못한다. 또 곡은 백조로 알려진 ‘고니’다. 이 새도 하늘 높이, 멀리 날아서 화살을 쏘아 맞추기는 어렵다. 과녁의 한복판을 맞추기 어렵듯이 이들도 맞추기 어렵다고 하여 정곡이라고 부른 것이다. 사물을 뚫어지게 본다는 뜻의 鷹視도 매와 관련이 있다. 응시는 매의 눈처럼 부릅뜨고 노려보는 것이다. 凝視라고 쓸 때는 똑바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섬을 한자로는 島嶼라고 한다. 음밀히 말하면 島는 큰 섬, 嶼는 작은 섬을 말한다. 도는 새 鳥에, 뫼 山을 써서 새가 쉬는 곳이다. 일본과 영토 분쟁을 휘말리기 쉬운 獨島는 원래 돌로 된 섬, 石島라고 불렀다. 돌섬이 외로운 섬, 독도로 변한 것이다. 문헌에는 나무가 없는 섬, 대머리 섬이라는 뜻으로 대섬 혹은 대머리 禿자를 써서 禿島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본이 竹島라는 우기는 것은 ‘대섬’에서 가져간 것이다. 대나무는커녕 나무 한 그루 없는 섬을 죽도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經濟다.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산다.’경제는 영어 Economy를 번역한 말로 인간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한자에도 경제가 있다. ‘經世濟民’을 줄인 말로 경은 날줄, 즉 세로줄을 말한다. 베를 짤 때 날줄을 먼저 걸고 거기에 가로줄인 씨줄을 엇걸어가면서 베를 짠다. 날줄에서 다스린다는 뜻이 갈라져 나와 경세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 되었다.
濟民은 ‘빈곤이나 어려움에서 건져 낸다.’는 것으로 백성을 어려움에서 구제한다는 뜻이다. 경세제민이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활동이다. 경제의 번역어인 이코노미의 어원은 ‘집안 살림’인데 반해, 경세제민은 그 범위가 넓은 나라 살림이다. 국적을 초월한 多國籍企業이 판치는 세상이다. 한때 문제가 되었던 分蝕會計로 경제를 거들내지 말고, 제때, 제대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伏地不動하지 않으면 경제는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나라가 국민이 잘 살도록 노력하고, 국민이 소비하고, 움직이는데 경제가 살아나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2026.1.2. 오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