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사(龍華寺) /전통사찰
- 경북 김천시 봉산면 덕천리
절도 역사는 있다. 용화사 내엔 사적기는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 찾아보기를 하였다.
신라시대 지어졌다고 하지만 근거는 없다. 이 절터를 미륵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7년 백연수 보살이 금릉 덕천리 석조관음보살입상을 옮겨 절을 세웠다.
한국전쟁 이후 조금씩 절의 규모를 갖추어온 것 같다.
마을에 있는 절, 동네사람들에게 쉼터일 수 있고, 성황당을 대신하여 기원하는 장소일 수도 있다.
관음전
김천 덕천리 석조관음보살입상 /경북 유형문화재
처음 보는 불상, 광배 그림도 이런 문양은 처음 접한다.
설명문에도 비교할 양식이 없어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토속 석불이라고 설명한다.
대웅전
요사, 종무소
삼성각
용화사는 관음보살신앙 사찰이다.
용화전이 예전에 있었다고 한다. 용화전엔 미륵불이 모셔졌을 것이다.
먼 옛날 미륵당이란 이곳, 절 이름은 용화사이지만 미륵불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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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화산 구화사(九華山九華寺) /전통사찰
- 경북 김천시 교동
고산사(孤山寺)가 있었다. 고산사는 조선중기까지 현재 김산향교 자리에 있었던 규모가 큰 절이었다.
명당인 이 절터에 김산향교(金山鄕校)를 짓기 위하여 승려를 쫓아내고 철거하였다.
고산사는 산내 열두 암자 가운데 하나였던 벽루암(碧樓庵)으로 자리를 옮겨 영화암(暎華庵)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1년, 중수 때 구화사로 바꾸었다.
영화암의 불상은 가끔 방광을 하였는데 1951년의 중수 때까지 아홉 번을 하여 절 이름을 구화사로 바꾸었다.
아홉, 완성된 숫자, 1951년 중수 뒤엔 방광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대웅전 안에는 방광을 했다는 조선초기의 목조석가여래좌상과 후불탱화(後佛幀畫)·신중탱화(神衆幀畫) 등이 있다.
중종(中鐘)과 벽루암중수기·영화암중수기 등 현판이 있다.
(인터넷 - 한국민족유산대백과사전 내용 정리)
구화산(328m) 정상 가까운 곳에 구화사가 있다. 산 밑에는 김산향교와 주택들이 있다.
지금 향교 자리에 고산사란 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산 정상에 있는 구화사를 보면 전체 그림이 그려진다.
걱축이나 전각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는 없다. 전체 모습은 아담한 것이 좋아 보인다.
대웅전
구화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경북 문화재자료
복장물은 모두 도난, 만든 이와 그 시기를 알 수는 없다.
만든 솜씨로 보아 17세기 후반 활동한 조각승 금문(金文)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금문은 법령 - 혜희 - 조능 등을 잇는 법령계통 조각승이다.
무량수전
비로전, 종무소
구화사에서 본 경치, 김천 시내와 황악산 능선이 시원하게 보인다. 황악산 능선은 백두대간이다.
2023년 11월 24일, 오전 9시 조금 넘어서 용화사, 구화사, 김산향교, 옥률리 석조아미타여래입상(문암사), 은기리 마애불,
광덕리 석조보살입상, 계림사, 개령향교, 서부리 삼층석탑, 갈항사지 석조여래좌상, 김천 미륵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
신흥사, 고방사 들을 보았다. 고방사에서 나올 때 오후 5시, 해가 서산을 넘었다.
김천시 봉산면..교동..어모면..감문면..개령면..남면..농소면(신흥사, 고방사).....상주IC..창녕IC..진영..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