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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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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복날의 마지막 말복(末伏)입니다. 복날에는 보신(補身)을 위하여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여 먹지요. 특히, 개를
잡아서 개장국을 만들어 먹거나, 중병아리를 잡아서 영계백숙을 만들어 먹고, 또한 팥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는다
하여 팥죽을 먹거나 시원한 참외나 수박을 먹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탁족(濯足)이라 하여 계곡에 들어가 발을 씻으며 더위를 피하기도 하고,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했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입추와 말복 무렵이 되면 날씨가 좋아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벼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복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라고
하여 귀가 밝은 개는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 속담은 벼가 쑥쑥 자라기를 바라는 농사꾼들의 마음과 닿아
있지요.
한편 ‘복날에 비가 오면 청산 보은의 큰애기가 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충청북도 청산과 보은이 우리나라에서는
대추가 많이 생산되는 지방인 데서 유래한 속설입니다. 대추나무는 복날마다 꽃이 핀다고 하는데, 복날에는 날씨가 맑아야 대추열매가 잘 열리지요.
그런데 이날 비가 오면 대추열매가 열리기 어렵고, 결국 대추농사는 흉년이 들게 됩니다. 따라서 대추농사를 많이 하는 이곳의 사정과 맞닿아 있는
말이지요.날마다 폭염이 내리쬐는 요즘이지만 이제 더위도 말복을 고비로 서서히 꼬리를 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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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속풀이
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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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
조선족 예술단”과 풍년가로 하나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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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중국 연변대학에서 가졌던 한 중 학술 및 실연교류회에서 한국 쪽이 보여준 공연을 소개하였다. 박문규 명인의 <편락>을 시작으로
10여 종목이 선을 보였다는 점, 이기옥과 김인숙이 부른 송서 율창 중 <등왕각서>, 송서란 한 마디로 <글 읽기>이며
밋밋하게 글자만을 읽지 않고, 고저와 강약, 시가(時價)를 구별하면서 음악적으로 구성지게 표현하는 장르라는 점을 얘기했다.
또
추점순의 경기민요와 고향임과 제자들의 단가와 판소리, 정효정의 가야금 독주 <영목>, 남도 명창들의 <성주풀이>외 유춘랑
외 2인의 <난봉가>류, 박준영의 <배뱅이굿>을 얘기했는데 <배뱅이굿>은 서도식 창법으로 부르는 1인 창극조라는
점을 말했다.
공연 마무리는 김병혜와 서편제소리사랑 팀의 창극조 <뱃노래>였으며 박수나 추임새를 아끼던 그들이 마지막
순서에는 앞을 다투어 무대 앞으로 나와 함께 춤도 추고, 목소리도 높였으니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연변 체류시 안내원이
“연변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최고의 연주자, 유명한 성악가들이 다 모여드는 걸 보니 한국에서 오신 여러분들이 대단한 분들임을 알 수
있었다.”며 말투나 행동이 공손해 지고,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지극 정성으로 달라졌음을 확인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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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대학에서의 교류 음악회를 끝내고 연길시에 소속되어 있는 <연길시 조선족예술단>을 방문하여 교류한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한다.
우리가 도착하여 대학에서 학술과 공연 교류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동안, 조선족 예술단은 전날까지 대규모의 시민을 위한 공연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했다.
마침 전날 7월 1일은 중국의 공산당 창건일이어서 도시 전체가 기념식이나 관련행사들로 분주했다고 하며 그래서 우리가 예술단을
방문하게 된 7월 2일은 마침 예술단이 휴무일이었다. 모처럼 휴무임에도 한국에서 찾아온 학회 회원들을 맞이하기 위해 단장, 부단장, 당서기 등과
일부 연주 단원들은 출근하여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아침,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예술단 간부들은
그동안의 교류회가 지닌 의미나 변화 양상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이러한 의미 있는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우리 일행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에 필자는 “어제는 연변예술대학에서 학술회의와 공연을 통해 교류의 의미를 더 한충 공고히 하였으며
같은 뿌리의 민족음악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성장하였는가, 또한 성장과정에서 변하지 않은 공통점은 무엇이고, 상이점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대화와 실연을 통해 확인하였다. 오늘은 직업 악단과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장점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 바란다.”는 방문인사와 함께 이번 교류회에
참가한 학회의 회원들을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이어서 양쪽의 2~3절목의 교류 공연이 이어졌다. 먼저 예술단 쪽에서는 젊은 경기민요
여가수의 풍년가와 잦은방아타령, 그리고 이어서 남자단원의 대금 산조를 들려주었다. 풍년가가 울려 퍼질 때, 한국의 전통음악학회 회원들은 함께
손뼉을 치며 추임새를 아끼지 않았고 후렴은 목이 터져라 함께 불러주기도 하였다. 묵계월 명창에게 경기소리를 이수한 이기옥 명창은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그 젊은 여가수의 선생이 연변 예술대학에서 민족성악을 지도하고 있는 김순희 교수이고, 김순희교수가
한국에 나와 유학을 할 당시의 스승이 바로 묵계월 명창이기 때문에 그 젊은 여가수가 부르는 가락이나 창법, 시김새 등은 바로 자신의 스승이기도
했던 묵계월 명창과 비슷했기 때문에 감정이 복받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초당대 조혜영 교수는 “이곳에서 경기민요를 듣게 되다니 예전에 견주어 보면
크게 달라진 현상이다. 마치 한국에서 명인들이 부르는 민요를 듣는 것 같이 젊은 여가수의 창법이나 발음, 발림 등이 편안하고 훌륭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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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
공연에 이어 대금 산조도 감상하였는데, 대금 연주자는 북한의 저대를 이제껏 연주해 오다가 남한에서 대나무를 가져와 키를 부착하여 새롭게 대금을
만들었다고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설명하였다. 또한 그는 대금음악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그곳의 소학교에서 400여 아동들에게 소금을 지도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음악의 확산을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필자는 “이렇게 노력하니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가 예술단과 교류를 해 온 보람이 이제 서서히 나타나는 것 같다고 감회를 피력하며 다음에는 소금과 같은 취악기를 준비해 와서 이곳에서
남쪽의 음악이 활발하게 교육되도록 주선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학회 회원들이 여행경비를 아껴서 조금씩 모은 성금을
예술단장에게 전했다. 이날, 한국의 전통음악학회와 연길시의 조선족예술단은 짧은 만남을 가졌지만, 이렇게나마 교류를 갖는 것에 대해 서로가
진심어린 마음을 들어내며 뿌듯해 했다. 이러한 결과는 오랫동안 교류를 이어온 그간의 만남이 원동력이 되었고, 이러한 교류회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한국전통음악학회>와 <조선족예술단>은 공동의 발전과 서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고맙게도
이번 교류행사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도움을 받았고, 평소 전통음악에 관심이 많은 유충식 회장의 소개로 (사단법인) <매헌
윤봉길 월진회>의 도움도 받았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매해 악기를 협찬해 준 악기장 고흥곤, 김현곤, 송복쇠, 김동환, 김병철
명장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러한 행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초청해 주고 따듯하게 맞이해 준 연변예술대학의 여러
교수님들과 연변지역의 음악인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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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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