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흥봉능선 연결 반송지역의 청동기시대 석기유적을 더듬어 24일에 이어 26일 다시 현장을 찾았다. 여러분의 눈에는......
1.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보이는 두개의 석대장승? 무엇을 의미할까? 133X35X30cm 무게150kg 기도처 석비와 연관지어봤다. 첫번째 사진의 석대장승과 세번째 四天王으로 낙서된 석비를 한쌍으로 본다. 유물이 발견된 거리는 300m 정도이다. |
|
|
|
2.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윗돌(4X1.5X1m 55ton)에서 상상의 나래 펼친다. 대족장의 무덤으로 보면서.... 주변에 70여기가? 지황 : 해발 80m의 구릉지로 북동쪽은 개울, 형상 : 머리부분 삼성혈조각과 다듬은 앞면 및 고임돌의 모습으로 추정했다. |
|
|
|
3. 이곳에 사진의 추정되는 적석총의 돌무지가 다수 있다. 훼손된 것도 있지만 낙엽속에 존재하는 흔적만도 7기 있다. 1970년대 예비군 훈련장으로 사용되면서 부분적 훼손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지만 형체는 그대로이다.
|
|
|
당시 부족민들은 200여년 정도 이곳에서 정주생활을 했었던 것같다. 그래서 망주석형 석장승을 세워 부족민들의 안위를 도모하고 죽음은 고인돌로 남기거나, 돌무지 적석총으로 조상들의 혼을 기리도록했던 것이다. 이 고인돌과 적석총속에 그 시대 역사가 틀림없이 남겨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더 비옥한 경작지 찾아 絲川넘어의 마을을 정주지로 넓혀가지 않았을까? 이곳에서 해운대의 참과 문화도시 확인하자. 돌무지속에는 돌널무덤 비슷한 방식의 무덤 조성되어 있을텐데.... 시작된 동부산권매장문화제 유존지역정보고도화사업에서 이런곳 지표조사 조속히 실시하여 센텀2지구 개발사업에 걸림돌로 작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4. 명장 민간공원 조성지 삼어마을에서 정주의 사실을 밝혀보려 했다. 박살난 토기를 보면서, 해운대 역사의 한 흔적으로! 이 파편은 외부전체가 문살무늬(乷#)형 기호로 채워진 황색 토기로 내부는 검은색이다. 이 유물 역사적 가치 확인해 보자. |
|
|
|
이 토기 부장품일까? 아니면 당시 주거지에 남겨진 생활의 흔적일까? 청동기시대 해운대에는 소수 부족들이 살기좋은 곳이라 여러 형태로 이곳에서 상당기간 주거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함께한 장산 역사유적탐사대 강우동님의 도움에 감사를 드립니다.
해운대에 토기유적지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으로 관리정도는 해야할 것이다. → #문살무늬 토기
석장승,고인돌,적석총,토기가 유존 하는 향토 역사, 동부산권 매장문화재로 역사흐름이 밝혀지는 계기 마련 되었으면 좋겠다.
향토사학자 의견, 시민 신고와 제공정보 가볍게 보고, 또 주민설명회 계획조차 없는 부산시 역사.문화재 행정 「쭉정이 벼같다」.
첫댓글 신비로운 장산국과 그 이전의 역사, 꼭 밝혀지기를 빕니다.
신라말 견훤의 후백제가 이곳을 군사훈련지로 이용? 결과 신라 멸망의 원인을 제공했던 동래가 이곳일지도.....
끊임없는 탐사의 수고로움에 오랜 역사가잠을 깨는군요.~^^
석장승 무사함 확인하러 12.30일 17시 현장 둘러 왔다. 산 허리 임도에 있는 목장승(천하대장군2, 천하여장군2기와 솟대 6)과 소식 전하도록 그리고 사라진 웅덩이에 개구리 휴식처를 만들어 회복의 생태계 만들어 놓겠다. 여러분은 2월 중순에 와 보세요. 그때 도룡뇽이 알 낳을 것이고 그러면 늦반딧불이도 그 시절 그리워 찾아 올 것입니다. 그 웅덩이 만들려는 이웃에 노국공주 관련한 한 맺힌 얘기 숨어 있어 이야기 들어보려 한답니다.
외부가 황색인 문살무늬(#무늬) 토기 내부색은 검다. 손상되지 않은 원형의 토기가 갑진년 새해에는 꼭 발굴되어 해운대 청동기 시대와 삼국시대의 유적이 구별되는 학술적 연구의 전환점 되어지기를 바란다.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인간의 지각 능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는 바로 선택과 집중의 능력입니다.
현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잡념을 없앤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는다는 뜻이다.